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상복 아래 새 짚신
방칠의 짚신은 사람 많은 데서만 느려졌다.
방칠의 짚신은 사람 많은 데서만 느려졌다.
대청을 나설 때에는 한쪽 발을 끌던 사내였다. 골목에서 상복 자락이 보이면 어깨까지 늘어뜨렸다. 그러나 생선전 뒤의 좁은 길에 들어가자 두 발이 번갈아 날렵하게 움직였다. 강복단은 엿 광주리를 멘 채 그 발을 따라갔다. 젖은 생선 비늘을 밟지 않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엿 사시오.”
아는 포목전 주인이 불렀다. 복단은 종을 흔드는 대신 손만 들었다. 늘 서던 자리를 지나치는 그녀를 보고 주인은 이상한 얼굴을 했다. 오늘 팔지 못한 엿은 내일 물러질 것이었다. 복단은 광주리를 고쳐 메고 사람들 뒤에 섞였다.
방칠이 멈춘 곳은 피맛골 어귀의 여막이었다. 문옆에 새 짚신이 걸려 있고, 늙은 주인이 굵은 손가락으로 신총을 꼬고 있었다. 방칠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복단은 곧바로 엿칼을 꺼내 맞은편 기둥에 기대었다. 비 맞은 엿의 가장자리를 잘라 입에 넣었다. 달고 눅눅했다.
여막 안에서는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복단은 문턱을 보았다. 아침 객주에 함께 왔던 두 사람의 신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앞코가 좁고 다른 하나는 왼쪽 신총이 바깥으로 벌어져 있었다. 방칠은 신을 벗지 않은 채 낮은 방으로 들어가다가 주인에게 꾸중을 들었다.
“새 신이라고 방바닥까지 밟아도 되나.”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 밟은 흙도 내가 닦지.”
방칠은 뒤늦게 신을 벗었다. 세 켤레가 문턱 아래 나란히 놓였다. 모두 같은 빛의 짚이었고, 코를 묶은 매듭도 같았다. 복단은 계산방에서 들었던 심부름꾼의 말을 떠올렸다. 새 신을 갈아 신고 서쪽으로 갔다고 했다. 어느 문 앞에서 갈아 신었는지까지는 아이도 보지 못했다.
광주리 끈이 어깨의 헐은 자리를 눌렀다. 그녀는 끈을 조금 옮겼다. 안쪽 목소리를 들으려면 이 기둥보다 문 가까운 곳이 좋았다. 그렇다고 엿장수가 손님도 없는 여막 입구를 떠나지 않으면 방칠의 눈에 띌 터였다.
“오늘 신 많이 팔았소?”
복단이 주인에게 물었다.
“비 온 다음 날은 잘 팔리지. 밑이 다 풀리니까.”
“저 앞코 좁은 것, 내 아들 발에도 맞겠네.”
“아들 발을 알아야 팔지. 아무거나 주고 반품하면 안 받아.”
주인은 걸린 짚신 하나를 내려 보여 주었다. 복단은 그것을 만지며 방 안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동전이 손바닥에서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씩 세다가 다시 한꺼번에 밀어 모으는 소리였다.
“나루 삯은 이만하면 되지.”
낮은 목소리는 방칠의 것이었다. 누군가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방칠은 술부터 다 마시라고 했다.
“성문 나서는 게 아니잖아. 서쪽 나루만 가면 돼.”
복단의 손이 짚신 위에서 멎었다. 주인이 값을 말했으나 듣지 못했다. 방칠은 아침에 북쪽 집으로 돌아갈 길이 멀다고 했고, 객주에서는 아내를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며 돌아가겠다고 했다. 지금 같은 상복을 입은 셋이 내일의 배 삯을 나누고 있었다.
“살 거요, 말 거요?”
주인이 물었다. 복단은 엿 한 조각을 잘라 내밀었다.
“발을 데려와서 사리다. 오늘은 이것이나 드시오.”
“발도 안 데려오고 장사꾼을 붙잡았군.”
주인은 투덜거리면서도 엿을 받았다. 복단은 맞은편 골목으로 돌아갔다. 방칠이 문을 보아도 광주리만 보이도록 몸을 돌렸다. 엿칼을 닦으며 기다리는 동안 객주에서 나온 민연화가 장꾼들을 피해 걸어왔다.
