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수요일 저녁, 강민주는 세탁소 문을 닫기 전에 전기 차단기부터 다시 확인했다. 하루 종일 돌아가던 다리미와 건조기 소리가 멎자 가게 안은 갑자기 넓고 조용해졌다. 조용한데도 마음은 더 시끄러웠다. 오래된 간판이 깜빡거리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그날은 빛이 한 박자씩 늦게 따라오는 것처럼 둔했고 안쪽에서는 탁, 탁, 마른 소리까지 났다.
민주는 셔터를 내리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또 이러네.”
혼잣말이었지만 말끝이 괜히 길어졌다. 전기 기사 명함이 계산대 서랍에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지난달에도 한 번 꺼내 봤다가 다시 넣어 둔 명함이었다. 민주는 잠깐 셔터 손잡이를 쥔 채 서 있었다. 지금 전화하면 늦은 시간 출장비가 붙을 거고, 내일 아침에는 세탁물을 맡기러 오는 손님이 많다. 별일 아니면 괜히 호들갑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자 발이 먼저 집 쪽으로 향했다.
“내일은 진짜 부른다.”
이번에도 다짐은 쉬웠다.
집에 돌아와 젖은 옷을 대충 털어 걸어 두고, 저녁에 남겨 둔 국을 데웠다. 국이 끓는 소리가 나는데도 머릿속에는 간판의 깜빡임이 자꾸 겹쳤다. 한술 뜨고, 또 한술 뜨다 말고 민주는 결국 숟가락을 내려놨다. 방에서 나온 이준수가 냉장고 문을 열며 힐끗 쳐다봤다.
“엄마, 또 가게 생각하지?”
“아니야. 그냥 비 와서 예민한가 보다.”
“그 말, 어제도 했잖아.”
준수는 물컵을 든 채 문 앞에 기대 서 있었다. 민주는 괜히 싱크대만 닦았다. 아들이 맞는 말을 할 때는 이상하게 더 대꾸하기 싫었다.
“간판 소리 계속 났어?”
“조금.”
“그럼 기사 불러야지.”
“내일 부른다니까.”
짧은 대답이었는데도 변명처럼 들렸다. 준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새벽 세 시쯤, 민주는 기계음도 없이 눈을 떴다. 먼저 코끝이 반응했다. 타는 냄새였다. 불티가 스친 듯한 냄새, 눅눅한 연기 냄새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민주는 이불을 걷어내자마자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비는 잦아들었지만 공기는 축축했고, 골목은 이상하리만치 환했다. 세탁소 간판 뒤쪽에서 작은 불꽃이 벽을 타고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크지는 않았다. 그런데 작아서 더 무서웠다. 당장 번질 것 같지는 않은데, 한눈팔면 순식간에 커질 것 같은 불이었다. 민주의 목에서 소리가 확 터졌다.
“준수야! 일어나!”
집 안에서 문 여는 소리가 쾅 났다. 준수가 슬리퍼도 제대로 못 신고 뛰어나오며 말했다.
“119 했어?”
“지금!”
손이 젖은 것처럼 미끄러워 휴대전화가 자꾸 헛돌았다. 번호를 누르는 몇 초가 길었다. 그사이 골목 건너편 창문이 하나둘 열리고, 잠옷 바람의 이웃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불이야?”
누군가는 그렇게 물었고, 누군가는 이미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방차 사이렌이 골목을 흔들었다. 다행히 불은 간판 안쪽에서 번지다 말았고 외벽 일부만 검게 그을렸다. 큰 화재라고 부르기에는 작았지만, 해프닝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가까웠다. 물기 어린 새벽 공기 속에서 탄 냄새가 오래 남았다. 민주는 젖은 슬리퍼를 끌고 가게 앞에 서서 셔터 손잡이를 잡은 채 한참 손을 떼지 못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어땠을까. 그 생각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날이 조금 밝은 뒤에야 간판 뒤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던 철판 안쪽에 전선이 녹아내린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피복은 벗겨져 있었고, 벽면에는 열이 스친 자국이 길게 남아 있었다. 늘 보던 가게인데, 그날만큼은 처음 보는 곳 같았다. 매일 닦고 쓸고 정리하던 공간에도 이렇게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서운했다.
준수가 낮게 말했다.
“엄마, 이거 전부터 이상했던 거 맞지?”
민주의 어깨가 움찔했다. 간판이 자주 깜빡였던 일, 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졌던 일, 비 오는 날이면 유난히 신경 쓰였던 순간들이 뒤늦게 한 줄로 이어졌다.
“내가 미뤘지.”
짧게 나온 말이 생각보다 더 쓰게 들렸다. 준수는 바로 받아치지 않았다. 대신 젖은 바닥을 쓸 빗자루를 가져오더니 툭 내뱉었다.
“돈 아끼려다 더 큰일 날 뻔했잖아.”
