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미식 로맨틱 코미디 50화

서리 지난 복숭아밭

아직 비어 있는 상자

제과점 진열대에는 복숭아가 없었다. 보리는 메뉴판을 읽다가 웃었다. 자기 주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 놓고 가장 먼저 복숭아를 찾고 있었다. 해진은 왜 웃느냐고 물었다. 보리는 오늘은 다른 과일을 고르겠다고 했다. 그는 진열대 끝의 딸기 타르트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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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점 진열대에는 복숭아가 없었다. 보리는 메뉴판을 읽다가 웃었다. 자기 주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 놓고 가장 먼저 복숭아를 찾고 있었다. 해진은 왜 웃느냐고 물었다. 보리는 오늘은 다른 과일을 고르겠다고 했다. 그는 진열대 끝의 딸기 타르트를 가리켰다.

둘은 작은 타르트 하나와 짭짤한 빵 하나를 샀다. 둘 다 나눠 먹기로 하고 탁자에 앉았다. 주방이 쉬는 일요일이었다. 해진은 관측 근무를 교대해 시간을 확보했고, 보리는 앞치마가 없는 옷을 골랐다. 그래도 손가락은 빵의 층을 확인하고 싶어 자꾸 움직였다.

해진이 빵을 반으로 자르려다가 크기를 다르게 만들었다. 그는 큰 쪽을 보리에게 밀었다. 보리는 둘 다 조금씩 먹으니 괜찮다고 했다. 작은 쪽을 받은 해진이 다시 반으로 잘라 거의 가루를 만들었다. 보리는 더 공평하게 나누려다 음식이 없어지겠다고 웃었다.

딸기 타르트는 아래가 바삭했다. 보리는 한 입 먹고 말을 멈췄다. 미정의 크럼블과 다른 유지의 향이 있었다. 비교하지 않으려 했는데 맛은 저절로 기억과 만났다. 해진은 어떤지 물었다. 보리는 맛있다고만 답했다. 오늘 분석을 다 꺼내 놓으면 제과점까지 자기 회의실이 될 것 같았다.

해진은 바쁜 날에도 음식을 천천히 먹는 편이냐고 물었다. 보리는 전 회사에서는 점심을 자주 놓쳤다고 말했다. 늦게 먹으면 냉장고에서 꺼낸 것의 온도와 맛보다 자기 작업이 밀렸다는 생각부터 했다. 해진은 농번기에는 자신도 비슷하다고 했다. 둘은 각자의 식사를 대신해 줄 말을 하지 않고 남은 빵을 먹었다.

보리는 이 동네를 떠나고 싶었던 날과 남고 싶었던 날이 번갈아 왔다고 말했다. 해진은 오늘은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보리는 쉬는 날 읍내 제과점까지 함께 나온 쪽이라고 답했다. 해진이 웃었다. 영구히 남겠다는 말보다 오늘 함께 있는 사실이 두 사람에게 가까웠다.

가게를 나와 길을 건널 때 해진이 손을 내밀었다. 보리는 잠깐 보고 잡았다. 건넌 뒤에는 놓을 수 있는 손이었다. 그러나 보리는 몇 걸음을 더 걸었다. 해진도 손에 힘을 더 주지 않았다. 보리는 자기 주방에서는 늘 무엇을 들고 있던 손이 오늘은 비어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해진은 웃다가 자기 주머니의 영수증을 꺼내 보였다. 완전히 빈손은 아니라 했다. 보리는 그 영수증이 조합 장부에 들어갈 일은 없다고 했다. 오늘 빵값은 각자 고른 몫을 나눠 냈다. 두 사람의 시간이 공동주방 비용이 되지 않으니 장난도 더 가벼웠다.

다음 작업일 보리는 열두 주의 운영표를 펼쳤다. 읍내에서 사 온 빵 한 개는 미정에게 따로 줬다. 전날 자기들이 먹던 남은 조각이 아니라 선물로 새로 구매해 포장한 것이었다. 미정은 가게 이름을 보고 반가워했다. 포장을 열자 향이 주방에 났다.

