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우물벽의 마른 장
우물에서 내려다본 하늘은 동전보다 작았다.
우물에서 내려다본 하늘은 동전보다 작았다.
종이를 씻던 사내가 밧줄을 허리에 감고 우물벽을 디뎠다. 그는 평소에도 그 자리에 물건을 숨겼다고 했다. 말릴 때 손댄 종이가 젖지 않도록 벽 안의 작은 틈을 쓰곤 했다. 조생원은 오른쪽 팔을 천으로 고정한 채 위에서 보고 있었다. 전날 문을 받치다 삔 어깨가 내려가지 않았다.
연화는 밧줄을 혼자 쥐지 않았다. 관아 사람 둘이 반대편 끝을 잡고 우물 아래에서는 사내가 매듭의 위치를 자기 손으로 정했다. 매듭이 너무 조여 숨이 막히는지 먼저 물었다. 사내는 종이를 숨길 때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웃음이 우물 안에서 두 번 되돌아왔다.
그가 벽의 틈에 손을 넣었다. 묶음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흙이 말라 입구를 굳혔다. 사내가 작은 칼로 긁자 위에서 돌가루가 떨어졌다. 연화는 그에게 더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사내는 벽 안의 받침돌이 단단하다며 몸을 기울였다.
돌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손바닥 크기의 조각이 떨어졌고 다음에는 발을 디디던 면이 무너졌다. 밧줄이 팽팽해졌다. 위의 두 사람이 뒤로 미끄러졌다. 연화는 줄의 끝을 우물 옆 기둥에 한 번 감았다. 몸을 걸어 당기지 않고 줄이 빠지지 않게 잡았다. 손바닥의 전날 상처가 열렸다.
사내가 벽을 긁으며 발을 허우적거렸다. 아래 물에 신발 하나가 떨어졌다. 그는 종이 묶음을 한 손으로 쥔 채 매달려 있었다. 조생원이 위에서 소리쳤다.
“종이는 놓으시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돈 받고 숨겨 놓은 종이를 또 잃으면 자기가 모든 값을 물 것 같았다. 그의 손이 풀리지 않자 연화가 말했다.
“당신을 먼저 올릴 겁니다. 물건값으로 줄을 놓지 않습니다.”
그는 그 말 뒤에도 몇 번 숨을 몰아쉬었다. 결국 묶음을 가슴 안에 넣고 양손으로 밧줄을 잡았다. 위의 사람들이 천천히 끌어올렸다. 발이 단단한 돌에 닿자 사내는 다시 디뎠다. 우물 밖으로 나온 얼굴에 마른 흙과 눈물이 붙었다.
조생원이 자리를 내주었다. 사내는 풀린 신발끈을 만지며 웃었다. 자기가 물에 빠지는 것보다 종이가 젖는 것이 먼저 걱정됐다는 웃음이었다. 연화는 젖은 베로 그의 이마를 닦았다. 자기 손은 뒤로 숨겼다. 사내가 그 손을 보고 물그릇을 밀어 주었다.
종이점 사내는 우물에서 나온 뒤에도 몸을 흔들었다. 떨어진 신발을 보려고 다시 난간에 기대자 다리가 풀렸다. 연화가 그의 겨드랑이를 받쳤다. 사내는 멀쩡하다며 밀어내려 했으나 주저앉는 몸을 스스로 막지 못했다. 아래에서는 물결이 좁은 하늘을 흔들었다. 그는 그 물을 보며 늦게야 겁을 먹었다. 종이를 찾으러 간 것이 자기 목숨을 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관아 동행자가 등을 돌려 바람을 막았다. 연화는 남은 밥보자기를 풀어 그에게 한 덩이를 내밀었다. 사내는 먹으면서 이가 부딪쳤다. 자기가 망가뜨린 종이를 되찾아 주었다고 바로 공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다리가 떨린다고 비웃을 사람도 없었다. 조생원은 수레를 기다리는 동안 종이점으로 아이에게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가 우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올라왔으며 오늘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이었다. 사내는 그 전갈이 말라 있는 원장보다 먼저 출발하는 것을 보고 한참 고개를 숙였다.
묶음은 소기름 먹인 천으로 쌌다. 겉은 흙이었지만 안의 종이는 말라 있었다. 조생원은 종이점 사내에게 어디까지 싸여 있었는지 먼저 말했다. 그가 열기 전에 아무도 내용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사내는 받은 때 그대로라고 했다. 돈을 준 심부름꾼은 문서가 아니라 버릴 천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천을 펴자 작은 원장 두 권이 나왔다. 하나는 물품 지급, 하나는 따로 떼어 둔 은의 기록이었다. 인장대장에 대신 끼운 빈 종이처럼 완전히 큰 책은 아니었다. 손바닥 두 개만 한 책에 날짜가 촘촘히 들어갔다. 연화는 한꺼번에 펼치지 않고 바닥에 받침을 놓았다.
세곡 아홉 섬이 적힌 날에는 두 줄이 있었다. 첫 운송분은 북쪽에, 뒤의 운송분은 나루 창고에 남긴 것으로 적혔다. 남긴 곡식은 별도 매각으로 빠졌고 그 돈에서 은을 샀다. 은 원장의 같은 날짜에 서필주의 수결이 있었다. 이름을 빌려 쓰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남았지만 물건의 길과 서명이 함께 이어졌다.
조생원은 접수방으로 가져가 대조하자고 했다. 우물가에서 모든 책임을 읽어 낼 수는 없었다. 연화는 종이점 사내가 그곳에서 신발을 찾으려고 우물 아래를 보는 것을 보았다. 오늘 잃은 한 짝이었다. 관아 사람이 여분의 짚신을 내주었다. 사내는 돈을 내겠다고 했다.
