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문밖의 한 사람
길상이 받은 사내는 이름부터 잃어버린 사람처럼 누웠다.
길상이 받은 사내는 이름부터 잃어버린 사람처럼 누웠다.
몇 번이나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다. 관아 사람이 그의 허리띠를 풀고 길상은 목에 걸린 헌천을 잘랐다. 경비가 문틈에서 그것을 도로 내놓으라 소리쳤다. 길상은 잘라 낸 천을 바닥에 던졌다. 자기 물건을 돌려주듯 헌천을 요구하는 소리에 처음으로 참지 못했다.
“몸부터 가져가려 했으면 천도 잘라야 할 것 아닙니까!”
경비가 앞으로 나오자 연화가 비켜서지 않았다. 문지방에 부서진 나무그릇이 남았다. 안에서 노인이 경비에게 밀리는 소리가 났다. 길상은 병자를 놓고 노인을 붙잡으려 했다. 관아 사람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지금 저 사람을 받치시오.”
길상은 양쪽을 다 잡을 수 없었다. 노인의 비명은 더 들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사하다는 뜻도 아니었다. 그는 사내의 목을 받쳤다. 몸이 뜨거웠고 입술은 젖어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왼쪽 갈비뼈만 움직였다.
연화가 농부 아들을 불렀다. 함께 가져온 약상자는 물골 앞에 있었고 복단은 헛간에 남았다. 아들은 달렸다. 관아 사람은 문앞에서 사내가 밖으로 나온 시각을 적었다. 경비는 사내가 혼자 나왔다고 했다. 길상은 여전히 팔에 걸린 몸을 내려다보았다. 혼자라는 말이 어떻게 이렇게 쉬울 수 있나.
“내가 받았어요.”
길상이 말했다.
“그 노인이 부축했고 내가 받았습니다.”
관아 사람이 길상의 말을 적었다. 관리인이 문밖으로 나와 사내를 최선돌이라 불렀다. 다섯째 조에서 지게를 날랐다는 설명도 붙였다. 길상은 목을 받친 손을 조금 바꾸었다. 이름을 들어도 몸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우리가 쉬라고 했는데 밖에 나가겠다고 고집한 겁니다.”
사내는 그 주장을 부정할 기력도 없었다. 관리인은 그래서 더 길게 말했다. 대답 없는 사람은 아무 말이나 붙일 수 있는 자리처럼 보였을 터였다. 연화가 물그릇을 내려놓고 물었다.
“저분 빚문서는 어디 있습니까?”
관리인의 말이 멎었다. 치료를 빌미로 또 빚이 붙으면 선돌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다시 문안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관리인은 빚을 없애 주겠다고 했다. 관아 사람이 종이를 내놓으라 요구하자 나중에 가져오겠다는 말로 바뀌었다.
길상은 그 말이 얼마나 싫은지 알았다. 형을 보았다는 사람은 있었지만 형을 데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약을 주겠다는 말은 있었지만 약을 먹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선돌의 손을 들어 관리인 쪽으로 보였다.
“이 손으로 받은 돈인지도 물을 겁니다. 깨어나면.”
선돌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누군가 들고 있어서인지, 그의 의지가 돌아와서인지 알 수 없었다. 길상은 더 흔들지 않았다.
복단이 도착하자 모두 한 발씩 비켰다. 그녀는 입안을 보고 숨을 들었고 가슴의 천을 풀었다. 등에 오래된 갈색 멍과 붉은 멍이 겹쳤다. 선돌은 몸을 움직일 때 입술을 깨물었다. 복단이 손을 멈추자 길상도 팔을 멈췄다. 두 사람의 손이 같은 몸의 반응을 기다렸다.
“수레에 그냥 눕히면 안 돼요. 비스듬히 받쳐야 합니다.”
약상자가 비워졌다. 마른 베와 옷을 묶어 수레 한쪽에 받침을 만들었다. 길상은 형의 손수건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어떤 천이든 급하면 내야 할 것 같았지만 손수건 한 장으로 받침이 되지는 않았다. 대신 자기 허리띠를 풀어 묶었다. 수레가 흔들려도 선돌이 옆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경비가 수레 앞으로 섰다. 관리인이 손을 내리자 그가 비켰다. 허락으로 사람을 내보내는 모습을 남기려는 것이었다. 연화는 선돌이 밖으로 나온 뒤에 비켰다는 것을 보았다. 그 순서를 지울 수 없었다.
