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훔친 은의 무게
밤새 담장 밖 휘파람은 세 번 울렸다. 두칠은 나가면 길을 보여 준다는 뜻이라고 했지만 범수는 빗장을 풀지 않았다. 아침에 문을 열자 문턱에 붉은 끈 한 토막이 놓여 있었다. 두칠은 자기 신발끈이 아닌 것을 보고도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범수가 끈을 남겨 둔 채 아이를 국수집까지 데려갔다.
밤새 담장 밖 휘파람은 세 번 울렸다. 두칠은 나가면 길을 보여 준다는 뜻이라고 했지만 범수는 빗장을 풀지 않았다. 아침에 문을 열자 문턱에 붉은 끈 한 토막이 놓여 있었다. 두칠은 자기 신발끈이 아닌 것을 보고도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범수가 끈을 남겨 둔 채 아이를 국수집까지 데려갔다.
국수집 할머니는 두칠에게 먼저 욕을 했다.
“배고프면 국수를 달라 하지, 남의 처마에 종이를 숨겨?”
두칠이 고개를 숙이자 할머니는 범수를 향해 빈 그릇을 내밀었다. 국수값을 받으려는 손이었다. 범수가 돈을 꺼내는 동안 골목 끝에서 장보가 나타났다.
“때맞춰 모였군.”
장보는 혼자가 아니었다. 관아의 아전 하나가 따라왔다. 아전은 사람을 묶을 포승 대신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연화는 그 차이를 보고서야 숨을 조금 놓았다.
“저 아이가 은을 빼돌렸다고 하셨습니까?”
아전이 장보에게 물었다.
“내 자루를 들고 도망쳤지.”
“자루가 있었습니까?”
“내가 왜 없는 자루를 찾겠소?”
“자루가 있었다는 것과 그 안에 은이 있었다는 것은 다릅니다.”
장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아전이 연화 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전은 두칠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짐 끈을 풀었느냐?”
“풀었어요. 안쪽에 종이가 끼어 있었어요.”
“허락은 받았느냐?”
“못 받았어요.”
연화는 두칠의 어깨에 손을 얹지 않았다. 아이가 자신의 잘못한 부분을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있게 뒀다. 장보가 그 틈을 잡았다.
“보시오. 훔쳤다고 제 입으로 했네.”
“종이를 뗀 건 맞아요. 은은 못 봤어요.”
“못 본 놈이 가져가 숨겼겠지.”
아전은 두루마리를 폈다. 은 두 냥, 혹은 은가루 한 줌이 아니라, 묵직한 작은 자루 하나라고 적혀 있었다. 밑에 장보의 수결만 있었다. 맡긴 사람도, 지켜본 사람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 무게라면 아이가 뛰어 온 길에서 흔적이 남았겠소.”
범수가 말했다.
두칠은 어제 신발 밑창이 찢어져 걸을 때마다 피가 났다. 발자국이 남았을 길을 기억했다. 국수집 할머니가 대꾸했다.
“내 앞을 지날 땐 한 손에 짐 끈만 들고 있었어. 빈 끈인지 꽉 찬 끈인지는 모르지. 내가 저 애 짐까지 재 봤나.”
장보가 웃었다.
“그러니까 아무도 모른다는 거요.”
“나는 내가 본 데까지 말한 거요. 당신도 그렇게 하시오.”
할머니는 돈을 세다 말고 장보를 똑바로 보았다. 범수는 입가를 가렸지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두칠은 처마 아래 그릇 덮개를 가리켰다. 종이를 끼워 둔 곳이었다. 아전은 직접 손대지 않고 할머니에게 덮개를 내려 달라고 했다. 덮개 밑면에는 약짐에서 배어 나온 기름 얼룩이 있었고 종이 모서리에도 같은 색이 있었다. 얼룩은 종이의 이동 경로를 하나 더 만들었을 뿐, 은이 없었다는 증명은 아니었다.
장보가 종이를 내놓으라고 했다. 연화는 봉한 종이를 아전에게 보였다.
