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랑주 5의 유언
격막의 서리선
새 격막을 실은 카트가 점검구 앞을 막고 있었다. 은색 포장에는 아직 손자국도 없었다. 정비팀장은 포장을 뜯을 칼을 들었고, 진아리는 그 칼보다 먼저 투명 보존캡을 카트 위에 놓았다.
새 격막을 실은 카트가 점검구 앞을 막고 있었다. 은색 포장에는 아직 손자국도 없었다. 정비팀장은 포장을 뜯을 칼을 들었고, 진아리는 그 칼보다 먼저 투명 보존캡을 카트 위에 놓았다.
“잠깐만요.”
팀장은 아리의 오른쪽 귀에 붙은 의료 표식을 보고 칼을 내렸다. 배려해서 멈춘 것인지 다친 사람이 일을 막는다고 생각한 것인지, 표정에서는 알 수 없었다.
“부품이 왔어요. 저것만 갈면 복도 열 수 있습니다.”
아리는 점검구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파열된 격막은 꽃잎처럼 벌어져 있었고, 찢어진 가장자리의 흰 서리가 복도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의무실을 나설 때 보았던 문틀의 흰 선과 닮았다. 다만 여기서는 찢어진 금속과 함께 방향을 갖고 있었다. 손전등을 조금만 기울여도 가는 결정들이 반짝였다.
“사진 찍어 놓았잖습니까.” 팀장이 말했다.
“가장자리 아래는 안 찍혔어요.”
“노후 격막 파열입니다. 교체 주기 넘긴 건 우리도 인정합니다. 오래된 걸 새것으로 바꾸자는 데 왜 이러십니까?”
아리는 대꾸하지 않고 조명 각도를 낮췄다. 볼트 머리 아래 둥근 자국이 두 겹으로 보였다. 처음 조일 때 남은 눌림 위로, 조금 다른 위치에서 금속이 문질러진 흔적이었다.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안쪽 볼트에서도 같은 어긋남이 나왔다.
그녀는 팀장에게 빛을 잡아 달라고 했다. 팀장은 칼을 주머니에 넣고 손전등을 받아 들었다. 둘의 손이 같은 점검구 안에 들어갔다. 그가 빛을 비추는 동안 아리는 바깥쪽 눈금판을 움직여 보았으나, 볼트에는 공구를 대지 않았다.
“여기. 한 번 풀었다 다시 조인 흔적이 있어요.”
“점검 때도 풀죠.”
“그러니까 그 점검을 찾자는 겁니다.”
뒤에서 카트 바퀴가 짧게 울었다. 새 부품은 복구를 약속했고, 낡은 부품은 기다리라고 했다. 아리는 손을 뺀 뒤 귀 뒤를 누르지 않으려고 주먹을 폈다. 아픈 쪽을 만지면 사람들은 계측값보다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권도한이 들어왔을 때 팀장은 이미 교체 지연 시간을 작업표에 쓰고 있었다. 도한은 아리의 설명을 듣고 빈칸 하나를 가리켰다.
“교체를 늦춰도 환기는 살아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습니까?”
아리는 우회배관 도면을 펼쳤다. 구형 분기선이 점검구를 돌아 인접 통로로 이어져 있었다. 평소에는 잠겨 있는 선이었다. 주배관만큼 공기를 보내지는 못하지만, 파열부를 격리하고 낮은 유량으로 쓰는 방법은 있었다.
팀장은 도면의 가는 선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이걸 열면 압력만 맞추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들어오면 이산화탄소도 늘어요.”
“맞아요. 정원을 줄여야 해요.”
그 말을 하고서야 아리는 점검구 밖을 보았다. 복도에는 임시숙소에서 돌아올 사람들의 짐이 놓여 있었다. 같은 색 수납낭에도 주인의 생활은 달랐다. 한 낭에서는 식물 잎이 조금 나왔고, 다른 낭에는 접힌 어린이 슬리퍼가 끼어 있었다. 복구 소식만 기다리며 가져온 짐들이었다.
가온의 안내등이 켜졌다. 아리는 우회배관 조건을 입력하고, 주민을 들이기 전 허용 인원을 요청했다.
“우회유량 삼십팔 퍼센트에서 C-12 허용인원은 사십육 명입니다. 그 이상은 이산화탄소 기준을 넘습니다.”
팀장이 짧게 웃었다.
“절반만 들이라는 말을 당신이 해 주시죠. 나는 새 격막 준비해 왔습니다.”
도한은 입구의 주민 안내판을 떼어 아리에게 건넸다. 남에게 맡길 수 있는 자리도 있었으나, 그는 이번에는 맡기지 않았다. 아리가 보존을 요구한 까닭을 주민이 들어야 했다.
아리는 안내판에 사십육을 적었다. 그 아래에 우회환기라고 썼다. 글씨가 조금 기울었다. 칠판을 벽에 걸자 아이를 데리고 온 여자가 숫자를 보고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리 방은 괜찮다고 했잖아요.”
“방 벽은 괜찮아요. 같은 환기선을 쓰니까 인원을 제한해야 합니다.”
“또 임시숙소로 가요? 어제도 아이가 잠을 못 잤어요.”
그녀는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화를 작은 목소리로 냈다. 그 작은 목소리가 아리에게는 팀장의 항의보다 오래 남았다. 손잡이가 달린 수납낭 하나를 옮기려 하자 여자가 먼저 낭을 당겼다.
“짐 들지 마세요. 대신 언제 돌아올 수 있는지 말해요.”
아리는 날짜를 말하지 못했다. 부품만 교체하면 끝날 줄 알았던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봤다. 이들 앞에서는 격막의 서리도 볼트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통로를 가로막은 아리와 돌아가지 못하는 짐만 보였다.
