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야간 왕진
두 기계의 같은 날짜
청구서는 두 장이었다. 기존 농축기 이용료와 대체 장비 이용료가 사흘 동안 나란히 적혀 있었다. 채영은 그 기간에 집에 기계가 둘 다 있었는지 물었다. 영숙은 고개를 저었다.
청구서는 두 장이었다. 기존 농축기 이용료와 대체 장비 이용료가 사흘 동안 나란히 적혀 있었다. 채영은 그 기간에 집에 기계가 둘 다 있었는지 물었다. 영숙은 고개를 저었다.
“그날 박건 씨가 옛것을 들고 내려갔어. 계단에서 한 번 쉬었고.”
박건은 자신의 장비 점검표를 가져왔다. 기존 기기를 집 밖으로 옮긴 시각과 업체 차량에 실은 시각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업체 시스템에는 회수 완료가 그다음 날로 들어갔다. 두 시계가 서로 다른 일을 기록하고 있었다. 강태오는 계약서에서 이용료가 어느 시점까지 붙는지 찾았다. ‘회수 접수일’이라는 말이 있었고, 고객이 회수 요청을 한 날인지 업체가 수거 완료를 입력한 날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무조건 업체 잘못이라고 하면 당장 오늘 배송이 막힐 수도 있어요.” 태오가 말했다.
“그럼 그냥 내라는 거예요?” 채영이 물었다.
“아니요. 필요한 대체 장비는 끊기지 않게 하면서 겹친 날짜를 따로 다투자는 겁니다.”
채영은 현관에 놓인 예비 장비를 봤다. 돈의 문제를 원칙으로만 밀어붙이다 공급을 늦추면 어머니가 먼저 대가를 낸다. 반대로 필요한 배송을 핑계로 잘못된 청구를 받아들이면 그 돈은 다음 달에도 반복될 수 있었다. 둘을 나누기 위해 전화가 필요했다.
업체 상담원은 처음에 컴퓨터 화면대로만 말했다. 기존 기기는 수요일에 회수 완료, 대체 장비는 월요일에 설치. 겹치는 사흘은 정상 청구라고. 채영은 월요일에 기존 기기가 고장나 쓰지 못했다는 점과 화요일에 차량에 실렸다는 기록을 설명했다. 상담원은 “고장 접수는 별도 부서”라고 답했다. 채영은 또 다른 번호로 돌려 달라는 말을 듣고 이마를 문질렀다.
영숙이 전화기를 달라고 했다. “그날 내가 집에 있었어.”
“엄마가 통화하면 피곤하잖아.”
“내 돈도 나가는데 내 말을 한번 해 볼래.”
채영은 통화 연결을 넘기고 곁에서 기다렸다. 영숙은 긴 설명을 하지 않았다. “월요일에 새 기계를 받았고 옛 기계는 그때부터 쓰지 못했어요. 화요일엔 집 밖으로 나갔어요. 수요일은 우리 집에 없었어요.” 그러고 숨을 골랐다. 상담원은 정확한 수거 인계서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채영은 어머니가 말을 마칠 때까지 끼어들지 않았다.
통화를 끝내자 영숙은 기침을 했다. 하진은 물을 가까이 두고 영숙이 쉬도록 했다. 상담 자체가 의료 위험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숨이 찬 사람이 길게 싸울 필요는 없었다. 채영은 다음 연락부터 자신이 이어받고, 어머니가 말한 사실을 영숙의 진술로 정확히 적었다.
박건은 업체에서 온 인계서 사본을 대조했다. 수거 기사 서명 옆에는 화요일 시각이 있었다. 전산의 수요일은 창고 입고처리 날짜였다. 태오는 두 날짜를 계약팀에 분리해 보내고, 고장 접수시각도 함께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느 날짜부터 청구를 멈춰야 하는지는 업체의 계약 답변을 받아야 했다. 채영은 화요일과 수요일의 겹침만이라도 먼저 정정해 달라고 했다.
인계서 아래에는 낯선 필체로 ‘주민 부재’라고 적혀 있었다. 영숙이 눈을 가늘게 뜨고 봤다. “내가 문을 열었는데 왜 부재야?” 박건은 기사에게 바로 잘못을 묻지 않았다. 업체의 수거 앱에는 현관 앞에서 기기를 받은 사람을 입력하는 칸이 따로 있었고, ‘주민 부재’는 창고 입고 때 자동으로 붙는 코드일 수도 있었다. 태오는 원본 화면과 기사 업무기록을 요청했다. 채영은 어머니가 또 자신이 집에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영숙은 자기가 그날 문을 열었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기사에게 계단이 미끄러우니 난간을 잡으라고 했고, 기사가 중간에서 쉬자 물도 건넸다. 박건은 자신의 점검표 뒤에 그 물컵을 본 기억을 적었다. 영숙은 그게 우습다며 웃었지만, 웃음이 길지는 않았다. 자기 집에 있던 시간을 시스템의 한 단어가 지워 버리는 일을 몇 번째 겪는지 세기 싫었다.
업체에서 돌려보낸 앱 원본에는 수거 현장 확인과 창고 입고가 다른 날짜로 분리돼 있었다. ‘주민 부재’는 수거 다음 날 창고 직원이 확인을 못 한 경우에 붙는 내부표시였다. 상담원이 고객용 인계서에 그 코드가 인쇄되는 줄 몰랐다고 사과했다. 채영은 인쇄 양식도 고쳐 달라고 했다. 자기 어머니의 이용료만 정정하고 같은 단어가 다른 집으로 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 요청이 바로 처리되지는 않았다. 태오는 고객요청 번호를 받아 적었다. 영숙은 “다른 사람 것까지 하다 오늘 밤 새지 마”라고 했다. 채영은 약속할 수 없는 조치의 끝까지 붙들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담당 부서와 회신 날짜를 분명히 받아 두었다. 어머니가 실제로 집에 있었던 화요일은 그날의 기록과 함께 돌아왔다.
