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야간 왕진
현관까지 오는 값
배송차는 골목 입구에 멈췄다. 윤채영이 받은 전화에서는 산소통보다 추가요금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차가 집 앞까지 올라갈 수 없어 인력 운반비가 붙는다고 했다. 채영은 박건이 전날 적어 둔 계단 수와 정차 지점을 찾아봤다.
배송차는 골목 입구에 멈췄다. 윤채영이 받은 전화에서는 산소통보다 추가요금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차가 집 앞까지 올라갈 수 없어 인력 운반비가 붙는다고 했다. 채영은 박건이 전날 적어 둔 계단 수와 정차 지점을 찾아봤다.
“지금 어디에 서 계세요?”
“큰길입니다. 안쪽은 막혔어요.”
채영은 골목 안에 정차할 수 있다던 도면을 봤다. 기사가 돈을 더 받으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무리해서 차를 넣으라고 하면 자기 집 물건 때문에 이웃이 못 지나갈 수도 있었다. 그녀는 현재 상황을 박건과 함께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영숙이 문 안에서 통화를 들었다. “내 물건 때문에 사람 둘이 싸우지 마.”
“엄마 물건이라 정확히 물을 거야.”
박건이 왔을 때 정차 지점을 가린 것은 전날 제설에 쓰고 쌓아 둔 모래주머니였다. 차를 더 넣으면 보행자가 돌아갈 자리도 없어졌다. 기사는 다음 배송 시간 때문에 휴대전화를 자꾸 봤다. 큰길에 세운 이유는 이해됐다. 채영은 계약서의 기본 배송 범위를 폈다.
한 사람이 손수레로 옮길 수 있는 거리는 기본 배송에 포함돼 있었다. 현재 정차한 곳은 그 거리 안이었다. 추가 인력이 투입됐다는 기록은 없었다. 기사가 계단을 가리켰다. 손수레 위 산소통은 고정끈으로 묶여 있었지만 계단을 그 상태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럼 제가 같이 들면 되죠.”
채영이 손잡이에 손을 댔다. 박건이 먼저 멈추게 했다. 정식 배송 인력을 배정받을 수 있는지 업체에 물어야 했다. 가족이 손을 보태면 요금 다툼이 빨리 끝날 것 같았지만, 통이 손에서 미끄러지면 그 뒤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채영은 손을 떼고 전화기를 들었다.
연결을 기다리는 동안 영숙이 현관문을 열었다. 난간을 잡은 손 위로 산소줄이 따라왔다. 그녀가 밤에 쓸 통이 오늘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채영은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박건을 봤다. 그는 집 안 예비 장비의 상태와 남은 사용량을 확인했다. 현재 치료 판단을 배송기사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박건은 오늘 배송이 필요한 이유와 기기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할 곳을 기존 계획에서 확인했다. 하진은 현장에 없었다. 채영은 어머니가 오래 서 있지 않게 의자를 가져왔다. 영숙은 앉자마자 기사를 봤다.
“내가 미안한 건 아닌데 괜히 미안해지네.”
기사가 모래주머니를 봤다. “어르신 때문에 골목이 좁은 건 아니죠.”
업체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다. 계약의 기본 배송 범위에 이 골목이 포함된다고 확인했다. 계단 운반에 필요한 추가 인력 비용도 업체의 배송 계약 안에서 처리할 일이었다. 앞선 상담원의 골목 추가요금은 일반 안내 문구가 자동으로 붙은 것이었다. 기사는 그 문구를 전달했다.
그가 통화를 듣고 채영에게 물었다. “제가 더 받자는 줄 아셨죠?”
“처음에는요.”
채영은 도면을 접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걸 들어야 하는 분도 당신이잖아요.”
