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51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종이를 씻는 사람

조생원이 책을 덮으려 하자 연화가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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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생원이 책을 덮으려 하자 연화가 손을 올렸다.

빈 종이 아래에 묻은 먹이 손끝에 닿았다. 아직 마르지 않은 먹은 아니었으나 닦아 놓은 종이의 결이 거칠었다. 번호 하나가 비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가 원장을 훔쳤다고 할 수는 없었다. 책을 묶은 끈과 다른 종이의 두께부터 확인해야 했다. 서필주는 그런 일을 마당에서 해야 하느냐며 얼굴을 찌푸렸다.

“보낼 명은 이미 보냈지 않습니까.”

그가 말했다. 연화는 오늘 출발한 수레가 빈 장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북쪽의 일은 그곳에 있는 아전이 맡았고 자신은 한양의 장부를 확인하러 남았다. 한 사람이 두 장소를 동시에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지금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조생원이 끈을 풀었다. 서필주는 들고 있던 지급원장을 책상에 놓았다. 원장은 두 달치라고 했다. 연화가 월별 은쪽지의 날짜를 말하자 그는 그 은이 지급원장에 적힌 공적 곡식값과 관계없다고 말했다. 똑같은 물품번호가 있다는 질문에는 번호를 다시 썼을 수 있다는 답이 나왔다.

조생원은 서필주를 문밖에 세우지 않았다. 책을 보던 사람의 기억도 필요했다. 대신 누가 어떤 장을 만지는지 옆의 필경사가 적게 했다. 연화는 빈 종이의 아래쪽을 살짝 들어 원래 장과 묶인 실구멍을 보았다. 한쪽 구멍만 맞고 다른 쪽은 새로 뚫려 있었다. 다른 종이를 대신 끼운 흔적에 가까웠다.

서필주가 빈 종이를 집으려 했다. 조생원이 그 손을 멈췄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오늘 이후 새로 만진 흠이 되면 곤란합니다.”

연화는 서필주의 손가락을 보았다. 먹이 옅게 남아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의 손에 먹이 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다. 그 손을 쫓아 사람 전체를 범인으로 만들면 지금 확인하는 구멍 두 개보다 못한 증거가 됐다.

접수방의 필경사가 입을 열었다. 묵은 종이를 씻어 관아의 임시 초안으로 쓴다는 것이었다. 종이는 귀했고 빈 부분을 골라 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인장대장의 장을 그런 초안으로 내주는 일은 없었다. 연화는 누가 종이를 씻는지 물었다. 필경사는 문밖 종이점의 사람이 지난주에 묶음을 가져갔다고 했다.

서필주는 그 묶음에 어떤 종이가 들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물품 원장을 맡아 관리한 손이면서 폐지 묶음은 다른 사람 소관이라 말했다. 조생원은 종이점에 사람을 보내기 전에 관아에서 내준 장수와 받은 값을 확인하게 했다. 기록은 있었지만 장수 칸이 비었다. 값만 적혔다.

연화가 밖으로 나왔을 때 두칠이 물통을 들고 기다렸다. 북쪽에 보낼 통을 씻으러 관아 우물에 왔다. 연화는 아이에게 종이점으로 따라오라고 하지 않았다. 오늘은 아이의 죄가 아니라 관아의 종이가 빠진 날을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필경사의 말을 듣고 씻는 곳이 다른 곳이라고 했다.

“종이점 뒤에서는 풀만 먹여요. 씻으려면 물이 많아야 해서 동쪽 빈 우물로 가져가요.”

“그걸 본 적 있어?”

“짐을 갖다 줬어요. 사람은 한 명 아니고요.”

연화는 지명이 얻어진 것과 그 사람이 장부를 가져갔다는 사실을 구분했다. 조생원에게 우물 위치를 전하고 관아 사람 한 명과 함께 갔다. 두칠은 약속한 물통 일을 끝내고 객주로 돌아갔다. 자기 정보를 주었다고 모든 추적을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동쪽 빈 우물은 사람 먹는 물로 쓰지 않았다. 위의 큰 나무에서 잎이 떨어져 수면을 덮었고 긴 널판 두 개가 우물 위에 걸렸다. 널판 위에는 젖은 종이가 펴져 있었다. 사내가 먹이 흐려진 종이를 물에 담갔다가 건져 올리는 중이었다. 연화는 멀리서 이름부터 물었다.

사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누구 것인지 모르고 씻어 준다고 했다. 물에 들어간 종이는 글이 흐려졌지만 찢기지는 않았다. 돈을 받고 지우는 일이었다. 연화가 관아 인장대장을 말하자 사내가 우물 옆의 묶음을 발로 밀었다.

관아 사람이 막대로 묶음을 받쳤다. 그것이 우물 안으로 떨어지기 전에 널판 아래에 걸렸다. 사내는 돌처럼 얼어붙었다. 연화는 뛰어들어 건지지 않았다. 우물벽에 이끼가 붙었고 널판 하나가 낡아 있었다. 범수가 있을 때처럼 몸부터 던졌다가는 사람 하나가 더 필요해질 수 있었다.

그녀는 긴 장대를 찾았다. 종이점 사내가 쓰던 뜰채가 옆에 있었다. 관아 사람과 서로 끝을 잡고 묶음을 끌어 올렸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묶음을 열자 적은 글이 다른 방향으로 겹쳤다. 장부 전체가 아니라 잘려 나온 장들이었다. 인장문양이 보이는 부분 하나가 맨 아래에 붙었다.

사내는 그 종이를 관아의 폐지와 섞여 받았다고 했다. 글이 많은 종이는 씻기 어렵다며 가격도 낮춰 받았다고 덧붙였다. 누가 넘겼는지 물으니 서필주의 집 심부름꾼이라고 했다. 사람의 이름은 몰랐으나 수레를 빌린 표는 남아 있었다.

