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미식 로맨틱 코미디 48화

서리 지난 복숭아밭

열흘 뒤의 점심

이씨는 입금 알림을 듣고도 당장 휴대전화를 꺼내지 못했다. 밭에서 장갑을 끼고 가지를 묶던 중이었다. 매듭이 풀리지 않게 손을 잡고, 주머니에서 계속 나는 소리를 들었다. 해진이 옆에서 끝을 받아 주자 이씨는 먼저 매듭을 마쳤다. 그 뒤 그늘로 가 장갑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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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입금 알림을 듣고도 당장 휴대전화를 꺼내지 못했다. 밭에서 장갑을 끼고 가지를 묶던 중이었다. 매듭이 풀리지 않게 손을 잡고, 주머니에서 계속 나는 소리를 들었다. 해진이 옆에서 끝을 받아 주자 이씨는 먼저 매듭을 마쳤다. 그 뒤 그늘로 가 장갑을 벗었다.

보험금이 들어와 있었다. 예정한 지급일까지 열흘의 공백이 끝난 날이었다. 도경이 다녀간 뒤 공동주방은 정한 교대로 두 번의 본생산을 더 했다. 보리는 그 사이 병을 세고 전화에 답하고, 마지막 접시를 닦았다. 오늘 알림 하나가 그 열흘의 손일을 대신해 주지는 않았지만 기다리던 날짜가 실제로 온 것은 맞았다.

이씨는 화면을 오래 봤다. 현장 범위에 대한 이의와 자기부담 산식의 질문은 각각 남아 있었다. 오늘 들어온 금액이 모든 물음의 대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농약 외상을 물을 때 예정일을 말하는 대신 자기 통장에 있는 돈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가족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박 여사에게서도 입금 연락이 왔다. 다른 집들은 각자 자기 계좌를 확인했다. 옥순은 조합 계좌부터 열었다가 곧 닫았다. 그곳에 다섯 집 보험금이 들어올 이유는 없었다. 자신의 농가 입금은 개인 통장에서 확인했다. 보리는 옥순에게 조합 차입 상환표를 건네며 실제 판매금과 함께 보았다.

그동안 출고한 새 배치의 대금 중 예약 이행을 마친 몫과 현장 판매금이 모였다. 원물대와 노동비, 다음 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먼저 둔 뒤 조합 단기차입 상환에 쓸 돈이 나왔다. 보리는 은행 화면의 입력란을 옥순 쪽으로 돌렸다. 상환할 계좌와 금액을 같이 확인했다. 옥순은 마지막 버튼을 누르고 완료 화면을 저장했다.

이번에는 열흘을 버틴 차입 원금과 약정한 비용의 상환이었다. 이미 낸 전기료를 새로 내지 않았다. 옥순은 가족 작업장 빚의 남은 숫자를 조합 표에 얹지 않았다. 개인 농가의 보험금으로 올 봄 밭에서 필요한 지출을 보고, 가족 자재대금의 다음 약속도 자기 장부에서 확인했다.

“이쪽 줄은 줄었는데 저쪽은 아직 길어.”

옥순이 말했다. 보리는 가족 장부를 덮어 주려 하지 않았다. 옥순은 직접 덮고 주방 쪽을 봤다. 미정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뜨거운 오븐 옆에서 먹기 편한 비빔국수였다. 열무가 들어간 그릇이 탁자 위에 나란히 놓였다.

장씨는 자기 그릇의 양이 적다고 했다. 미정은 국수는 각자 먹을 만큼 받게 했다며 빈 그릇을 내밀었다. 장씨가 더 받는 동안 박 여사는 자기 그릇에서 오이를 골라 이씨에게 주었다. 이씨는 오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칼질이 너무 크다고 했고, 박 여사는 향은 잘 찾는 사람이 오이 폭에 민감하다고 웃었다.

