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완화의료 휴먼극 53화

열세 번째 야간 왕진

이번에는 보내는 목소리

밤 열한 시가 조금 지났을 때 거실에서 경보음이 났다. 채영은 싱크대 물을 잠그고 뛰어갔다. 영숙은 소파에 앉아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었다. 기기 화면의 빛이 손녀의 종이배를 비췄다. 채영은 지난 정전 밤을 떠올렸지만 오늘 집의 불은 켜져 있었다. 기억보다 어머니의 얼굴을 먼저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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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가 조금 지났을 때 거실에서 경보음이 났다. 채영은 싱크대 물을 잠그고 뛰어갔다. 영숙은 소파에 앉아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었다. 기기 화면의 빛이 손녀의 종이배를 비췄다. 채영은 지난 정전 밤을 떠올렸지만 오늘 집의 불은 켜져 있었다. 기억보다 어머니의 얼굴을 먼저 봐야 했다.

영숙이 딸의 손을 잡았다. “박건 씨한테도 말해. 소리만 끄지 말고.”

채영은 연락표에 따라 의료팀과 기기 담당에게 각각 전화했다. 선미의 두 시간 근무는 이미 끝났고 정례도 퇴근했다. 두 사람에게 돌아오라고 하지 않았다. 기관의 상담 번호로 전화하면 사람이 집에 올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지금 어머니 곁에는 딸이 있었고, 현장에 와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당직의 하진이 영숙에게 직접 질문했다. 채영은 전화기를 어머니 가까이 가져갔다. 영숙은 평소와 달라진 느낌을 짧게 말했다. 하진은 즉시 방문할 상황으로 판단하고 필요한 이송 준비도 병행하도록 했다. 채영은 현관 가방을 꺼냈다. 냉장고에 붙은 계획 한 장은 그 안의 최신 사본과 같았다.

세현은 하진의 연락을 받고 가방을 들었다. 이번은 일곱 번째 야간 왕진이었다. 폭설 정전 중 여섯 번째로 갔던 골목을 다시 지나며 그는 손전등을 확인했다. 눈은 없었지만 길에는 얼어붙은 물이 있었다. 세현은 뛰어가다 미끄러질 뻔하고 걸음을 낮췄다. 빨리 도착하는 일과 안전하게 도착하는 일은 함께 해야 했다.

집 앞 정차 지점에는 차가 없었다. 구청 담당자와 이웃이 확인한 통행선이 보였다. 별도 주차칸을 만든 것은 아니어도 모래주머니가 쌓이지 않는 길은 남아 있었다. 하진이 먼저 문 안으로 들어갔고 세현은 가방을 옆에 놓았다. 영숙은 두 사람을 보며 이름을 불렀다.

하진은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세현은 들은 말과 관찰을 전하고 중요 판단을 함께 맞췄다. 오른손이 떨려 작은 연결부를 잡으려던 손을 바로 물렸다. 박건은 전화로 기기 오류 표시를 확인하다 현장에 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세현은 자신이 해 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채영은 경보음 때문에 어머니 말을 못 들을까 봐 기기를 바라봤다. 하진은 소리의 원인을 확인하는 동안 영숙의 몸을 놓치지 않았다. 화면에 문제가 있다고 모든 불편함을 장비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 영숙은 잠깐 말이 줄었고, 하진이 다시 물었을 때 눈을 들었다. 집 안에서 시간을 더 끌지 않기로 판단이 모였다.

“오늘은 병원에서 조금 쉬고 싶어요.” 영숙이 말했다.

채영은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자신이 병원으로 가자고 설득해야 할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먼저 골랐다. 하진은 어떤 도움을 받을지 설명하고 현재 원하지 않는 처치에 관한 뜻도 확인했다. 영숙은 오늘의 선택을 직접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말도 함께 했다.

채영은 어머니 말을 요약하려다가 그대로 기억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집에서 지내겠다는 지난 선택을 배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병원 대신 집이라는 표어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숨이 힘들었고 지금 도움을 원했다. 딸은 그 현재를 어머니보다 늦게 받아들였다.

박건이 도착했을 때 이송팀도 골목으로 들어왔다. 기기 점검은 박건이 맡고 환자 인계는 하진이 맡았다. 세현은 최신 계획을 건네면서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짧게 전했다. 원치 않는 처치들을 한 문장으로 묶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인계받는 의료진이 영숙에게 다시 물을 수 있도록 그녀의 목소리를 남겼다.

영숙은 신발을 가져오라고 했다. 현관 슬리퍼 대신 병원에 가져갈 신발이었다. 채영은 가방에서 꺼내 어머니 앞에 놓았다. 영숙이 스스로 발을 넣기 힘들어하자 필요한 만큼 도왔다. 그 사이 소파 위 노란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채영이 잡으러 몸을 돌리자 영숙은 놓고 가라고 했다.

“담요는 집 지키라고 해.”

농담 끝이 작았지만 채영은 들었다. 딸은 담요를 소파에 올려놓고 가방을 닫았다. 지금 필요한 물건을 다시 고르느라 집 전체를 들고 나가지 않았다. 남편 사진도 손녀의 종이배도 남았다. 영숙이 돌아올 집에 자기 물건이 있는 것을 보고 현관을 나섰다.

이웃이 골목에서 길을 비켜 주었다. 채영은 도와 달라고 여러 집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잠에서 나와 통행을 막지 않게 움직였다. 이송팀이 영숙을 안전하게 옮기는 동안 세현은 현관에서 통화한 시각과 출발 시각을 적었다. 자신의 옛 기억을 덮으려는 의식이 아니라 오늘 환자에게 필요한 기록이었다.

