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랑주 5의 유언
이름을 부르지 않는 줄
리오 박은 첫 번째 의자를 잘못 놓았다.
리오 박은 첫 번째 의자를 잘못 놓았다.
총회장 앞줄에 남겨 둔 의자는 휠체어 한 대가 들어가자 뒤의 길을 막았다. 사람들이 옆으로 비켰고, 이의신청서를 쥔 노인은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리오가 의자를 들자 노인이 손바닥을 폈다.
“날 들라는 게 아니야. 그걸 치우라고.”
“압니다.”
“알면 길부터 만들어.”
리오는 대답하지 않고 의자를 접었다. 오늘은 말보다 먼저 틀린 것이 생겼다. 빈자리를 만들자 뒤에 서 있던 여자아이가 할머니의 발판을 살폈다. 발뒤꿈치가 안쪽으로 접혀 있었다. 아이는 익숙하게 그것을 펴 주었다.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 전날 배당 지급을 멈춘 자리에서 자기 돈을 포기한다고는 하지 않겠다던 사람이었다. 리오는 그녀의 계약서보다 아이의 작은 손을 먼저 봤다.
“할머니도 신청하러 오셨습니까?”
“왔는데, 제 아이가 보호자로 적혔어요.”
여자가 신청서를 내밀었다. 아이는 리오의 얼굴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할머니 무릎에 놓인 담요의 접힌 부분만 폈다. 자기가 잘못 적은 것처럼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벽에는 삼백칠십 명 후보표가 걸려 있었다. 개인 진단 대신 신청번호와 심사 구간, 바뀐 기준만 보였다. 숫자를 숨기지 않으려고 크게 뽑았더니, 사람들은 자기 번호보다 마지막 줄을 먼저 찾았다.
리오는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 표는 탑승권이 아닙니다.”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은 어제도 들었어.”
“오늘도 틀리게 드릴 수는 없습니다.”
목소리가 세게 나갔다. 리오는 마이크를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죄송합니다. 바뀐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배당 정지 뒤에 담보권자들이 협상에 응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직 봉인을 푼 자리는 없습니다. 그동안 배정 기준에서 빠진 사람을 확인합니다.”
말을 마치자 진아리가 총회장 뒷문으로 들어왔다. 작업복 한쪽에 흰 가루가 묻어 있었다. 흡착통 프레임을 맞추다 온 손에는 장갑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공개판의 삼백칠십을 보고 곧장 권도한 옆으로 갔다.
“이 숫자 아래 한 줄 더 필요합니다.”
도한이 화면을 돌렸다. 아리는 어제 승인받은 지출표가 아니라 그 전날의 실물 검사표를 열었다.
“흡착통만 달면 삼백칠십이라고 말했죠. 그런데 도킹창과 예비전력 검사는 삼백육십팔에서 멎어 있습니다. 그 두 사람분을 시험도 안 하고 더할 수는 없어요.”
리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또 잘못된 숫자였다. 자기가 세우고 싶어 했던 명단 맨 아래 두 줄이 떠올랐다.
“그러면 다시 줄여야 합니까?”
“후보를 지우기 전에 운용 한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금은 새 통 장착도 끝나지 않아서 삼백오십육입니다. 삼백칠십은 확보하려는 목표예요. 전력 쪽 두 사람분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요.”
도한이 상태판을 바꿨다. 후보계획 삼백칠십. 현재 장착 흡착통 기준 삼백오십육. 전력·운항 검증 상한 삼백육십팔. 그 아래에는 절차 가능한 좌석 이백삼십이, 금융봉인 백팔십팔이 따로 남았다. 흡착통을 늘려도 나머지 한계를 넘겨 탈 수는 없었다.
재단 운영직원이 곁으로 왔다.
“이러니까 정리가 끝난 뒤에 공개하자는 겁니다. 주민들은 숫자가 바뀌면 전부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오는 잠시 그 말에 기대고 싶었다. 어제는 배당, 오늘은 두 자리. 설명할수록 자신이 빼앗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리가 자기 장갑을 말아 쥐었다.
“안 바꾸면 실제 배에 올라갈 때 거짓말이 됩니다.”
