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49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세 번 팔린 밤

연화가 은을 만지려 하자 저울꾼이 손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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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가 은을 만지려 하자 저울꾼이 손목을 잡았다.

“눈으로 보시오. 손의 기름이 값에 섞입니다.”

북쪽 장의 환전소는 좁았다. 문밖에 놓인 평상 하나에서 저울을 달고 안의 작은 궤에 은을 모았다. 연화는 장우석의 빚문서와 천판의 일을 밝히러 왔지만 환전소 주인은 그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농장 창고에서 은을 바꿨는지 묻자 오늘 바꾼 은을 다 보여 줬다고 했다.

그는 손님 앞의 작은 은덩이를 가리켰다. 울퉁불퉁한 한 면에 반달 같은 흠이 있었다. 심대업 표와 닮은 모양이었으나 연화는 그 이름을 대지 않았다. 은을 녹이면 금이 생길 수도 있었다. 오늘 필요한 것은 모양에 붙일 이름이 아니라 누가 얼마에 팔았는지였다.

“여기서 받은 표가 한양에 남아 있습니다.”

연화는 가짜 유족 선금의 흐름을 좇던 때 얻은 환전쪽지의 사본을 내놓았다. 원본은 만복의 궤에 있었다. 북쪽 환전소 이름은 없는 대신 서쪽 환전상의 수결과 납품 날짜가 있었다. 주인은 사본을 보고 대답을 늦췄다. 자기 이름이 아니라서 모른다고 하기에는 날짜 옆 표식이 익숙했다.

옆에서 은을 팔던 장꾼이 말했다.

“서쪽으로 보낸 것 말하는 거 아닙니까? 말짐 싣던 날.”

주인이 그를 노려봤다. 장꾼은 자기 은값을 덜 주면 자기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두 사람의 실랑이에 연화는 끼어들지 않았다. 장꾼은 운송짐을 보았다는 사람이지 은의 출처까지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주인은 겨우 장부를 폈다. 길게 돌돌 말린 종이 위에 은의 무게와 운송삯이 따로 적혀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행 하나를 가리켰다. 광산 창고에서 가져온 은을 한양 서쪽으로 보냈다는 말이 나왔다. 광산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주인이 종이를 말려 했다.

“내가 본 건 은을 가져온 사람뿐이오. 어디서 캤는지까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연화는 사내가 스스로 거둔 말을 다시 늘이지 않았다. 운반자 이름을 물었다. 주인은 장보라고 했다. 장보가 은을 직접 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붙였다. 장보는 두칠에게 맡겼다는 은을 찾는 중이면서 이곳에서는 다른 은을 바꾼 적이 있었다. 두 거래를 혼동하면 아이의 사건까지 다시 꼬일 수 있었다.

연화는 아전이 준 질문쪽지를 펼쳤다. 물품표의 그 번호로 받은 은이 있는지 물었다. 주인은 다른 쪽 장부를 꺼냈다. 거기에는 은의 중량이 아니라 물건의 순번이 있었다. 번호가 같으면 반드시 같은 자루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도 두 장부를 함께 쓴 사람이 그 뜻을 설명할 수 있었다.

“창고 쪽은 한 달에 한 번씩 가져왔소. 이건 물건 값으로 바로 바꾸지 않고 따로 보관하는 은이오.”

“누구에게 보낼 것입니까?”

주인은 답하지 않았다. 그때 길상이 문앞에 섰다. 농부 아들과 장에 나온 그는 자기 형의 손수건을 품에서 꺼내지 않았다. 대신 우석이 보내 준 작고 닳은 배급표를 내놓았다. 최근에 주운 다섯째 표와 다른, 우석이 옷 속에 넣어 다닌 표였다. 전날 붕대를 바꾸다 우석 스스로 내주었다.

“이 쌀의 값을 은에서 뗐습니까?”

주인은 표를 보고 길상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쌀 납품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쌀을 파는 곡물상에게 은 일부를 바로 넘긴 일이 있었다. 곡물상의 이름이 나왔다. 같은 장의 모퉁이였다.

곡물상은 처음부터 화를 냈다. 창고가 밀린 쌀값을 갚으라고 하지도 못하는데 갑자기 누구 밥인지 따지느냐는 것이었다. 연화는 떼어 간 은으로 쌀을 실제 사 왔는지 알고 싶었다. 곡물상은 지급표를 보여 주었다. 받은 은과 내준 쌀, 마지막 남은 값을 적었다. 창고가 받았다는 쌀보다 실제 내준 쌀이 적었다.

“왜 차이가 납니까?”

곡물상은 두 손을 벌렸다. 문서는 창고에서 써 왔고 자기는 내준 쌀에만 수결했다고 했다. 가져온 표의 위쪽 숫자를 뒤에 고친 것이라면 자기에게 묻지 말라고 했다. 연화는 수결 자리가 아래쪽에 따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말이 맞는지 관아가 표 원문을 나란히 보아야 했다.

길상이 곡물상에게 밀린 쌀을 달라고 말했다. 자기 형이 안에서 굶는데 장부만 펼칠 것이냐는 말이 나왔다. 곡물상은 길상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네 형을 들여보냈나? 내 아이 밥까지 떼어 보낼까?”

길상은 팔을 들었다가 멈췄다. 유인에 자신이 가담했던 말이 목을 찔렀다. 그는 멱살을 떼어 내고 숨을 고르며 사과했다. 연화는 곡물상이 없는 돈을 가진 것처럼 말하지 않았다. 그가 내준 쌀을 원문으로 증명하면 가져간 사람이 빠진 몫을 답해야 했다.

