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완화의료 휴먼극 48화

열세 번째 야간 왕진

불 꺼진 창을 보는 딸

두 번째 지원일 저녁, 채영은 집에서 두 골목 떨어진 분식집에 앉았다. 사무실 일은 일찍 끝났고 선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집으로 가도 됐지만 영숙이 오늘 두 시간은 딸이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영은 쉬겠다고 답하고도 집 창문이 보이는 자리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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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지원일 저녁, 채영은 집에서 두 골목 떨어진 분식집에 앉았다. 사무실 일은 일찍 끝났고 선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집으로 가도 됐지만 영숙이 오늘 두 시간은 딸이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영은 쉬겠다고 답하고도 집 창문이 보이는 자리를 골랐다.

분식집 유리에는 자기 얼굴과 맞은편 약국 간판이 겹쳤다. 집 창은 그보다 멀었다. 채영은 휴대전화 화면을 엎었다가 뒤집었다. 선미가 보낸 도착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문자 한 줄을 더 보내는 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어머니와 정한 연락을 자기가 먼저 늘리고 있었다.

떡볶이를 가져온 주인이 그녀의 눈길을 따라 밖을 봤다. “누구 기다려요?”

“아니요. 그냥 쉬는 중이에요.”

주인은 접시 옆에 단무지를 놓았다. 채영은 식어 가는 떡을 포크로 찔렀다. 쉬는 일에 이렇게 손이 많이 갈 줄 몰랐다. 집에서는 영숙이 선미에게 라디오를 켜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뉴스가 나왔다. 영숙은 자기보다 건강한 사람들이 세상을 걱정하는 소리를 오늘은 듣기 싫다고 했다.

선미가 다른 주파수를 찾자 오래된 노래가 나왔다. 남편이 설거지하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영숙은 몇 소절을 따라 부르다 목소리를 멈췄다. 선미는 노래를 끄지 않았다. 영숙이 원한 것은 끝까지 부르는 자신이 아니라 자기 집에 남은 소리일 수도 있었다.

영숙은 창가 사진을 가리켰다. “이 사람은 저 노래 가사를 끝까지 틀렸어요.”

“계속 다른 노래가 됐겠네요.”

그 말에 영숙은 웃었다. 선미가 남편은 언제 돌아가셨는지 물으려다 멈췄다. 영숙이 먼저 이어 말했다. 남편 장례 때 채영은 사람들 식사를 끝까지 챙기고 자기 밥은 못 먹었다. 오늘도 비슷할까 걱정된다고. 선미는 딸에게 확인 전화를 해 드릴까요 묻지 않고 차가 식기 전에 마시자고 했다.

채영은 분식집에서 어머니의 창이 어두워지는 것을 봤다. 전기가 꺼졌나, 사람이 쓰러졌나, 선미가 다른 방에 있나. 생각이 한꺼번에 뛰었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휴대전화에 온 문자를 읽었다. ‘엄마입니다. 노래 듣느라 큰 불 껐어. 열 시 전에는 올 때만 연락해.’

그 문장 뒤에는 띄어쓰기가 틀린 차 이름이 붙어 있었다. 영숙이 직접 쓴 문자였다. 채영은 다시 앉았다. 물컵을 두 손으로 잡았더니 손끝이 따뜻해졌다. 집 안의 불이 자신에게 보내는 상태표가 아니라 어머니가 고르는 빛일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몸에 와 닿았다.

주인이 빈 접시를 가져갔다. 채영은 추가 주문을 해야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있나 고민했다. 그때 문 앞에서 동료 수진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약속이 취소됐다며 근처에 있다고 했다. 채영은 자기가 쉬고 있다는 말을 했다. 수진은 집까지 태워 주겠다고 하지 않고 같이 산책하자고 했다.