박 여사는 옆에서 제과점 맛을 보고 왔냐고 물었다. 보리는 그곳엔 복숭아가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그래서 안 샀어야 한다고 농담했다. 미정은 자기 빵에 복숭아가 없는 날도 있다며 잘랐다. 다섯 농가가 한 주방을 쓰지만 점심까지 모두 복숭아 맛일 필요는 없었다.

옥순은 가족 작업장 장부를 가방 안에 두고 조합 운영표만 폈다. 단기차입은 앞서 상환을 마쳤고 다음 생산 비용이 남았다. 보리는 실제 매출을 주별로 놓았다. 확정 주문과 선택 주문을 다른 색으로 적었다. 예상 매장 매출은 도경의 수정안을 받았어도 계약한 돈처럼 넣지 않았다.

열두 주 표의 아랫줄에는 최소로 남겨 둘 운영금이 있었다. 다음 두 번 생산에 필요한 원물대와 노동비, 기본 안전포장 몫이었다. 주간 잔액이 그 아래로 내려가면 새 약속부터 줄이고, 정한 조건 안에서 생산량을 다시 보자고 했다. 손님에게 약속한 병을 만들 돈부터 써 버리지 않으려는 선이었다.

장씨는 그 선을 빨간 펜으로 표시했다. 추가 출자금이 들어왔으니 앞으로 줄을 안 넘을 것 같다고 말하려다가 지난 폐기 배치를 떠올렸다. 미정은 매번 같은 수율이 나온다고 가정하지 말자고 했다. 손질과 세척의 실제 시간이 다르고 원물 상태도 달랐다. 옥순은 적자가 이어질 때 멈춰 볼 주도 표시했다.

표가 길어지자 박 여사는 주방에서 새 달력을 가져왔다. 숫자표 위에 적힌 주가 실제 교대일로 바뀌었다. 누가 어느 날 오고, 쉬는 날은 언제인지 보였다. 이씨는 자기 밭의 작업과 겹치는 날을 짚었다. 해진은 관측 근무가 있는 시간을 표시했다. 원물 거래는 가능해도 주방에 몸이 두 번 나타날 수는 없었다.

보리는 자기 한 철 계약도 같이 꺼냈다. 열두 주 운영표에 자신의 이름을 계속 적는다고 실제 담당 기간과 범위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옥순과 보리는 현재 계약 안에서 맡을 유통 준비와 교대 일을 구체적으로 적고, 이후 기간의 일은 별도로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보리는 떠날 계획을 숨긴 채 모두가 기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옥순은 그 말을 듣고 표에서 보리 이름이 없는 주를 봤다. 마음이 잠깐 급해졌다. 그러나 미정은 다음 사람이 사진과 라벨 검수를 배울 시간을 먼저 잡자고 했다. 보리가 여기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익힐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장씨는 자신도 단순한 병수만 세지 말고 표시 검수부터 배우겠다고 했다.

본생산이 시작되자 보리는 장씨와 라벨을 나란히 놓았다. 원물 코드가 같은지, 표시가 빠지지 않았는지 두 사람이 각자 읽었다. 장씨는 글씨가 작아 안경을 고쳐 썼다. 첫 줄에서 보리보다 늦었지만 다음 줄의 인쇄 번짐을 먼저 발견했다. 보리는 그 라벨을 판매용에서 뺐다. 장씨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미정은 작은 시험 크럼블을 다시 만들었다. 먼저 실패했던 얇은 판과 다른 두께였다. 콩포트는 별도 컵으로 냈다. 박 여사는 오늘도 큰 조각을 먼저 집었다. 이씨는 따로 먹는 향이 좋다고 했다. 장씨는 이제 맛보고 나서 말하겠다며 컵을 들었다. 다섯 사람이 같은 조리대에서 서로 다른 첫 입을 골랐다.

보리는 시식판이 잘 부서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엔 두꺼워져 너무 딱딱할까 걱정했는데 가장자리는 가볍게 부서졌다. 가운데는 콩포트를 올린 뒤에도 조금 더 버텼다. 미정은 이동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리는 오늘 장터 시식에 쓸 방식을 정하고 남길 표본을 따로 뒀다.

