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아래 19번 벨트
유리에 남은 소매
방화문 유리에 비친 사람은 팔 한쪽뿐이었다.
방화문 유리에 비친 사람은 팔 한쪽뿐이었다.
검은 소매가 화면 가장자리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정면을 찍은 카메라가 아니라 건너편 복도의 유리에 한 번 튕긴 빛이었다. 얼굴도 손도 보이지 않았다. 태식은 영상을 세 번 돌린 뒤 네 번째에 멈췄다.
“저거 정비복 아닙니까?”
로사는 옆에서 화면을 봤다. “우리 미화반 겨울 점퍼도 검어요. 화물조도 검은 소매를 입고요.”
“팔을 뻗는 각도가 공구함 든 사람 같아서요.”
“그러면 공구함을 봐요. 소매로 또 한 직군을 고르지 말고.”
그 말이 태식의 귀에 남았다. 며칠 전에는 태식의 오래된 서명이 범행 문서에 붙었다. 지금은 정비복처럼 보이는 소매 하나로 정비반 전체가 다시 불릴 수 있었다. 그는 범인이 현장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빨리 좁히고 싶었다. 빠르게 좁히는 일의 비용을 자신이 이미 겪었다.
하지후는 화면을 끄지 않은 채 당시의 주변음을 들려줬다. 문이 열리기 전 짧은 금속 울림, 그 뒤로 돌리 바퀴가 바닥 이음매를 넘는 소리. 로사는 숨을 고른 뒤 말했다.
“청소카트가 아닙니다. 우리 건 그 문턱에서 두 번 울어요.”
“12번 돌리는요?” 태식이 물었다.
“예전 자국과 맞을 수도 있죠. 소리만으로 그날 운전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지후가 말했다.
태식은 화면 아래의 시간을 봤다. 이 영상은 19번 벨트가 짧게 수동모드에 들어가고 두 구역의 조명이 겹쳐 어두웠던 화요일의 것이다. 출입과 돌리의 일부 기록은 앞선 수사에서 이미 검토됐다. 오늘 새로 얻은 것은 얼굴이 아니라 큰 장비가 문 앞을 지나간 듯한 한순간이었다.
영상 담당자가 반사 프레임을 멈춘 채 양옆을 어둡게 했다. 소매 끝에 가느다란 밝은 줄이 보였다. 태식은 순간 정비반 겨울 점퍼의 반사띠를 떠올렸다. 자기 옷에도 같은 줄이 있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팔을 유리 앞에 대 보려 했다가 그만뒀다. 오늘 입은 교육실 점퍼와 당시 밤의 빛이 같을 리 없었다.
로사는 미화반 보관함에서 점퍼 하나를 가져왔다. 소매 끝에도 희미한 줄이 있었다. “밝은 줄 찾으셨으면 우리 옷에도 있어요.”
민재가 영상과 점퍼를 번갈아 봤다. “그럼 아예 못 좁힙니까?”
“옷으로는요.” 로사가 답했다. “지금 찾는 건 그 안의 사람이라면서요.”
태식은 자기 점퍼를 의자에 내려놓았다. 로사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는 정비반 사람이란 가설을 먼저 발표했을 것이다. 자기 서명이 도용됐을 때 자신을 의심한 사람들을 탓하면서도, 검은 소매를 보자마자 똑같은 일을 하려 했다. 부끄러움이 올라왔지만 로사에게 사과를 급히 던지지 않았다. 대신 화면 이름을 고쳐 적었다. 영상에 나타난 것은 직업이 아니라 옷의 일부였다.
나경은 두 사람이 가져온 점퍼를 다시 각자의 보관함으로 돌려보내게 했다. 그 옷은 당시 영상의 원본이 아니었다. 비교하려고 가져온 물건을 어느 순간 증거처럼 유리 상자에 넣는 실수가 생길 수 있었다. 로사는 잠깐 웃었다. 자신들의 옷이 사건 자료로 하루 더 붙잡히지 않은 것이 반가웠다.
