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59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궤 바닥의 저녁

새로 온 여자는 아이 손을 문밖에 남겨 두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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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온 여자는 아이 손을 문밖에 남겨 두고 들어왔다.

아이가 궤를 보면 돈 달라고 울까 봐 그랬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돈이 무엇인지보다 어머니가 방 안에서 얼마나 오래 없어질지 걱정했다. 연화는 문을 열어 놓고 자리를 내주었다. 문밖에서도 어머니 얼굴이 보였다.

여자의 이름은 이분남이었다. 남편은 강에서 짐을 나르다 수레와 함께 떨어졌고 현지의 사고 확인을 받아 왔다. 광산 사람의 식솔이 아니었다. 남편이 부조계에 들어 있던 시점과 납부한 몫이 장부에 남았다. 연화는 지금 바쁜 사건과 관계없는 사람이 왔다고 뒤로 밀지 않았다.

분남은 종이를 내려놓으며 자기가 글을 다 읽지 못한다고 했다. 서류를 받아 준 이에게 돈을 내고 쌀을 덜 샀다. 옷도 오래된 것을 골랐다며 소매를 만졌다.

“새 옷 입으면 여기서 돌려보낸다기에.”

매화가 고개를 들었다.

“누가 그래요?”

분남은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여러 명이었던 모양이었다. 매화는 자기도 헌 소매를 보고 진짜 사연처럼 느낀 순간이 부끄러웠다.

“옷은 확인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연화가 말했다. 분남은 손을 무릎 안에 숨겼다. 남편 이름과 사고 확인을 살펴야 했지만 지금 당장 아이를 문밖에 둔 까닭까지 죄처럼 물을 필요는 없었다. 매화가 아이를 방 안에 불러 국수를 주었다. 아이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그릇을 받았다.

만복은 부조계 장부를 열었다. 분남 남편이 납부한 기록은 있었다. 규약에 따른 지급액도 정해져 있었다. 사고 확인표가 어느 관아에서 나온 것인지 직접 대조할 절차가 남았지만 지급해야 할 참된 사건이 될 가능성을 피할 수 없었다. 궤의 잔액은 그 가능성을 보며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이번 일 환수금이 오면 됩니다.”

만복이 말했다. 연화는 궤 바닥에 손을 대 보였다.

“오늘 만질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장보 선금과 심대업 재산, 서필주의 은은 각각 받을 근거가 다르고, 공적 곡식값은 이 궤로 넣으라는 명이 없어요.”

만복은 열쇠를 세게 내려놓았다. 곡식이 나오는 객주는 자기 이름으로 불렸고, 기다리는 사람도 매일 자기를 찾았다. 그는 돈마다 다른 문이 붙는 것을 오늘만큼은 견디기 어려웠다.

분남은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일어섰다. 가라고 한 것이 아니어도 궤가 모자라면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연화가 문앞까지 따라갔다. 아이는 국수그릇을 내려놓으려 했다. 매화가 그릇을 잡아 아직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지급이 끝났다는 말도, 안 드린다는 말도 아닙니다.”

연화가 분남에게 말했다.

“오늘 끼니부터 잇고, 확인할 곳은 우리가 묻겠습니다.”

분남은 손을 멈췄다. 손에 든 사고표가 구겨졌다. 연화는 종이를 펴 주려고 빼앗지 않았다. 여자가 스스로 앉아서 펴 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박만수의 아내가 옆에 앉아 새 물을 밀었다. 두 사람은 서로 남편의 죽음을 같은 것으로 비교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객주 마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돌아온 상인 몇은 자기 투자금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짐꾼들은 밀린 품삯부터 달라고 했다. 식솔들은 빌린 곡식을 갚을 때라고 했다. 노삼은 누구 궤에 자기가 끼어들어도 되는지 몰라 문밖에 섰다. 만복이 그에게 의자를 가져오게 했다. 의자를 나르는 사람도 회의에 앉을 수 있었다.