보리는 처음으로 점심 전에 계좌 확인을 끝냈다. 미정이 그릇을 밀어 주자 손을 씻고 앉았다. 국수에 열무를 섞는 소리가 탁자 여기저기에서 났다. 원물대와 노동비를 받은 사람들도 자기 점심의 매운 정도를 따로 골랐다. 같은 보험금 지급일이 다섯 집의 같은 기분까지 만들지는 않았다.

해진은 늦게 왔다. 밭에서 이씨 매듭을 받아 주느라 시간이 밀렸다고 했다. 이씨가 자기 탓이라고 하자 해진은 매듭을 서두르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웃었다. 미정은 해진 몫을 따로 남겨 둔 국수로 내줬다. 앞에 나온 그릇의 남은 음식을 모아 준 것이 아니었다.

보리는 그가 앉자 물을 건넸다. 해진도 자신의 입금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보리는 괜찮으냐고 묻다가 멈췄다. 돈이 들어왔느냐와 마음이 괜찮으냐를 같은 물음으로 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해진은 먼저 올해 가지를 다시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리는 밭을 보러 가도 되느냐고 했다.

해진은 오후 관측 일이 끝난 뒤라면 된다고 답했다. 보리는 주방의 마무리 시간도 그 뒤라고 했다. 오늘은 서로 빈 시간을 먼저 찾아봤다. 박 여사가 두 사람을 보고 점심에 산책 일정까지 짠다고 말하자 보리는 밭을 보러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밭에 가면 결국 걷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미정은 디저트로 작은 컵을 냈다. 식사용으로 따로 마련한 요거트 위에 시식용 콩포트를 올렸다. 판매 배치 병과 섞지 않았다. 박 여사는 큰 조각을 집어 올리고 이씨는 컵을 코 가까이 대었다. 장씨는 그냥 먹으라며 먼저 숟가락을 넣었다.

보리는 요거트의 신맛 뒤에 남는 복숭아 향을 느꼈다. 크럼블과 함께 먹을 때와 다른 끝이었다. 도경에게 보여 준 맛은 한 가지였지만 먹는 자리는 더 많았다. 미정은 오늘 점심 디저트를 바로 새 상품으로 부르지 말자고 했다. 박 여사는 조합장이 앉아 있으니 지금 팔자고도 못 한다며 옥순을 봤다.

옥순은 웃었다. 오늘은 팔 수량을 늘리는 말을 먼저 하지 않았다. 자기가 아침에 차입 상환 버튼을 누른 손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요거트 바닥에 붙은 과육을 긁다가 소리가 났다. 박 여사는 아이들이 그러는 줄 알았는데 조합장도 그런다고 말했다. 옥순은 값을 아는 사람이 제일 아껴 먹는다고 했다.

점심 뒤에는 빈 병과 새 포장재를 정리했다. 보리는 예정된 다음 생산량을 벽에 붙였다. 보험금이 들어왔다고 노동시간을 더 늘리지 않았다. 농가들은 각자 밭으로 돌아갈 시간을 정했다. 주방에서 일한 시간은 남았고, 무료로 밤까지 이어지는 시간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았다.

옥순은 자재상에게 전화했다. 앞서 개인 예금으로 일부 지급한 뒤 남은 금액의 약속일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 다섯 집에 입금이 됐다는 말을 조합 매출처럼 내세우지 않았다. 상대가 더 많이 보낼 수 있느냐고 묻자 자신의 다음 판매와 개인 지출표를 보고 답했다. 통화가 길었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보리는 옆에서 뚜껑을 맞춰 놓았다. 처음에는 대화를 도와야 할 것 같았다. 옥순이 자기 숫자로 말하는 것을 보고 손을 계속 움직였다. 미정은 병 입구 상태를 확인하고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따로 뺐다. 오늘의 좋은 소식과 상관없이 작은 검수는 늘 같은 눈으로 해야 했다.

