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야간 왕진
빈 자리 둘
이미란은 병원 복도에서 운동화를 갈아 신었다. 야간근무를 마친 발이 부어 평소 신발이 맞지 않았다. 조정실에 들어가면 그날의 동선을 말해야 했지만 오늘의 피로가 먼저 몸에 와 있었다. 그는 간호사실의 빈 의자 두 개를 보고 가방을 들었다. 그날도 의자는 있었다. 앉을 사람만 없었다.
이미란은 병원 복도에서 운동화를 갈아 신었다. 야간근무를 마친 발이 부어 평소 신발이 맞지 않았다. 조정실에 들어가면 그날의 동선을 말해야 했지만 오늘의 피로가 먼저 몸에 와 있었다. 그는 간호사실의 빈 의자 두 개를 보고 가방을 들었다. 그날도 의자는 있었다. 앉을 사람만 없었다.
채영은 이미란에게 새 진술서를 써 오라고 하지 않았다. 그가 갖고 있던 근무표와 이미 확인한 기록을 함께 놓고 직접 말하도록 했다. 피해 가족은 앞쪽 의자를 골랐다. 이미란은 어느 자리에도 앉지 못하다 조정관이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환자의 가족을 마주 보던 순간이 그날 복도보다 길었다.
첫 질문은 두 자리였다. 누구의 휴가였느냐고 가족이 물었다. 이미란은 둘을 같은 사유로 설명하지 않았다. 당시 인력 배치에 두 명이 비어 있었고, 휴가나 결원 원인을 자료에서 확인한 부분과 자신이 근무 중 들은 말을 나눴다. 누구도 그날 쉬고 싶어서 사고를 만들었다는 식으로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조정관이 병원 근무표를 펴자 이미란은 빨간 선이 겹친 시간대를 짚었다. 평소 다른 사람이 맡던 호출을 자기가 받았다. 그 호출 사이에 물품을 가지러 갔고, 다시 병실을 확인하러 복도를 돌아왔다. 그는 동선을 숫자로만 말하다 가족이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을 보자 펜을 내려놓았다.
“한쪽으로 갔다가 끝내고 돌아온 게 아니에요. 돌아오는 길에 다른 호출을 받고 다시 반대로 갔습니다.”
가족은 그 길을 종이 위에서 손으로 따라갔다. 이미란은 실제 위치를 기억하는 곳과 기록으로 확인한 곳을 다르게 표시했다. 기억을 채워 넣으려고 빈 시간을 달리지 않았다. 세현은 이미란이 보고한 변화를 자신이 받은 시각을 확인하고 그다음 자기 행동은 자신이 말했다.
이미란이 입을 열다 울컥했다. 그날 다섯 번이나 같은 복도를 지났다는 기억이 있었다. 기록에 남은 것은 그보다 적었다. 가족은 왜 기록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미란은 모든 움직임이 같은 방식으로 찍히지 않았고 자신이 바로 적지 못한 것도 있다고 했다. 바빴다는 말로 없던 기록을 만들지 않았다.
세현은 이미란의 설명 뒤에 자기 지연을 짧게 넣었다. 그녀가 달리던 시간에도 자신이 다시 직접 확인할 판단은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미란은 그를 보았다. 전에는 자기 설명이 의사를 돕는 증언처럼 쓰일까 봐 두려웠다. 지금 그의 문장이 먼저 자기 선을 그었다.
가족은 간호사가 의사에게 한 말을 묻고, 왜 더 세게 요구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이미란은 가방 안의 낡은 메모를 꺼냈다. 말은 전달했지만 더 빨리 와 달라는 요청을 반복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 사실을 말하면서도 서로 다른 환자의 호출 사이에서 자기 몸이 어디에 있었는지 감추지 않았다.
병원 담당자는 결원이 임시로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란은 담당자를 똑바로 봤다. 결원은 그날 아침 처음 발견한 게 아니었다. 위험보고가 이전에도 올라갔다는 자료가 있었다. 담당자는 자신이 당시 그 자리에 없었다고 답했다. 조정관은 그 말 뒤에 당시 결정 자료를 내야 한다고 적었다.