병원에서 영숙은 자기 이름을 말했다. 인계받는 의료진은 하진이 전한 계획을 확인하고 현재 뜻을 다시 들었다. 채영은 딸의 자리에서 어머니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은 자신이 대신 결정할 차례가 아니었다. 영숙은 증상을 편하게 해 줄 도움을 원한다고 다시 말했다.

세현은 병원에서 필요한 인계를 마치고 하진의 확인을 받았다. 자신이 추가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물었다. 하진은 현장 기기 점검 결과를 받아 다음날 돌아갈 계획에 연결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현은 박건과 연락했다. 침상 곁에 무조건 서 있는 것만이 도움이 아니었다.

박건은 농축기의 이상이 확인돼 업체 점검을 요청했고, 대체 장비를 정상 확인한 뒤 집에 고정했다. 가족에게 세부 분해 방법이나 임의 조작을 안내하지 않았다. 문제가 된 기기는 업체가 회수할 수 있도록 상태 기록을 남겼다. 채영이 집에 없는 동안 완료한 내용은 사진과 시간으로 전했다.

채영은 병원 대기 의자에서 사진을 봤다. 대체 장비 앞에는 종이배가 원래 자리 그대로 있었다. 집이 무너진 것 같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영숙은 의료진의 돌봄을 받으며 편안해졌고 목소리를 다시 낼 힘이 생겼다. 채영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딸은 그 작은 부탁이 고마웠다.

영숙은 잠깐 병원 창밖을 봤다. 집 창문보다 높았고 다른 건물의 불이 더 많았다. 자기 집에서는 들리지 않던 수레 바퀴 소리가 복도에서 났다. 낯선 밤을 고른 사람이 몸을 편히 눕혔다. 채영은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어머니 손바닥에 놓았다. 집에서 쓰던 부드러운 천이었다.

“집에 내가 두고 온 거 많지?” 영숙이 물었다.

“다 있어. 담요도.”

영숙은 눈을 감았다. 채영은 병원에서 잠들면 다시 못 돌아갈까 봐 겁이 났다. 영숙은 그 얼굴을 보고 손을 내밀었다. “지금은 자려는 거야.” 채영은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잠을 죽음의 예고처럼 읽는 자기 습관이 어머니를 계속 깨우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하진이 병원 담당자와 확인한 뒤 짧은 입원 관찰과 돌봄 계획이 잡혔다. 귀가 시각은 몸의 변화를 보고 정하기로 했다. 채영은 회사 긴급 연락에 현재 상황만 알리고, 금요일 아침 업무를 정해 둔 사람에게 넘겼다. 밤 전체의 모든 사건을 수진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미 만든 근무 조정표가 처음 실제 긴급 상황을 받쳤다.

세현은 병원 밖으로 나와 차 앞에 섰다. 오른손은 여전히 떨렸다. 경보를 들은 밤에 무언가를 혼자 고쳐서 과거를 씻는 장면은 오지 않았다. 그는 하진에게 필요한 말이 실제로 전달됐고 박건에게 필요한 기기 정보가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 환자는 자기가 원한 도움을 받으러 움직였다.

그날 기록의 마지막 줄에는 ‘경보 끔’이 없었다. 확인한 원인, 맡은 사람, 출발과 인계가 있었다. 세현은 기록을 닫고 손을 무릎에 놓았다. 떨림이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그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다음 예정 진료의 담당을 확인했다. 오늘 밤 일을 했으니 다음날의 피로도 나눠야 했다.

새벽에 채영은 대기 의자에서 잠깐 잠들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선미의 근무기록 수정본이 있었지만 오늘 밤 선미가 일했다고 덧붙이지 않았다. 정례에게도 다음날 예정 계약의 변경 여부만 알렸다. 두 사람은 자기 일정을 확인해 답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있다고 모든 사람이 무상 대기자가 될 수는 없었다.

아침에 영숙이 깨어 채영의 구겨진 외투를 봤다. “네가 병원 환자 같네.” 채영이 웃었다. 영숙은 담당 의료진의 질문에 전날 밤보다 긴 문장으로 답했다. 집으로 돌아갈 마음은 여전히 있었고 지금은 조금 더 쉬고 싶다고 했다. 채영은 어머니가 원하는 시각이 자기 출근 시각과 같지 않아도 기다릴 수 있었다.

집에서 박건은 회수 업체 기사에게 확인한 오류 기록을 넘겼다. 고객 인계서에는 실제 인수 내용이 정확하게 찍혔다. 지난번 잘못된 주민 부재 코드가 없었다. 그가 보낸 사진을 채영이 보며 웃었다. 이미 고친 양식이 다음 사건에서 실제로 쓰이고 있었다. 지난 비용 다툼이 오늘의 숨을 전부 해결하지는 않아도 다시 같은 다툼을 시작하게 하지는 않았다.

영숙은 낮에 손녀에게 보낼 문장을 골랐다. 할머니가 오늘은 병원에서 잠을 잤다고, 노란 담요는 집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아이에게 ‘괜찮다’는 한 단어만 보내지 않았다. 채영이 문장을 입력하고 보여 주자 영숙이 끝에 종이배를 잘 지켜 달라고 붙였다. 집으로 돌아갈 일상을 자기 손으로 남겼다.

세현은 오전의 조정자료 연락을 오후로 옮겼다. 그 대신 서정오에게 올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잠을 자고 나서 정확히 읽겠다고 답했다. 오늘 환자에게 빨리 닿았던 목소리가 다음 기록에서도 같은 속도로 닿으려면, 피로한 기억으로 문장을 채우지 않아야 했다. 밤은 끝났고 할 일은 순서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