상인 하나가 놓인 의자를 옮겨 자기 자리를 넓혔다. 노삼은 다시 일어났다. 길상이 다른 의자를 찾으려 하자 상인이 피곤한데 사람을 더 붙여 앉히느냐고 말했다. 노삼은 자기는 서서 듣겠다고 했다.

“그럼 앉은 사람이 먼저 받을 말부터 하게 되겠네요.”

매화가 말했다. 상인은 웃으려다 말았다. 길상이 의자를 다시 놓았고 노삼은 천천히 앉았다. 마당은 좁아졌지만 원래 작은 사람은 없었다.

연화는 궤를 열어 남은 돈과 곡식표를 보여 주었다. 모두가 원했던 숫자가 아니었다. 만복이 창고를 비워 내준 값은 부조계 빚으로 올리지 않았다. 매화가 자기 천을 내준 것도 환수금에 먼저 붙일 채권으로 만들지 않았다. 자발로 낸 물건과 반드시 갚아야 할 품삯을 분명히 해야 했다.

우석이 자기는 오늘도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복단이 그의 발을 보였다. 사람들은 발바닥의 새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일을 할 수 없어서 돈이 없는 사람에게 다시 일해야 한다는 말만 주면 광산 바깥에서도 같은 덫이 된다. 우석은 눈을 돌렸다. 자신의 아픈 몸을 많은 사람이 보는 것은 부끄러웠다.

길만수가 자기 품삯은 늦게 줘도 된다고 말했다. 길상이 형의 손을 눌렀다.

“형한테 묻는 일부터 답해요. 품삯을 없애면 관리인이 덜 갚아요.”

형이 동생을 봤다. 마당 사람들 앞에서 동생에게 제지당한 것이 쓰렸는지 눈썹이 움직였다. 길상도 손을 거뒀다. 그러나 늦게 받겠다는 말은 장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장보가 반환한 돈 일부가 그날 오후 관아에 들어왔다. 연화는 그것을 궤에 넣지 않았다. 가짜 유족의 선금은 원래 심대업의 돈이라고 밝혀졌으며 실제 부조계에서 빠져나간 원 표시 돈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같은 은이라고 이름만 바꾸어 섞으면 나중에 참된 몫이 다시 다투어질 터였다.

만복이 화를 냈다. 돈이 있는데도 쓰지 못하면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연화는 화가 난 사람을 가르치듯 말하지 않았다. 자기도 궤 바닥을 보는 동안 손이 떨렸다. 지금 쓸 수 있는 것을 찾자고 했다. 묵은 조와 아직 갚지 않은 객주 외상, 자발로 내겠다는 장사의 물건이 있었다.

곡물상에게서 온 보리는 계금이 아니라 별도 구호 현물이었다. 노삼은 그것을 빻을 수 있다고 했다. 다친 팔로 절구를 들지는 않고 앉아서 돌과 잡티를 골랐다. 두칠이 옆에서 골랐다. 매화는 약탕기 불을 지키는 시간과 보리죽 끓이는 시간을 나누었다. 같은 불에 밥과 약을 함께 달여 넘치게 하지 않았다.

박만수의 아내는 계금을 빨리 받아야 했다. 남편의 저고리를 싸서 돌아갈 때 곡식도 마련해야 했다. 분남의 아이가 무릎에서 졸자 여자는 자기 몫을 늦추겠다고 입을 열었다. 연화가 집의 곡식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여자는 대답 대신 저고리 보따리를 눌렀다.

“오늘 정하지 마세요. 집에 가서 필요한 값을 먼저 세어 보셔야 해요.”

여자는 입을 닫았다. 분남도 아이를 들어 안으며 아직 갚지 못한 값을 말해야 하는지 물었다. 연화는 집에서 세어 오면 된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오늘밤 자기 몫을 더 줄이는 약조를 하지 않은 채 물그릇을 들었다.

