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44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다섯째 몫의 주인

새벽에 쌀자루가 헛간 밖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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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쌀자루가 헛간 밖에 놓여 있었다.

농부의 아내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루 입구에는 붉은 끈이 묶였고 그 아래 종이 한 장이 달렸다. 장우석의 빚을 대신 갚아 줄 테니 데려다 달라는 글이었다. 글 아래 이름은 없었다. 범수가 자루를 들어 보려 하자 복단이 손을 쳤다.

“우석 씨부터 보세요.”

우석은 볏짚에 기대 앉아 자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음식을 놓으면 몸이 먼저 빚을 계산했다. 그 계산이 끝나면 자신을 숨겨 준 집을 미워하게 될지도 몰랐다. 연화는 자루를 헛간으로 들이지 않고 농부에게 발견한 자리를 물었다. 논둑의 바퀴자국은 비로 흐려졌으나 자루 밑은 마른 상태였다.

“아이들이 보면 먹으려고 손댈 겁니다.”

농부의 아내가 말했다. 연화는 자루를 옆의 빈 광에 두되 문을 잠그자고 했다. 돌려줄 사람을 찾을 때까지 자기 짐과 섞지 않을 것이었다. 우석은 그 말을 듣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내가 가면 됩니다.”

복단이 담요를 걷어 그의 발을 보였다. 발바닥 상처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우석은 자기 발을 보고도 고개를 돌렸다. 남의 집 아이들이 먹을 쌀까지 묶어 놓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범수는 광 앞에서 자루의 매듭을 봤다. 누구인지 짐작 가는 묶음이었지만 말을 꺼내지 않았다. 붉은 끈을 쓴 사람을 전부 같은 편으로 셀 수는 없었다. 그는 자루를 덮어 두고 농부의 부러진 쟁기를 들었다. 어젯밤에는 문짝을 고쳤고 오늘은 쟁기였다. 손바닥이 갈라졌지만 사람이 머무는 값은 밧줄로 매길 일이 아니었다.

연화는 나무 자리표를 다시 보았다. 다섯째 세모 아래에 칼자국 여섯이 있었다. 우석은 여섯 그릇이라고 설명했다. 셋은 짐꾼, 셋은 상인이 썼으며 밤마다 자리까지 같은 것은 아니었다. 병자가 늘면 죽그릇을 옮겼다. 그래서 칼자국을 보고 지금 거기 여섯이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여섯 몫을 청구한 사람은 알 수 있나요?”

우석은 관리인이 쌀자루를 내줄 때 작은 표를 받았다고 했다. 배급 맡은 사람은 표에 그릇 수를 적었다. 조마다 표가 달랐고 다섯 장을 모으면 하루의 쌀이 맞아야 했다. 그가 나온 날 밤에는 맞지 않았다.

“쌀이 모자랐습니까?”

“사람이 못 먹었소.”

우석은 자신의 허벅지를 주물렀다. 쌀을 안 받은 것이 아니라, 받은 몫에서 일부가 관리인의 밥상으로 갔다. 병자에게는 이가 없으니 물만 마시면 된다며 밥을 덜었다. 배급 담당이 항의하면 자기 몫을 대신 내야 했다. 길만수는 자기 그릇에서 죽을 덜어 주었고 그날 저녁 관리인의 몫에 손댔다고 맞았다.

길상은 묶어 둔 손수건을 풀었다. 형이 노동자였는지 경비였는지, 속아서 들어갔는지 다른 사람을 속였는지, 그 모든 질문 앞에서 발이 머뭇거렸다. 자신도 상단을 북쪽으로 끌어들이는 말에 가담했다. 형을 걱정하는 자격까지 사라질 것 같았지만 형이 남의 밥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자기 과거가 지워지지는 않았다.

“형이 남을 때린 일도 봤습니까?”

우석이 길상을 보았다.

