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두 숟가락의 자리
박만수의 아내는 아침에 남편 저고리를 보자기에 쌌다. 접은 소매 끝에 자기 손자국이 희게 남았다.
박만수의 아내는 아침에 남편 저고리를 보자기에 쌌다. 접은 소매 끝에 자기 손자국이 희게 남았다.
입힐 사람이 없다면 가져가지 않아도 될 물건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곳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없다는 결론은 남의 말이었다. 연화는 그녀에게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다. 북쪽으로 현장 확인을 한 아전이 매장지를 보전하고 돌아왔으며, 다른 동행자들이 현지에 남아 있었다. 함께 가는 길은 다시 이틀 넘게 걸릴 것이다.
매화는 베 한 필을 나누었다. 자기 오라비 붕대에 쓸 부분을 남기고 나머지를 보자기에 넣었다. 여자는 처음에 받지 않으려 했다. 죽은 사람에게 쓸지도 모르는 천과 아픈 사람에게 쓸 천이 한 필에서 나오는 것이 아팠다. 매화는 아무 뜻도 덧붙이지 않고 매듭만 묶었다.
연화와 박만수의 아내, 조생원이 보낸 동행자 둘이 길을 나섰다. 범수는 객주에 남았다. 돌아온 사람들의 진술과 치료를 버려 두고 매번 따라갈 수 없었다. 그는 농부 집까지 가는 마지막 갈림길을 그림으로 남겼다. 길상은 자기 형에게 필요한 진술이 있어 한양 관아에 갔다. 자신이 가지 못한다는 말을 피하지 않았다.
첫날 여자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둘째 날 저녁 발이 부었을 때야 남편이 새 짚신을 사면 늘 뒤축부터 꺾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연화는 그 버릇이 시신을 식별할 표가 되는지 묻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모든 기억이 증거로만 쓰일 필요는 없었다.
셋째 날 아침 농부의 집에 도착했다. 헛간은 비었지만 볏짚이 새로 깔려 있었다. 농부는 사람이 떠난 뒤 잠시 집이 너무 조용했다고 했다. 연화는 남은 식량과 쟁기 수리의 값을 확인했다. 집을 빌린 사람들에게 약조한 일이 끝났는지 먼저 봤다. 농부는 고친 문짝을 열어 보이며 이제 바람이 덜 들어온다고 말했다.
여자는 그 문을 보고 한참 서 있었다. 남편이 여기 누웠다면 어떤 표정이었을까. 비어 있는 헛간은 객주에서 비운 방과 달랐다. 사람 둘이 몸을 놓고 다시 떠난 자리였다. 연화는 그 생각을 말로 꺼내지 않고 물을 건넸다.
현지의 관아 사람은 경비 한 명을 데려왔다. 박만수의 몸을 옮긴 사람 중 하나였다. 경비는 줄에 묶여 있었으나 맞은 흔적은 없었다. 그가 어떤 날 어떤 사람과 몸을 옮겼는지 진술했다. 막동이 본 장면 뒤에 이어지는 일이었다. 다른 경비와 함께 갱구 밖으로 옮겼고 날이 저물기 전에 능선 아래에 묻었다.
여자는 경비를 때리지 않았다. 손에 쥔 보자기가 단단해졌다. 경비는 박만수 이름을 그때는 몰랐다고 했다. 옷 안쪽 표를 떼라는 명을 받았고 관리인이 가져갔다. 그 말은 옷에서 이름을 빼 낸 책임을 새로 물어야 할 증언이었다. 연화는 관리인이 왜 떼라 했는지를 경비의 짐작으로 채우지 않았다.
매장지는 서로 다른 무덤이 나란히 있는 곳이었다. 첫 무덤을 가리킨 경비의 손이 떨렸다. 흙 위에는 작은 돌이 얹혀 있었다. 여자는 저고리 보자기를 무릎에 두고 앉았다. 현장 확인자는 먼저 묻힌 날짜와 위치를 서로 다른 진술에서 대조했다고 말했다. 무덤을 열 것인지 여자의 뜻도 물었다.
“내가 보겠습니다.”
여자가 답했다. 그 말 뒤로 누구도 위로부터 하지 않았다. 현지에서 일하던 사람 중 박만수를 아는 두 사람이 곁에 섰다. 연화는 가족이 보는 동안 군중을 물렸다. 보고 싶어 온 사람과 궁금해서 온 사람의 거리가 달라야 했다.
얼굴은 오래된 기다림처럼 변해 있었다. 여자는 처음 눈을 피했다. 남편이 좋아하던 자개 단추의 작은 금과 오래 꿰맨 옷 안쪽을 확인했다. 매화가 가져온 저고리는 무릎에 남았다. 그것을 입힐 수는 없었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을 자기 남편 이름으로 받아갈 일도 없었다.
경비의 말만으로는 끝낼 수 없었다. 가족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식별, 사고 전후의 증언, 묻힌 위치와 몸의 상태가 같은 사람에게 모였다. 연화는 이제 박만수의 사망을 확인하는 문장을 쓸 수 있었다. 그 문장은 아내가 살펴본 뒤에 적혔다. 먼저 장부에 죽었다고 써 놓고 몸을 맞춘 것이 아니었다.
여자는 울었다. 이전에 울지 않았던 날들이 그 울음 안에 있었다. 누군가 곧 조용해지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저고리를 펼쳐 무릎에 놓고 소매 한쪽을 쥐었다. 입힐 사람을 데려오지는 못했지만 남편이 마지막으로 누운 곳을 남의 추측 속에 두지는 않을 수 있었다.