“두칠이 어제 약짐 끈에서 떼어 왔다고 말한 물건입니다. 할머니께서 처마에 끼우는 것은 봤고, 그 뒤 계속 감시하지는 못했습니다. 봉한 시각은 어젯밤이고요.”
“내용은?”
“열일곱 이름과 수결 하나입니다. 누가 작성했는지는 확인 중입니다.”
장보는 종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전이 두루마리로 그의 손등을 가볍게 쳤다.
“나한테도 아직 안 보였소.”
“내 짐에 있던 거요.”
“그런데 왜 도둑맞았다는 목록에는 은만 있습니까?”
장보가 말을 고르는 사이, 골목 쪽에서 길상이 나타났다. 광산에 들어간 형 길만수를 찾는 그는 밤새 장보의 뒤를 밟았다고 했다. 몰래 따라온 것을 자랑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어젯밤 장보가 새 자루를 주문했어요. 은자루와 같은 크기로.”
장보가 코웃음을 쳤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자루 하나 더 사면 죄가 되나?”
“죄라는 게 아니죠. 두칠이 훔쳤다는 자루와 같다고 하시기 전에, 원래 자루가 어느 것인지 보여 주시라는 겁니다.”
길상의 손에는 자루집 주인이 준 주문표 사본이 있었다. 새 자루 한 장, 붉은 끈 한 토막. 주문 시각은 두칠이 종이를 꺼낸 뒤였다. 그것만으로 장보가 꾸몄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자루를 찾는 사람이 똑같은 자루를 새로 만드는 이유는 물을 수 있었다.
“운송을 계속해야 해서 샀소.”
장보가 대답했다.
“그럼 남은 은은 어디 있습니까?”
연화가 물었다.
“아이에게 훔쳤다는 은과, 계속 운송하려던 은을 구분해 주십시오.”
아전은 두루마리 뒷면에 두 개의 칸을 그었다. 장보는 처음에는 한 자루라더니, 이윽고 절반을 따로 뺐다고 했다. 얼마나 뺐느냐고 묻자 다시 말을 바꿨다. 두칠이 그 틈에 사라지려 하자 범수가 앞을 막았다.
“도망치면 저 사람 말이 옳아지는 건 아니지만, 네 말 들을 사람이 줄어든다.”
“알아요.”
두칠은 주먹을 폈다. 할머니가 그의 앞에 국수 한 그릇을 더 놓았다.
“먹으면서 듣거라. 배고픈 증인은 자꾸 급해져.”
아전은 장보의 고변을 당장 받아 적지 않았다. 자루가 실제로 있었는지, 은의 중량을 누가 확인했는지, 새 주문이 왜 필요한지 각각 따져 보겠다고 했다. 장보가 화를 내자 두루마리를 말아 겨드랑이에 꼈다.
“짐을 달아 본 저울이 있으면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범수가 말했다. 장보는 저울이 물에 젖어 버려졌다고 했다. 그러나 두칠은 그가 말한 장소의 저울이 멀쩡하다고 했다. 전날 자신이 그 저울을 들고 강을 건넜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이가 저울까지 훔쳤다는 거요?”
장보가 비꼬자 두칠은 고개를 저었다.
“배삯 대신 건네 주라고 시켰어요. 나루 순갑 아저씨 창고에 걸려 있어요. 손잡이엔 빨간 끈이 감겨 있고.”
아전은 그 자리에 사람을 보내자고 했다. 장보가 버려졌다고 했던 대저울이 순갑의 창고에서 나왔다. 순갑은 저울을 받았다는 사실만 인정했다. 그것으로 어제 은자루를 달았다고 한 적은 없었다. 저울 접시 아래에는 오래된 먹빛 자국이 붙어 있었지만 새 은가루인지 다른 짐의 먼지인지 가를 수 없었다.
장보는 저울을 보자 “버렸다는 건 그 저울을 더는 쓰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고쳤다. 아전은 그 말도 그대로 적었다. 연화는 어젯밤 두칠이 종이를 건넨 시각을 한 번 고친 것도 숨기지 않았다.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인지 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어느 말이 물건과 맞는지를 보는 자리였다.