리오는 마이크를 들고 숫자를 다시 읽었다. 마지막 두 명이 누구냐는 질문이 바로 나왔다. 그는 아직 그 두 사람을 정한 것이 아니며, 아리와 운항팀이 실제 수용 조건을 확인하는 동안 후보 심사는 계속한다고 답했다.
설명 뒤에도 욕은 남았다. 문밖까지 나갔던 노인이 다시 들어와 앞줄에 앉았다. 이번에는 길이 막히지 않았다.
이의신청 마감 때 접수된 것은 마흔두 건이었다. 리오는 그 숫자가 마흔두 자리와 같지 않다는 사실부터 배웠다. 한 사람의 상태가 두 번 입력된 경우도 있었고, 한 신청서에 가족 넷의 문제가 묶여 있기도 했다.
의료팀은 옆 상담실에서 당사자를 만났다. 추첨으로 뽑힌 주민 참관인들은 진단서가 아니라 기준 적용과 결과 전달 과정을 보았다. 총회장에서는 순번이 불릴 때마다 누군가 일어났고 누군가는 그대로 앉았다. 아까의 여자아이는 엄마가 불려 가자 할머니 곁으로 의자를 당겼다.
“이름 부르면 안 돼요?” 아이가 물었다.
리오가 옆에 앉았다. “여기 있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아픈 이야기를 다 알리고 싶지 않을 수 있거든.”
“할머니는 번호를 못 외워요.”
리오는 대답을 멈췄다. 아이가 할머니 손바닥에 그려 둔 작은 꽃을 보여 주었다. 같은 꽃이 신청서 귀퉁이에도 있었다.
“제가 이거 보라고 했어요.”
그는 꽃 옆의 번호를 확인한 뒤 안내 담당자를 불렀다. 할머니가 원하면 대기하는 동안 안내자가 곁에 있게 했다. 이름을 크게 외치지 않는다고 다 배려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기억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줄은 여전히 잘못 놓인 의자와 같았다.
점심 배식 때 리오는 자기 식판을 받지 못했다. 줄을 정리하다 놓쳤다. 아리가 식힌 영양죽 두 개를 들고 왔다.
“첫 번째 것은 제 겁니다.”
“누가 뺏는답니까.”
“대표들은 배고프면 남의 것까지 결정하니까요.”
리오는 웃지 못하다가 숟가락을 받았다. 아리는 옆 벽에 기대 앉았다. 오른쪽 귀가 먹먹한지 고개를 잠깐 기울였다. 리오는 괜찮으냐고 묻지 않고 자기 쪽 소음을 줄였다.
“두 자리, 구할 수 있습니까?”
“예비전력을 더 쓸 수 있는지 시험해야 합니다. 쓸 수 있다고 정해 놓고 시험하진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기다릴 사람은요?”
아리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저도 여기서 밥 먹고 있습니다. 숫자만 보고 돌아가면 오늘 밤 쉽게 잠들 것 같아서.”
통로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여자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엄마였다. 상담실 문은 닫혀 있었고, 여자는 문밖의 수도대에 손을 짚고 있었다. 리오가 다가가려 하자 그녀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추가로 부탁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했겠죠. 어제 내 돈 얘기를 했으니까.”
리오는 부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잠깐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자는 물을 마셨다. “가족 명단을 복사하면서 보호자 칸에 아이가 남았대요. 실제로 할머니를 씻기고 옮기는 건 저고요. 투자등급이 없어져서 밀린 게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잘못 들어간 거예요.”
“수정됩니까?”
“확인 중이에요. 제가 하는 일을 남 앞에서 증명해야 할 줄은 몰랐네요.”
그녀는 리오에게 서류를 보여 주지 않았다. 그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이를 찾는 소리가 나자 여자는 컵을 놓고 돌아갔다.
오후에 첫 결과가 나왔다. 만성질환 진료가 다른 기관에 남아 누락된 신청, 실제 보호자와 전산 가족대표가 달랐던 신청, 이미 반영된 사유를 다시 제출한 신청이 구분됐다. 리오는 승인 건수만 전광판에 올리려다 멈췄다. 반영되지 않은 사람도 답을 받아야 했다.