두 사람은 하천 쪽으로 걸었다. 겨울 물은 검고 둔했다. 채영은 다리 입구에서 집 방향을 돌아봤다. 수진은 앞서 가지 않았다. 난간에 손을 얹고 같은 방향으로 섰다. 둘은 몇 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채영은 자기가 다른 사람의 침묵까지 관리하려 했다는 걸 느꼈다.

“어머니가 요즘 뭐 좋아하셔?” 수진이 물었다.

채영은 약과 장비 이야기를 하려다가 손녀의 강아지를 말했다. 앞 두 개가 팔이라 다리가 여섯이라는 강아지였다. 수진이 자기 조카가 그린 집에는 문이 지붕에 있었다고 했다. 둘은 아이가 만든 계단을 생각하다 웃었다. 웃는 동안 채영의 휴대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집에서는 영숙이 예전 사진 봉투를 열었다. 선미는 골라 달라는 부탁을 받고만 손을 댔다. 사진 속 채영은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영숙이 사진 뒷면의 날짜를 읽다가 연도를 틀렸다. 선미가 고쳐 주려 하자 영숙이 자기 딸이 몇 학년이었는지로 다시 셌다.

“틀려도 이 애는 여기 그대로 있네요.”

선미는 사진을 식탁에 놓았다. 영숙은 그 말이 마음에 들어 같은 사진을 오래 봤다. 서랍 속 문서들은 틀린 날짜 하나로 누가 다투고 누가 기다려야 하는지 달라졌다. 하지만 딸이 넘어져 무릎에 흙을 묻힌 사진은 오늘도 웃긴 사진이었다. 영숙은 선미에게 딸이 넘어졌던 일을 말해 달라고 했다.

선미의 아이는 운동장에서 떨어뜨린 장갑을 찾다가 학교가 끝난 뒤에도 혼자 있었다. 그날 선미는 근무 중이라 바로 갈 수 없었다. 선미는 그 이야기를 하다 휴대전화 화면을 봤다. 집에서는 숙제가 끝났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영숙은 자기 딸의 휴식이 선미 딸의 기다림 위에 서 있다는 생각에 차를 더 권하지 않았다.

“열 시 되면 가세요. 이야기하다 늦지 말고.”

“네. 대신 지금 이야기는 마저 듣고 갈게요.”

하천 다리 아래에서는 아이 둘이 돌을 던졌다. 채영은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돌이 물에 두 번 튀었다. 수진이 자기 돌을 주워 던졌는데 곧장 가라앉았다. 채영은 처음에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잠깐 뒤 작은 돌을 골랐다. 물에 닿는 소리가 겨우 한 번 났다.

수진은 잘했다고 하지 않았다. 다음 돌을 찾았다. 채영도 두 번째를 골랐다. 두 시간의 휴식을 성과로 만드는 사람이 옆에 없다는 것이 좋았다. 집에서 어머니가 뭘 하고 있을까 묻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었지만 그 마음과 함께 강변을 걸을 수 있었다. 채영은 걱정이 없어져야 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구청 골목 담당자의 전화가 그때 왔다. 정차 지점 현장 확인을 금요일 오전에 하겠다고 했다. 채영은 처음엔 자기가 휴가를 내겠다고 하다가 이웃에게 가능 시간을 확인해 함께 일정을 정하겠다고 답했다. 담당자는 사진과 통행 조건을 먼저 받기로 했다. 한 사람의 집을 위해 골목 전체를 비우는 제안은 없었다.

수진은 채영이 통화를 끝낸 뒤 어깨를 보고 웃었다. “방금 네가 맡을 사람을 하나 더 만들 뻔했지?” 채영은 부인하지 않았다. 이웃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현장에 함께 서겠다는 답이 왔다. 채영은 배송 때 찍었던 정차 지점 사진을 보냈다. 일을 마치고 다시 하천으로 눈을 돌렸다.

아홉 시 사십 분에 두 사람은 헤어졌다. 채영은 집으로 출발한다고 영숙과 선미에게 보냈다. 영숙은 오면서 무엇을 사 달라고 하지 않았다. 채영은 가게에 들러 새 편지지를 샀다. 부탁받지 않은 물건을 가져가 어머니가 꼭 써야 할 숙제로 만들지 않으려고 작은 묶음만 골랐다.

