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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4화]

회의실 안의 온도

작성: 2026.04.06 23:56 조회수: 38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서미라 가게 창고는 원래 김치 냉장고 두 대와 박스 더미가 차지하는 공간이었다. 냉장고 한 쪽 면에는 납품업체 스티커가 겹겹이 붙어 있었고, 박스 더미 위에는 누군가 올려둔 두꺼운 비닐 우비가 아직도 젖어 있었다. 오늘 저녁은 그 사이에 접이식 의자 열 개가 들어와 있었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다 안정됐다.

선우가 들어섰을 때 이미 일곱 명이 앉아 있었다. 담배 연기와 포장마차 튀김 냄새가 섞여 있었고, 누군가 가져온 캔커피 두 개가 박스 위에 놓인 채 뜯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미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늦었네요."

서미라가 말했다. 핀잔이 아니었다. 사람 수를 확인하는 어조였다. 선우는 자리를 찾아 앉으면서 손에 들고 온 파일을 무릎 위에 얹었다. 파일 안에는 마틴 김의 이체 내역 사본, 공과금 고지서 세 장, 그리고 또 다른 세입자 두 명의 점유 확인 진술서 초안이 들어 있었다. 하루 안에 모은 것치고는 두꺼웠다.

회의는 처음부터 이상했다. 창고 안 사람들이 둘로 나뉘어 앉아 있었다. 서미라 쪽과 그 반대편. 반대편 맨 앞에는 건어물 도매상 최봉수가 있었다. 최봉수는 이 골목에서 가장 넓은 점포를 가진 사람이었고, 오늘 유독 팔짱을 끼고 있었다. 평소에 회의 자리에서 제일 먼저 커피 뚜껑을 따던 사람이 오늘은 캔에 손도 대지 않았다.

"설명회가 내일인데 오늘 또 뭘 정하자는 거요."

최봉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구청에서 뭐가 왔는지는 다 알잖아요. 조합 측도 나름대로 조건 내놓겠다고 했고."

선우는 고개를 들었다. 조합 측 조건. 공식 설명회 전날 저녁에 나올 말이 아니었다.

"어디서 들으셨어요, 그 말."

선우가 물었다. 짧고 평평한 목소리였다. 최봉수는 잠깐 눈을 옆으로 돌렸다가 다시 선우를 봤다.

"아는 사람한테 들었지. 뭘 그리 따지냐."

서미라가 끼어들었다.

"아는 사람이 누구예요, 봉수 씨. 어제까지도 그 말 없었잖아요."

최봉수는 대답 대신 의자를 삐걱거리게 움직였다. 창고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형광등이 또 한 번 깜빡였다. 선우는 그 침묵을 파일 위에 손을 얹는 것으로 채웠다.

박도경이 움직였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이 됐다. 설명회 전날 밤, 상인 중 가장 면적이 큰 사람한테 먼저 조건을 들고 간 것이다. 공식 협상 전에 분위기를 갈라놓는 방식. 선우가 서울에서 여러 번 봤던 방식이었다. 한 명만 흔들면 나머지는 눈치를 보다 따라온다. 그 한 명을 고르는 데 최봉수만큼 적당한 사람이 없었다.

"자료 보여드릴게요."

선우가 파일을 폈다.

"명부에서 빠진 세입자 다섯 명 증빙입니다. 이체 내역, 공과금, 점유 사실. 내일 설명회에서 이 사람들이 공식 질의 대상에 포함돼야 합니다."

최봉수가 코웃음을 쳤다.

"세입자 얘기는 세입자들이 알아서 하면 되지, 왜 상인회 회의에서 나와요."

서미라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

"그게 지금 말이 돼요? 그 세입자들 자릿세 받아온 사람들 여기 있잖아요. 그 사람들 명부에서 빠지면 조합이 보상 대상 줄이는 거고, 그게 결국 우리 골목 전체 협상력 낮추는 거예요."