기다리는 동안 정례가 와서 영숙의 저녁 준비를 했다. 채영이 청구서에 몰두하는 사이 영숙의 물컵이 비었다. 영숙은 스스로 물을 채웠지만 채영은 그걸 보고 죄책감이 들었다. 정례는 컵 하나로 채영을 탓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퇴근하기 전 확인할 물건과 영숙이 직접 하기를 원하는 일을 나눴다. 영숙은 “내 컵은 내가 채울 수 있어요”라고 했다. 다만 무거운 물통은 부탁하겠다고 했다.
채영은 어머니의 작은 독립을 칭찬하려다가 멈췄다. 어머니가 물을 따른 것은 특별한 회복의 증거가 아니었다. 집에서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정말 지키고 싶었던 것은 그 평범함일지 몰랐다.
계약팀은 오후 늦게 두 날짜의 청구를 취소할 수 있다고 회신했다. 월요일 고장 접수 뒤 대체 장비가 설치되기 전 구간의 계산은 추가 확인이 필요했다. 태오는 확정된 감액과 검토 중인 금액을 따로 표시했다. 채영은 청구서 전체가 잘못됐다는 말로 자랑하고 싶었지만 정확히 줄어든 건 이틀분이었다.
영숙은 감액된 금액을 듣고 말했다. “큰돈은 아니네.”
“엄마가 안 쓴 기계에 낸 돈이야.”
“그래. 그러니까 큰돈이든 작은돈이든 내 돈이지.”
둘은 웃었다. 그 웃음은 돈 문제가 모두 끝났다는 뜻이 아니었다. 중복 기간 일부를 바로잡은 결과가 손에 잡힌다는 뜻이었다.
나머지 청구서를 정리하던 중 박건이 기존 기기의 고장 신고번호를 발견했다. 어젯밤 정전 때 썼던 예비 장비 기록과는 다른 번호였다. 업체 전산에서는 둘이 하나의 ‘교체’ 항목으로 묶여 있었다. 박건은 고장 원인 조사에 필요한 기존 기기의 상태를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오는 비용 정정이 사고기록을 지워 버리지 않도록 업체에 요청했다.
“금액 고쳤다고 기계가 처음부터 정상인 건 아니니까요.” 박건이 말했다.
채영은 그 말을 들으며 과거 세현의 사고 기록을 떠올렸다. 한 줄의 처리 완료가 누가 무엇을 보고 놓쳤는지를 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집의 기기 문제를 병원 사건의 단서로 끌어오지는 않았다. 각각 자기 기록과 책임 경로가 있었다.
저녁이 되자 업체에서 다음 배송 확인 전화를 했다. 상담원은 청구 조정 중이어도 필수 소모품 배송은 예정대로 간다고 했다. 채영은 통화 시각과 담당 부서를 적었다. 영숙은 “이번에는 택배가 계단을 올라올 수 있느냐도 물어”라고 했다. 폭설 때 차가 언덕을 못 올라왔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상담원은 일반 배송료 외에 골목 접근 비용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금액은 확답하지 않았다.
채영은 다시 따지고 싶었지만 오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계약 조항과 실제 운송조건이었다. 박건이 배송업체 연락처를 받아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영숙은 집안에 예비 산소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번 비용 이야기의 시작점이 자신이 되는 것 같아 입술을 물었다.
박건은 현관 계단 수와 차가 들어올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을 적었다. 폭설 밤에는 이웃의 차 때문에 길이 막혔지만 오늘은 눈이 녹아 있었다. 그 차이를 업체에 설명하지 않으면 ‘골목 접근 불가’라는 고정 요금이 붙을 수 있었다. 그는 계약서에서 기본 배송의 범위와 실제 추가 인력 투입 때의 비용을 나눠 표시했다. 아직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어 금액란은 비워 뒀다.
영숙이 말했다. “계단은 내가 올라가는 데도 힘들어. 기사한테 없는 계단처럼 말하진 마.”
“네. 오르는 일이 필요하면 그 노동의 값은 확인하겠습니다.” 박건이 답했다. “다만 안 쓴 인력의 값을 미리 붙일 수는 없어요.”
영숙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이 온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노동이 무료가 되어서는 안 됐고, 반대로 업체가 실제 하지 않은 일을 청구해서도 안 됐다. 내일 현관에 도착할 산소통은 그 두 가지를 함께 묻게 할 것이다.
“엄마가 기계를 고른 건 아니잖아.” 채영이 말했다.
“그래도 내 현관에 들어오는 거야.”
채영은 그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영숙의 집이기에 영숙에게 닿는 물건과 돈을 함께 설명해야 했다.
밤에 채영은 부엌 달력의 물음표 두 개 중 하나를 지웠다. 화요일·수요일 중복 이용료는 정정 확인. 월요일 부분과 배송료는 아직 확인 중. 영숙이 그 옆에 오늘 받은 감액을 작은 글씨로 적었다. 두 사람의 글씨가 달력 한 칸에 겹쳤다.
채영은 휴직원 대신 내일 사무실 회의 자료를 폈다. 하루 동안 전화 네 통을 했는데도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영숙은 옆에서 손녀의 강아지 엽서를 다시 읽었다. 돈을 돌려받은 하루가 곧 질환을 해결한 하루는 아니었다. 다만 쓰지 않은 기계의 이틀을 되찾고, 앞으로 들어올 산소통의 가격을 물을 자격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