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41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곡식 없는 굴뚝

수레가 넘어지는 소리는 사람의 비명보다 먼저 관아 담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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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가 넘어지는 소리는 사람의 비명보다 먼저 관아 담을 넘었다.

연화가 접수방에서 뛰어나왔을 때 물동이 하나가 돌계단 아래로 굴러가고 있었다. 물은 나오지 않았다. 깨진 아가리에서 회색 덩어리가 쏟아졌고, 운송꾼이 손바닥으로 그것을 덮으려다 날카로운 파편에 베였다. 뒤따르던 사내가 먼저 그의 뺨을 때렸다.

“물을 쏟았으면 물만 줍거라!”

운송꾼은 입안의 피를 삼키며 회색 덩어리를 주웠다. 연화는 그의 손을 잡지 않고 사내와 그 사이에 섰다. 발치에서 깨진 항아리 조각이 신발을 긁었다.

“그걸 손으로 주우면 상처에 들어갑니다.”

“댁이 품삯을 물어 줄 건가?”

사내가 그녀를 밀쳤다. 연화는 계단 난간을 짚어 넘어지지 않았다. 접수방에서 나오던 아전이 소리쳤다.

“관아 계단에서 뭐 하는 게요!”

밀친 손은 즉시 등 뒤로 숨었다. 사내는 운송꾼이 제 물건을 깨뜨렸다고 했다. 운송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화가 치마 끝에서 깨끗한 헝겊을 잘라 내밀자 그가 뒤의 수레를 먼저 보았다. 자기보다 물건을 걱정하라는 눈을 너무 오래 받아 온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이 값이 다 제 빚으로 붙습니다.”

목소리가 작았다. 사내는 듣지 못한 척 바닥을 발로 쓸었다. 항아리 밑바닥의 종이가 물에 젖지도 않은 채 뒤집혔다. 두 자리 숫자와 짧은 획. 두칠이 전날 반려장에서 짚었던 모양이었다.

연화는 허리를 굽혔다. 사내가 신발을 들었고 아전이 그 발 앞에 막대를 댔다.

“깨진 물품을 접수하고 가시오. 여기서 벌어진 일은 내게 물을 거요.”

연화는 종이 붙은 파편을 뒤집지 않았다. 회색 돌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섣불리 말하지 않았다. 운송꾼의 손바닥에서 피가 떨어지는 동안 그녀가 처음 요구한 것은 운송장보다 물 한 바가지였다.

사내는 운송장을 꺼냈다. 농장 창고의 담장을 고칠 돌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번 서필주의 심부름꾼이 가져온 묶음과 같은 이름이었다. 아전은 접수된 표를 찾아 왔다. 물동이가 아니라 항아리였고 내용은 석재라 했다. 이름을 바꾸면 물건도 바뀔 수 있다는 듯 사내가 웃었다.

“농장에서 돌도 쓰지 못합니까?”

“쓸 수 있지요. 그래서 어느 담인지 보러 가려 합니다.”

연화는 가져온 반려장을 펼쳤다. 사적인 운송이라 조사할 일이 없다고 돌려보낸 종이였다. 이번에는 관아 앞에서 사람 하나가 맞았고 신고된 용기와 실물이 달랐다. 아전은 사내에게 목적지와 주인 이름을 다시 물었다. 사내는 대답 대신 운송꾼에게 노려보는 눈을 돌렸다.

“주소를 써 드려라. 잘못 쓰면 네가 물어야 한다.”

운송꾼은 붓을 들지 못했다. 피가 손금마다 번지고 있었다. 연화는 종이를 아전 쪽으로 밀었다.

“불러 주시면 이분이 적을 겁니다.”

그는 북쪽 산 아래의 창고를 말했다. 축대 너머 골짜기였다. 아전이 붓을 멈췄다. 한양 안의 농장을 생각하고 있었던 얼굴이었다. 운송꾼은 말을 잘못했나 싶어 눈을 내리깔았다.

“이틀은 가야 합니다. 짐을 싣고는 더 걸리고요.”

사내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주소가 입 밖으로 나왔다. 연화는 그 순간 사람을 구했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그에게 돌아갈 길이 더 위험해졌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해가 중천에 이르기 전에 범수가 왔다. 운송꾼은 손에 붕대를 감고 관아 처마 밑에 남았고 사내는 새 항아리를 구하러 나갔다. 아전은 항아리 주인에게 동행 인원 둘을 붙여 신고한 담장과 파손된 짐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현감의 명이 필요한 조사와 물품 접수의 확인은 달랐다. 연화는 이 작은 문이 다시 닫히기 전에 범수에게 나설 수 있는지 물었다.