연화는 그녀를 보자 바로 부르려 했다. 복단이 칼을 든 손으로 낮게 가리키자 목소리가 멎었다. 연화는 여막을 지나쳐 기둥 뒤에 섰다. 머리 위 빨랫줄에서 축축한 천이 두 사람의 어깨를 스쳤다.
“셋 다 안에 있소.”
복단이 말했다.
“집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집이 셋 다 이 여막이면 맞는 말이지.”
복단은 방 안에서 들은 말을 전했다. 연화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려 하자 손을 눌렀다.
“여기서 이름 쓰지 마. 저자가 문 한번 열면 보겠다.”
연화는 종이를 도로 넣었다. 계산방의 조생원을 붙잡아 두느라 늦었다고 했다. 원래 쪽지를 가져올 수 없다는 그의 말을 만복이 다시 듣고 싶어 했고, 붉은 인장 있는 봉투도 펼친 채로 둘 수 없었다.
“종이는 종이대로 바쁘군.”
“아주머니 엿은요?”
복단은 광주리를 내려다보았다. 연화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자기 소매를 걷어 엿칼 아래 흘러내리는 물을 닦았다. 복단이 막으려 하자 연화는 이미 천을 접고 있었다. 새 소매 끝이 갈색으로 물들었다.
방 안에서 의자가 끌렸다. 복단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 골목은 양쪽 끝이 좁았다. 셋이 나오면 앞에서 부르고 연화가 뒤를 막으면 됐다. 적어도 채반에 놓였던 매듭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나오면 잡읍시다.”
“지금요?”
“꼬리를 보았으면 밟아야지, 놓아주면 굴로 숨소.”
연화는 여막 문을 보았다. 방칠이 떠날 때 문을 닫지 못하게 했던 것은 자신이었다. 그가 계금도 쌀도 받지 않고 나온 지금, 붙잡을 말을 입 안에서 고르고 있는 얼굴이었다.
“잡으면 무엇부터 묻습니까?”
“누가 돈을 줬냐고.”
“모른다고 하면요?”
“아까는 세 쪽지로 애를 먹이더니, 여기는 입이 셋이야. 하나는 열겠지.”
연화가 고개를 돌렸다. 골목 저편에서 아이 하나가 찢어진 종이를 주워 접고 있었다. 방칠이 목청을 높이면 그 아이부터 고개를 들 것이었다. 장터에 객주의 계금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 아침에 쌀을 받아 간 사람도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동전을 나누는 건 봤습니까?”
“소리를 들었고, 삯 이야기도 들었소.”
“저 사람들 돈일 수도 있지요. 그러면 여기서는 여막 주인만 우리를 기억하게 됩니다.”
복단의 얼굴이 굳었다.
“네가 들었으면 믿을 말이고 내가 들었으면 모자란 말이냐?”
연화는 빨랫줄의 천을 밀어 얼굴을 보였다.
“아주머니가 못 들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쪽이 무엇이라 말할지 생각한 겁니다.”
“그 생각 하는 동안 셋 다 달아나면?”
연화는 대답이 늦었다. 복단은 그 침묵이 싫었다. 아침에도 사흘, 계산방에서도 해 지기 전. 기다리는 날을 적는 사람과 그 날의 밥을 마련하는 사람의 손은 늘 달랐다.
방 안에서 방칠이 웃었다. 복단은 한 발을 내디뎠다. 연화가 그녀의 광주리 끈을 잡았다. 몸을 잡지는 않았으나 무거운 끈이 당겨져 어깨가 뒤로 젖혀졌다. 복단이 돌아보자 연화는 즉시 놓았다.
“죄송합니다.”
“사과할 시간에 저 발 봐.”
연화는 정말로 발을 보았다. 문턱 아래 좁은 앞코와 바깥으로 벌어진 신총을, 그 옆 방칠의 두 짚신을 차례로 살폈다.
“아침 대청에 남은 자국과 같네요. 왼쪽 신총이 벌어진 분은 마루 끝에 서 있었습니다. 방칠은 앞코를 끌어 눌렀고요.”
복단이 그녀를 보았다.
“종이만 본 줄 알았더니.”
“쌀자루가 지나가는 길을 비켜 달라고 했을 때 봤습니다. 저 셋만 자리를 옮기지 않아서요.”
연화는 여막 주인이 꼬던 신총을 바라봤다. 걸린 새 신들의 매듭이 문턱 아래 세 켤레와 같았다. 주인이 고친 신인지, 아예 새것을 팔았는지를 물어볼 수 있었다. 복단은 잠깐 입술을 다물고 생각했다. 셋을 지금 붙들면 여막 주인은 손님을 빼앗겼다며 문을 닫을 것이었다.