아전은 이미 무게를 아는 추를 걸었다. 저울대가 수평을 잡지 못했다. 순갑은 소금 자루를 달다 받침이 휘었다고 했다. 장보가 적은 은의 중량을 다시 확인하려면 다른 저울이 필요했다. 아전은 고변서의 숫자 옆에 저울 상태를 적었다.
두칠은 그 글씨를 한참 바라봤다. 어른이 모른다고 적는 것이 이렇게 많은 날은 처음이었다. 그럴수록 자기가 정말 아는 한 가지, 종이를 짐 끈 안에서 떼었다는 말만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식은 국수를 새 그릇에 덜어 주었다. 두칠은 면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관아로 함께 가시죠. 서로 말이 바뀌기 전에.”
두칠은 국수를 놓고 일어서려 했다. 할머니가 어깨를 눌렀다.
“너는 다 먹고 가. 도망갈 놈이 아니라는 건 내가 봤다.”
그 말은 어제 본 사실이 아니라 오늘의 선택이었다. 두칠은 그릇을 다시 붙들었다.
관아로 가는 길, 길상은 형이 마지막으로 보낸 손수건을 연화에게 보여 주었다. 손수건 귀퉁이에는 네모 안에 작은 세모 다섯 개가 그려져 있었다. 칠복의 숟가락 구멍과 닮았지만 같은 손이 만들었다고 말할 근거는 없었다.
“형이 일하던 작업조 표라면, 그걸 들고 가야 합니다.”
“형께서 어디서 보냈습니까?”
“광산에서. 안에 있는 짐꾼에게 건네받았어요.”
연화는 길상에게 그 짐꾼을 찾아 달라고 했다. 길상은 이름을 모른다고 했다. 물건을 건네받은 장터와 시각, 짐꾼의 왼팔에 있던 붉은 실만 기억했다.
장보가 앞서 걸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에게는 종이와 손수건보다 두칠의 맨손이 더 성가셨다. 아무 은도 들지 않은 손이 고변서의 무게를 자꾸 바꾸고 있었다.
관아 문 앞에서 두칠이 연화에게 속삭였다.
“은을 안 훔쳤다는 것, 오늘 끝난 거예요?”
“오늘은 장보의 말만으로 너를 묶지 않겠다는 데까지야. 네 발로 나올 수 있는 건 큰일이지.”
두칠은 문지방을 넘어 제 발로 들어갔다. 장보도 들어갔다. 같은 문을 지났지만 한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을 밝히러, 다른 한 사람은 잃었다는 물건의 무게를 설명하러 갔다.
할머니가 멀리서 그 아이의 등을 지켜보았다.
안에서는 서필주의 심부름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장보를 보고 손을 흔들자 장보는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심부름꾼은 관아 물품표 묶음을 아전에게 건넸다. 모두 ‘농장 창고’로 들어간다는 표였다. 아전이 오늘 은자루 고변에 왜 농장 물품표가 붙느냐고 묻자 심부름꾼은 창고 이름이 같아서라고 했다.
“광산의 은과 농장 창고의 쌀이 같은 저울을 쓰는군요.”
길상이 작게 말했다.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같은 저울인지도 아직 모른다. 다만 장보의 물건을 조사하기 전에 다른 이름의 물품표가 도착했다는 순서는 확인했다. 그는 아전에게 심부름꾼이 온 시각을 적어 달라고 요청했다.
서필주의 심부름꾼은 그제야 장보를 돌아봤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반가움보다 약속을 어긴 사람을 보는 표정이 스쳤다. 연화는 그 표정까지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물품표에 찍힌 수결이 나루표의 반달 먹과 얼마나 닮았는지만 눈에 담았다.
연화는 손수건의 세모를 접어 가렸다. 다음에 확인할 사람은 길상의 형이 아니라, 그 표를 실제로 나눠 준 작업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