“젖은 신발 값은 나중에 정합시다.”
연화가 말했다. 그는 짚신을 신고 두 원장이 올라간 수레를 따라왔다. 도망치면 자기 잘못만 남고 말을 하면 어떤 일에 손을 썼는지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는 얼굴이었다.
관아에 도착하자 서필주가 문밖에서 기다렸다. 그는 원장을 보기도 전에 종이점 사내에게 삿대질했다. 자기 집의 폐지를 잘못 처리해 관아 일까지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말이었다. 사내는 몸을 움츠렸다. 연화는 그의 앞에 서지 않고 옆에 섰다. 자기가 가져온 물건을 자기 입으로 설명할 자리를 지켜 주기 위해서였다.
“버릴 종이와 남길 종이를 나누어 줬습니다.”
사내가 말했다.
“주는 사람은 댁의 심부름꾼이었습니다. 받는 표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서필주는 심부름꾼이 배신했을 수 있다고 했다. 조생원은 그 사람을 부르겠다고 했다. 이미 세곡 창고에서 종이를 씻는 가게까지 이어진 지시의 손이었다. 숨길 것 하나를 다른 사람 이름에 넘기려면 그 사람도 직접 말을 해야 했다.
심부름꾼은 한참 뒤 왔다. 관아 동행자가 데려왔고 손은 묶지 않았다. 그는 서필주를 보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종이점 사내가 눈을 피했다.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칠까 두려웠다. 그러나 원장은 이미 펼쳐진 뒤였다.
심부름꾼은 받은 명을 말하겠다고 했다. 서필주가 명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겠다는 뜻인지, 명한 것만 숨기겠다는 뜻인지 연화는 바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는 폐지 묶음은 씻고 작은 원장은 마른 곳에 두라고 지시받았다고 말했다. 어느 날 지시받았는지는 세곡의 두 번째 운송 다음날이었다.
“왜 남겼습니까?”
조생원이 물었다. 심부름꾼은 모른다고 했다. 서필주가 그때 입을 열었다.
“내가 쓰지 않은 숫자들이 있어서 대조하려 남긴 것이오.”
조생원은 원장 끝의 수결을 가리켰다. 서필주는 자기 손이 맞지만 지시한 대로 정리했을 뿐이라 답했다. 그날 처음으로 자기 손을 인정했다. 부정하던 모든 종이가 갑자기 진실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물건이 사람의 말 뒤로만 숨지 않게 되었다.
연화는 빚문서의 천판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숫자를 만드는 사람과 자기 손을 가졌으면서 자기 숫자를 모른다 하는 사람. 손의 주인을 밝히는 일은 어느 한쪽의 외모를 믿는 일보다 오래 걸렸다.
마른 원장은 환전소 장부와 대조됐다. 같은 날짜의 은이 농장 물품표에 쌀값처럼 들어가고 월별 몫으로 빠졌다. 현감 이름은 직접 쓰이지 않았다. 대신 관아 안의 지급계정으로 보이는 짧은 기호가 있었다. 조생원은 그 기호를 알고도 바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누가 어떤 용도로 쓰는지 확인할 장이 필요했다.
서필주는 현감이 아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접수방이 조용해졌다. 연화는 그 말을 기다렸던 것처럼 받아 적으라 하지 않았다. 책임을 위로 미는 말일 수도 있었다. 조생원은 무엇을 언제 지시받았는지 구체로 말하라고 했다.
“아홉 섬 전부를 내준 걸로 적으라 했습니다.”
서필주가 말했다.
“하지만 북쪽으로 간 건 첫 운송뿐이오. 나머지는 따로 남겨서 팔았소. 그 대금을 지급에 합해 쓰라 했지.”
그 말은 돌쇠가 이틀에 나누어 실은 기록과 충돌하지 않았다. 다만 누가 나머지 곡식의 최종 값을 받았는지는 아직 종이 밖에 있었다. 조생원은 서필주가 말을 하기 전 원장에 적힌 것과 지금 한 진술을 나눴다. 현감에게 보일 때 서필주의 주장만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현감은 그날 접수방에 내려오지 않았다. 다른 일이 있다고 했다. 조생원은 원장과 접수표를 감영에 올릴 문서에 붙이겠다고 했다. 연화는 자기 신발에 묻은 우물 흙을 봤다. 북쪽의 현장확인명은 이미 떠났고 중간 창고에는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을 받치는 자리가 조금씩 나뉘어 있었다.
밤에 매화가 손의 붕대를 다시 감아 주었다. 연화가 아프지 않다고 하자 그녀는 바늘을 멈췄다.
“아프면 아프다고 하세요. 사람 데려오는 일을 하는데 자기 몸만 없는 것처럼 하지 마시고.”
연화는 한참 있다가 손바닥이 쓰리다고 답했다. 매화는 새 베를 더 느슨하게 둘렀다.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침묵이 생겼다. 매화는 그날 처음으로 오라비가 돌아오면 제일 먼저 무엇을 말할지 얘기했다.
“어디 갔었냐고 묻기 전에 밥 먹었냐고 물을 거예요. 그다음에는 화를 낼 거고요.”
연화가 웃었다. 손을 쓰는 사람에게 밥과 화가 함께 돌아가는 집이면, 기다리는 동안 마련한 두 방도 사람이 사는 곳이 될 터였다. 매화는 바늘을 놓고 자기 손도 씻었다. 실이 지나간 손가락에 작은 자국이 남았다. 연화가 그 손에 물을 부어 주었다. 오늘 밤은 한 사람만 다른 사람을 돌보는 자리가 아니었다. 둘은 젖은 베를 나란히 걸고 조금 늦은 밥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