문밖에서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람이 왔다. 객주가 손님을 많이 받아 쌀이 모자라다는 소식을 들은 사내였다. 그는 만복에게만 말을 붙이고 작은 차용표를 내밀었다. 궤의 돈을 담보로 다음 달에 갚으면 오늘 저녁을 넉넉히 살 수 있다고 했다. 만복은 종이를 받으려 했다. 연화가 궤 열쇠를 보자고 하자 사내는 얼굴을 찌푸렸다. 돈을 받는 일까지 여럿에게 묻느냐는 말이었다. 매화는 큰방 사람들에게 차용표를 읽어 줬다. 원금 아래 이자가 있었고 늦으면 계궤를 가져갈 수 있다는 조항이 작게 붙었다. 사내는 글을 읽었다고 나쁜 거래가 되느냐며 표를 거두려 했다. 분남이 그 종이의 마지막 줄을 다시 읽어 달라고 말했다. 자기 남편의 몫이 들어 있는 궤를 오늘 처음 온 사람이 담보로 잡을 수 있다는 말인지 물었다. 만복은 손을 거뒀다. 거절하면 저녁이 얇아질 것을 알았지만 남의 내일을 오늘 밥값으로 팔지는 않기로 했다. 사내는 웃음 없이 떠났다. 분남은 미안하다고 했고 만복은 그녀에게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답했다. 질문한 사람이 밥을 적게 만든 죄를 질 필요는 없었다.

마당을 떠나던 상인 하나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오늘 받은 국수값을 내밀었다. 만복이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하자 상인은 손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내가 가진 돈을 내 밥에 쓰는 것까지 못 하게 할 겁니까?”

만복은 웃음이 났다. 그는 국수값을 객주 매출로 받았다. 그것을 부조계 기부금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다. 상인은 자기 식구를 위해 살 물건도 남겨 두고 오늘 먹은 값을 냈다. 한꺼번에 모든 빚을 없앨 큰돈보다 먼저 작은 저녁값 하나가 바로 섰다.

밤에는 우석 누이에게서 전갈이 왔다. 동생은 오라비가 돌아왔다는 말을 믿기 어려워 직접 오겠다고 했다. 누가 옮겨 온 글인지 이름이 붙어 있었다. 우석은 그 글을 읽어 달라고 하고 다 듣자 자기 이름 아래 손을 올렸다. 누이가 기뻐하는데도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이 겁났다.

연화는 그의 품삯 청구를 맨 뒤로 보내지 않기로 했다. 빚문서 대조가 끝난 두 사람부터 실제 일한 기간과 약조된 삯을 확인해 청구할 수 있었다. 심대업이 달아났어도 관리인의 지급장과 환전소의 받은 은이 남았다. 사람의 오늘을 다른 사람의 도주 뒤에 묶어 두지 않을 길이었다.

분남의 아이는 저녁이 끝날 때 그릇을 씻으려 했다. 매화는 손이 작아 미끄럽다며 옆에 앉혔다. 아이는 아무것도 안 하면 다음에 밥을 못 먹을까 걱정했다. 매화는 오늘은 밥을 먹고 잘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아이는 그릇을 내려놓고 어머니에게 기대었다.

연화는 궤를 닫았다. 분남 사고를 묻는 전갈은 문밖에서 기다리던 전갈꾼에게 갔다. 품삯 대조표는 관아에 보낼 봉투에 들어갔다. 내일의 곡식은 부엌으로 옮겨졌다. 궤 안에 한꺼번에 넣을 수 없던 것들이 서로 다른 손에서 움직였다.

돌 고른 보리가 절구에 들어갔다. 두칠이 공이를 들려 하자 노삼은 손잡이를 아래로 내려 잡게 했다. 아이 어깨에 맞는 높이였다. 둘은 한번씩 번갈아 찧었다. 바닥에서 날아오르는 보리가 줄어들자 노삼이 웃었다. 빨리 끝내는 법은 아니었지만 아이와 노인이 서로의 팔을 기다리는 법이었다. 그 소리가 잦아들 때 다음날 아침죽에 쓸 가루가 한 그릇 생겼다.

만복은 마지막 불을 낮추며 연화에게 말했다.

“내일 장에 나갑시다. 궤가 비었다고 문을 닫을 수는 없으니.”

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큰 범인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공개된 장부 앞에서 먹고 일하고 갚을 수 있는 다음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