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완화의료 휴먼극 56화

열세 번째 야간 왕진

닿지 않은 두 번째 소리

박건은 조정실에 기기를 들고 오지 않았다. 그날 병원 장비와 지금 영숙의 집에 있던 기기는 달랐다. 비슷한 소리가 난다고 같은 결함을 재연하면 가족에게 잘못된 그림을 줄 수 있었다. 그는 장비 기록과 실제 경보가 발생한 세 시각, 중앙에 전달되지 않은 경로를 도면으로 가져왔다.

글자 크기

박건은 조정실에 기기를 들고 오지 않았다. 그날 병원 장비와 지금 영숙의 집에 있던 기기는 달랐다. 비슷한 소리가 난다고 같은 결함을 재연하면 가족에게 잘못된 그림을 줄 수 있었다. 그는 장비 기록과 실제 경보가 발생한 세 시각, 중앙에 전달되지 않은 경로를 도면으로 가져왔다.

피해 가족은 세 번 울렸다는 말 옆에 표시를 했다. 그 소리를 세현이 세 번 듣고도 기다렸다는 뜻인지 물었다. 세현은 자신이 실제로 들은 보고와 중앙 전달 실패를 나눠 답했다. 이미란도 현장에서 접한 소리를 말했다. 누가 무엇을 들었는지 밝히는 일이 오늘의 첫 질문이었다.

박건이 도면의 선을 따라 손가락을 옮겼다. 현장 경보와 중앙 알림이 같은 방식으로 기록되지 않았고, 중앙 로그의 여섯 분 공백을 무음의 여섯 분으로 읽으면 안 됐다. 그때 장비가 전혀 울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은 도면을 자기 쪽으로 돌려 다시 선을 따라갔다.

“여기에서 소리가 멈춘 거예요, 사람에게 안 간 거예요?”

가족은 도면을 들어 불빛에 비췄다. 선 하나가 환자와 사람 사이를 잇는 길처럼 보였다. 박건은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모서리를 받쳤다. 질문은 선의 끝에 남아 있었고 그는 서두르지 않고 다시 설명했다.

박건은 기록으로 확인한 중앙 전달 실패의 범위를 답했다. 어떤 사람이 그 시간에 단말을 보았는지는 해당 기록만으로 전부 알 수 없었다. 도면의 끊긴 선을 누군가의 귀처럼 그려 넣지 않았다. 가족은 그것을 이해하려고 여러 번 물었고 박건은 같은 말을 더 쉬운 문장으로 바꾸었다.

서정오가 가져온 뒤쪽 메모에는 이중 전달 경로 제안이 있었다. 기존 경보가 한 곳에만 모이면 그곳의 전달이 끊길 때 현장의 소리가 중앙 판단에 닿지 않을 수 있다는 검토였다. 당시 기술 담당자가 제안했고, 비용 검토 회의에서 추후 적용으로 미뤄졌다. 적용 완료 기록은 없었다.

결재 담당자는 그 제안이 충원안과 함께 뒤로 밀렸다고 인정했다. 기술적으로 언제 가능했는지는 별도 확인이 필요했지만, 그날까지 실제로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채영은 미실행 사실을 적고, 완성됐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문장은 넣지 않았다. 가족은 좋은 기기가 아니라 놓친 선택을 알고 싶었다.

이미란이 당시 전달 실패를 의심해 남긴 보고를 보여 주었다. 그 보고에서도 추가 확인 요청이 회의 요약으로 줄었다. 서정오는 자신이 그 안건을 받아 다음 검토로 넘긴 부분을 읽었다. 위험보고를 받은 줄과 원문을 보존하지 않은 줄은 같은 종이에 있었지만 같은 행동은 아니었다.

가족은 그때 확인만 했어도 무엇을 알 수 있었는지 물었다. 박건은 당시 점검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항목과 지금 자료로만 추정하는 부분을 구분했다. 뒤늦게 알게 된 모든 것을 과거 사람이 알았던 사실로 옮기지 않았다. 세현은 그 설명을 듣다가 자기 직접 확인이 늦은 줄을 손으로 눌렀다.

