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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2화]

딱지 뒤에 손이 있다

작성: 2026.04.03 11:03 조회수: 44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아침 여덟 시, 어머니 가게 안은 된장국 냄새와 복사기 열기가 뒤섞였다. 오선우는 밤새 프린트해 둔 서류 더미를 식탁 위에 펼쳐 놓고 젓가락으로 국그릇을 밀어냈다. 어머니 오복순은 아들 앞에 숭늉을 놓으면서도 서류 쪽으론 눈을 주지 않았다. 그 태도가 오히려 신경에 걸렸다. 복순은 아무 말 없이 가스 불을 줄이고 행주로 손을 닦았다.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 피하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엄마, 조합 설립 인가 날짜 알아?"

복순이 국자를 내려놓으며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작년 십일 월. 동장 아저씨가 반상회에서 말했어. 그때는 다들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왜, 뭐가 이상해?"

선우는 손가락으로 종이 위 숫자를 짚었다. 조합 설립 인가는 작년 11월 3일, 강제 수용 통보 공문 발송은 올해 2월 14일이었다. 그건 문제없었다. 그런데 공문 하단에 인쇄된 '현지 조사 실시일'이 작년 10월 29일이었다. 조합이 공식 설립되기도 전에 현지 조사가 먼저 찍혀 있었다. 선우는 숫자를 다시 한번 읽었다. 날짜가 틀린 게 아니었다. 순서가 틀려 있었다.

복순이 아들 어깨 너머로 종이를 내려다봤다.

"그게 잘못된 거야?"

목소리에 걱정인지 체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무게가 실렸다. 선우는 대답 대신 볼펜으로 날짜에 동그라미를 쳤다. 어머니는 더 묻지 않았다. 숭늉 그릇만 한 번 밀어 주고 부엌 쪽으로 돌아섰다.

서미라에게 전화를 건 건 아홉 시 직전이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받았다.

"뭐야, 벌써부터."

"현지 조사 일자 보셨어요? 공문에 찍힌 거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게 이상해?"

"조합 설립 전에 현지 조사가 들어온 거면 누가 사전에 움직인 거예요. 구청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

전화기 너머로 시장 골목 소음이 밀려들었다. 트럭 경적, 리어카 바퀴 소리, 누군가 고함치는 목소리. 서미라가 낮게 말했다.

"오전에 와요. 마틴이 할 말 있다고 어젯밤에 찾아왔었어."

상인회 사무실은 시장 골목 안쪽, 낡은 건물 이층이었다. 계단 난간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어서 올라갈 때 자연스럽게 몸이 벽 쪽으로 쏠렸다. 선우가 마지막으로 이 계단을 올랐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 가게 연말 행사 수금하러 따라왔던 것 같기도 했다. 계단 벽에는 오래된 행사 안내문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는데, 귀퉁이가 말려서 절반은 이미 떨어져 있었다.

마틴 김은 창가 쪽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선우를 보자 가볍게 손을 들었다.

"어, 도시계획 양반. 어젯밤에 잠은 잤어요?"

"조금요. 할 말이 뭐예요."

마틴이 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표정을 바꿨다. 농담기가 빠지면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어제 오후에 골목 입구에서 사람 봤어요. 안전모 쓰고 측량 장비 들고 있었는데, 공문 붙이러 다녔던 사람이랑 체형이 비슷했어요. 구청 직원 아니에요. 조끼 색이 달랐고, 차가 렌트였어요."

서미라가 팔짱을 꼈다.

"그게 확실해?"

"확실하진 않죠. 근데 구청 현장 직원들은 흰 조끼에 군청색 차잖아요. 그 사람 조끼는 회색이었고 차 번호판이 '허' 자였어요. 렌트요."

마틴이 어깨를 으쓱했다.

"기억력 하나는 좋다고요, 저."

선우는 서류를 꺼내 날짜 부분을 가리켰다.

"조합 설립 전에 현지 조사가 먼저 들어온 흔적이 있어요. 공식 절차 바깥에서 누가 먼저 현장을 훑었다는 얘기예요."

세 사람이 잠깐 말 없이 테이블을 내려다봤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 놓인 낡은 냉장고가 낮게 웅웅거렸다. 서미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측량 장비 든 사람, 다시 올 것 같아?"

마틴이 고개를 기울였다.

