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지난 복숭아밭
세 권의 장부와 한 냄비
크럼블이 너무 빨리 부서졌다. 윤보리는 숟가락을 넣는 순간 바삭한 윗면이 가루처럼 흩어지는 것을 봤다. 류미정은 접시를 돌려 보더니 오늘 시식용 작은 판이 얇게 펴졌다고 말했다. 향은 좋았지만 콩포트를 얹으면 바닥부터 젖었다. 보리는 두 번째 숟가락을 멈췄다.
크럼블이 너무 빨리 부서졌다. 윤보리는 숟가락을 넣는 순간 바삭한 윗면이 가루처럼 흩어지는 것을 봤다. 류미정은 접시를 돌려 보더니 오늘 시식용 작은 판이 얇게 펴졌다고 말했다. 향은 좋았지만 콩포트를 얹으면 바닥부터 젖었다. 보리는 두 번째 숟가락을 멈췄다.
최옥순은 탁자 반대편에서 장부 세 권을 폈다. 그중 한 권에 전날 포장재 대금이 들어 있었고, 다른 권에도 같은 금액이 적혀 있었다. 보리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영수증부터 보려다가 미정의 목소리에 멈췄다.
“이 판부터 먹어 보고요. 돈 보다가 또 식겠어요.”
보리는 웃고 작은 조각을 받았다. 박 여사의 지난해 냉동 과육을 냉장 해동해 가공한 콩포트였다. 크럼블 위에 큰 조각을 올리니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씨네 원물이 섞인 향은 씹은 뒤에 남았다. 식감이 약한 것은 과육이 아니라 밑에 놓인 얇은 판이었다.
미정은 팔 수 없는 시험분을 따로 표시했다. 주방에서 바로 맛보는 것과 이동해 먹는 상품은 달랐다. 보리는 윗면을 더 두껍게 만드는 대신 콩포트를 별도 컵으로 내는 시식을 제안했다. 미정은 두 방법을 작은 분량으로 비교해 보자고 했다. 오늘 본생산량을 그 시험에 전부 쓰지는 않았다.
박 여사가 뒤에서 말했다.
“내 조각이 무거워서 그런 거야?”
이씨가 바로 받았다. “내 향은 가벼워서 안 부쉈을 텐데.”
“향만 팔아 봐. 빈 병이라고 혼날걸.”
보리는 웃다가 가루를 앞치마에 떨어뜨렸다. 미정은 웃는 사람도 자기 앞치마부터 털라고 했다. 네 사람은 일단 시험접시를 치우고 손을 씻었다. 새로 들어온 포장재는 옥순이 봉인 상태로 수량을 받아 놓았다. 판매용 재료를 여는 일은 미정이 주방 안에서 했다.
옥순은 장부 세 권을 다시 탁자에 놓았다. 조합 판매 장부, 농가별 예상 보험금과 예정일을 옮겨 적은 메모장, 가족 작업장 비용 장부였다. 보리는 서로 다른 표지가 오늘은 유난히 비슷해 보였다. 옥순은 같은 포장재 대금을 두 권에 적은 것이 그날 급해서였다고 했다.
영수증의 거래처와 송금 내역을 대조하니 실제 지급은 조합 계좌에서 한 번이었다. 가족 작업장 장부에는 자신이 갚아야 할 돈 목록 옆에 같은 금액을 옮겨 적어 놓았다. 대신 내줬다고 적은 줄이었지만 옥순의 개인 통장에서는 그 대금이 나가지 않았다. 개인 예금으로 실제 지급한 것은 앞서 자재상에게 보낸 일부 금액이었다.
옥순이 지우개를 찾았다. 보리는 줄을 긋고 왜 고쳤는지 남기자고 했다. 옥순은 잠깐 얼굴을 굳혔다. 다섯 농가가 보는 장부에 자기 실수가 남는 일이 부끄러웠다. 박 여사는 옆에서 포장 상자를 접다가 말했다.
“남겨 놔. 나도 병 수 잘못 센 거 아직 붙어 있어.”
