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42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맨발의 빚문서

장우석을 수레에 눕히자 경비가 바퀴 앞에 발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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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을 수레에 눕히자 경비가 바퀴 앞에 발을 넣었다.

“빌린 것을 갚고 가야지.”

우석은 눈을 감았으나 목에서 소리가 났다. 복단은 그가 다시 토할까 봐 몸을 옆으로 돌렸다. 경비의 발이 수레를 막는 동안 다른 경비는 밧줄을 풀었다. 사람을 잡는 데 익숙한 손이었다.

범수가 줄의 가운데를 잡았다. 경비가 잡아당겨 두 사람 어깨가 동시에 흔들렸다. 범수의 맨발이 흙 위를 밀렸다. 그는 힘껏 당기지 않았다. 수레 쪽으로 넘어지는 사람이 생기면 우석을 깔고 쓰러질 터였다.

“서로 줄만 잡고 있어도 날은 가겠군.”

관아 사람이 경비의 매듭을 막대로 건드렸다. 뒤의 동료는 창고 관리인을 불러오라고 했다. 경비 하나가 입술을 씹다가 담장으로 뛰어갔다. 남은 경비는 줄을 놓지 않았다.

길상이 범수 발치에 짚신을 놓았다. 범수는 발을 신발에 넣지 못했다. 흙에 젖은 발바닥과 줄에 묶인 손이 따로 움직이지 않았다. 연화가 경비에게 빚문서의 주인이 누구인지 물었다.

“돈을 받아 낸 건 누구요?”

경비는 심대업의 이름을 말했다. 연화는 빚문서 위의 먹을 보았다. 실제 빌린 돈과 갚을 돈을 적은 자리가 다 있었다. 그러나 먹빛은 같지 않았다. 손도장 주변은 오래됐고 숫자는 짙었다. 이것만으로 뒤에 쓴 돈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연화는 우석의 얼굴 가까이 몸을 숙였다.

“문서를 쓰던 날 얼마를 받으셨습니까?”

“안 받았소.”

경비가 웃었다.

“보시오. 돈 받고 도장 찍은 놈이 다 저렇게 말하지.”

우석은 눈을 떴다. 웃는 얼굴을 보자 숨이 빨라졌다. 복단이 손등으로 그의 뺨을 짚었다. 몸이 뜨거웠다. 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으로 나가 품을 판다고 했소. 가다가 밥값을 미리 적는다기에. 손을 댔지. 글 읽는 자가 없었소.”

“그래서 무슨 자리에 찍었습니까?”

“빈 아래쪽. 밥을 받았다는 표라 했소.”

그때 관리인이 도착했다. 그는 바닥의 줄과 수레의 환자를 차례로 보고 웃었다. 처음부터 사람을 잡으러 나온 적이 없는 것처럼 두 손을 폈다.

“빚을 모르고 나간 사람이니 쉬게 해 주시오. 우리도 돌려받아야 하지만 때가 있는 법이지.”

경비가 범수 손에서 줄을 빼내 말았다. 범수는 한동안 손가락을 펴지 못했다. 줄이 지나간 손바닥에 붉은 홈이 남았다. 관리인은 그 손을 보지 않은 채 연화에게 문서를 달라고 했다.

“원문이 있어야 금액을 바로잡지 않겠소?”

우석이 수레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 연화는 종이를 관아 사람에게 넘겼다. 그는 접수표에 적힌 장소와 지금 서 있는 곳을 함께 적어 문서 뒤에 얹었다. 관리인이 손을 다시 뻗자 막대 끝이 그 손목 앞에서 멎었다.

“관아에 오셔서 찾으시오.”

관리인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가져가면 운송 차질의 책임을 지라고 말했다. 관아 사람은 자기가 우석의 돈을 없앤 적은 없다고 답했다. 관아에서 정할 한양 동행을 기다리는 동안 문서도 우석도 자기들이 맡겠다고 했다. 관리인은 담장 밖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그날 일행은 먼 길을 되짚지 못했다. 우석은 수레가 흔들릴 때마다 배를 움켜잡았고 축대에 닿기도 전에 오한으로 이를 부딪쳤다. 농부가 자기 헛간을 내주었다. 논물을 더럽힌 창고의 사람이라며 문턱을 한 번 노려보았지만, 맨발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보고 볏짚을 먼저 밀어냈다.

