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안이 성을 나선 건 해가 중천을 넘기 한 시간 전이었다. 짐이라고는 낡은 마도구 측정기 하나와 허리춤의 작은 가죽 지갑뿐이었다. 안마당 돌바닥에는 어젯밤 비가 남긴 진흙이 아직 마르지 않았고, 말 발굽이 그 위를 밟을 때마다 축축한 소리가 났다.
엘리안이 그 모습을 보고 잠깐 눈썹을 들었다.
"혼자 가는 건가."
"둘이 가면 눈에 띄죠."
루키안은 마부에게서 말고삐를 받아 들면서 덧붙였다.
"라이든 상단 납품 경로가 북쪽 교역로를 탄다면, 밀렌에서 하루 거리 안에 거점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까지만 확인하고 돌아오면 됩니다. 반나절이면 충분해요."
반나절. 그 말이 공기 중에 남았다. 엘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키안은 이미 말을 몰았고, 성문이 삐걱대며 열렸다가 닫혔다. 쇠 경첩 마찰음이 안마당 안쪽까지 울렸다.
세라가 옆에서 그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성문이 완전히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엘리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쪽 병력 반을 훈련 빼고 배치하면 공백은 없어요. 그런데."
"그런데?"
"없다는 것과 약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세라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지금 이 성이 얇다는 걸 밖에서 알고 있다면, 반나절은 충분히 긴 시간이에요."
엘리안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어."
"그래서 보냈습니까?"
"라이든 상단 경로를 모르면 다음 계약이 어디서 뚫릴지 모른다. 그걸 모르는 채로 병력을 온전히 지켜봤자, 성 안이 아니라 장부 바깥에서 무너진다."
엘리안은 세라를 똑바로 봤다.
"그래서 보냈어."
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훈련장 쪽으로 걸어갔다. 엘리안은 그 뒷모습에서 동의를 읽어야 할지, 유예를 읽어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세라의 부하들이 훈련장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엘리안 쪽을 힐끗 봤다가 시선을 거뒀다. 말은 없었지만 그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 대장이 뭘 보고 있는지 우리도 보고 있다고.
오전이 지나면서 성 안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용병 막사 쪽에서는 금속 두드리는 소리가 끊겼고, 훈련장에는 세라의 부하 다섯이 창을 옆에 세워 둔 채 짚더미에 기대 쉬고 있었다. 쉬는 게 아니었다. 창 손잡이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엘리안이 지나치자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가, 세라의 눈치를 보고 다시 앉았다. 세라는 성벽 위에 있었다. 북쪽을 보고 있었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밀었다가 놓았다.
엘리안은 그 자리에서 성벽 계단을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창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전에 베른의 증언을 다시 정리해 두기로 했던 참이었다. 토르빈이 라이든 이름을 흘렸다는 것, 그리고 새벽에 북쪽으로 떠났다는 것. 두 사실을 문서로 묶어 두지 않으면, 나중에 체면 있는 자리에서 이것을 꺼낼 때 아무 무게도 없는 말이 된다. 귀족들은 증거 없는 말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하더라도 모른 척한다.
창고 문을 열려는데 하르트가 먼저 나왔다. 손에 가죽 표지 장부 하나를 들고 있었다. 낡고 모서리가 닳은 것이, 오래 서랍 안에 묻혀 있던 물건처럼 보였다. 엘리안은 그것을 보고 발을 멈췄다.
"그것이 병상 기간 기록입니까."
하르트는 대답 대신 장부를 가슴 쪽으로 조금 당겼다. 그 동작이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
"아직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확인하지 않은 것과 열어 보지 않은 것은 다르죠."
하르트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엘리안은 그 흔들림을 읽었지만 추궁하지 않았다. 지금 이 사람을 몰아붙여서 얻을 것이 없었다.
"오늘 저녁에 같이 보면 됩니다."
그렇게만 말하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르트가 뒤에서 뭔가를 말하려다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안은 돌아보지 않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세라가 창고로 들어왔다. 엘리안이 장부를 정리하는 탁자 맞은편에 앉더니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옷 어깨받이에 훈련장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오후 내내 직접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엘리안도 기다렸다.
"오전에 루키안을 보내기 전에,"
세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부하들한테는 말했습니까?"
"말하면 막았겠지."
"그래서 안 말한 겁니까."
"그래서 안 말했어."
엘리안은 펜을 내려놓았다.
"세라, 내가 사람을 쉽게 버린다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해야 해. 루키안이 반나절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직접 나간다. 그건 처음부터 정해진 거야."
세라는 이번에도 즉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의 장부 더미를 눈으로 훑었다. 담보 계약서가 그 밑에 끼워져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거기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엘리안에게 돌아왔다.
"직접 나간다는 게, 로벨 영지 주인이 성을 비운다는 겁니까."
"세라가 있잖아."
그 말에 세라가 처음으로 표정을 달리 했다. 웃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굳어 있던 것이 한 겹 풀린 얼굴이었다. 그녀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해 지기 전에 돌아오면, 저녁에 계약 조건 이야기 다시 합시다."
세라가 나간 뒤 창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엘리안은 펜을 다시 들었지만 장부 대신 담보 계약서를 꺼냈다. 지워진 이름 위의 육각 봉인. 라이든 거래상단. 토르빈이 흘린 이름. 이것들이 한 줄로 이어지는 순간을 아직 보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루키안이 북쪽에서 뭔가를 들고 오면, 그 줄이 하나 더 연결된다. 아니면 끊긴다. 어느 쪽이든 오늘 밤 안에 알게 된다.
해가 지기 이십 분 전, 성문 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엘리안은 창고 문을 열고 나갔다. 루키안이었다. 말에서 내리면서 외투 소매로 얼굴의 먼지를 닦았다.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어렵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루키안은 평소에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뭔가를 숨기려는 얼굴이었다. 숨기려는 사람은 대개 이미 들켰다는 것을 모른다.
"있었어?"
엘리안이 물었다.
루키안은 말고삐를 마부에게 넘기면서 짧게 답했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잠깐 멈췄다.
"이야기가 좀 복잡해졌어요."
"얼마나."
루키안은 안마당 쪽을 한번 둘러보고, 세라의 부하들이 시야 안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엘리안 가까이 한 발 다가서서 낮게 말했다.
"라이든 상단 거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점에 있던 장부에, 제가 아는 이름이 있었어요."
엘리안은 묻지 않았다. 루키안이 말할 준비가 됐을 때 말할 것이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루키안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그는 눈을 잠깐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었다.
"오늘 저녁 안에 말하겠습니다. 혼자 있을 때."
엘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 쪽으로 돌아서면서 생각했다. 루키안이 아는 이름. 라이든 상단. 봉인 파손 사건. 그 세 가지가 같은 자리에 있다면, 루키안이 이 성에 남아 있는 이유 자체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것이 달라진다면, 엘리안이 오늘 반나절을 내준 값도 달라진다.
어두워지기 직전, 하르트가 저녁 등잔을 들고 서재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아직 그 가죽 장부가 있었다.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안은 장부를 바라봤다. 열지 않았다. 오늘 밤 루키안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했다. 순서가 있었다. 하르트는 그것을 알고 있는 듯 등잔을 내려놓고 문 쪽으로 물러섰다. 문을 닫기 직전, 그가 낮게 말했다.
"오래 묵혀 둔 것일수록, 여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엘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르트도 더 말하지 않았다.
촛불이 한 번 흔들렸다. 성벽 너머에서 바람이 왔다. 반나절이 끝났지만, 그 반나절이 남긴 것들은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