회의를 쉬는 동안 이미란은 복도 의자에 앉았다. 피해 가족 한 사람이 옆에 서서 물을 마셨다. 이미란은 자기 물병을 건네려다가 멈췄다. 아무 일 없던 병동 인사처럼 말을 붙일 수 없었다. 가족이 먼저 물었다. 그날 퇴근은 언제 했느냐고. 이미란은 기록에 남은 시각을 말했다.
“밥은 먹었어요?”
복도 끝 편의점에서는 식사 상자를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란은 당직이 끝난 뒤 그 상자 앞에서 무엇을 살지 오래 고르던 아침을 떠올렸다.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집에 가면 잠부터 잤다. 가족의 손에는 아직 마시지 않은 물이 있었고, 질문은 누군가를 달래기 위해 나온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미란은 앞으로 피곤했다는 말을 자기 진술의 결론으로 놓지 않기로 했다. 피곤한 사람이 몇 명이었는지, 그 사람들이 실제로 맡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보여 줘야 했다. 물병 뚜껑을 닫은 가족이 다시 문으로 들어갔다. 이미란도 신발 끈을 고쳐 묶고 따라 들어갔다.
이미란은 그 질문에 눈을 들었다. 가족은 바로 덧붙였다. 이해했다는 말은 아니라고. 자기 사람을 보던 사람들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알고 싶을 뿐이라고. 이미란은 먹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 말 뒤에 환자가 받을 돌봄도 부족해졌다는 말을 붙였다. 자기 배고픔만 남기고 싶지 않았다.
채영은 휴식 뒤 병원에 물을 질문을 정리했다. 실제 비어 있던 두 자리와 대체 배치, 위험보고가 올라간 시점, 보고를 받은 사람, 당일 조치였다. 가족은 ‘검토 중’이라는 말만 쓰지 말고 다음 회의에 자료를 갖고 오라고 했다. 병원 담당자는 제출 날짜를 정해 답했다.
이미란은 돌아갈 시간을 확인했다. 내일 근무가 있었다. 조정관은 추가 질문을 서면으로 받되 그가 같은 내용을 말하러 반복 출석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이미란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검색했다. 가족은 그 화면을 보지 않았다. 서로를 이해해야만 각자의 하루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병원으로 잠시 돌아온 이미란은 간호사실 앞에 서 있었다. 새 직원이 비품 위치를 찾다가 그를 불렀다. 이미란은 가방을 내려놓고 서랍을 가리켰다. 그러다 오늘은 자기 근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위치만 알려 주고 나왔다. 휴식할 사람이 잠깐 돌아와 일을 메우는 습관도 빈 자리를 보이지 않게 했다.
세현은 그 모습을 복도 끝에서 봤다. 이미란을 붙잡아 오늘 고맙다고 말하려다가 전화로 전했다. 이미란은 답장이 없었다. 휴대전화를 볼 힘도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세현은 오늘 자료에서 자신의 이름이 있는 줄을 다시 읽었다. 바쁘게 달리던 다른 사람의 발이 자기 판단을 대신해 준 적은 없었다.
그날 저녁 영숙의 집에서는 손녀가 왔다. 노란 담요는 말라 있었다. 아이는 담요 안으로 양발을 넣고 할머니에게 강아지 신발을 설명했다. 영숙은 아이의 말에 답하다 쉬었다. 아이가 왜 쉬느냐고 묻자 채영은 할머니가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말을 못 하게 하는 병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손녀는 잠깐 기다리더니 자기도 숨을 골랐다. 영숙은 그 모습에 웃고 손을 잡았다. 아이를 데려온 가족은 예정한 시간이 다가오자 가방을 챙겼다. 채영은 딸이 가져온 책을 다시 넣었다. 영숙은 더 있자고 붙잡고 싶었지만 몸이 먼저 피곤하다고 말했다. 가족은 아이가 섭섭해할까 걱정하지 않고 다음에 듣기로 한 이야기를 골랐다.