리오의 동료가 종이를 들고 왔다. 외벽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공개된 고위험 우선군에 자신의 번호가 없다며 작업 흉터를 보여 주려 했다.
리오가 소매를 잡았다.
“여기서 그러지 마.”
“넌 봤잖아. 내가 어느 구역에서 일했는지.”
“봤어.”
“그러면 한마디 해. 저 사람들은 내 얼굴도 몰라.”
리오는 상담실 문을 보았다. 자기가 들어가서 한마디 하면 담당자가 다시 볼지도 몰랐다. 그것을 특별한 부탁이 아니라 현장 확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다.
“같이 작업한 날은 확인해 줄게. 심사 순서는 바꾸라고 하지 않겠어.”
동료의 손이 소매에서 떨어졌다.
“예전 같으면 먼저 들어갔을 텐데.”
“예전처럼 하면 다른 사람도 자기 대표를 데려와야 하니까.”
동료는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리오는 그가 나가는 등을 보고 서 있었다. 자기가 옳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보다, 앞으로 같이 일할 때 그 사람이 돌아볼지 모른다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해가 없어서 저녁은 배식 종으로 왔다. 심사팀은 마흔두 신청 가운데 열일곱 건을 조정했다고 알렸다. 나머지 스물다섯 건에는 각각 적용한 기준과 재확인을 요청할 경로를 돌려주었다. 열일곱 건이 모두 새로운 탑승자를 뜻하지는 않았다. 중복 정정, 보호자 연결, 위험심사 구간 변경이 섞여 있었다.
후보계획의 정원은 삼백칠십으로 유지됐다. 의료팀이 검토한 우선군과 일반 추첨 대기군의 배치는 바뀌었지만 금융봉인은 여전히 백팔십팔이었다. 실제 탑승을 확정한 사람은 없었다.
여자가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나왔다. 아이는 앞에서 문을 잡았다.
“보호자 연결은 고쳤어요.” 여자가 말했다.
리오는 다행이라고 말하려다 그녀의 얼굴을 봤다. “아직 같이 탈 수 있다는 뜻은 아니죠.”
“네. 그래도 아이에게 제 일을 맡긴 표는 아니게 됐어요.”
그녀는 계약서를 넣은 가방을 고쳐 멨다. 배당에 대한 이의도 계속하겠다고 했다. 리오는 그러시라고 답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고마움으로 다른 권리까지 접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리오는 바닥의 꽃 그림을 주웠다. 아이가 그린 종이였다. 신청번호가 있는 윗부분은 엄마가 가져갔고 꽃만 남았다. 그는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고 안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리는 일찍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흡착통 장착과 전력 재시험이 그녀를 기다렸다. 리오도 접었던 의자를 펴지 않았다. 내일 같은 사람이 다시 오면 같은 길로 들어올 수 있어야 했다.
그때 공개판 한쪽에서 서로 다른 두 경고음이 났다.
거주지 게시판의 태양선량 표시는 녹색이었다. 주민 감시 회선으로 들어온 관측 패킷에는 상승 표지가 붙어 있었다. 리오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값의 시각과 단위부터 읽어야 한다는 말을 이제는 기억했다.
도한이 아리에게 연결했다. 작업장 소음 속에서 그녀가 물었다.
“지금 값입니까, 예측값입니까?”
리오는 화면 아래를 읽었다. 같은 관측 패킷 번호였다. 하지만 한쪽은 원시 관측을 표시했고, 다른 쪽은 보정 뒤 전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사람들 다 나갔습니까?” 아리가 물었다.
“거의요.”
“돌아오라고 하진 마세요. 먼저 무슨 차이인지 확인해야 해요. 대신 판은 끄지 마세요.”
리오는 주민들이 드나들던 문을 보았다.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돌아올 때마다 들고 오는 숫자가 바뀌었다. 그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틀린 숫자를 안 보이게 치우지 않겠다는 약속뿐인지도 몰랐다.
그는 총회장 전등 절반만 껐다. 꽃이 놓인 안내 책상과 두 개의 선량표는 그대로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