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돌아올 방의 수
나흘 뒤, 객주 큰방에는 빈 자리가 모자랐다.
나흘 뒤, 객주 큰방에는 빈 자리가 모자랐다.
한매화가 가져온 자리 네 장을 이어 놓아도 식솔들이 서로 무릎을 접어야 했다. 허만복은 창고의 멍석을 더 가져오자고 했고, 강복단은 멍석보다 문을 하나 더 열라고 했다. 뒤늦게 오는 사람이 앞사람들 등만 볼 수 없도록.
민연화는 벽에 세 장의 종이를 붙였다. 첫째는 객주에서 떠난 상인 열여덟, 둘째는 짐꾼 열둘, 셋째는 광산에서 별도로 확인해야 할 사람들. 칠복의 이름은 셋째 장 맨 위에 있었다.
“열여덟에서 열일곱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박만수의 아내가 말을 꺼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연화는 그가 제 남편의 이름을 찾기 전에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먼저 숨을 고르게 했다.
“막동 씨가 보름쯤 전 광산 안에서 직접 센 상단 사람이 열일곱이었다는 진술입니다. 그날 이후의 수와 지금의 수는 모릅니다.”
“그럼 한 사람은?”
“막동 씨는 박만수 씨가 갱목 사고 뒤 숨을 찾지 못한 모습을 보았고, 경비가 몸을 옮기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매장한 곳이나 이후 상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박만수의 아내는 연화를 바라보지 않았다. 손에 쥔 천의 매듭을 풀었다 다시 묶었다.
“살았다는 말도 아니고 죽었다는 말도 아니군요.”
“지금 제가 아는 건 그렇습니다.”
“내가 그이를 기다리는 건 누가 정해 줍니까?”
연화는 대답하지 못했다. 부조계 장부가 판정을 기다리는 일과 사람이 저녁밥을 짓는 일은 다른 속도로 흘렀다. 만복이 무언가 말하려 하자 매화가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박만수의 아내가 먼저 말했다.
“방은 잡아 두세요. 안 온다면 내가 다른 사람 눕히면 됩니다.”
그는 매듭을 단단히 묶었다. 연화가 할 수 있는 말보다 그의 한 문장이 방의 공기를 바꿨다.
길상은 형 길만수의 손수건을 들었다. 셋째 작업막의 돌 표와 맞는 자리를 찾았지만, 형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두칠이 약짐 끈에서 얻은 열일곱 이름도 보여 달라는 요청이 나왔다. 연화는 봉한 종이를 꺼내 사람들 앞에서 펼쳤다. 적힌 이름과 작성 시점이 다른 사실을 나눠 말했다.
“여기 이름이 있으니 살았다는 증거 아니오?”
“지난 장날에 이 종이가 길로 나왔다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이름을 쓴 날짜와 사람이 직접 썼는지는 모릅니다.”
한 사내가 불만스럽게 손뼉을 쳤다.
“모르는 것만 모아 놓고 사람을 불렀군.”
“그래서 모였습니다.”
매화가 대답했다. 사내가 돌아보자 그는 빈방 약조를 적은 종이를 들었다.
“누가 돌아올지 모르니 방을 나눠야 해요. 열병에 걸린 사람을 먼저 눕히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온돌 옆에 앉힐 겁니다. 오라비가 온다면 나도 좋겠지만, 오라비가 아니어도 문은 열어야 해요.”
복단은 약 보따리를 펼쳤다. 사람들은 약 이름을 듣기 전에 물 끓일 솥과 깨끗한 베의 수를 들었다. 식솔 둘이 집에서 솥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박만수의 아내는 남편의 겨울 저고리를 베로 찢어 쓰겠다고 했다. 매화가 급히 막았다.
“그건 보관하세요. 모자란 베는 내가 가져올게요.”
“다른 사람 붕대가 급하면 옷이 무슨 소용이오?”
“그 옷까지 먼저 내시면 나중에 속상하실 수 있어요. 내게 천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 실랑이했다. 결국 박만수의 아내는 저고리를 접어 무릎에 두고, 베 한 필을 함께 구하기로 했다. 누구도 그의 것을 허락 없이 자르지 않았다.
만복은 부조계 궤를 열었다. 남은 곡식과 돈을 공개하자 방 안에서 낮은 탄식이 났다. 식솔 아홉의 사흘치 곡식과 답사 품삯을 빼면 여유가 크지 않았다. 칠복의 누이를 찾더라도 그에게 부조계 계금을 약조할 수는 없었다.
“그럼 명단 밖 사람은 누가 먹입니까?”
복단의 물음에 만복이 구겨진 얼굴로 말했다.
“내 궤에서 줄 수 없다는 말이지, 굶기자는 말은 아니오.”
그는 자기 창고의 묵은 조를 세어 보겠다고 했다. 복단은 행상망에 별도 현물 요청을 돌리겠다고 했다. 연화는 두 재원을 섞어 장부에 쓰지 않기로 했다. 식솔들이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질문을 바꿨다. 누구에게 얼마를 약속했느냐가 아니라, 내일 누가 무엇을 가져올 수 있느냐고.
주범수는 나루에서 병자를 태울 수 있는 큰 수레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순갑이 빌려준 표는 이미 돌려주었지만, 나루 사람들과 말할 길은 남아 있었다. 길상은 축대 농부의 논물이 더러워진다는 말을 전하고 물길도 보자고 했다. 막동은 자기는 광산 안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방 안에 불편한 침묵이 생겼다.
“들어가 본 사람은 나뿐이지만, 그래서 매번 나만 가야 하는 건 아니오.”