"모르죠. 근데 어제 우리 수리점 앞에서 뭔가 적고 있었어요. 내가 나가니까 바로 차 탔고."

선우는 노트에 짧게 메모했다.

'회색 조끼, 렌트 허 자 번호판, 측량 장비, 수리점 앞.'

글씨를 쓰면서 머릿속으로는 다른 계산을 굴렸다. 공식 절차보다 현장이 먼저 움직였다면, 조합 뒤에 자금을 댄 쪽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그 자금이 어디서 왔는지가 문제였다. 서미라가 선우의 노트를 옆에서 흘끗 봤다. 아무 말 없었지만 눈빛이 달라졌다. 이 사람이 뭘 하려는지 아직 다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오후 두 시에 보상 설명회 문자가 날아왔다. 발신자는 '동화4구역 정비사업 추진위원회'였다. 내용은 짧았다. '3월 28일 오후 4시, 구민회관 2층 대강당. 보상 기준 및 이주 지원 사항 안내. 참석 부탁드립니다.' 문자 맨 아래에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미참석 시 개별 통보로 대체됩니다.'

서미라가 선우에게 화면을 내밀었다.

"이거 협박이야, 안내야?"

"압박이죠."

선우가 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개별 통보라는 건 설명회에 안 오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뜻이에요. 집단 대응을 분산시키려는 거고요."

서미라의 눈이 좁아졌다.

"그럼 우리가 다 같이 가면 되잖아."

"그게 맞아요. 근데 같이 가더라도 뭘 물어야 하는지 모르면 소용없어요. 보상 단가 산정 기준, 권리금 반영 여부, 세입자 명부 포함 여부. 이 세 가지는 반드시 공개 질의로 넣어야 해요."

선우가 말을 이었다.

"질의서를 미리 써서 사회자한테 제출하면 회의록에 남아요. 그냥 손 들고 묻는 것보다 무게가 달라요."

마틴이 손을 들었다.

"저는 세입자 명부에 없을 수도 있어요. 계약서가 구두로만 돼 있거든요."

방 안 온도가 살짝 내려가는 것 같았다. 서미라가 마틴을 봤다가 선우를 봤다. 마틴은 캔커피를 손에 쥔 채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체면이 무너지는 사람의 자세였다. 선우는 잠깐 마틴을 바라봤다. 구두 계약. 서면이 없으면 협상 테이블에 올릴 이름이 없었다. 재개발 절차에서 이름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임대인한테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월세 송금한 내역 있어요?"

마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수증, 이체 내역, 뭐든 주고받은 기록 다 모아요. 계약서가 없어도 점유 사실은 증명할 수 있어요. 설명회 전까지."

선우가 말을 끊고 덧붙였다.

"시간이 사흘밖에 없어요."

마틴이 빈 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딱딱 소리가 두 번 났다.

"그거 모아서 어떻게 해요? 추진위에서 인정을 해줘야 말이지."

"인정 안 해줘도 돼요. 인정 안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중에 증거가 돼요."

선우가 노트를 덮으며 말했다.

"지금은 기록을 남기는 게 먼저예요."

서미라가 팔짱을 풀었다. 완전히 믿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더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 정도면 지금으로선 충분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선우는 계단 난간을 잡았다. 철이 손바닥에 차갑게 닿았다. 아래층에서 시장 골목 소리가 올라왔다. 두부 써는 소리, 생선 장수 목소리, 어디선가 라디오 소리. 이 소리들이 재개발 이후에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는지, 선우는 생각하다가 멈췄다. 그런 생각을 지금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골목 입구 쪽에서 마틴이 따라와 나란히 섰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있잖아요, 저 그 현장 조사 사람 얼굴 어디서 봤는지 생각났어요. 예전에 다른 골목 철거할 때요. 거기서 사고 났던 현장."

선우가 걸음을 멈추고 마틴을 봤다.

마틴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골목 안쪽으로 바람이 한 차례 지나갔다. 낡은 간판이 삐걱거렸다. 선우는 마틴의 얼굴을 한 번 더 봤다. 말하고 싶은 게 더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직 꺼낼 준비가 안 된 것인지, 아니면 꺼내도 되는 사람인지 가늠하는 중인 것인지. 선우는 먼저 재촉하지 않았다. 골목 끝에서 트럭 한 대가 후진 경보음을 울리며 빠져나갔다. 그 소리가 잦아들고 나서도 두 사람은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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