기사는 더 대답하지 않고 차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두 번째 인력이 오는 동안 다음 배송지에 연락했다. 채영은 그 전화가 길어지는 것을 보고도 빨리 오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 집으로 오는 시간을 누군가의 다른 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 인력이 도착했다. 둘은 계단 앞 매트를 확인하고 통을 손수레에서 풀었다. 급히 끌어 올리지 않았다. 영숙은 의자에서 그 움직임을 봤다. 채영이 현관 안 위치를 말하려 하자 박건은 영숙에게 먼저 물었다. 그녀는 장식장과 문 사이 벽을 가리켰다. 밤에 손전등으로도 찾기 쉬운 자리였다.
막상 세우니 통 손잡이가 문이 열리는 반경에 걸렸다. 기사는 벽으로 조금 밀자고 했다. 영숙이 직접 문을 열어 보라고 하자 문짝이 금속 손잡이를 쳤다.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현관에서 났다.
“밤에 누가 급하게 들어오면 걸리겠네.”
박건이 도면에서 반 걸음 옮긴 자리를 제안했다. 출입길은 열렸지만 남편 사진 한쪽이 통 뒤에 가려졌다. 채영이 장식장을 옮기자고 하자 영숙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작은 액자만 들어 창가로 가져갔다. 남편이 생전에 앉던 방향이었다.
“이러면 얼굴도 보이고 문도 열려.”
사진을 놓은 뒤 영숙이 돌아왔다. 박건은 통 고정 상태를 다시 확인했고 기사가 문을 열었다 닫았다. 이번에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채영은 배송기사를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했지만 기사는 문을 안 열어 보고 갔으면 자신이 더 걱정했을 거라고 말했다.
영숙은 통 앞에서 한동안 조용했다. 익숙한 가구 사이에서 또 기계가 자리를 차지했다. 산소가 와서 안심된다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할 것 같았지만 사진을 옮긴 손은 조금 허전했다. 창가에서 남편 얼굴이 보였다. 낯선 사람이 물건을 들일 때면 신발 밑부터 닦으라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신발은 괜찮아요. 귤 하나씩 가져가.”
기사 둘이 사양하자 영숙은 작은 귤 두 개를 손수레에 올렸다. 채영은 업체가 추가 인력의 시간도 지급한다는 확인을 받아 뒀다. 귤 두 개로 그 시간을 대신한 것은 아니었다. 영숙은 자기 집에 온 사람에게 자신이 줄 인사를 골랐다.
박건이 압력과 연결부를 확인했다. 필요한 장비 인계정보는 하진에게 보냈다. 예비 산소가 들어왔다고 오늘 처방이 바뀌지는 않았다. 채영은 배송완료서의 추가요금이 영 원으로 정정된 것을 보고 서명을 받았다. 기존 기기 청구 이틀분 감액은 다른 종이에 있었다. 오늘의 배송료와 겹쳐 하나의 환불로 적지 않았다.
기사가 떠날 때 이웃이 모래주머니를 치우고 있었다. 채영이 나가 함께 옮겼다. 지난 정전 밤에는 이웃 차량이 왕진과 이송 길을 막았고 오늘은 제설용 물건이 막았다. 다음 폭설 전에 정차할 지점을 함께 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웃은 구청의 제설 담당과 통행 규정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영숙이 현관 안에서 말했다. “나 때문에 사람들 차를 다 빼라고 하지 마.”
“그러니까 같이 정하려고.”
채영은 모래주머니를 한쪽에 뒀다. 아직 정해진 자리는 없었다. 그날 들어온 산소통의 영수증 하나로 골목의 밤을 모두 해결했다고 쓸 수 없었다. 영숙은 집에 남고 싶었지만 동네 사람들을 언제든 기다리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박건이 떠난 뒤 채영은 두 영수증을 부엌 식탁에서 갈랐다. 이틀분 감액, 오늘 배송료 정정. 어제 싸운 돈이 오늘 들어온 물건을 모두 설명하지는 않았다. 영숙은 창가 사진을 보다가 액자의 방향을 조금 바꿨다. 통 뒤에 가려졌던 얼굴이 이제 자기 의자에서도 보였다.