방 안에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처음으로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미라의 논리는 거창하지 않았다. 생활 언어였다. 선우가 설명해야 할 걸 서미라가 반 문장으로 먼저 잘라냈다. 최봉수 옆에 앉아 있던 세탁소 주인 박씨가 팔짱을 풀고 무릎 위에 손을 내려놓았다.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선우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최봉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팔짱은 풀지 않았다.

"내일 보고 결정합시다. 설명회 가봐야 뭘 알지, 지금 여기서 뭘 정한다고."

서미라가 다시 입을 열려다 멈췄다.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나쁜 게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의 멈춤이었다. 선우도 파일을 덮었다. 오늘 밤 이 자리에서 끌어낼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회의가 끝난 건 아홉 시 반이었다. 결론은 없었다. 내일 설명회에서 공동 질의서를 제출하자는 안건이 올랐지만 표결까지 가지 못했다. 최봉수 쪽 사람들이 내일 보고 결정하자고 미뤘다. 사람들이 하나둘 창고를 빠져나갔다. 캔커피 두 개는 끝내 뜯기지 않은 채 박스 위에 남았다.

창고 밖으로 나오자 밤 골목이 조용했다. 빗기가 남은 바닥이 형광등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마틴이 가게 처마 아래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 증빙 자료 모으는 걸 도운 사람이었다. 그는 선우를 보자마자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반반이요."

선우가 짧게 답했다.

마틴이 씩 웃었다. 웃음에 힘이 없었다.

"반반이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거 아닌가요. 저는 아예 없는 줄 알았는데."

서미라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다 다시 집어넣었다.

"봉수 씨가 오늘 저녁 뭔가를 들었어요. 그게 어디서 온 건지 확인해야 해요."

그녀가 선우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선우는 골목 안쪽을 한 번 봤다. 빨간 딱지가 붙은 셔터들이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설명회 전날 상인 대표한테 개별 접촉한다는 건 공식 절차 밖이에요. 내일 그 조건이 뭔지 드러나면 누가 움직였는지도 보여요."

"드러나면 늦은 거 아닌가요."

"드러나는 게 무기가 되기도 해요."

서미라는 잠깐 선우를 바라봤다. 믿겠다는 표정도 아니고 의심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아직 가늠 중인 얼굴이었다. 그 표정이 선우한테는 오히려 편했다. 쉽게 믿는 사람보다 가늠하는 사람이 오래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틴이 가게 쪽을 흘끗 돌아봤다. 어떤 말을 꺼내려다 멈추는 것처럼 보였다. 선우는 그 순간을 잡았다.

"아까 낮에 하려던 말 있었죠."

마틴이 손을 목 뒤로 가져갔다.

"그 사람 오늘도 봤어요."

선우와 서미라가 동시에 마틴을 봤다.

"어디서요."

"골목 초입이요. 구청 쪽에서 걸어 들어오다가 봉수 씨 가게 앞에서 멈췄어요. 잠깐만요. 안에 들어간 건 아니고, 그냥 멈췄다가 돌아갔어요. 근데 그 사람 얼굴, 진짜 예전에 어디서 봤는지 자꾸 걸려요."

선우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마틴이 말하는 그 얼굴. 비공개 문서 하단의 '현장 조사 용역 파견' 담당자와 같은 인물일 가능성이 어제부터 머릿속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름도 없고, 사진도 없었다.

"그 사람이 봉수 씨 가게 앞에서 멈췄다고요."

마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미라가 낮게 말했다.

"그럼 오늘 밤 봉수 씨한테 간 게 조합 공식 라인이 아닐 수도 있겠네."

세 사람이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골목 끝 편의점에서 냉장고 소리가 흘러나왔다. 밤바람이 한 차례 지나갔다. 선우는 파일을 다시 가슴께에 끼었다. 내일 설명회까지 남은 시간은 열 시간이 채 안 됐다. 증빙은 됐다. 공동 질의서는 아직이었다. 그리고 이제 봉수 씨 쪽으로 먼저 손을 뻗은 사람이 누구인지, 한 개의 질문이 더 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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