“오늘 나가면 모레 해 지기 전에 축대까지 가겠지요.”

“약도 싣고 갑시다.”

복단은 약을 실으려면 수레바닥부터 씻으라고 했다. 범수는 돌가루 묻은 수레가 아니라 객주 앞에서 고친 작은 수레를 가져왔다. 바퀴 하나가 휘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어젯밤 갈아 끼운 것이었다. 축이 너무 빡빡해 두칠이 밀어도 앞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범수는 수레를 들어 올려 바퀴를 빼냈다.

“말만 하면 다 준비되는 줄 알았는데.”

두칠이 중얼거렸다.

“너도 말하지 않고 바퀴 돌려 봤잖아.”

아이는 더 대꾸하지 않고 축에 기름을 발랐다. 손가락이 새까매졌다. 관아에 다시 불려 갈 일이 남은 아이에게 먼 길을 맡길 수는 없었다. 범수가 수레를 끌고 나갈 때 두칠은 성문까지만 따라왔다. 돌아설 때 주머니에서 구운 밤 세 알을 꺼냈다.

“약 가져가면 사람들이 밥도 먹을 줄 알잖아요. 아저씨라도 굶지 마요.”

범수는 밤 한 알을 아이에게 돌려주었다. 연화는 먹겠다고 약속한 두 사람을 보며 그제야 자기 밥보자기도 확인했다. 막동은 객주에 남았다. 길을 그려 준 뒤 손을 무릎 사이에 끼워 앉아 있었고 누구도 그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 않았다.

길상은 마지막으로 손수건을 받아 품에 넣었다. 형의 것이라 빌려준 기간이 끝났다고 말했다. 연화는 웃으며 돌려주었지만 길상은 웃지 못했다. 이번에 갈 때는 축대에서 다시 발을 멈추게 될까 두려웠다.

첫날 저녁 비가 내렸다. 일행은 주막 처마 아래서 젖은 짚신을 바꿨다. 약상자는 짚으로 덮었지만 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왔다. 복단이 옆면을 만져 보고 자루를 풀었다. 범수는 자기 겉옷을 벗어 받침으로 넣었다. 잠자리에 들 때 등이 서늘했으나 옷을 다시 달라고 하지 않았다.

둘째 날은 진흙이 발목까지 잡았다. 수레를 끌던 범수가 미끄러지자 길상이 뒤에서 밀었다. 약상자가 기울었고 연화는 어깨로 받았다. 모서리가 쇄골 아래를 쳤다. 복단이 욕을 하며 상자를 바로 세웠다. 화가 난 대상은 누구도 아니었고 모두였다. 길을 재촉한다고 약이 더 빨리 닿는 것은 아니었다.

셋째 날 아침, 축대 농부가 그들을 알아보았다. 연화는 지난번에 들은 논 이름을 불렀다. 농부는 기억하고 왔다는 사실보다 수레바퀴가 논둑 바깥에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는 수문을 닫은 뒤 아들을 불렀다.

“창고 굴뚝에서 어젯밤에도 불이 났소.”

농부의 아들은 담장 안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저녁마다 연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둥근 굴뚝에서, 하나는 땅에 바짝 붙은 구멍에서 나왔다. 겨울도 아닌데 밤새 불을 때는 까닭을 몰랐다.

운송꾼이 적어 준 주소는 축대에서 반나절도 안 되는 골짜기에 있었다. 관아가 붙인 두 사람은 막대와 물품표를 들고 앞서 갔다. 범수 일행은 뒤에 머물렀다. 연화는 지나온 들판에 보리 이삭이 없음을 보았다. 농장 창고라면서 농장은 어디인지 묻고 싶었지만, 밭이 없다고 은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담장 밖에서 경비가 물품표를 낚아채려 했다. 앞선 사람이 놓지 않자 둘 사이에 종이가 팽팽해졌다. 연화는 큰소리로 항아리가 깨진 날짜를 말했다. 안에서 누군가 듣도록 했다. 잠시 후 문이 반 뼘 열리고 관리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석재를 내리면 돌아가시오. 담은 뒤쪽이오.”

그는 아직 새 항아리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눈썹을 찌푸렸다. 여기는 짐을 확인하러 왔는데 그는 짐을 받으려 했다. 관아 사람이 담장이 어디인지 묻자 관리인은 안쪽 길을 가리켰다. 사람은 들이지 않은 채였다.