빈터를 벗어날 때 청소꾼의 그릇이 바닥에 떨어졌다.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길상은 주우러 돌아가려 했으나 선돌이 기침하며 몸을 뒤틀었다. 그는 수레를 붙잡아야 했다. 결국 아무것도 줍지 못했다. 물건 하나를 남기는 대가로 사람 하나를 받쳐야 하는 때가 있었다.
축대에 닿자 범수가 달려왔다. 쟁기를 고치다가 농부 아들의 말에 손을 씻지도 못한 채였다. 그는 수레를 받았고 길상은 그제야 자기 팔을 풀었다. 팔에 피가 묻었다. 자기 것인지 선돌의 것인지 한동안 몰랐다. 팔꿈치가 돌바닥에 까져 있었고 손톱 하나가 들렸다.
“잘 받았네.”
범수가 말했다. 길상은 웃지 않았다.
“노인은 못 받았습니다.”
“다음에 같이 받자.”
그 말이 가능한 약속인지 범수도 몰랐다. 그러나 한 사람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놓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길상은 손을 씻은 뒤 선돌의 수레바퀴 옆에 앉았다.
헛간에 두 사람을 눕히자 공간이 사라졌다. 농부의 아내가 볏짚을 치웠고 우석은 자기 자리를 벽 쪽으로 옮겼다. 복단이 말리자 우석은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선돌은 잠깐 눈을 떴다. 우석을 알아보고 물을 달라는 입 모양을 만들었다.
우석이 그릇을 들었다. 떨리는 손에서 물이 조금 흘렀다. 복단은 그를 밀어내지 않고 받침만 잡았다. 두 사람이 함께 선돌에게 첫 모금을 먹였다. 선돌은 마시고는 울었다. 많은 물 때문이 아니라 마시는 동안 누가 그릇을 빼앗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칠복이 하던 건데.”
우석이 아주 작게 말했다. 길상은 고개를 들었다. 칠복의 이름 다음에 무슨 말이 이어질까 기다리는 자기 눈이 선돌에게 가 있었다. 선돌이 다시 눈을 감자 길상은 물그릇을 받쳤다. 묻고 싶은 말이 혀 아래 남았다.
늦은 오후 선돌은 이름을 말했다. 관리인이 부른 최선돌이 맞았다. 고향은 우석과 달랐고 한양 객주에서 짐꾼으로 함께 출발한 사람도 맞았다. 그는 자기에게 붙은 빚을 듣자 얇은 웃음을 흘렸다.
“밥이 빚이면 굶은 날은 빚이 줄어야 하지 않소?”
웃음 뒤에 기침이 이어졌다. 복단이 몸을 받쳤다. 선돌은 눈을 감고 더 말하지 않았다. 그 한마디가 빚문서를 전부 없애 주지는 못했지만 연화는 숫자 옆에 놓일 삶의 한 조각을 얻었다.
농부가 빈 쌀독의 뚜껑을 닫았다. 연화는 헛간을 사흘 쓰겠다는 약속이 깨질 수 있음을 알았다. 선돌을 지금 한양으로 옮기기 어렵고 우석도 멀리 걸을 수 없었다. 그 집은 사람을 살리려다 자기 밥을 잃는 중이었다.
“오늘 남은 곡식을 가져오겠습니다.”
연화는 가지고 온 여비를 꺼냈다. 한양까지 돌아갈 삯을 남기고 가까운 장에서 보리를 구할 돈을 나눴다. 부조계 궤를 직접 열 수는 없었다. 범수는 농부의 아들과 장으로 갔다. 외상으로 사지 않고 현금으로 살 만큼만 가져왔다. 얇은 죽이어도 빚으로 눕히지 않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관리인이 보낸 심부름꾼이 왔다. 그는 빚문서 두 장을 내놓았다. 우석의 것은 관아로 갔으므로 선돌의 원문과 치료비를 대신 준다는 약조였다. 선돌 원문에는 손도장이 찍혀 있었고 숫자는 우석 것과 달랐다. 연화는 선돌 앞에 펼쳐 읽어 주었다. 선돌은 액수를 듣자 눈을 떴다.
“그만큼 쌀을 봤으면 배급표부터 달랐을 것이오.”
심부름꾼은 입술을 굳혔다. 우석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복단이 베개를 등 뒤에 넣었다. 오늘 받은 몸 둘이 문서의 숫자 앞에 다시 앉았다.