옥순은 그 말을 듣고 펜을 잡았다. 포장재 대금을 가족 작업장 비용에서 제외하고 실제 자재대금 지급만 남겼다. 보험금 메모장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금액이 있었다. 보리는 입금 예정일 옆에 농가 이름을 보았다. 다섯 집의 돈을 조합의 남는 돈처럼 더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누고 나니 지금 부족한 돈은 처음보다 작아졌다. 그러나 없어지지는 않았다. 이미 낸 전기료를 오늘 또 낼 필요는 없었다. 다음 생산의 원물대와 노동비, 준비금, 포장재 잔여 주문이 남았다. 예약금 가운데 약속한 제품을 만들어야 할 몫은 따로 있었다. 옥순은 숫자를 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난 큰돈이 하나 들어오면 다 풀리는 줄 알았어.”
보리는 대답하려다가 미정이 냄비 뚜껑을 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은은한 복숭아 향이 주방에 찼다. 지난해 과육을 오늘 병으로 만드는 손은 보험금 날짜와 별개로 움직여야 했다. 옥순도 냄비를 봤다. 장씨가 노동비 봉투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직 팔지 않은 병을 매출로 세지 않았다.
미정은 두 번째 시험판을 꺼냈다. 처음보다 조금 두꺼운 크럼블이었다. 가장자리가 잘 부서지는 대신 안쪽에는 힘이 있었다. 보리는 콩포트를 바로 얹은 접시와 따로 둔 접시를 나눴다. 박 여사는 과육조각을 떠 올리는 쪽을 골랐고 이씨는 따로 먹는 쪽을 골랐다.
“한 입에 먹으면 내 조각이 먼저 와.”
“따로 먹으면 내 향이 더 오래 가.”
미정은 둘 다 자기 원물만 보고 고른 것 아니냐고 했다. 보리는 두 접시를 번갈아 먹었다. 한 입에 먹는 것은 편했지만 오래 두면 밑면이 젖었다. 따로 담으면 손님이 조각과 크럼블의 양을 고를 수 있었다. 다음 장터 시식은 따로 내고, 판매 소포장은 기존 방식대로 나누기로 했다.
해진은 점심 무렵 밭에서 돌아왔다. 장화에 흙이 붙어 있어 문 밖에서 벗었다. 그는 올해 가지에 남은 작은 열매가 아직 멀리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여사가 자기 밭에는 더 크다고 하자 해진은 오늘 보고 온 줄과 다른 줄은 비교하지 않았다고 웃었다. 보리는 조그만 열매 얘기를 듣고 아직 신선과 사진으로 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정이 해진에게 시험접시를 내줬다. 그는 크럼블을 집다가 첫 얇은 판의 남은 조각을 골랐다. 숟가락을 넣자 바로 부서졌다. 보리가 그건 실패한 쪽이라고 말하자 해진은 입에 넣은 뒤 고개를 들었다.
“맛은 있네요. 먹는 사람도 부서지는 준비를 해야 하지만.”
“상품 설명을 그렇게 쓰면 아무도 안 사요.”
“제가 먼저 사면 되죠.”
보리는 접시가 시험분이라 오늘 돈을 받을 물건은 아니라고 했다. 해진은 그럼 정식으로 나오는 날 사겠다고 말했다. 옥순이 장부를 닫으면서 두 사람이 실패분 가격까지 협상한다고 웃었다. 보리는 얼굴이 달아올라 크럼블 가루를 휴지로 모았다.
해진은 물통을 들려다가 보리를 봤다. 보리는 이번에는 무거운 통 하나만 같이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둘이 양쪽 손잡이를 잡으니 물이 출렁였다. 해진이 먼저 멈춰 균형을 잡았다. 보리가 발을 옮겼다. 어젯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맡겠다고 했던 말이, 오늘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물을 내려놓은 뒤 해진은 앞치마 끝에 묻은 가루를 가리켰다. 보리는 아침부터 실패한 판을 먹어서 그런 것이라 했다. 해진은 자기 장화의 흙을 가리키며 자신도 올해 아직 상품이 안 된 것을 돌보고 왔다고 말했다. 보리는 그 말에 웃었다. 둘의 일이 같은 속도로 익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기다릴 물건이 있다는 점은 닮았다.