길상은 그 작은 틈으로 끝이 깨진 돌을 보았다. 뒤쪽 언덕에 셋째 표와 닮은 모서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눈을 잡은 것은 발이었다. 어두운 행랑 밑에 맨발 두 개가 보였다. 한쪽 발가락이 다른 쪽 발등에 얹혔다. 사람은 몸을 앞으로 끌어당기다 멈췄다.

문이 닫혔다.

길상이 문을 두드리려 하자 범수가 팔을 잡았다. 안의 사람을 들키게 할 수 있었다. 길상은 팔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손수건을 주먹에 구겼다. 관아 사람들도 억지로 들어갈 명은 없었다. 관리인이 담장 밖으로 던져 준 항아리 파편과 새 운송표를 가지고 축대로 돌아섰다.

굴뚝에서는 뜨거운 냄새가 났다. 장작 타는 냄새 아래 날카롭고 마른 냄새가 섞여 있었다. 복단이 약상자를 옮기며 얼굴을 찡그렸다. 문 가까이 세워 둔 그릇 하나에 잿빛 물이 고였다. 수면에 햇빛이 닿자 얇은 막이 찢어졌다. 연화는 그 물을 뜨지 않았다. 자기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고 아무것이나 주워 갈 수는 없었다.

대신 농부 아들에게 물길을 보여 달라고 했다. 논으로 흘러오는 골은 창고 담 밑에서 시작됐다. 새 흙으로 막은 곳이 있었고 그 옆으로 다른 물이 돌아 나왔다. 아들은 괭이를 들려 했다.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농부가 허락한 것은 논둑에서 보는 일이었다.

“저기 사람 있어요.”

길상이 말한 것은 물골 건너의 풀밭이었다. 갈색 덩어리가 움직였다. 처음에는 마른 짚더미인 줄 알았는데 짚 아래서 팔꿈치가 나왔다. 사내 하나가 엎드린 채 물로 기어가고 있었다.

범수가 먼저 달렸다. 물골을 건너는 순간 흙이 무너져 신발이 잠겼다. 그는 신발을 버리고 사내를 붙잡았다. 사내는 도움을 받으면서도 손을 발버둥쳤다.

“내 건 아니오. 가져온 게 아니오.”

그의 품에서 작은 종이가 떨어졌다. 물에 닿기 전에 연화가 집었다. 사내가 목을 꺾듯 고개를 돌렸다. 자기 몸보다 그 종이에 놀랐다.

“태우지 마시오.”

범수는 사내를 둑 위로 끌어 올렸다. 복단은 약상자를 내려놓고 사내의 얼굴을 돌려 입안의 흙을 빼냈다. 물을 한꺼번에 주지 않았다. 사내는 첫 모금을 삼키지 못하고 토했다. 토한 것에는 풀잎이 섞여 있었다.

담장 쪽에서 고함이 터졌다. 경비 둘이 길을 달려오고 있었다. 길상이 수레를 길 한가운데로 끌어놓았다. 하나가 수레를 걷어차자 약상자가 덜컹 울렸다. 관아 사람이 막대를 가로로 들었다.

“파손 물품 확인 중이오. 여기 쓰러진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밝히시오.”

경비는 사내가 도망간 빚쟁이라고 했다. 연화는 종이를 품에 숨기지 않았다. 피와 흙이 묻은 가장자리를 펼쳤다. 빚문서 아래 사내의 손도장이 있었다. 사람을 버리고 문서만 내놓으면 경비는 그것부터 빼앗아 갔을 것이다.

“이름을 말씀하세요.”

그녀는 쓰러진 사내에게 물었다. 목은 갈라졌지만 눈은 움직였다. 사내는 경비와 종이 사이에서 잠깐 망설였다. 범수가 자기 젖은 신발 한 짝을 벗어 사내의 맨발 옆에 놓았다.

“지금은 걷지 못해도 됩니다.”

사내는 발을 내려다보고 입을 열었다.

“장우석.”

경비가 욕을 내뱉었다. 우석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안에 곡식은 없소.”

그가 손도장 아래를 가리켰다. 연화는 빚문서를 펼친 손을 놓지 않았다. 수레 너머 굴뚝에서 연기가 솟고 있었다. 이제 농장 창고라는 이름에 맞서 말할 사람이, 종이 바깥으로 걸어 나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