오후에 도경이 보낸 빈 상자가 도착했다. 스물여덟 자리가 나뉜 과실용 상자였다. 현재 판매하는 콩포트 병을 넣는 상자가 아니었다. 도경의 메모에는 올해 신선과가 나올 때 이 규격을 맞추면 매장 진열이 편하다고 적혀 있었다. 박 여사는 상자를 보고 자기 밭의 작은 열매를 떠올렸다.

이씨는 칸 하나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같은 크기의 열매가 나란히 들어가야 할 모양이었다. 옥순은 이 상자에 맞는 것이 얼마나 나올지 물었다. 보리는 아직 수확하지 않은 열매를 지금 숫자로 셀 수 없다고 했다. 실제 수확이 시작될 때 골고루 뽑은 과실로 보는 것이 먼저였다.

해진은 밭에서 이미 남은 열매 사이를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수확은 지난해와 달라질 수 있었다. 보리는 상자를 잘 보이는 곳에 놓되 신선과 주문을 지금 받지는 않기로 했다. 도경에게도 시험을 할 수 있는 시기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사진 한 장으로 현재 가진 과실처럼 말하지 않았다.

미정은 상자 옆에 콩포트 병 하나를 놓았다. 병의 크기와 빈 과실 칸이 맞지 않았다. 장씨가 그럼 병은 못 팔겠다고 농담했다. 보리는 병은 병대로 팔고 과실은 과실대로 볼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복숭아 이름 아래 있어도 지난해 가공 과육과 올해 신선과는 다른 일을 거쳐야 했다.

옥순은 열두 주 표에 오늘 실제 판매가 들어오면 적을 칸을 남겼다. 도경의 최소 물량을 바로 채워 넣지는 않았다. 다섯 사람은 교대와 잔액을 보며 이번 생산량을 유지하는 데 동의했다. 장씨가 붉은 선을 한 번 더 그리려 하자 이씨는 이미 잘 보이니 종이가 찢어지기 전에 멈추라고 했다.

박 여사는 새 크럼블을 먹다가 제과점 빵도 맛있었다고 말했다. 미정은 그럼 다음엔 자기도 가겠다고 했다. 보리는 그곳에서 딸기 타르트를 먹었다고 했다. 이씨는 복숭아를 배신했냐고 웃었다. 해진은 자기 빵을 세 번 잘라 부순 이야기를 했고, 미정은 두 사람이 쉬는 날에도 시식시험을 했냐고 했다.

보리는 손을 가볍게 닦았다. 제과점에서 잡았던 손을 모두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날 자신이 한 조각의 맛을 급하게 평가하지 않고 먹었다는 것이 오늘 주방에서도 남아 있었다. 실패판을 고치는 일도 상자에 맞는 과실을 찾는 일도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의 마음을 정리하는 속도도 비슷했다.

작업을 닫은 뒤 보리는 빈 스물여덟 칸 상자를 창가 선반에 올렸다. 밖에는 봄이 지나며 짙어진 잎이 보였다. 상자는 아직 비어 있었고 냉장고에는 지난해 원물로 만든 다음 판매분이 있었다. 도경의 제안을 받는 일은 두 시간의 회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해진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보리는 오늘은 주방 앞까지만 같이 걷자고 말했다. 남은 라벨 교육자료를 정리해야 했다. 해진은 좋다고 했다. 그녀는 문을 잠근 뒤 잠깐 그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더 오래 남을지, 어디까지 같이 걸을지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약속이 많았다.

옥순은 자기 가방을 들고 먼저 갔다. 장씨는 큰 국자를 시험도구 칸에 넣었고 미정은 크럼블 표본을 정해 둔 곳에 뒀다. 보리는 빈 상자를 한 번 돌아봤다. 올해 열매가 그 칸을 채우기까지는 여름의 시간이 더 흘러야 했다. 오늘 자신들이 확보한 것은 다 익은 복숭아가 아니라, 그때까지 주방을 닫지 않고 서로의 손을 남겨 둘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