정비차고에서 비슷한 공구함을 찾아야 했다. 태식이 직접 봉인된 보관실을 열 수는 없었다. 그는 교육실 명찰을 달고 출입선 밖에서 도구 목록을 설명했다. 만호가 입회한 기사들과 함께 큰 정비함 세 개를 차례로 꺼냈다. 작은 함도 비슷한 소리를 냈다. 사람이 조금만 급하게 들면 잠금쇠가 부딪혔다.
“전부 맞는 것 같은데요.” 젊은 기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귀 하나로 고르면 안 되는 거예요.” 태식이 답했다.
두 번째 함을 내려놓던 직원이 손잡이를 놓쳤다. 무거운 상자가 발등 가까이 떨어졌다. 태식이 무심코 앞으로 뛰었다가 선 앞에서 멈췄다. 만호가 직원의 팔을 잡아 뒤로 물렸고, 작업자는 발끝을 살폈다. 발등은 피했지만 손등이 조금 긁혔다. 기사가 얼굴을 붉혔다.
“죄송합니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손이 더 떨렸습니다.”
“사람 잡는 실험은 하지 맙시다.” 로사가 말했다.
지후가 그 자리의 비교를 중단했다. 사건 당일 기록과 같은 소리를 내겠다고 오늘 사람의 발을 위험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정비함의 종류와 크기는 물품대장으로, 당시 주변음의 물건 종류는 가능성으로 남겼다. 재현 실패가 수사의 실패는 아니었다.
만호는 세 번째 함의 겉면을 가리켰다. 큰 정비함은 내부 칸막이를 교체하면 겉은 같은데 울림이 달라진다. 그날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없었다. 태식은 동료 말이 틀렸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소리가 분명할수록 누가 들었는지 묻기 쉬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늘 소리를 믿는다고 말해 왔다. 믿는다는 것은 듣고 싶은 답만 고른다는 뜻이 아니었다.
로사는 차고 구석에서 기다리던 야간 청소원에게 물을 건넸다. 그 직원은 자기 유니폼 소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옷 색으로 불릴까 봐?” 로사가 물었다.
“우린 차고도 청소하잖아요. 그날 여기 지나간 사람 전부 검은 소매일 수 있어요.”
“그래서 소매만으로 사람 이름 안 올린대.”
“지금은요.”
로사는 더 약속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자신도 같은 말을 들었다. 대신 구민재가 만든 현장 공유표의 제목을 바꿔 달라고 했다. ‘검은 정비복 의심’이 아니라 ‘방화문 반사영상 내 미상 검은 소매.’ 글자 몇 개 차이는 작아 보였지만, 야간조가 다음 교대에 부를 사람 수가 달라졌다.
이후 지후는 해당 시간의 정비함 불출대장을 좁은 범위로 확인했다. 평소 야간 차고에서 큰 함을 정식 불출한 기록은 하나였다. 요청 사유는 ‘임원실 장비점검.’ 태식은 그 네 글자를 읽으며 장승원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난 출고취소 승인이 그 자리에서 나왔고, 로사 번호가 붙은 시험카드 요청도 임원실에서 출발했다. 겹치는 곳이 늘었다.
“한 명뿐이네요.” 태식이 말했다.
“한 건뿐입니다.” 지후가 고쳤다. “빌린 사람이 직접 들었는지, 다른 큰 함이 대장 없이 쓰였는지는 아직 봐야 해요.”
“이런 날은 경찰이 답답합니다.”
“저도 답답합니다.”
지후는 그 말을 하고 불출대장의 다음 장을 펼쳤다. 정비함의 담당 칸에는 장승원 직속 운영지원팀이 적혀 있었지만 개인 서명 칸은 비어 있었다. 작성자가 빠졌는지, 실제로 현장에서 빌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지후는 장비를 받은 곳의 위치와 반환시각을 확인하기로 했다.