미정은 부서진 첫 시험판의 남은 부분을 작은 접시에 모았다. 판매용으로 다시 만들 물건이 아니라 오늘 맛볼 몫이었다. 보리는 가루만 집어 먹어 보고 단맛이 과육 없이 먼저 오는 것을 느꼈다. 미정은 가루 위에 콩포트를 조금 얹고 숟가락으로 같이 떠 봤다. 딱딱한 판을 깨는 대신 작은 그릇 안에서 두 맛이 만났다.
박 여사는 자기도 해보겠다며 과육을 많이 얹었다. 숟가락에 가루가 별로 올라오지 않았다. 이씨는 향을 보겠다고 적게 얹었다가 가루만 먹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그릇을 보고 웃었다. 보리가 가운데 양으로 만든 것을 내밀자 미정이 그제야 한 입 먹었다. 식감은 처음 생각한 상품과 달랐지만, 맛의 조합은 다시 볼 수 있었다.
“이것도 바로 팔자고 하진 않을 거죠?”
미정이 옥순을 봤다. 옥순은 장부를 덮고 웃었다. 오늘은 실패판을 먹는 방법 하나 얻은 것으로 하자고 했다. 보리는 작은 그릇 사진을 시험기록에만 남겼다. 장씨는 그릇을 다 먹고 숟가락을 씻으러 갔다. 아침에 깨진 판이 저녁에는 누구의 몫도 빼앗지 않는 한 입이 됐다. 보리는 내일 만들 판의 두께를 적고, 오늘 그릇을 비운 사람들이 어떤 양을 골랐는지도 함께 적었다.
생산이 끝날 무렵 옥순의 전화가 울렸다. 유통 일을 하는 도경이었다. 장터의 콩포트와 크럼블을 보고 매장에 놓을 수 있겠다는 연락이었다. 그는 선급금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옥순의 손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방금 찾아낸 진짜 부족액과 바로 맞물리는 말이었다.
옥순은 통화를 스피커로 바꾸기 전에 보리와 미정에게 물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은 제품을 직접 맛보고 생산 가능한 양을 듣고 싶다고 했다. 미정은 주방으로 올 때 본생산 중인지 먼저 시간을 맞추자고 답했다. 시험접시를 판매품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전화가 끝난 뒤 옥순은 선급금이라는 말을 두 번 했다. 보리는 제안서를 받아 보자고 했다. 오늘 당장 답할 문장은 없었다. 도경이 사려는 것이 몇 병인지, 언제 가져가는지, 남으면 누가 돌려받는지 아직 듣지 못했다. 미정은 일단 내일 생산표를 붙였다. 주 세 번의 교대가 먼저 눈앞에 있었다.
박 여사가 마지막 시험판을 보며 말했다.
“그 사람도 내 조각부터 좋아할걸.”
이씨는 도경이 코가 있다면 향부터 맡을 것이라고 했다. 장씨가 두 사람에게 제품 이름은 다섯 농가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는 웃으면서 그 말을 시험표 맨 아래에 적었다. 실패한 첫 판 옆에서 오늘 내놓을 방식을 하나 골랐고, 장부에서는 없는 개인 지출을 하나 뺐다.
해진은 문 밖에서 장화를 신고 있었다. 보리가 남은 시험용 크럼블을 자기도 먹을 만큼만 따로 챙겨 나오자 그는 산책할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 보리는 오늘 장부를 닫은 뒤라면 있다고 했다. 해진은 기다리는 대신 먼저 밭 도구를 집에 놓고 오겠다고 했다. 보리는 그가 빈손으로 돌아올 약속이 좋았다.
옥순은 가족 작업장 장부를 자기 가방에 넣었다. 보리는 조합 장부를 주방 서랍에 넣고 냄비를 한 번 더 닦았다. 내일 도경에게 보여 줄 것은 깨끗한 냄비와 실제로 만들 수 있는 병이었다. 그 전에 오늘 저녁에는 부서지는 크럼블을 함께 먹을 사람이 문 밖으로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