해진이 돌아온 것은 오후 작업을 닫을 때였다. 보리는 앞치마를 벗고 주방에 두었다. 그가 자기 차 뒤에서 작은 보냉가방을 꺼냈다. 박 여사에게 구매한 콩포트 한 병이었다. 보리는 자기가 만든 제품인데 왜 자신에게 보여 주느냐고 물었다. 해진은 밭에서 같이 먹으려고 샀다고 답했다.

“시식은 아까 했잖아요.”

“이번엔 손님이 아니라 같이 먹는 사람으로.”

보리는 숟가락이 두 개 있는지 가방을 봤다. 해진은 챙겼다며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둘 다 같은 크기였다. 보리는 하나만 있으면 먼저 먹는 사람을 정해야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해진은 오늘은 기다리는 맛이 아니라고 했다. 보리는 밭에서 병뚜껑을 열 시간까지 계산했느냐고 농담했다. 그가 그건 계산하지 않았다고 답한 말이 잠시 뒤 두 사람을 같이 웃게 만들 줄은 아직 몰랐다.

보리는 가방을 받아 들었다. 해진은 보냉 조건을 지키고 바로 돌아올 시간으로 잡았다고 했다. 보리는 그가 늘 제품 표시를 읽는 것이 좋았다. 비싼 선물이 아니어도 자신이 만든 병을 아무렇게나 차 안에 굴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밭의 그늘진 자리에 두 사람은 앉았다. 해진이 병뚜껑을 열려고 했다. 잘 열리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더 힘을 주었다가 보리를 봤다. 보리는 자기가 해보겠다며 받았지만 역시 열리지 않았다. 둘은 서로 웃었다. 관측기사와 식품개발자가 복숭아 병 하나 앞에서 멈췄다.

박 여사가 가지를 보러 지나가다가 두 사람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더니 주방에서 가져온 고무장갑을 빌려 줬다. 해진이 장갑을 끼고 뚜껑을 돌리자 열렸다. 박 여사는 자기 원물이 든 병이라 자기한테 말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보리는 오늘 큰 조각은 박 여사가 이겼다고 웃었다.

해진은 두 사람이 먹을 만큼 작은 그릇에 덜었다. 가지 사이 바람이 지나갔다. 아직 열매는 작았다. 보리는 지난해 과육을 먹으면서 올해의 작은 것을 봤다. 그 둘을 한 사진에 넣어 판매하면 사람들은 오늘 익은 복숭아로 만든 병인 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더라도 기록의 설명을 따로 두기로 했다.

해진은 보리가 가지를 오래 보는 것을 보고 지금 맛은 어떠냐고 물었다. 보리는 냉장고에서 막 꺼냈을 때보다 향이 더 느껴진다고 했다. 해진은 자기도 지금 숟가락을 천천히 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보리는 웃었다. 두 사람 모두 바쁘지 않은 속도로 자기 병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보리는 다음 일요일에 주방이 쉬는 시간에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해진은 관측 근무를 먼저 확인해야 하지만 가능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보리는 확인하고 알려 달라고 했다. 오늘 고른 시간이 다음 약속의 이름이 됐다. 공식 연인이라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함께 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이미 들었다.

주방으로 돌아오자 옥순은 차입 상환 확인서를 서랍에 넣고 있었다. 가족 장부는 가방 안에 있었다. 도경에게서는 수정안을 준비 중이라는 연락이 왔다. 전량 독점을 빼는 대신 물량과 규격을 더 명확히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보리는 오늘 바로 답을 만들지 않고 다음 회의 시간에 보여 주겠다고 했다.

빈 병의 뚜껑은 미정이 정리했다. 해진은 구매한 병의 남은 제품을 자기 집 냉장고로 가져갈 예정이었다. 보리는 오늘 숟가락을 씻고 내일 쓸 것을 따로 뒀다. 예정일이 실제 입금일이 된 날에도 주방에는 다음 병이 남았다. 그 다음 병을 만들 사람들만큼, 다음 일요일에 다시 만날 사람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