그가 말했다. 범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동에게서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이미 본 길의 범위였다. 막동은 자신이 확실히 기억하는 다섯 갈림길만 그려 주겠다고 했다.
회의가 끝나갈 때 두칠이 손을 들었다.
“저는 뭘 해요?”
“다음 소환 날 관아에 다시 가야지.”
범수가 답했다. 두칠의 얼굴이 굳자 연화가 덧붙였다.
“그건 네가 훔치지 않은 은을 증명하러 가는 일이고, 여기서는 네가 아는 장길을 표시해 주면 좋겠다. 둘은 다른 일이야.”
두칠은 어깨를 한 번 올렸다 내렸다. 회의 내내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보지 말라는 말을 참고 있었다. 그런데 관아에 가는 일은 어른들도 두려워했다. 박만수의 아내가 아이 옆에 물그릇을 놓았다.
“내일은 내가 국수집 할머니께 들를게. 네가 거기 맡긴 종이를 봤다고 말해 줄 수 있는지 다시 물을 거야.”
“그걸 왜 아주머니가 해요?”
“나도 할 일이 있어야 하니까.”
박만수의 아내는 남편 이야기만 하면 울 것 같아 회의 내내 물을 마시지 않았다. 두칠이 그걸 알아차리고 물그릇을 밀어 돌려주었다. 방 안에서 처음으로 작은 웃음이 났다.
연화는 맡을 일을 종이에 쓰기 전에 각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약을 달일 수 있다고 한 이에게는 밤새 곁을 지킬 수 있는지도, 수레를 빌리겠다는 이에게는 끌 사람도 있는지 따졌다. 두 사람의 대답은 처음과 달랐다. 밤에는 어린것들을 봐야 하는 집이 있었고, 수레는 있어도 바퀴가 하나 휘어져 있었다. 약속이 줄어들자 만복은 낙담했지만 복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못 하는 걸 지금 알면 다른 사람을 찾으면 돼요. 돌아온 뒤에야 알면 약도 물도 늦어요.”
매화는 젖은 방의 벽을 말릴 불쏘시개를 맡았다. 그것만은 집에서 곧장 가져올 수 있었다. 박만수의 아내는 낮 시간 약탕기 불을 맡기로 했다. 저고리를 찢지 않고도 자기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는 매듭을 풀어 다시 곱게 묶었다.
길상은 형의 이름 앞에 자기 이름을 적지 않았다. 찾는 이와 돌아올 이를 한 칸에 쓰면 후일 누가 누구를 증언했는지 모를 것 같아서였다. 대신 농부의 논 이름을 별도 종이에 적었다. 사람을 데려오는 길에 다른 집의 물길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날 저녁 만복은 객주 마당에 솥을 걸어 보았다. 식솔들이 돌아간 뒤라 아무도 볼 사람이 없었지만 불이 한쪽으로만 붙으면 큰 솥의 물이 늦게 끓었다. 범수가 돌 두 개를 옮겼다. 물이 끓는 데 걸린 시간을 두칠이 세었다. 그 숫자는 살아남은 사람 수를 대신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 도착하는 날 쓸모가 있었다.
두칠은 막동의 그림에서 길 하나를 지웠다. 비가 많이 오면 쓰지 않는 길이었다. 막동이 자신이 떠나기 전에도 그 길로 짐이 움직였다고 하자 아이가 코웃음을 쳤다.
“아저씨가 나간 뒤에 다리가 잠겼어요. 물자길 다섯이라고 다섯을 다 쓴 건 아니에요.”
막동은 반박하려다 멈췄다. 자신이 떠난 뒤의 시간을 아이가 알고 있었다. 둘은 다른 먹색으로 길을 다시 그렸다. 늦게 얻은 정보가 먼저 본 것을 지우지 않게 하려고.
연화는 축대에서 받아 온 서필주의 반려장을 다시 폈다. 청원서는 ‘농장 창고의 사적 거래’라며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만복은 종이를 구겨 버리려 했다. 연화가 책상 위에 곧게 폈다. 반려장에는 서필주의 수결과 관아가 접수한 시각이 남아 있었다.
“거절도 기록입니다.”
길상이 말했다.
“형을 찾는 데는 당장 도움이 안 되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길로 물어야죠.”
연화는 농부가 말한 물동이와 돌 표를 떠올렸다. 농장 창고라는 이름을 쓰는 쪽이 자기 물품의 이동을 관아에 신고했다면 물품번호가 남아 있을 것이다. 창고 안으로 몰래 들어가는 대신 관아가 받은 번호를 찾아 현장에서 설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매화가 마지막 방 배정을 적었다. 첫 방은 아픈 사람, 둘째 방은 몸을 씻고 쉬어야 하는 사람. 아직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문밖에 작은 글씨로 ‘비워 둠’이라고 붙였다. 박만수의 아내가 그 글씨를 한참 보았다.
“빈방이라고 쓰지 말아요.”
매화가 돌아봤다.
“왜요?”
“비운 방이라고 써요. 우리가 비워 놓은 거니까.”
매화는 글씨를 고쳤다. 그날 처음으로 식솔들의 일이 장부 속 숫자가 아닌, 열 수 있는 문 두 개가 되었다.
빈자리를 세는 대신, 사람들이 열쇠를 나누어 쥐었다.
밖으로 나온 연화에게 두칠이 반려장 끝을 가리켰다. 길상이 축대에서 본 숫자 두 자리 다음에 작은 획 하나가 더 있었다.
“이거, 물동이 밑에도 있었어요. 숫자가 아니라 창고 물건의 차례일지 몰라요.”
연화는 반려장을 접지 않았다. 서필주가 닫은 문에, 그가 직접 적은 물품번호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