“다 깔고 가시오. 새 볏짚은 아니지만.”

복단은 마른 베를 깔았다. 농부의 아내가 더운 물과 묽은 죽을 가져왔다. 우석은 그릇을 보고 갑자기 손을 뒤로 숨겼다. 죽을 먹으라고 하자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요?”

“죽값 물어보는 거요?”

농부의 아내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저 사람 논물 버리는 것부터 갚으면 됩니다. 지금은 먹어요.”

말이 거칠어도 우석은 알아들었다. 다만 숟가락을 들고 한참 기다렸다. 배급 때 맨 앞 사람이 먹기 전에는 손대지 못하던 버릇이었다. 복단이 자기 숟가락으로 한 입 먼저 먹자 그가 그제야 죽을 입에 넣었다.

길상은 형의 이름을 물으려다 멈췄다. 우석은 다섯 숟가락도 삼키지 못하고 다시 잠들었다. 길상에게 그 잠은 자신의 시간을 훔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래 기다렸으니 잠깐만 깨워도 되지 않을까. 형이 지금 다치는 중이면 어떡하나. 그는 우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가 천천히 거뒀다.

복단이 보았지만 꾸짖지 않았다. 대신 물통을 가리켰다. 길상은 해 질 때까지 물을 길어 왔다. 아무 질문도 못 한 날에 팔만 아팠다. 물통이 마지막으로 찼을 때 우석이 몸을 일으켰다.

“물 소리가 꼭 집 같소.”

길상은 손잡이를 놓지 못했다. 우석은 눈가에 마른 흙을 문지르며 남쪽 우물에서 여동생이 물을 길었다고 했다. 어디 사느냐는 물음에는 마을 이름을 답하고는 겁먹은 얼굴로 말을 삼켰다. 뒤따라올 사람이 동생을 먼저 찾을지 몰랐다.

“그 이름은 여기 있는 사람이 들었습니다.”

연화가 말했다.

“집으로 보낼 전갈은 당신이 정할 때 쓰죠.”

우석은 마을 이름을 숨기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다시 다른 이름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잠시 후 길상의 물통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반쯤도 옮기지 못하고 손을 놓았다. 한때 갱목을 어깨에 메던 사람이었다. 길상은 통을 더 가까이 놓아 주었다.

“길만수라는 사람을 압니까?”

우석의 눈이 길상 얼굴에서 멎었다.

“형제요?”

길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길상은 그 침묵을 최악의 답으로 받아들여 우석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복단이 다가오기 전에 우석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본 건 내가 나오던 그젯밤이오. 밥그릇을 씻고 있었소.”

길상의 손이 풀렸다. 그젯밤. 지금 생존을 보증하지는 못해도 보름 전보다 가까운 시간이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길상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걷고 있었습니까?”

“허리를 숙이고 있었지. 내 발에 감아 줄 천을 말리던 중이었소.”

우석은 벗겨진 발뒤꿈치를 가리켰다. 갈색 천 조각이 복단이 씻겨 둔 대야 옆에 있었다. 길상은 형의 물건인가 물었다. 우석은 모른다고 했다. 작업막에서 여럿이 모아 준 헌천이었다. 길상은 천을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양손으로 우석의 발을 받쳐 새 붕대를 넣었다.

밤이 되자 산 쪽에서 쇠그릇 소리가 들렸다. 농부가 한숨을 쉬었다.

“곡식 말린다면서 저 소리는 밤마다 나요.”

우석의 숟가락이 멎었다. 그가 손바닥을 펴 손가락을 접었다. 한 번, 두 번. 길상도 세려 하자 우석이 손을 내렸다.

“밖에서는 몇 개를 쳤는지 알 수 없소. 하나를 여러 번 칠 때도 있고.”

그 말은 몸에서 배운 것이었다. 우석은 자신의 빈 밥그릇을 들어 바닥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셋째 작업막은 그릇을 내려놓기 전에 세 번씩 울리지만 병자에게 배급을 옮길 때는 소리가 달랐다. 칠복이 드나들던 때에는 기다리라는 긴 소리가 마지막에 붙었다.

연화가 칠복을 아느냐고 묻자 우석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알았소. 그러나 나가는 길을 알려 준 건 만수였소.”