“경비 대신 줄 세운 날은 있었소. 나는 그때 안쪽에 있어서 맞은 사람은 못 봤소.”

길상은 손수건을 다시 묶었다. 확인되지 않은 잘못을 모두 끌어안는 일도, 좋은 말 하나에 모두 버리는 일도 하지 않기로 했다. 형이 돌아오면 물을 말이 늘었다. 그래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농부 아들이 나루에서 돌아왔다. 관아 사람이 한양으로 보낸 전갈의 답은 아직 올 수 없었다. 이틀길을 하룻밤으로 줄일 수는 없었다. 대신 축대 너머에서 만난 나루꾼이 흩어진 배급표 하나를 주었다. 장짐 아래 떨어져 있던 것을 주웠다고 했다. 그 주장이 전부였다.

연화는 표를 받자마자 다섯 장의 나머지를 찾으러 보내지 않았다. 우석에게 먼저 손대지 않은 채 펼쳐 보였다. 다섯째 자리표와 비슷한 세모가 있었고 아래에는 그릇 여섯, 쌀 얼마라는 글이 보였다. 병자 몫은 붉은 점으로 따로 칠했다. 우석은 표의 형식은 같으나 자신이 나간 날 것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가 설명한 표에는 오른쪽 끝이 접혀 있었다. 받은 표도 접혔으나 우연일 수 있었다. 연화는 펼쳐 보고 밑에 적힌 작은 수결을 발견했다. 서필주의 반려장에 쓰인 것과 닮았다. 이번에는 물건의 서명 아래 적힌 날짜가 있었다. 현감에게 바칠 농장 물품으로 쌀을 받은 날이었다.

“여섯 그릇과 관아의 쌀이 한 장에 있네요.”

길상이 말했다. 연화는 표를 접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품번호의 같은 두 자리도 가장자리에 남았다. 관아가 받은 파손항아리와 광산 안 배급으로 쓰인 표를 연결하는 징검돌이 생겼다. 그것이 광산 전체의 책임을 다 밝혀 주지는 않아도, 농장이라고 닫아 버린 문에 쌀의 주인을 물을 수 있었다.

그날 낮, 경비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줄을 들지 않았다. 관리인이 우석의 몸이 나으면 스스로 오게 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쌀자루는 우석이 떠나기 전 남겨 둔 품삯이라 했다. 연화는 품삯이라면 왜 빚을 대신 갚는다고 적었는지 물었다. 경비는 종이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석은 문턱으로 기어갔다. 복단이 막으려 하자 손을 저었다. 서고 싶은 일이었다. 범수가 겨드랑이를 받쳤다. 우석은 두 발로 일어섰다. 온몸이 흔들렸지만 경비와 눈높이가 같아졌다.

“품삯이면 내 이름으로 주시오. 빚이랑 섞지 말고.”

경비가 인상을 썼다.

“누가 가르쳤나?”

“내가 밥을 날랐소. 나무를 날랐고. 그걸 갚을 것이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오.”

우석은 오래 서 있지 못했다. 범수의 팔이 굽었다. 하지만 내려앉는 순간까지 자신의 말을 줄이지 않았다. 경비는 빈 광의 자루를 끌어내 가져갔다. 우석은 그 자루를 보고도 쫓지 않았다. 먹을 쌀이 사라진 일이었지만 자기 몸까지 따라가지는 않았다.

경비가 떠난 뒤 농부의 아내가 점심 그릇을 가져왔다. 쌀죽 대신 보리밥이었다. 복단이 우석이 씹을 수 있게 밥알을 으깼다. 우석은 그릇을 받으며 고맙다고 했다. 빚이 얼마냐는 말을 처음으로 하지 않았다.

연화와 길상은 오후에 다시 창고 문으로 갔다. 나무 자리표는 가져가지 않았다. 우석이 이야기한 배급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지 직접 확인할 명분이 생겼지만, 이름 없는 표 하나로 사람을 끌어내자는 말부터 할 수는 없었다. 연화는 관아 접수의 확인을 맡은 사람 중 남은 한 사람과 함께 배급표와 물품표를 펼쳤다.