다른 무덤에는 칠복이 묻혔다고 진술한 사람이 있었다. 마지막 물을 나르던 노동자였다. 칠복이 열병으로 죽은 날을 기억했고 몸을 옮길 때 도왔다는 사람도 따로 있었다. 칠복의 가족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가족 식별을 대신 끝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같은 작업막에서 그를 오래 본 사람들과 옷, 숟가락의 관계를 대조할 길은 생겼다.
칠복이 숟가락 바닥에 내던 구멍 다섯은 자신의 배급 묶음 표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물자길 다섯과 함께 쓰였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구멍을 직접 낸 날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한덕수는 칠복이 그 숟가락으로 병자의 죽을 나눴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남은 물건만으로 죽음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연화는 칠복이 누구인지 다시 물었다. 본명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직 없었다. 북쪽 창고 짐꾼이었다는 말, 평양 쪽 누이가 있다는 말은 이어졌지만 그곳의 가족과 연결해야 했다. 객주 명단 속 비슷한 이름과 억지로 합치지 않았다. 사람을 찾았다는 보상은 그에게서 이름을 빼앗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됐다.
박만수의 아내가 칠복 무덤 앞에 물그릇을 놓았다. 자기 남편 장례가 바쁜데 남을 돕는 의로운 사람이 되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두 무덤 사이에 놓인 빈 거리가 너무 쓸쓸했다. 누군가 이 이름을 기다린다면 같은 길을 걸어와야 할 터였다.
“그분 누이를 찾으면 나도 같이 있겠소.”
여자가 말했다. 연화는 그 약속을 글로 먼저 받지 않았다. 오늘 몸이 얼마나 지치는지, 다음에도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여자가 정할 일이었다. 다만 말을 들은 것을 잊지 않겠다고 답했다.
막동이 남겨 둔 나무숟가락 두 개가 나왔다. 한양에서 연화가 받아 가져온 물건이었다. 박만수의 아내는 남편 숟가락을 만졌다. 닳은 손잡이는 시신보다 자기 기억에 가까웠다. 그녀는 그것을 남편 저고리 보자기에 넣었다. 칠복의 숟가락은 따로 싸서 연화에게 맡겼다. 가족을 찾을 때까지 남겨야 했다.
현지 관리인은 두 사망을 보고하지 않은 일이 자기 명이었다고 인정했다. 그가 시키지 않은 폭행까지 모두 자기에게 덮어씌우지 말라고 말했다. 연화는 인정한 말과 부인한 말을 따로 남겼다. 병자에게 약을 줄이지 못하게 한 명과 문서의 숫자를 맞추려 빈그릇을 놓게 한 명도 누가 했는지 직접 물었다. 관리인은 심대업의 이름을 말했다. 직접 받은 지시인지 다른 경비에게 들은 것인지도 나눴다.
그날 해 질 무렵 박만수의 무덤 위에 돌이 다시 놓였다. 이름을 적을 새 표는 아내가 고른 위치에 세웠다. 비가 오면 흙이 내려갈 골을 관아 사람이 막았다. 농부의 아들이 물길을 봐 주었다. 논물을 지키던 사람이 이제 무덤의 흙도 떠내려가지 않게 손을 보탰다.
여자는 농부 집에서 하룻밤 쉬었다. 저고리 보자기를 품에 안고 누웠는데 곧 잠들지 못했다. 연화도 맞은편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여자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돌아올 방은 그대로 두세요.”
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그이가 못 쓴다고 다른 사람이 안 쓰면,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잖소.”
여자는 그 말 뒤에 다시 울었다. 연화는 손을 잡았다. 상실을 좋은 뜻으로만 바꿀 수는 없었다. 베를 내준 일과 남편을 잃은 일은 서로 상쇄되지 않았다. 그 밤 둘은 그 사실을 다른 말로 덮지 않고 함께 있었다.
새벽에 여자는 저고리를 다시 싸다 매듭을 풀었다. 무덤 위에 놓고 올 생각이었다가 돌아올 때 품으로 가져온 옷이었다. 여자는 그런 자기 마음이 비겁한가 물었다. 연화는 옷을 놓아야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규칙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보자기 한 귀퉁이를 받치고 여자가 옷을 다시 접도록 도왔다. 살아 있을 때 남편에게서 옷을 빼앗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제는 아내가 어디에 둘지 정할 수 있어야 했다. 여자는 소매를 안으로 넣고 단추를 밖으로 돌렸다. 집에서 옷장에 넣던 모양이었다. 매듭이 작게 묶였다.
떠나기 전에 현지 동행자는 무덤의 위치를 다시 그려 주었다. 산의 큰 나무와 물골을 넣고 농부의 논 이름도 적었다. 여자는 그 그림에 자기 손가락을 대어 길의 꺾임을 외웠다. 오늘 한번 갔다고 영원히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에 오려면 몸과 돈과 시간을 마련해야 했다. 그녀는 떡보자기에 그림을 함께 넣었다. 그곳으로 가는 일이 장부의 설명보다 구체적인 길로 남았다.
다음날 출발할 때 농부의 아내가 떡을 쥐여 줬다. 여자는 받은 값을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자기에게 밥을 내준 사람에게 오늘은 고맙다고만 할 수 있었다. 연화는 사망 확인표와 숟가락을 다른 보자기에 넣었다. 목숨을 확인한 문서와 사람이 쓰던 물건은 같은 손에 있어도 같은 뜻이 아니었다.
한양까지 돌아가는 길은 다시 이틀 넘게 걸렸다. 갈 때는 마지막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웠고 돌아올 때는 집의 빈자리가 두려웠다. 그러나 여자는 도중 주막에서 자기 이름을 말했다. 박만수의 아내라고만 부르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가 평생 제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 남편의 자리 하나뿐이어서는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