회의 중 병원 담당자가 현재 개선 자료를 꺼냈다. 새 이중 알림 경로는 이번 주 실제 현장 점검을 마쳤다고 했다. 박건은 단순 화면 사진이 아니라 수신과 회신 시각, 담당자 확인이 있는 시험 기록을 받았다. 환자에게 시험 경보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전용 점검 환경에서 수행한 기록이었다.

이미란은 현재 근무조가 새 알림을 받으면 누구에게 답해야 하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새 연락 담당과 대체 담당의 표를 보여 주었다. 야간근무자가 자기 개인전화만 책임지는 방식은 아니었다. 병동의 업무 단말과 정식 당직 역할에 붙은 전달이었다. 이미란은 자기 조의 이름을 찾아 확인했다.

가족은 오늘부터 적용됐다는 말이 다음 회의에 바뀌지 않을지 물었다. 담당자는 실제 운영 시작일과 확인 책임자를 사본에 적었다. 이후 결과를 가족이 받을지 묻자 가족은 한 번은 받겠다고 했다. 계속 병원을 감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병원의 개선을 가족의 숙제로 만드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회의 뒤 박건은 자료 봉투를 닫았다. 기기 기록을 이해시키느라 목이 잠겼다. 세현은 같이 식사하자고 했다. 박건은 오늘 집의 낮 돌봄 면담에 기기 연락을 설명할 약속이 있어 시간이 짧다고 말했다. 세현은 점심을 거른 채 가라고 하지 않고 근처 식당에서 먼저 먹자고 했다.

두 사람은 국수를 먹었다. 박건은 경보가 울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다르면 기록도 늘 두 종류라고 말했다. 세현은 자신의 늦은 판단을 기록으로 인정하고도 목소리를 받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박건은 기술로 그 어려움을 없앨 수 없다고 답했다. 대신 오늘 전달선을 실제로 확인할 수는 있었다.

영숙의 집에는 새 낮 근무 후보가 왔다. 이름은 임소라였다. 월요일과 목요일 밤의 선미와 다른 기관의 낮 근무자였다. 소라는 자기 가능한 시간이 목요일 낮 두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영숙은 그 사람이 들어올 동안 나머지 두 시간은 어떻게 보낼지 먼저 물었다. 자기 시간을 모두 사람에게 내주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채영은 앞의 두 시간에는 자신이 준비한 음식과 연락으로, 뒤의 두 시간에는 소라가 실제 근무하는 표를 제안했다. 영숙은 반대로 하고 싶다고 했다. 낮잠 전에는 사람이 있고 낮잠 중에는 혼자 있겠다는 뜻이었다. 소라는 자기 근무시각을 그 앞 시간으로 옮길 수 있는지 기관과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정례는 저녁에 따로 오고, 선미는 야간지원일에 왔다. 소라의 두 시간은 가족 부담의 낮 계약이었다. 영숙은 선미에게 건넸던 첫 질문을 소라에게도 했다. 자기 말이 느리면 기다릴 수 있느냐. 소라는 가능하다고 대답하다 너무 빨리 말한 것을 깨닫고 웃었다. 영숙도 그 웃음을 봤다.

박건은 연락표의 기기 담당을 설명했다. 소라는 기기를 직접 고치거나 치료를 바꾸는 일을 맡지 않았다. 이상이 생기면 환자의 변화와 기기 표시를 필요한 사람에게 각각 전달했다. 구체 조작을 연습시키는 대신 실제 연락이 닿는지 기관 담당과 함께 확인했다. 영숙은 자기 전화가 어디 있는지 직접 보여 주었다.

