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돌아온다는 값
현상표를 가져온 사내는 문밖에서 헛기침을 했다.
현상표를 가져온 사내는 문밖에서 헛기침을 했다.
농부는 쟁기를 세워 놓고 그를 보았다. 사내의 눈이 헛간으로 지나갔다. 곡식을 실은 짐꾼인 척했지만 빈 지게에서 천이 너무 깨끗했다. 농부는 그 자리에 선 채 길상에게 우물의 물을 더 길으라고 했다. 우물은 헛간 반대편이었다. 길상은 농부의 목소리를 듣고 물통을 내려놓았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소?”
농부가 물었다. 사내는 길을 잘못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서지 않았다. 그가 한 발 안으로 들어왔을 때 범수가 헛간 문을 열었다. 사내는 범수의 어깨와 손바닥을 보고 작게 웃었다.
“싸우러 온 것 아닙니다.”
“그럼 말하고 가시지.”
사내는 품에서 현상표를 꺼냈다. 농부는 글을 다 읽지 못했지만 큰 이름을 보고 누구를 찾는지 알았다. 범수는 종이를 받지 않았다. 우석은 안에서 그 이름을 들었다. 누웠던 몸이 벌떡 세워졌다.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통증이 왔고 사내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말만 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습니다.”
복단은 우석의 어깨를 눌러 앉혔다. 선돌은 옆에서 자기 밥그릇을 움켜쥐었다. 도망칠 수 없는 두 사람이 손만 바빠졌다. 범수는 그 움직임을 등 뒤로 두고 말했다.
“누가 값을 줍니까?”
사내는 관리인을 말했다. 창고 이름도 현상표에 적혀 있었다. 종이에는 심대업의 수결이 없었다. 누군가를 가져다주면 돈을 준다는 약속이 있어도 그 약속대로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범수는 사내의 낡은 허리띠를 봤다. 자기보다 덜 굶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얼굴을 직접 본 적 있습니까?”
“발 다친 사람 하나면 되는 것 아니오?”
농부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한쪽 발목을 오래 전 다쳐 비가 오면 절었다. 누구든 값을 만들 수 있는 종이였다. 범수는 자기 뒤의 문을 닫지 않았다. 숨긴다는 이름으로 우석을 가두지 않으려 했다. 대신 사내에게 관아 확인동행자가 여기 머문다고 말했다.
사내는 이를 드러내 웃었다. 현상표는 관아의 체포문이 아니었다. 자기에게 권한이 있는지 물으면 그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돌아가면 빈 지게를 보는 아이가 둘이라 했다. 그 말을 들은 농부의 아내가 밥그릇을 들고 나왔다.
“먹고 가시오. 사람은 가져가지 말고.”
사내는 밥을 받지 않았다. 동정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고 했다. 농부의 아내는 그릇을 문턱에 놓았다. 밥이 식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사내가 바닥에 앉았다. 범수는 함께 앉지 않았다. 밥을 먹는 손과 사람을 잡는 손을 같은 순간에 믿을 수는 없었다.
사내는 마지막 한 입을 삼키고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도 옵니다.”
“그 말은 전하겠습니다.”
그는 현상표를 접고 떠났다. 농부의 아내는 멀어지는 등을 보고 욕을 한 번 했다. 욕은 사내보다 그의 빈 지게를 향한 것 같았다. 길상은 우석의 문앞으로 돌아왔다. 우석이 신발을 신고 있었다. 붕대 위에 발을 억지로 구겨 넣는 중이었다.
“한 사람 왔을 때 나가야 합니다.”
그가 말했다. 복단은 신발을 벗겼다. 우석은 이번에는 손을 뿌리쳤다. 농부의 아이가 마당에 들어와 지게를 구경하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아이가 밧줄에 묶일 수 있다는 상상이 발의 고통을 눌렀다.
길상은 창문을 열었다. 우석이 달아나려 한다고 소리치지 않고 농부를 불렀다. 집주인이 안의 말을 듣게 했다. 농부는 헛간 문턱에 섰다. 우석은 고개를 못 들었다.
“당신들 지키다 우리 집이 상하면 어떡할 거냐고 생각했소.”
농부가 말했다. 우석의 어깨가 더 낮아졌다.
“그런데 사람 데려가면 쌀 받는 집으로 소문나면 내 아이가 뭘 배울까도 생각했지. 둘 다 내 일이라 당신만 정할 수 없소.”
우석은 신발을 내려놓았다. 남으라고 명받은 것과 남을 자리를 함께 고르는 것은 달랐다. 농부는 범수에게 울타리 옆을 고치라고 했고 길상에게 집밖 사정을 보러 나갈 때 둘씩 가라고 했다. 밤새 지킬 사람과 낮에 밭일할 사람을 나눴다. 밥은 여전히 모자랐다. 결정 하나로 집의 위험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틀 뒤 곡식이 도착했다. 순갑이 알아봐 준 나루꾼과 품꾼 하나가 보자기를 나눠 메고 왔다. 지게에는 약포와 새 베, 말린 국수도 있었다. 현상표를 보았으며 길에서 묻는 사람이 있었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숨겼다는 말 대신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밝혔다.
그 뒤로 연화와 관아에서 나온 아전이 도착했다. 북쪽으로 이틀 넘게 다시 걸은 얼굴에는 피곤이 깊었다. 농부의 집에 환자 둘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임무였고 광산 전체를 강제로 열 권한은 아직 없었다. 연화는 자신이 가져온 명을 더 크게 부르지 않았다. 그래도 아전이 농부의 문턱에 서자 현상표 한 장이 사람을 제멋대로 끌고 갈 공간은 줄었다.