“오늘은 원래 정원의 절반만 들어갑니다. 돌아갈 수 없는 분들 숙소와 추가 이동을 같이 접수할게요.”
“접수하면 오늘 밤 침대가 생겨요?”
“침대 위치는 지금 확인하겠습니다.”
아리는 도한에게 단말을 건넸다. 그는 주민을 설득하는 대신 숙소 담당자를 불렀다. 남은 자리가 있는 방, 가족을 갈라 놓지 않아도 되는 방을 하나씩 물었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여자는 아이의 슬리퍼를 낭 안으로 깊이 밀어 넣었다. 아리는 그 짐의 손잡이를 다시 잡지 않았다.
점검구 안쪽에서는 팀장이 투명 캡을 들어 보았다. 그는 씌울 방향을 두 번 바꾸고 가스켓 폭을 확인했다.
“캡을 씌우다 서리가 깨질 수도 있어요.”
“파열 가장자리에는 닿지 않는 지지대부터 세우죠.”
“지지대 세우는 동안 우회선은 닫아 둡니다. 낮은 유량이라도 지금 흐름을 바꾸면 종이띠가 먼저 움직여요.”
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이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그가 고집스럽게 교체를 요구한 것은 복구를 원해서였고, 지금 캡을 고집스럽게 천천히 내리는 것도 작업자이기 때문이었다. 둘은 말없이 지지대 간격을 맞췄다.
아리는 서리 침착과 기존 종이띠의 굽은 방향을 나란히 촬영했다. 확대화면에서 띠 끝이 복도 쪽으로 꺾인 것이 보였다. 그녀는 방향 표시를 투명 캡 밖에 붙이고 촬영 시각을 불러 주었다. 도한이 받아 적었다. 맨손으로 결정 하나를 건드리면 알 수 있을 것 같은 충동이 들었지만, 아리는 장갑 손가락을 캡 밖에 뒀다.
캡이 닫히자 파열부가 투명한 작은 방에 들어갔다. 팀장은 격리부 응답을 확인했고 아리는 우회선을 낮은 유량으로 열었다. 가는 배관을 따라 떨림이 왔다. 손가락에는 공기가 돌아오는 감각이 있는데, 복도의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은 절반뿐이었다.
가온이 기준값을 읽었다. 삼십팔 퍼센트. 사십육 명. 아리는 같은 숫자를 실제로 열린 통로의 안내판과 맞췄다. 들어오는 사람은 세고, 다시 나가는 사람은 뺐다. 아직 귀가한 인원으로 세지 않은 아이가 어머니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팀장은 교체 부품의 포장을 다시 닫았다. 아리가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려 하자, 그는 먼저 볼트 사진을 달라고 했다.
“이걸 자연파열이라고 쓴 건 내 판단입니다. 재조임 칸도 붙여야겠어요.”
“사진만으로 누가 했는지는 몰라요.”
“그건 나도 압니다. 다만 안 본 것처럼 서명할 수는 없죠.”
그의 이름 옆에는 복구 지연이 함께 남았다. 아리는 그 칸을 지워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우회운전 선택과 자신이 요구한 보존 범위를 같은 작업표에 썼다. 책임 있는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일은 쉬웠지만, 팀장이 이후 교대자에게 설명해야 할 시간을 대신 살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재질의 시험편은 인접 정비대에 있었다. 도한이 대조 준비를 하는 동안 아리는 캡 밖에서 볼트 머리와 눌림 자국의 각도를 읽었다. 시험편에 남은 조임 흔적과 비교하면 한번 풀렸다 다시 조여진 표시는 구별할 수 있었다. 힘을 가한 사람의 손이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아리는 그 빈칸이 싫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겨 놓은 손을 당장 찾고 싶었으나, 각도 몇 개를 이름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도한이 비교 화면을 저장하고 물었다.
“정비팀의 자연파열 설명은 이것으로 끝납니까?”
“격막이 오래된 건 그대로예요. 재조임도 남습니다. 어느 쪽이 파열에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는 더 봐야 해요.”
그녀는 사진 위에서 복도 방향 화살표를 다시 확인했다. 새 격막을 끼우는 순간 없어질 것은 낡은 부품만이 아니었다. 흰 결정의 자리, 종이띠의 굽음, 금속에 남은 작은 어긋남이 함께 사라질 뻔했다. 아리는 캡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다가 빛을 옆으로 옮겼다. 그 안에 남겨야 할 얼굴은 없었다.
임시숙소 담당자가 통로에 도착했다. 사십육 명 밖에 남은 주민들을 다시 이동시키는 동안 아리는 아이의 슬리퍼가 끼어 있던 수납낭을 보았다. 여자는 결국 짐을 들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빈 안내판 뒷면에 숙소 이동 시간을 써 달라고 했다. 오늘의 우회선 때문에 미뤄진 생활도 누군가는 보아야 했다.
아리는 시간을 써서 건넸다. 여자는 접지 않고 수납낭 위에 올렸다.
도한은 정비공구 대장을 점검구 앞으로 가져왔다. 토크렌치 규격을 대조하려던 팀장이 한 줄에서 손을 멈췄다. 반출 시각은 사고 전날 야간이었다. 공구 한 대가 나갔고, 승인 칸은 비어 있었다.
“야간작업이 있었습니까?” 도한이 물었다.
팀장은 그 빈칸을 오래 바라봤다. “이 대장에는 있다고 돼 있습니다. 승인된 작업은 아닙니다.”
아리가 몸을 기울였다. 투명 캡 안의 서리가 손전등 아래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옆에 떠오른 토크렌치 반출 한 줄도 지워지지 않았다. 새 격막 카트는 아직 문 앞에 있었고, 주민들의 짐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공구 규격을 읽기 위해 대장을 자신 쪽으로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