“이거 때문에 잡혀갑니까?”

사내가 물었다. 연화는 자기가 잡아갈 권한이 없다고 답했다. 관아 사람은 종이를 받고 언제 무엇을 씻었는지 말해야 한다고 했다. 사내는 이미 씻어 말린 묶음을 가리켰다. 그 속에서 빈 종이 비슷한 것들이 나왔다. 모든 장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연화는 그릇을 구해 물을 받아 종이들을 나누었다. 서로 달라붙으면 남은 글도 뜯겨 나갈 수 있었다. 종이점 사내가 손을 보탰다. 조금 전 발로 밀던 묶음의 끝을 이제 자기 손으로 받쳤다. 연화는 그를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내가 지금 하는 일을 받아들였다.

젖은 장의 오른쪽 끝에 도장대장 번호가 보였다. 빠진 번호와 같았다. 다만 본문의 대부분은 옅었다. 아홉 섬이라는 글자가 남은 부분과 창고 지급의 날짜가 같은 장에 붙어 있었다. 연화는 종이가 젖어 스며든 다른 글을 원문으로 읽지 않도록 한 장씩 나누었다.

사내는 씻으면 아무것도 안 남을 줄 알았다고 했다. 글이 지워지는 시간과 사람이 잊는 시간은 같지 않았다. 그에게는 망가뜨린 값을 누가 물을지가 두려웠다. 연화는 자기 손가락에 묻은 검은 물을 보며 더 큰 말부터 하지 않았다.

“마르기 전에는 아무도 접지 않게 해 주세요.”

그녀가 부탁했다. 사내는 널판을 더 내주었다. 수레가 올 때까지 세 사람은 종이를 살폈다. 잠깐 바람이 불어 장 하나가 들리자 연화가 팔로 받쳤다. 모서리가 찢겼다. 그녀는 그 자리에 자신이 다치게 한 부분을 표시하게 했다. 실수를 숨기면 남의 손이 새 흠을 떠안게 된다.

수레를 기다리는 동안 사내의 딸이 종이점에서 왔다. 아버지가 왜 돌아오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아이는 젖은 종이보다 아버지의 젖은 바지를 먼저 보았다. 연화는 관아에서 부를 일이 있더라도 언제 돌아갈지 집에 알려야 한다고 동행자에게 말했다. 사내는 딸에게 널판 위의 모서리를 잡아 달라고 했다가 손을 거뒀다. 오늘 일은 아이 몫으로 넘기지 않기로 했다. 그는 딸을 종이점에 돌려보내고 자기 바짓단을 짜 물을 뺐다.

관아로 돌아온 것은 해가 기울 때였다. 조생원은 젖은 종이를 보자 서필주를 다시 불렀다. 서필주는 폐지는 버릴 때 섞일 수 있다고 했다. 빠진 장의 번호가 보인다는 말에는 그 장이 잘못 작성되어 버린 것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대신 적은 원장이 있어야겠지요.”

조생원이 말했다. 서필주는 아직 찾는 중이라 했다. 연화는 관아 책상에 서필주가 가져다 놓은 두 달치 원장을 보았다. 그 가운데 같은 날짜가 빠져 있었다. 쌀을 내준 곡물상에게는 실제 지급표가 있는데 지급을 명한 관아에는 그 날의 원장이 없었다.

문앞으로 세곡 운송꾼이 불려 왔다. 접수방에서 종이를 씻는다는 말을 듣고 조생원이 급히 사람을 보낸 것이었다. 운송꾼은 아홉 섬을 나르던 날을 기억했다. 그것을 농장 창고로 넣었다고 했다. 수레 하나가 늦어서 절반을 먼저 내리고 나머지는 다음날 갔다. 그 숫자는 한 번에 실은 양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받은 지급쪽지를 꺼냈다. 종이점에 간 장부와 다른 물건이었다. 은으로 품삯을 받은 시각이 적혀 있었고 운송꾼의 수결이 있었다. 연화는 그것을 젖은 장 옆에 겹치지 않았다. 각각 다른 사람이 가진 날짜가 같은 날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밖에서 식솔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점에서 가져온 먹물 냄새가 연화 소매에 남았다. 매화가 물을 건넸다. 연화는 물그릇을 들고 나서야 손등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 하루에 없어진 사람을 한 명도 데려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관아가 자기 장부를 모른다고 말하는 자리에, 씻다 남은 한 장이 다시 들어왔다.

조생원은 그 장이 마를 동안 지키겠다고 했다. 연화는 객주로 돌아가 새 베를 가져왔다. 종이를 덮으려는 것이 아니라 책상 앞에서 밤을 새울 사람의 무릎을 덮을 베였다. 기다리는 일도 사람의 몸을 써야 했다.

늦은 밤 종이점 사내가 찾아왔다. 관아 사람이 그를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집에서 수레표를 찾았다며 내밀었다. 표 뒤에 종이를 가져온 심부름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필주 집에서 쓰는 이름이었다.

“아까 말 못 한 게 있소.”

사내는 침을 삼켰다.

“씻지 말고 남겨 달라는 묶음도 하나 있었소. 그건 우물벽 안에 넣었소. 비가 와도 안 젖는 곳이라.”

연화가 베를 놓던 손을 멈췄다. 사내는 우물벽의 돌을 손으로 그렸다. 심부름꾼이 준 돈을 놓았던 자리도 짚었다. 지우라는 묶음과 숨기라는 묶음의 값을 같은 손에서 받았다고 했다. 그의 손끝이 돌 그림과 빈 돈자리 사이를 오갔다.

씻긴 장과 남긴 장. 누군가는 한쪽으로 관아의 기억을 지우면서 다른 쪽으로 자기 몫을 붙잡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