관리인은 세 사람을 문밖에 세웠다. 표를 보자 얼굴이 달라졌다. 연화가 그런 변화를 증거처럼 잡지는 않았다. 관리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릇이 뭐가 대수요. 쌀을 어떻게 먹는지까지 관아가 따질 일이오?”

“현감께 바칠 곡식을 누구에게 받으셨는지는 답하셔야 합니다.”

관아 사람이 말했다. 관리인은 목을 길게 빼 문안 쪽을 보았다. 뒤에서 쇠그릇이 바닥에 떨어졌다. 단 한 번의 소리였다. 길상은 그 소리에 몸이 굳었다. 전날 천을 내밀던 손이 있었다. 누구의 소리인지 모를수록 움직여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연화가 관리인에게 약을 들여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병자가 없다고 했다. 우석은 병자가 세 명 더 누운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으나 그 후 상태를 알 수 없었다. 연화는 정확한 숫자를 문앞에서 외치지 않았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서로 맞추는 함정에 넣지 않으려 했다.

“약이 필요 없으면 물품표에 그렇게 써 주십시오.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나와 자기 이름으로 받아도 됩니다.”

관리인이 웃었다. 궤짝에 담긴 약을 경비에게 받아 넣으라고 했다. 연화는 보내지 않았다. 환자를 보지도 못한 채 약재만 넣으면 도중에 없어져도 알 수 없었다. 복단이 먼 길 가져온 것은 겁먹은 사람에게 먹이려고 만든 약이었다.

“약만 내놓는 일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녀는 약상자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관리인은 이제 그 표를 없애겠다는 말도, 그 쌀이 없다는 말도 못 했다. 관아 사람이 문앞의 답을 적는 동안 길상은 안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안에서 누군가 입을 틀어막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이 목을 조였다.

돌아가는 길에 길상은 연화에게 화를 냈다.

“병자 한 명만 보여 달라고 해야 했어요. 그거면 됐잖아요.”

“맞아요. 그렇게 다시 요구합시다.”

연화가 멈췄다. 길상은 대답이 뜻밖이라 입을 닫았다. 그녀는 자신이 쌀을 좇다가 사람을 보여 달라는 직접 요구를 뒤로 놓았음을 알았다. 좋은 증거가 사람을 가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돌렸다. 관아 사람도 따라왔다.

문을 세 번 두드렸다. 이번에는 길상이 말했다.

“안에서 일하는 사람 한 명을 보여 주세요. 물품표에 이름 없이 그릇을 세지 마시고 사람을 세십시오.”

관리인이 직접 나오지 않았다. 경비가 문을 막았고 뒤에서 거친 기침 소리가 났다. 경비는 순간 뒤를 보았다. 그 틈으로 노인의 등이 나타났다. 빈터에서 그릇을 주었던 청소꾼이었다. 노인은 다른 사내를 부축하고 있었다. 부축받는 사내의 고개가 떨어졌다.

경비가 문을 닫으려 했지만 노인은 문틈에 그릇을 끼웠다. 나무그릇이 찌그러졌다. 길상이 문짝을 붙들었다. 범수가 없었다면 두려워서 놓쳤을 손이, 그날은 혼자 버텼다. 관아 사람이 막대를 받쳤다.

노인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다섯째 몫을 받던 사람이오. 이 사람 밥이 밖으로 나가면 이 사람도 나가야지.”

그는 아픈 사내를 문턱 너머로 밀어냈다. 길상은 두 팔로 받았다. 형은 아니었다. 이름도 몰랐다. 그런데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무릎이 돌바닥에 닿고 어깨가 터질 듯 아팠다. 나무그릇이 문틈에서 부서질 때까지 그는 사람을 자기 쪽으로 끌어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