“내일 어느 때 배를 타는지는 알아야 해.”
“주인에게 묻지요. 셋이 나간 뒤에요.”
“오늘 밤 떠나면 내일 같은 건 없어.”
“그럼 밤에 가는 길도 부탁해야 합니다.”
연화는 품의 작은 돈주머니를 만졌다. 만복에게서 받은 조사비가 아니라 오늘 먹을 값을 넣어 둔 주머니였다. 복단은 그 손을 보고 광주리 안쪽을 헤쳤다. 아직 젖지 않은 엿을 골라 무명에 쌌다.
“이건 내가 냅니다. 손님 하나 못 잡는 동안 장사 밑천까지 다 나가면, 나는 내일 저자보다 네가 더 미울 거요.”
연화는 주머니를 거두지 않았다.
“그럼 저는 주인의 기다릴 삯을 내겠습니다.”
방칠이 문을 열었다. 둘은 말을 멈추고 빨랫줄 뒤로 비켰다. 세 사람이 나왔고, 방칠은 품에 동전 꾸러미를 넣었다. 다른 사내는 신을 신다가 신총이 조인다며 주인에게 발을 내밀었다. 주인이 툭 쳐 늘려 주었다.
“아침에 새 신 달라더니 저녁까지 발이 컸나.”
“길 떠나면 편해야지.”
세 사람은 서쪽 골목으로 사라졌다. 복단은 잡지 못한 등을 오래 보았다. 새 짚신이 진흙에 잠기고 다시 올라올 때마다, 지금 따라가면 되는 일 같았다. 그러나 연화는 골목으로 뛰지 않고 여막 문턱으로 갔다.
주인은 두 사람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이번에는 발을 데려왔소?”
복단은 엿꾸러미를 그 앞에 놓았다.
“저 세 손님 별칭을 아시오? 내일 나루에 갈 모양인데, 객주에서 돌려줄 물건이 있어 찾으려고 하오.”
주인은 상복 입은 사람들에게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다. 연화가 매듭을 맞춰 본 일만 짧게 말했다. 주인은 방칠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다며 외상표를 꺼냈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별칭으로 신값을 달았고, 저녁에 동전으로 갚았다. 복단은 별칭을 들으며 아침에 보았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렸다. 연화는 그 옆에 짚신 모양을 작은 그림으로 남겼다.
“새벽에 여기를 지나 서강 나루로 간다 했어. 안 보이면 나도 모르고.”
“지나가면 객주로 아이 하나만 보내 주시겠습니까?”
주인은 돈을 내다보았다. 연화가 기다릴 삯을 놓자 그는 바로 집지 않았다.
“손님 팔았다는 말은 마시오. 나는 신 판 사람이지.”
복단이 엿칼을 광주리 안에 넣었다.
“신 파신 말을 들었소. 다른 것은 우리 발로 볼 거요.”
주인은 외상표를 덮었다. 연화가 적은 별칭을 다시 읽어 달라 하자 짜증을 냈지만, 끝 글자 하나가 틀린 것을 보고 자기 손가락으로 짚어 주었다. 두 사람이 일어나려는데 그는 술상 아래로 손을 넣었다.
“이 동전도 적어 둬. 아까 저자가 낸 것인데 구멍이 막혀서 줄에 안 들어가더군.”
동전 구멍에 누런 삼실이 단단히 감겨 있었다. 연화는 실을 풀지 않고 손바닥에 놓았다. 객주 마당에서 화물 꾸러미를 묶을 때 보았던 삼실이었다. 닳은 부분에 매듭이 또 하나 숨어 있었다.
복단이 엿 광주리를 다시 멨다. 어깨는 아침보다 아팠고 광주리는 거의 그대로 무거웠다. 그녀는 동전을 보는 연화에게 말했다.
“내일은 글 쓰다가 새벽 놓치지 마시오.”
“먼저 나루로 가 있겠습니다.”
연화는 동전과 별칭을 적은 종이를 각각 싸서 품에 넣었다. 저녁 장터에서 쌀 냄새가 났다. 둘은 그 냄새가 나는 길 대신 서쪽 골목 입구까지 걸어갔다. 방칠의 발은 이미 보이지 않았지만, 내일 그가 지나가야 할 물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