우석은 아전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도망쳤다는 죄부터 물을 줄 알았다. 아전은 빚문서를 펼쳤다. 두칠의 은고변을 다루던 사람과 같은 이였다. 한양에서 새 자루를 조사한 뒤 이쪽에도 은을 다루는 같은 이름이 있어 자원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우석 씨가 관아에 오지 못하니 내가 온 겁니다.”
우석은 그 말에 먼저 눈을 감았다. 자기를 끌어가려고 오는 손만 기억하던 사람이었다. 아전이 여기서 어디가 아픈지부터 묻자 우석은 발을 내밀었다. 선돌은 자기 등도 보여 달라고 했다. 복단이 옷을 풀자 아전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는 멍을 본 시각과 상태를 적었다. 무엇으로 언제 맞았는지는 선돌의 답을 따로 들었다. 선돌은 막대에 맞았다고 했고 어떤 경비인지 한 사람은 얼굴을 기억했다. 다 기억한다며 이름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길상은 문밖에 앉아 손톱 밑의 흙을 털었다. 직접 받은 몸이 말을 되찾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오후에 관리인이 찾아왔다. 아전이 왔다는 소식은 금방 창고에 닿았다. 그는 현상표를 낸 적 없다고 말했다. 빚을 갚게 하려는 다른 사람이 붙였을 거라 했다. 연화가 표에 적힌 창고 이름을 보이자 관리인은 장사를 방해하려 꾸민 종이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 며칠 전 밥을 먹고 간 사내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지게가 비어 있지 않았다. 쌀 한 되가 묶였고 작은 돈주머니가 있었다. 그는 관리인 얼굴을 보자 멈췄다. 농부의 아내는 그날 그릇을 내놓던 손으로 문을 열었다.
“누구 찾으러 왔소?”
사내는 관리인을 가리켰다. 돈을 선불로 받은 집이 자기만 아니라며, 사람을 데려오면 남은 값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빈손으로 왔다고 꾸짖었던 관리인은 며칠 뒤 다른 사람도 보내겠다고 했단다. 관리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빠졌다.
“네가 받은 걸 다 뱉어야지.”
그 말이 너무 빨리 나왔다. 관리인은 곧 임금이라고 고쳤지만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일을 시킨 값인지 묻자 우석의 이름을 또렷하게 말했다. 그는 돈과 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애들 먹으라고 받은 것이라 이미 조금 썼소. 나머지를 돌려주면 저 사람 데려오라는 말을 끝내 주시오.”
농부의 아내는 그 사내가 빚을 무서워하던 우석과 닮았음을 보았다. 아전은 그 돈을 관리인 손에 바로 주지 않았다. 지급과 지시가 있었다는 말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사내에게 남은 값의 반환표를 써 주되 현상표의 효력이 체포권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관리인은 한양 관아에서 답할 일이 늘어났다는 말을 들었다. 돌아가던 그는 우석에게 말했다.
“도망간 값을 누군가 낼 줄 알았소?”
우석은 손을 무릎에 올렸다. 이틀 전이었다면 자기 몸이 그 값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은 답을 골랐다.
“나를 내보내려고 자기 밥을 덜어 준 사람들이 있소. 그 사람들 값부터 당신이 내야지.”
관리인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떠났다. 그날 저녁 헛간에는 처음으로 쌀죽 냄새가 났다. 농부의 아내는 모두에게 같은 그릇을 내주었다. 우석이 자기 몫을 선돌에게 덜어 주려 하자 복단이 막았다. 몸이 낫는 일이 오늘의 품이었다.
현상표를 돌려주러 왔던 사내는 마당에서 쟁기 수리를 도왔다. 그냥 밥만 먹고 가기 어렵다며 앉은 자리였다. 범수는 자기 톱을 내줬다. 전날 잡으러 오던 손이 오늘 사람 머무는 집의 문을 고쳤다. 그 손을 영원히 믿겠다는 선언은 없었다. 다만 한 번의 일을 바꿔 낸 시간은 그 자리에 있었다.
사내가 돌아갈 때 농부의 아이가 빈 지게를 만졌다. 처음 왔을 때는 지게가 무서웠다. 거기에 우석이 실려 나갈까 봐서였다. 사내는 아이의 손이 가시 박힌 자리에 닿기 전에 지게를 돌렸다. 그 짧은 손짓에 길상은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잘못한 사람이 좋은 일을 한 번 한다고 앞의 일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작은 손을 다치게 하지 않는 선택까지 거짓이라 부를 필요도 없었다. 길상은 자기 형을 만나는 날에도 이 구분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릇 두 개를 우물에 씻어 놓을 때 사내는 길 끝에서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밤에 아전이 우석의 빚문서와 선돌의 문서를 나란히 놓았다. 두 손도장은 다른 사람의 손이라면 다른 자리에 끊겨야 했다. 그런데 아래쪽 먹의 빈 모서리가 똑같았다. 아전은 촛불을 옆으로 옮겼다. 종이가 빛을 받자 눌린 흔적이 드러났다.
“당신들은 종이를 누르지 않았군.”
우석은 그 말에 손을 폈다. 돈을 받은 손이 아니라는 말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밤이었다. 연화는 선돌이 찍었다는 날과 우석이 찍었다는 날을 떠올렸다. 날짜도 장소도 달랐고 손도 달랐다. 그런데 종이 밑의 손은 하나의 흠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