현관에 도착했을 때 집에서는 노래가 들렸다. 창의 큰 불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채영은 문을 열며 괜찮냐는 질문 대신 어떤 노래냐고 물었다. 영숙은 남편이 틀린 가사로 부르던 노래라고 했다. 선미가 웃으며 가방을 챙겼다. 채영은 얼굴을 보며 필요한 인계를 듣고, 열 시에 선미를 보냈다.

집 밖 계단에서 선미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영숙이 딸에게 어디에 있었는지 물었다. 채영은 분식집에서 처음 한 시간을 보냈고 강변도 걸었다고 말했다. 집 창을 보고 있었던 것도 숨기지 않았다. 영숙은 처음엔 눈을 크게 떴다가 컵을 내밀었다. 빈 컵이었다.

채영은 외투를 벗다 주머니에서 강변의 돌 하나를 꺼냈다. 던지려다 모양이 둥글어서 넣어 둔 것이었다. 영숙이 그걸 왜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채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서류 가방에서 쓸모없는 돌이 나오는 일을 자기가 오랜만에 했다는 생각만 났다.

영숙은 돌을 손바닥에 올렸다. 차가운 줄 알았는데 딸의 주머니에 있던 온기가 조금 남아 있었다. 그는 식탁 모서리에 돌을 놓았다. 채영은 먼지를 닦아야 한다고 했다가 웃었다. 엄마가 돌을 먹는 것도 아닌데. 영숙도 같이 웃었다. 걱정은 물건이 바뀌어도 재빨리 새 얼굴을 찾았다.

“내일은 버려도 돼.” 채영이 말했다.

“그걸 왜 네가 벌써 정해? 내 식탁에 온 돌인데.”

돌이 놓인 자리는 정산 서류를 펴던 자리였다. 서류는 밤새 거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채영이 종이를 봉투에 넣었다. 영숙은 돌을 굴려 보다가 엽서 모서리에 얹었다. 딸이 한 번 물에 던지지 않고 가져온 것 때문에 손녀의 강아지가 식탁에서 날아가지 않았다.

“너도 연습하는구나.”

“엄마는?”

“나는 딸이 안 보고 있을 때도 내 집에 사는 연습.”

채영은 새 편지지를 식탁에 놓았다. 영숙은 지금은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채영은 괜찮다고 답했다. 예전 같으면 손녀에게 금방 답장을 하나 더 쓰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오늘은 어머니가 봉투를 닫는 손을 기다렸다. 영숙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딸에게 건넸다.

채영의 모자는 거꾸로였고 아버지의 손은 사진 끝에 반쯤 잘려 있었다. 채영은 그 손을 엄지로 문지르다 눈물이 났다. 영숙은 무슨 일이냐고 다그치지 않았다. 자기 손을 딸 무릎에 올렸다. 딸이 오늘 잘 놀았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빠 보고 싶었어.” 채영이 말했다.

영숙은 사진 끝의 잘린 손을 만졌다. 살아 있는 딸의 손과 크기가 비슷했다.

영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죽을까 봐 우는 줄 알고 미리 달랠 필요가 없었다. 오늘의 딸에게는 이미 떠난 아버지도 있었다. 둘은 한동안 사진을 함께 봤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끝났다. 영숙은 다음 노래까지 듣겠다고 했다.

채영은 소파 옆에 앉아 남은 저녁을 먹었다. 휴대전화는 엎어 놓았다. 내일 지원 정산 첫 안내가 온다는 지수의 문자는 식사가 끝난 뒤 읽었다. 어머니에게는 두 시간의 사람이 생겼고, 딸에게는 불 꺼진 창을 보지 않는 몇 분이 생겼다. 채영은 오늘 그 몇 분을 잃지 않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