소라가 연락표를 보다가 종이배가 덮고 있는 모서리를 발견했다. 배는 그 옆 식탁에 놓여 있었는데 영숙이 전화기를 찾으며 조금 옮겨 둔 상태였다. 영숙은 배를 달력 아래로 옮기고 필요한 연락 글씨를 드러냈다. 손녀의 물건을 치워 버리지는 않았다. 자기 집의 길을 다시 냈다.

면담이 끝날 때 기관에서 앞의 두 시간 배정이 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다음 목요일부터 가족 부담 계약으로 실제 시작할 날짜를 정했다. 채영은 비용과 취소 조건을 받아 영숙에게 읽어 주었다. 영숙은 처음 한 번 해 보고 다음 주를 고르겠다고 했다. 기관은 그 기간의 신청을 받아 배정확정 문자를 보냈다.

소라가 나간 뒤 영숙은 숨을 고르고 누웠다. 새 사람을 만나 집을 설명하는 일도 힘이었다. 채영은 신청을 후회하는지 물으려다가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먼저 물었다. 영숙은 같은 말을 여러 사람에게 하는 게 힘들고, 그래도 새 사람이 자기를 직접 듣는 게 좋다고 했다.

채영은 냉장고 한 장에 새 시간과 연락을 반영했다. 자세한 집 안 규칙을 모두 의료 계획에 넣지 않았다. 돌봄 인계 메모는 별도였고 영숙이 누구에게 보일지 골랐다. 소라에게는 서랍과 호칭, 선미에게는 차를 마시던 자리, 정례에게는 저녁 식사 방식이 있었다. 모두 같은 사람을 돌봐도 관계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날 밤 이미란은 새 지원자와 근무했다. 전용 단말로 온 알림을 정해 둔 담당자가 받았고 필요한 회신이 남았다. 지원자는 현재 자기 담당 구역을 확인해 움직였다. 이미란은 그동안 자기가 먼저 뛰어가던 복도 앞에서 잠깐 섰다. 누군가 실제로 가고 있다는 답이 귀에 닿았다.

그는 그 답을 들은 뒤 자기 환자에게 돌아갔다. 모든 소리에 반응해야 안전한 직원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맡은 사람이 들었다는 말을 믿을 수 있어야 자기 자리도 지킬 수 있었다. 단말을 지닌 손이 전보다 가벼웠다. 교대 기록에는 전달과 수신이 같은 일로 섞이지 않았다.

세현은 다음 회의 자료에서 네 줄을 뽑았다. 개인 판단 지연, 인력 결원과 대체 조치 부족, 중앙 전달 실패와 예방 제안 미실행, 기록 보존 누락. 종이는 가족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자기 줄의 서명칸을 먼저 찾았다. 다른 줄이 선명해졌다고 자기 이름의 잉크가 옅어지지는 않았다.

서정오는 새 기록보존 절차가 실제로 적용된 접수 건을 제출했다. 위험 원문과 요약이 함께 보존됐고 담당자의 수신이 남아 있었다. 채영은 가족에게 그 결과와 과거 자료를 따로 보냈다. 과거 원문이 새로 생겼다고 말하지 않았다. 가족은 다음번 회의에 직접 설명과 사과를 듣겠다고 답했다.

영숙은 달력에서 다음 목요일 칸을 봤다. 임소라라는 이름 옆에 두 시간을 그었다. 채영의 네 시간 업무는 그대로였지만 집의 네 시간은 다른 모양이 됐다. 낮잠 뒤 스스로 편지를 쓸 시간도 남았다. 종이배는 연락표를 가리지 않는 달력 아래 있었다. 누군가에게 닿아야 할 말과 자기만 갖고 있을 이야기가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채영은 퇴근 뒤 새 낮 계약 비용을 납부했다. 공공지원 정산과 다른 영수증을 받았다. 영숙은 그 영수증을 보고 다음 주 아침 메뉴를 골랐다. 도움을 사는 사람이 자기가 받고 싶은 도움을 고르는 저녁이었다. 박건은 짧은 수령 확인을 받은 뒤 업무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날의 마지막 소리는 누구도 놓친 경보가 아니라 닫히는 집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