심부름꾼은 그 대신 배급표를 돌려달라고 했다. 그 표가 없으면 쌀을 받았다는 장부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관아에서 확인하고 반환할 거라고 답하자 그는 화를 냈다.
“사람 둘도 받고 표까지 가져가니 너무하지 않소?”
우석이 볏짚에서 몸을 세웠다.
“우리는 받은 물건이 아니오.”
심부름꾼은 우석의 얼굴을 보고 말을 멈췄다. 우석은 다시 눕지 않았다. 선돌은 옆에서 눈을 감은 채 손을 내밀었다. 우석이 그 손을 잡았다. 경비도 관리인도 아닌 사람들이 자기 몸을 서로 받치고 있었다.
연화는 문서를 관아 사람에게 보여 주고 선돌이 한 말을 함께 옮겼다. 손도장은 자기 것과 닮았다는 대답도 남았다. 심부름꾼은 표와 문서의 반환을 한양 관아에 다시 묻겠다며 떠났다. 농부는 오랫동안 문밖을 살폈다.
“당신들 가고 나면 여기는 우리 집이오.”
연화는 헛간 문을 보았다. 자기에게는 돌아갈 객주가 있었고 농부에게는 이 문이 전부였다. 남은 관아 사람에게 대기를 맡을 이름과 장소를 전갈에 넣어 달라고 청했다. 그가 종이를 펴는 동안 농부의 아내는 빈 쌀독에서 바가지를 꺼냈다.
“이건 종이로 채워지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연화는 오늘 장에서 산 보리의 남은 양을 함께 셌다. 추가로 받을 동행이 오기 전 어느 끼니까지 잇는지 읽어 주자 농부가 나무문을 닫았다. 빗장을 걸지는 않았다.
연화는 한양에서 동행을 받아 오는 일을 맡기로 했다. 범수와 복단, 길상이 남았다. 그녀가 길을 나서기 전에 선돌은 입을 열었다.
“우석이 나온 뒤 밥그릇을 바꿨소. 상단 서른 사람의 그릇을 놓고 칠복의 별도 그릇도 끝에 두었지. 그중 두 그릇은 늘 남았소.”
“누구 몫인지 보셨습니까?”
“상단 그릇 하나는 박만수 것, 따로 둔 것은 칠복 것이라고 만수가 말했소. 내가 둘의 몸을 본 건 아니오.”
연화는 두 그릇의 이름과 선돌이 직접 몸을 보지 못했다는 말을 적었다. 선돌의 손가락이 자기 물그릇을 더듬었다. 우석이 그릇을 밀어 주자 그는 잡고 놓지 않았다. 오늘 그 하나는 헛간에서 그의 손 안에 있었다.
한양으로 향하는 길에 연화는 두 번 뒤돌아보았다. 농부의 집은 골짜기에 묻혀 지붕 끝만 보였다. 약을 넣어 달라는 청원으로 나섰던 길에서, 문밖으로 나온 두 사람이 생겼다. 그들의 밥과 밤을 맡길 사람도 생겼다. 그것은 완성된 구출이 아니었지만 거절당한 종이보다 무거운 답이었다.
해 질 무렵 주막에서 신발을 벗자 발등이 부어 있었다. 연화는 물품표와 배급표를 자기 무릎에 놓고 말렸다. 글자들이 불빛 아래서 흔들렸다. 잠깐 눈을 감았을 때 길상이 사람을 받던 팔이 떠올랐다. 종이 한 장을 얻는 일이 저 팔을 대신해서는 안 됐다.
다음 날 저녁 한양 객주에 도착한 그녀를 두칠이 기다렸다. 아이는 먼저 물을 내밀었다. 연화가 그릇을 받자 그가 자기 종이를 꺼냈다. 관아 소환 날짜가 정해졌고 장보가 가져온 새 저울에 관한 말이 있었다.
“저울은 멀쩡하대요. 그런데 은은 못 보여 줬어요.”
연화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두칠의 말이 빨라졌다.
“자루집에서 똑같은 자루를 만들었잖아요. 그 자루에 넣은 건 은이 아니었어요. 주인이 자투리 돌을 같이 달아 줬대요.”
두칠은 손을 폈다. 검고 작은 돌 하나가 있었다. 은빛을 내려고 문지른 자국이 모서리에 남아 있었다. 연화는 아이의 손과 자기 무릎 위의 문서를 함께 보았다. 북쪽에서 사람이 문밖으로 나왔다면, 한양에서는 아이에게 덮어씌운 무게를 벗겨 줄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