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수요일 저녁, 민주는 세탁소 문을 닫으며 전기 차단을 확인했다. 오래된 간판이 깜빡거리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그 깜빡임이 느리고 탁한 소리를 냈다. ‘내일쯤 전기사 오며 점검 좀 부탁해야지.’ 그 생각만 하고 집으로 향했다.
새벽 세 시, 민주는 기계음 없이도 눈을 떴다. 냄새 때문이었다. 불티 냄새, 연기 섞인 냄새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뛰어나가 본 민주 앞에선 세탁소 간판 뒤에서 작은 불꽃이 벽을 타고 위로 기어 올랐고, 그 옆에는 화재 감지기가 조용히 깜빡이고 있었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이웃들이 모여들었다. 다행히 불은 간판 안쪽에서 막혔고, 외벽의 일부만 그을음이 묻었다. 그러나 민주는 문을 여는 손이 떨렸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간판 뒤엔 전선이 녹아내린 흔적이 덕지덕지였다.
남편 성철은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이젠 이 간판, 세탁소보다 오래됐겠네. 언제부터 이렇게 됐대?’ 민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요란한 고장은 경보를 줬지만, 조용히 닳아가는 위험은 아무 소리 없이 다가왔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이튿날, 동네 지킴이 아줌마가 커피를 들고 왔다. “우리 집도 예전에 비슷했어. 벽 안쪽에서 합선 나서 난리 났지. 그때 다행히 보험 담당자가 정기 점검 오던 날이었거든. 짐 싸다 보니까 전선 이상 발견해서 미리 손댔지.”
민주는 그 말을 곱씹었다. 우리가 매일 보는 공간일수록, 오히려 제일 못 보는 구석이 있는 걸까. 보험서류 한 장보다, 한 번의 현장 점검이 더 큰 안부였다는 사실이 쓰디쓴 쓴맛을 남겼다.
주말엔 가족이 모여 사진을 꺼냈다. 개업 첫날, 아버지가 붉은 천을 끼워 올리던 그 간판. 성철이 속삭였다. “어릴 땐 이 간판 불빛만 봐도 집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어.” 민주는 그 빛이 이제 안전하게 계속되기를 바랐다.
다음 주, 민주는 전기설비 점검 신청서를 냈다. 함께 첨부한 건 이전 보험 계약서의 한 장이었다. ‘화재 위험 요인 점검’이라는 항목 옆에, 연필로 ‘간판 전선’이라고 메모해 두었다. 누군가의 일상도, 불씨 한 점에 흔들릴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