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39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길만수의 표석

길상은 형의 손수건을 손에 쥔 채 관아 밖에서 밤을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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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은 형의 손수건을 손에 쥔 채 관아 밖에서 밤을 새웠다.

서필주의 심부름꾼이 들어온 뒤 아전은 장보의 고변을 다시 묻겠다고 했지만, 날이 저물자 문을 닫았다. 두칠은 포승 없이 나왔다. 이튿날 다시 오라는 말이 붙었다. 길상은 그것이 다행인지, 하루 미룬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형 손수건에는 왜 다섯 표가 있죠?”

그가 물었다. 연화는 숟가락과 나란히 놓을 자리를 찾았다. 길상은 손수건을 거두었다.

“제가 먼저 알고 싶은 게 있어요. 형을 직접 본 사람이 지금 여기 누굽니까?”

막동은 문턱에 앉았다.

“내가 봤소. 갱목을 옮기는 셋째 작업막에서.”

“언제까지요?”

“덕수에게 담배와 약을 부탁받아 나올 무렵. 보름 남짓 됐소. 그 뒤는 못 봤어.”

길상은 손수건을 폈다. 형을 봤다는 말만 듣고 얼굴이 밝아졌다가, 마지막 날짜를 듣고 다시 어두워졌다.

“내 형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소?”

“목재를 나르고 받쳤소. 칠복이 있던 막과 같았지만 같은 줄에서 일했는지는 모르오.”

“칠복은 어딨습니까?”

연화가 끼어들었다. “그분의 마지막 상태도 따로 확인 중입니다.”

길상은 한숨을 쉬었다. 직접 물은 답을 연화가 막는다고 생각했다. 막동이 먼저 말했다.

“빈 멍석을 봤소. 사람이 없어진 뒤였어. 살아서 옮겼는지, 죽어서 옮겼는지 내 눈으로 못 봤소.”

“그러면 형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뜻이네요.”

“맞소.”

막동의 대답은 잔인하게 짧았다. 길상은 원망할 말을 찾다가 찾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두칠이 관아에 다시 가서 전날 한 말을 확인받는 동안, 범수는 길상이 손수건을 받았다는 장터로 함께 갔다. 두칠에게는 새 죄목이 더해지지 않았고 다음 소환까지 객주로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받았다. 길상은 붉은 실을 왼팔에 매었던 짐꾼을 찾아야 했다. 장터에는 붉은 실을 파는 좌판이 세 곳이나 있었고, 오른팔에 맨 사람까지 세면 한 손으로 셀 수 없었다.

좌판 주인 하나는 길상의 손수건을 보자 얼굴을 알아보는 척했다. 길상은 금세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주인은 그 색 실을 자기 집에서 팔았으니 분명 자기 손님일 것이라며 실값부터 요구했다. 범수가 돈을 주려다 손을 거뒀다. 붉은 실을 산 손님 수를 묻자 주인은 웃으며 셀 수 없다고 했다. 누군가의 간절함은 장터에서 곧바로 물건값이 되기도 했다.

길상은 화를 참지 못하고 좌판의 실타래를 집었다. 범수가 그 손을 멈추게 했다.

“이걸 가져가도 형을 찾을 수는 없어.”

“저 사람이 거짓말한 건요?”

“그건 저 사람이 책임질 일이지, 네 손이 훔친 걸 책임질 일은 아니야.”

주인은 실타래를 받아 챙기며 길상을 흘겨봤다. 조금 떨어진 떡장수가 두 사람을 불렀다. 그는 실을 사 간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손수건을 전달하던 날 붉은 실을 맨 짐꾼이 자기 떡을 사 먹었다고 했다. 길상은 떡값을 물었다. 떡장수는 이미 받았다며 봉지 하나를 그에게 쥐여 줬다.

“그 사람이 말하더군. 전달할 물건을 먹던 손으로 만져서 미안하다고. 그래서 손을 물에 씻고 줬어.”

길상은 손수건의 흰 부분을 살폈다. 기름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그는 형의 글을 먼저 보느라 건네는 사람의 손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떡장수의 말은 자신이 본 빈자리를 조금 채웠다.

“붉은 실을 맨 사람을 전부 붙잡아 형 얘기를 물을 건가?”

범수가 묻자 길상이 어깨를 떨었다.

“그러고 싶었죠.”

그는 손수건을 다시 꺼냈다. 실을 맨 위치보다 손수건을 건네며 한 말이 기억났다.

“세 번째 돌은 위가 깨졌다고 했어요.”

“무슨 돌?”

“형이 그걸 알 거라고. 나는 몰라서 그냥 들었어요.”

장터 입구에서 기다리던 막동이 말을 듣자 길상에게 다섯 작업막 바깥에 있던 작은 돌 다섯 개를 그려 달라고 했다. 길상은 본 적이 없어 못 그렸다. 막동이 대신 흙바닥에 그렸다. 각 돌에는 세모 하나씩이 다른 높이에 찍혀 있었고, 셋째 돌은 상단이 깨져 있었다.

“이건 내가 본 모양이오. 네 형이 말한 그 돌인지 확인할 수는 없어.”

“어디 있습니까?”

“광산으로 들어가는 길, 바깥 울타리 안쪽.”

길상은 바로 가자고 했다. 범수가 길을 막았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막동을 다시 보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겨야 했다. 길상은 그제야 막동의 귀 끝을 보았다. 다녀온 사람에게 또 가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았다.

“밖에서 보이는 곳은 없습니까?”

막동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흙그림의 다섯째 돌 옆에 선을 하나 더 그었다.

“물자길이 꺾이는 낡은 축대가 있소. 그 축대에 같은 세모가 한 번 더 새겨져 있었어. 나르는 사람들은 울타리 안까지 안 들어가고도 길을 알 수 있게.”