핀잔 같기도 하고 걱정 같기도 한 말이었다. 민주는 순간 울컥했다. 억울해서가 아니라, 아들이 대신 놀랐다는 게 보여서였다.
“알아.”
“알면 이번에는 진짜 해야 돼.”
그 말 앞에서 민주는 괜히 허리를 더 숙여 바닥만 닦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쉬운데, 미루지 않겠다는 약속은 이상하게 더 무거웠다.
이튿날 오전, 박명자가 종이컵에 커피 두 잔을 받아 들고 세탁소로 들어왔다. 동네 소문을 제일 먼저 듣고, 제일 크게 걱정하는 사람다운 걸음이었다.
“아이고, 내가 어젯밤에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창문 열자마자 탄내가 확 들어오는데 심장이 덜컥했어.”
그러더니 그을린 벽을 보며 혀를 찼다.
“그래도 크게 안 번져서 천만다행이지. 이런 건 한 번 겪고 나면 밤마다 생각난다.”
민주는 커피를 받아 들고도 바로 마시지 못했다. 박명자는 자기 일처럼 말을 이었다.
“우리 집도 예전에 비슷했어. 벽 안쪽에서 합선 나서 난리 났지. 그때 보험 쪽에서 점검 나온 날이었거든. 서류만 보는 줄 알았더니 전선 상태부터 보더라니까. 그런 거 한 번 받아 보면 마음이 좀 놓여.”
서랍 속 계약서가 갑자기 먼지 쌓인 종이가 아니라, 미뤄 둔 숙제처럼 느껴졌다.
점심 무렵까지도 민주는 계산대 앞에서 몇 번이나 휴대전화를 들었다 놓았다. 전기 기사부터 부를지, 간판 업체에 먼저 연락할지, 괜히 장사를 며칠 접게 되는 건 아닐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손님 하나가 맡긴 와이셔츠를 찾으러 왔다가 그을린 벽을 보고 말을 붙였다.
“어머, 어젯밤에 여기서 냄새 나던 데가 맞죠?”
민주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별일 아니라고 웃어 넘겼지만 속은 더 조급해졌다. 작은 불보다 무서운 건, 별일 아니라고 말하는 자기 입이었다.
그때 준수가 세탁물 봉투를 묶다가 말했다.
“엄마, 오늘 그냥 신청해.”
“장사 며칠 비면 어쩌니.”
“비는 게 낫지. 타는 것보단.”
민주는 대꾸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 너무 정확하면 사람은 잠깐 숨이 막힌다. 잠시 계산대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던 민주는 결국 전기 설비 점검부터 접수하기로 했다. 장사를 하루 덜 하는 한이 있어도, 이번만큼은 모른 척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속이 조금 허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숨은 더 잘 쉬어졌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손을 댔다는 안도감이었다.
주말이 되자 집 식탁 위에는 오래된 사진들이 펼쳐졌다. 세탁소 개업 첫날 찍은 사진, 비닐도 벗기지 않은 다리미판,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들, 그리고 붉은 천을 끼워 올리던 간판의 모습이 차례로 나왔다. 준수는 사진 한 장을 집어 들고 한참 보다가 작게 웃었다.
“어릴 때는 저 불빛만 보이면 집에 다 온 줄 알았어.”
민주는 그 말을 듣고 사진 속 간판을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오래 버틴 것에는 늘 정이 붙는다. 하지만 정이 든다고 해서 위험까지 품고 살 수는 없다는 걸, 이번에는 인정해야 했다. 미안함으로만 눌려 있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지키려면 손봐야 한다는 쪽으로.
다음 주 초, 민주는 전기 설비 점검 신청서를 작성했다. 서류를 챙기다 예전 화재보험 계약서도 함께 꺼냈다. 계약서 한쪽에 적힌 ‘화재 위험 요인 점검’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민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연필로 작은 메모를 덧붙였다.
‘간판 전선 확인.’
거창한 결심이라기보다, 이제는 미루지 않겠다는 표시 같았다. 옆에서 박명자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런 건 적어 놔야 안 잊어버려.”
민주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에는 안 미룰게요.”
말로 꺼내고 나니 그 다짐이 조금은 자기 것이 되는 기분이었다.
가게 앞에 다시 서 보니 간판은 아직 떼어 낸 채였고, 벽에는 그을음 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 보기 좋은 흔적은 아니었지만, 모른 척 지나친 시간까지 함께 드러내는 자국 같았다. 민주는 셔터를 올리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큰일은 막았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아니었던 건 아니었다.
셔터가 반쯤 올라갔을 때였다. 안쪽 간판 틈에서 아직 빠지지 않은 탄내가 희미하게 다시 올라왔다. 민주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검게 그을린 벽면 아래로, 어제는 못 봤던 가느다란 선 하나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전선 자국치고는 방향이 이상했다. 누가 손댄 흔적처럼 보여서 민주는 무심코 한 발 다가섰다.
바로 그때, 골목 건너편에서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에 저기 사람 있던 거, 나만 본 거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