“칠복은 마지막으로 언제 보았습니까?”

우석은 날짜를 세지 못했다. 열병으로 병자막에 누웠을 때 칠복이 물을 갖다주었다. 우석이 일어난 뒤에는 다른 사람이 물을 날랐다. 빈자리를 보았다고 죽었다는 말까지 할 수는 없었다. 연화는 더 몰아묻지 않았다. 칠복의 숟가락을 당장 꺼내 보이면 우석의 기억이 그 물건에 끌릴 수 있었다.

관아 사람이 처마에서 기침했다. 내일 한양으로 돌아갈 때 우석을 동행시키려던 그는 복단이 고개를 젓자 짜증을 냈다. 여기 머물면 사사로이 치료를 하는 꼴이고 돌아가면 조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복단은 일어나 문으로 갔다.

“수레 위에서 피를 토하면 누가 받습니까?”

“그런다고 여기 평생 둘 수는 없소.”

“사흘 쉬고 갈 수 있으면 사흘 쉬게 하세요.”

연화가 그들 사이로 나서려다가 우석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두고 어른들이 값을 매기듯 말하는 모습을 알고 있었다. 누가 옳은가보다 자기가 어디로 갈 수 있는가가 먼저였다. 연화는 우석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쉬고 싶습니까?”

우석은 문 쪽을 보았다. 농부의 아내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싫다고 하면 창고로 돌아갈까 봐, 좋다고 하면 이 집에 폐를 줄까 봐 입이 열리지 않았다. 농부가 먼저 말했다.

“약 들고 온 사람들이 책임질 거라면 헛간은 사흘 쓰시오. 내 아들이 날마다 밭에 있으니 빈집도 아니고.”

우석은 고개를 숙였다. 연화는 다음 날 한양으로 돌아가는 관아 사람에게 빚문서를 맡기되 우석의 상태를 함께 적어 달라고 했다. 자기와 범수는 남기로 했다. 길상도 남았고 복단은 약을 아껴 쓸 방법을 계산했다. 서로 말하지 않은 식량 부담은 농부의 아내가 놓은 빈 쌀독을 보며 드러났다.

범수는 남은 밤을 먹지 않고 농부 아들에게 건넸다. 도끼와 톱을 빌려 달라고 했다. 뒤틀린 헛간 문이 바람을 들이고 있었다. 늦은 밤까지 문짝을 고치는 소리가 났다. 밥값을 우석의 빚으로 쓰는 대신 자기 손을 보태는 일이었다.

새벽 무렵 우석이 연화를 불렀다. 말끝이 한결 또렷해졌다.

“그 문서에 찍힌 손은 내 손이오. 그런데 돈을 받은 손은 아니오.”

연화는 무엇을 약속해야 할지 알았다. 그러나 약속 전에 우석이 자기 손바닥을 펴 보였다. 굳은살 아래 오래 찢어진 흉터가 길게 내려갔다.

“도장 찍던 날도 이 상처가 있었소. 손을 눌렀는데 아프지 않았소. 그래서 이상했지. 먹 묻힌 천 위에 누르는 줄 알았소.”

“무엇 위에 눌렀는지 보셨습니까?”

“끝을 내주지 않았소. 종이가 내 앞으로 나온 적이 없었어.”

우석은 자기가 살아 돌아오면 그 종이를 찾으려 했다. 도망치며 관리인의 책상에서 빚문서를 집었고 경비가 따라붙었다. 훔친 것이 전혀 없다는 말 대신 자기 손으로 가져온 물건을 밝혔다. 연화는 그 선택이 다시 죄목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빚문서를 받은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길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비틀거리던 문은 이제 한 번에 닫혔다. 우석이 소리를 듣고 웃었다.

“내가 떠난 뒤에 저기도 그렇게 문이 닫혔을까.”

그는 입술을 핥았다.

“만수가 밖에 내보낼 물건을 줬소. 책상에서 집은 종이보다 먼저. 못 가져왔지만 어디 두었는지는 알아요.”

길상은 의자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소매를 잡지 않았다. 우석이 숨을 고르는 동안 조용히 물그릇을 받쳤다.

“다섯째 배급자리 밑이오. 나무그릇 뒤집어 놓은 곳. 사람 이름은 없지만, 누가 밥을 먹어야 하는지는 남아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