“다음엔 강아지가 배를 타요.” 아이가 말했다.
영숙은 귤껍질 배가 이미 부서졌다고 고백했다. 아이는 종이로 만들면 된다고 했다. 작은 손으로 접은 배는 한쪽이 찌그러졌다. 채영은 고치려다 아이가 할머니에게 건네는 것을 기다렸다. 영숙은 강변 돌 옆에 배를 놓았다. 아이는 돌이 바다인지 물었다.
“그건 네 엄마가 밖에 놀러 가서 가져온 거야.”
채영은 영숙의 딸도 변호사도 아닌 아이 엄마로 불리는 순간 웃었다. 손녀는 종이배를 돌 옆에서 밀어 봤다. 영숙의 집에는 오늘도 할 일이 많았지만 그중 일부는 누구도 수당표에 적지 않는 놀이였다. 정례는 계약 시간에 도착해서 아이가 만든 배를 함께 봤다.
손녀가 떠난 뒤 영숙은 자기가 피곤하다고 말해서 방문이 끝난 게 좋았다고 했다. 보고 싶었던 사람을 보내면서도 자기 시간을 고를 수 있었다. 채영은 딸이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 한 장을 영숙에게 보여 주었다. 가족 단체방에 보낼지는 영숙에게 먼저 물었다. 영숙은 오늘 사진은 둘만 갖고 있자고 했다.
하진은 늦은 오후 관찰 연락을 받고 영숙의 말을 직접 들었다. 하진이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채영은 조정실에서 이미란의 빈 의자 이야기를 떠올렸다. 집에서도 사람이 없으면 있어 보이는 물건은 그대로 남았다. 인력표에 이름을 적는 것과 누군가 실제로 들어와 앉는 것의 차이를 오늘은 몸으로 알았다.
영숙은 그 시선을 읽었는지 빈 의자를 가리켰다. “저건 손녀 의자야. 일하는 사람 의자로 막 바꾸지 마.” 채영은 웃었다. 지원하는 사람이 온다는 기쁨이 집의 모든 자리를 근무 자리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선미가 오는 날에도 그 의자 대신 처음 고른 식탁 의자를 쓰고 있었다.
밤에 이미란은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었다. 발등에 양말 자국이 깊게 남았다. 그는 병원에서 가져온 근무표를 식탁에 펴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대신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냈다. 첫 숟가락을 먹다가 조정실 가족의 질문을 떠올렸다. 밥을 먹었느냐는 질문에 오늘은 먹었다고 답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에는 병원에서 온 추가자료 요청이 있었다. 이미란은 다음 날 근무 전에 담당자가 남겨 놓은 공식 요청을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개인 메신저로 기억을 다 모아 달라는 부탁에는 바로 응하지 않았다. 기록의 빠진 자리를 또 한 직원의 밤으로 채우면 다음 근무표에도 빈 의자만 남을 것 같았다.
세현은 조정관에게 다음 회의 자료를 받았다. 이전 위험보고가 보존되지 않은 경로와 서정오의 설명이 들어올 차례였다. 그는 이미란의 이름 옆에 ‘달린 사람’이라고 쓰려다가 지웠다. 한 사람을 희생의 그림으로만 남길 수는 없었다. 그녀가 했던 말과 하지 못했던 기록을 각각 그대로 두었다.
영숙의 집에서 노란 담요는 접혀 소파 끝에 있었다. 종이배는 강변 돌 옆에 기울어져 있었고, 손녀가 앉았던 의자는 빈 채로 남았다. 채영은 그 빈 의자를 치우지 않았다. 누가 앉았던 자리인지 아는 집이었고, 누가 다음에 와야 하는지 사람에게 묻는 집이었다. 다음 야간지원일의 이름은 이선미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