만호는 대장을 보며 손가락을 뒤로 뺐다. “우리 쪽 대여함에도 빈 서명 많아요. 가져간 사람이 급하면 반납할 때 한꺼번에 적는 관행이 있었죠.”
“그럼 지금은요?” 로사가 물었다.
“원본을 보전하면서 바꿨습니다. 반납할 때 몰아 쓰면 빌린 시간에 누가 들었는지 못 남기니까.”
“그 관행이 다시 태식 씨 이름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만호는 답을 못 했다. 태식은 그가 미안해하는 얼굴을 오래 보고 싶지 않았다. 현장의 관행을 만든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빈칸을 남긴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일은 계속해야 했다.
젊은 기사는 아까 떨어뜨린 함을 다시 가지러 와 조용히 말했다. “제가 도울 게 있습니까?”
태식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오늘 함을 놓쳤다는 사실과 손등이 긁힌 것만 그대로 적으세요. 과거 장면에 맞춰 더하거나 뺄 필요 없습니다.”
기사는 손등의 작은 붉은 자국을 봤다. 다친 척할 필요도 없고, 아프지 않은 척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근무 중 사고 보고를 하고 손을 씻으러 갔다. 조사에 쓰인 장비가 오늘 또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게 하는 것도 현장의 일이었다.
손을 씻고 돌아온 기사는 함을 다시 들지 않았다. 만호가 다른 기사에게 남은 정리를 맡겼다.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입 밖까지 나왔지만, 젊은 기사는 접었다. 아픈 손으로 쇠걸쇠를 억지로 잠그면 다음 사람이 열 때 풀릴 수도 있었다. 빈 서명칸처럼 보이지 않는 작은 생략이 밤에는 큰 무게가 된다.
태식은 빈 서명칸을 보며 자기 옛 작업번호가 적힌 폐기양식을 떠올렸다. 그때는 있는 서명이 문제였고, 이번에는 없는 서명이 문제였다. 어느 쪽도 사람의 손을 바로 보여 주지 않았다.
저녁 식당에서 로사는 파리다와 만났다. 파리다는 오늘 조사에서 자기 세제병이 또 나왔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 있었다.
“한 병이 문도 열고, 옷도 입고, 공구함도 들겠네요.”
“병은 여덟 문만 지나갔어.” 로사가 말했다.
“반장님은 내일 재심이죠?”
“응.”
“돌아오면 카트 바퀴부터 고쳐요. 나 오늘도 그 문턱에서 들썩했어.”
“담당 기사 배정됐대.”
“고 기사님 아니면 불안할 것 같은데.”
“그 말은 고 기사님을 더 곤란하게 해. 지금은 교육실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잖아.”
파리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사가 다시 야간반으로 오면 반장의 익숙한 판단이 반가울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만 있어야 돌아가는 현장은 태식의 옛 공용계정처럼 위험했다.
식사를 마친 뒤 태식이 차고에서 나왔다. 그는 로사에게 대장의 빈칸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직 공개할 수 없는 자료였고, 로사도 자신에게 필요한 재심 자료와 범행 수사자료를 구분하고 있었다. 대신 “내일 가서 본인 말 하세요”라고 말했다.
“매번 그 말을 하네요.” 로사가 대답했다.
“매번 내가 대신 못 해서요.”
“오늘은 소매만 보고 정비반 이름 안 올렸잖아요. 그거면 됐어요.”
태식은 빈 함이 놓였던 바닥을 돌아봤다. 한 사람의 팔을 찾아낼 수 없는 화면이었지만, 그 화면 덕분에 어떤 물건이 어디서 빌려졌는지 묻는 길은 생겼다. 다음 날 로사의 출입증 문제가 다뤄지는 동안, 빈 서명칸의 주인은 여전히 차고 바깥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