세 사람은 광산 대신 축대로 가기로 했다. 이틀 길을 함께 걸으며 범수가 길상의 앞을, 막동이 뒤를 지켰다. 길상은 이번 길에서 형을 데리고 나올 수 없음을 알고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축대 앞에는 풀을 베는 농부가 있었다. 그는 낯선 사람들이 돌을 살피자 경계했다. 연화도 관아에서 받은 종이를 챙겨 하루 늦게 따라와 손수건을 보여 주었지만 농부는 그 물건을 모른다고 했다. 다만 비가 오면 축대 틈에서 은빛 흙이 흘러내려 논을 막는다는 불평을 했다. ‘은빛’은 빛깔의 표현이었다. 은광의 광석이라고 곧장 기록하지 않았다.

길상은 쪼그려 앉아 돌을 하나씩 만져 보았다. 첫째에는 가운데 세모, 둘째에는 아래 세모, 셋째에는 위가 깨진 세모가 있었다. 막동의 흙그림과 자리와 흠이 같았다. 넷째와 다섯째는 새로 덧칠한 회벽 아래에 가려져 있었다.

“이만하면 형 손수건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농부는 회벽을 뜯지 말라고 했다. 지난 홍수에 축대가 한 번 무너졌고, 그 부분만 겨우 세웠다고 했다. 길상은 넷째 표도 보고 싶었다. 그가 손톱으로 회벽 귀퉁이를 긁자 젖은 모래가 떨어졌다. 바로 아래 논에는 막 수문을 열어 둔 농부의 모가 있었다. 돌 하나 보겠다고 축대를 허물면 남의 한 철을 떠내려보낼 수 있었다.

“여기선 멈출게요.”

길상은 손을 털었다. 농부가 그를 잠깐 보고는 수문을 닫으러 갔다. 막동은 길상이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고 자기 발끝에 묻은 회가루를 닦았다. 한 번 안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다시 열어야 할 문은 축대가 아니라 관아 쪽에 있었다.

연화는 셋째 표의 깨진 부분을 여러 각도에서 그렸다. 한 장은 농부에게 남겼다. 그가 눈앞의 돌을 지키는 사람이지 그들만의 단서를 지켜 주는 하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농부는 그림 뒤에 논 이름을 적게 했다. 이름이 있어야 나중에 누구의 밭이 손상됐는지 따질 수 있다고 했다.

“길의 표라는 데는 가까워졌소.”

막동이 말했다.

“누가 형에게 그려 줬는지는 여전히 모릅니다.”

길상은 손수건을 돌 위에 올려 보았다. 천에 그려진 세모의 높이는 셋째 돌의 깨진 자리와 같았다. 그림이 축대를 보고 그린 것인지, 같은 규칙을 다른 데서 배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형의 손수건을 몸에 붙이고만 다녔던 길상에게 그 작은 일치는 처음 밟아 보는 땅처럼 단단했다. 그는 천을 털어 다시 접었다.

“형이 살아서 말해 줄 때까지 이 돌은 여기 있어야 해요.”

농부가 바로 대답했다.

“그건 내 논둑이니 내가 지키지. 대신 너희도 사람들이 밤에 뭘 나르는지 들으면 알려 줘. 물이 더러워지는 건 내 몫이거든.”

길상은 그 약속을 했다. 형 한 사람의 행방이 다른 집의 논물과 닿아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 때문에 약속을 미루지는 않았다.

길상은 화가 나서 돌을 차려다가 멈췄다. 자기 발이 닿으면 이미 깨진 셋째 돌의 모양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는 대신 고인 물을 바가지로 퍼냈다. 세모들이 햇볕에 드러났다. 일을 하고 나니 화가 조금 가라앉았다.

농부가 그 모습을 보다가 작은 정보를 내놓았다.

“지난달엔 사람들이 밤마다 여기서 물동이를 옮겼소. 물동이 밑에 농장 창고라고 적힌 종이를 붙여 놨더군.”

“보셨습니까?”

연화가 물었다.

“내가 읽지는 못해. 아들이 읽어 줬지.”

아들은 낮에 논 끝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종이에 적힌 글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나 매번 같은 종이가 붙은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농장 창고’, 다른 날은 숫자 둘만 있었다. 아들이 손가락으로 그 숫자를 그리자 연화가 받아 적었다. 물동이와 숫자 사이의 관계도 아직 모른 채였다.

돌아오는 길에 서필주의 수결이 찍힌 관아 물품표와 축대 표를 나란히 보았다. 모양은 달랐지만 ‘농장 창고’라는 글자가 이어졌다. 서필주가 직접 돌에 표를 새겼다는 뜻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가 반려한 문초 대상과 관아로 들어간 물품 이름을 다시 물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길상은 손수건을 연화에게 잠깐 빌려주었다. 형에게 돌아갈 물건이라며 전달 날짜를 적게 했다. 연화가 웃자 길상이 말했다.

“당신들도 종이 없이 남의 물건 빌리진 않잖아요.”

“맞습니다. 빌린 건 돌려드릴게요.”

길상은 셋째 돌의 깨진 위쪽을 마지막으로 봤다. 형이 직접 그 모양을 보았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형이 남긴 말로 길 하나를 실제로 찾았다. 그가 받은 첫 답이었다.

그 답을 얻은 발은 저녁이 되자 아팠다. 길상은 그 통증마저 형에게 전할 말로 남겨 두었다.

그날 저녁 관아에서 전갈이 왔다. 서필주는 축대와 광산의 연관을 묻는 청원을 ‘농장 창고의 사적인 운송 문제’라며 돌려보냈다. 반려장 끝에는 길상이 낮에 돌에서 본 숫자와 같은 두 자리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