곡물상은 장부를 다시 폈다. 길상이 자기 잘못을 말하자 이겼다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 대신 얼마의 쌀을 더 떼어 간 것으로 문서에 적혔는지 확인하게 했다. 값의 차이를 사람이 물어야 한다는 마음은 그에게도 있었다. 장이 닫히기 전에 그는 따로 보리 한 자루를 내주었다. 환자에게 보내되 자기 외상장에 올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돌아오면 일한 값을 제대로 받게 하시오. 그때 쌀은 제값에 사 오고.”

길상은 보리자루를 어깨에 멨다. 남의 곡식을 화로 얻은 것이 아니라 진실을 나누는 값으로 얻었다. 들고 가는 몸은 무거웠지만 손은 덜 떨렸다.

환전소로 돌아오자 주인이 은쪽지 한 장을 내놓았다. 한 달마다 같은 몫을 따로 떼어 보낸 거래에 서필주의 이름이 있었다. 세 차례 날짜가 이어졌고 창고 관리인이 맡겼다는 수결이 붙었다. 주인은 실제 받는 손은 심부름꾼이었다고 말했다. 서필주가 몸소 은을 받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연화는 이름 아래 빈자리를 보았다. 문서를 반려하는 손과 은을 보낸다는 손이 같은 이름으로 만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미 현감에게 얼마가 갔다는 계산까지 할 수는 없었다. 월별 몫은 서필주에게 물을 일이고 관리인의 원장에 붙은 지급표도 필요했다.

“이걸 내주면 장사가 끝날 거요.”

주인이 말했다. 그는 뒤의 은궤를 보았다. 이문을 남기려 받아 온 거래가 지금 자기 문을 닫게 할 것 같았다. 연화는 관아에 원문을 맡기고 접수표를 받으라고 했다. 자신에게만 주면 장사뿐 아니라 증거도 그의 말 하나로 남게 된다.

주인은 해가 지기 전에 농부의 집까지 동행했다. 보리를 싣고 걸어가는 길상 뒤로 장부를 싸서 멨다. 그가 문턱을 넘었을 때 우석은 죽그릇을 놓고 은장사라고 말했다. 창고에 온 것을 보았단다. 주인은 우석을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보다 은무게를 먼저 보던 눈이었다.

아전은 환전소 장부와 곡물상 표를 받았다. 그날 밤 물품번호, 월별 은쪽지, 빚문서, 배급표가 같은 상 위에 놓였다. 우석은 상 아래 앉아 발을 말렸다. 사는 동안 자기 이름이 저런 종이들 사이에 얼마나 쉽게 빠졌는지 생각했다.

연화는 심대업의 이문을 세 갈래로 나누어 말할 수 있었다. 상인에게 투자금으로 받은 돈, 빈 손도장 문서로 노동자를 묶은 값, 가짜 유족에게 선금을 줘 부조계 돈을 끌어내려던 일. 모두 의심의 무게가 같지는 않았다. 투자 제안은 길상의 진술이 있고 거짓 유족의 고백도 있었다. 강제노동은 이제 살아 나온 사람과 도구가 있었다. 실제 얻은 총이익과 현감 몫은 아직 물건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길상이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셋 모두에 가담한 것처럼 얼굴을 가렸다. 연화는 그에게 하지 않은 일을 지라 말하지 않았다. 그가 사람을 북쪽으로 유인한 일은 직접 말해야 했다. 다른 돈까지 떠안으면 정작 누가 무엇을 했는지 흐려졌다.

우석이 몸을 돌려 길상을 보았다.

“네 형이 동생 얘기를 했소. 말이 빠르고 욕도 빠르다고.”

길상은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이 지금 자신을 위로하는 것인지 꾸짖는 것인지 몰랐다.

“나는 당신들 가는 길을 속였습니다.”

우석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숟가락을 만졌다. 곧바로 용서한다고 하지 않았다. 길상은 그 침묵 앞에서 달아나지 않았다. 우석은 자기가 돌아갈 집의 쌀독을 떠올렸다. 자신이 누워 있던 동안 동생이 그 쌀독을 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나가는 길을 속이지 마시오.”

길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것은 면죄가 아니라 다음 행동의 기준이었다. 그 기준이면 내일도 일을 할 수 있었다.

밤이 깊어졌을 때 선돌이 복단을 불렀다. 몸을 조금 세워 앉아도 숨이 막히지 않았다. 복단은 등 아래 받침을 낮춰 주었다. 선돌은 처음으로 자기 밥그릇을 두 손으로 들었다. 그릇에 남은 죽이 적었는데도 우석에게 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먹은 몫이었다.

아전은 연화에게 한양으로 가져갈 접수목록을 내주었다. 창고가 반려장의 농장과 같은 대상인지, 관아의 쌀이 누구에게 내려갔는지, 실제 노동자를 어떻게 확인할지 지시를 받아야 했다. 연화는 해 뜨면 떠나기로 했다. 길상은 보리자루를 잘 묶어 놓고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형의 것까지 가져갈 필요는 없어요. 그림은 이미 있지요?”

그는 내민 손을 거뒀다. 이제 형의 모든 물건을 증거로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헛간에서 두 사람이 숨 쉬고 있고, 장사꾼 두 사람이 자신의 장부를 내놓았다. 손수건은 형에게 돌려줄 물건으로 남을 수 있었다.

연화는 문밖에서 굴뚝을 보았다. 밤이 세 번 팔린 곳이었다. 기다리던 식솔의 밤, 땅 밑에서 일하던 사람의 밤, 돌아간 은을 세던 자의 밤. 그 밤을 끝내는 데 필요한 것은 더 큰 소문이 아니라 사람을 밖으로 나오게 할 낮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