“거기 두면 햇빛을 많이 받아.” 채영이 말했다.
“낮엔 커튼 치면 되지. 얼굴을 안 보는 것보다는 낫네.”
채영은 커튼 끈을 어머니 손닿는 쪽으로 놓았다. 영숙은 그것도 자기가 골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산소통 자리를 정하느라 밀려난 사진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거실은 여전히 영숙이 눈을 돌려 사람 얼굴을 찾는 곳이었다.
저녁에 김정례가 왔다. 새 통의 위치를 물었지만 박건의 장비 설명을 대신 수행할 역할은 맡지 않았다. 기기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연락하는지 표에서 확인했다. 영숙이 귤을 하나 더 건네자 그녀가 가방 옆에 놓았다.
“퇴근길에 먹을게요.”
영숙은 그 말이 좋았다. 귤을 받아서 오늘 더 남겠다는 답이 아니었다. 정례가 장갑을 꺼내며 근무 시작을 확인했다. 채영은 물건을 찾으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저녁의 시간을 잠깐 느꼈다. 곧 달력의 목요일 낮 칸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채영은 사무실에 가야 했고 정례의 계약은 저녁부터였다. 낮 왕진이 예정돼 있지만 방문자가 하루 종일 남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공식 야간 지원을 문의한 지수도 낮의 네 시간을 채우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채영은 휴대전화에 문의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
‘목요일 낮도 같은 분이 오실 수 있나요.’
아직 밤 지원의 확인도 끝나지 않았다. 밤의 신청을 낮에 덧붙이면 같은 사람이 더 일할 것이라는 기대부터 생겼다. 영숙이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채영은 메시지를 바꿨다. 낮 방문이 끝난 뒤 어떤 시간을 어머니가 혼자 보내고 싶은지 먼저 묻고 상담하겠다는 말이었다.
지수는 상담 가능한 시간만 답했다. 야간 지원이 시작돼도 목요일 낮은 별도 조정이 필요했다. 채영은 그 답을 달력에 옮겼다. 영숙은 그동안 손녀의 엽서를 읽고 있었다. 강아지 다리가 여섯 개 그려진 이유를 묻자 앞의 두 개는 팔이라는 답이 왔다. 그녀가 크게 웃었다.
채영이 돌봄표를 가져오자 영숙은 웃음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목요일에 혼자 뭘 할지 생각 중이야. 네가 먼저 빈칸이라고 쓰지 마.”
채영은 펜을 내려놨다. 네 시간은 도움을 채워야 할 시간으로만 보였다. 영숙에게는 엽서를 읽다가 혼자 답을 쓰고 싶은 때도 그 안에 있었다. 전화를 자주 하겠다는 말부터 하면 자신이 보고 싶은 어머니의 안전만 칸에 남을 것 같았다.
“엄마가 원하면 연락할게.”
“얼마나 자주가 좋은지도 내가 정할래.”
채영은 바로 알겠다고 하지 못했다. 오늘 기사의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처럼 누군가의 답을 기다리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래도 어머니가 말을 마치기 전에 전화 시간을 적지는 않았다. 정례가 옆에서 식탁을 닦고 엽서를 마른 곳으로 옮겼다.
밤에 채영은 자기 사무실 달력과 부엌 달력을 같이 폈다. 배송료는 정정됐고 예비 산소는 현관의 문을 막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월요일 밤 임시 표는 아직 승인 확인을 기다렸다. 목요일 낮의 네 시간은 별도의 칸이었다. 돈 하나가 정리되자 시간이 없어지지 않고 더 선명하게 보였다.
영숙이 귤껍질을 작은 배처럼 접어 목요일 칸 아래에 놓았다. “여기 내가 할 것도 쓰자.” 채영은 엽서와 펜을 가져왔다. 먼저 엄마가 고르라고 하자 영숙이 답장이라고 했다. 왕진이 끝난 뒤의 낮에는, 어머니가 보내고 싶은 한 통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