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37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다섯 갈래의 장꾼

두칠은 뒷문 앞에서 국 한 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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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칠은 뒷문 앞에서 국 한 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국을 먹으러 왔다고 하기에는 발뒤꿈치가 피투성이였고, 달아나려 왔다고 하기에는 국그릇을 너무 깨끗이 핥았다. 범수가 문기둥에 기대 서자 아이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내가 온 걸 누가 압니까?”

“아직은 이 마당 사람들뿐.”

“그럼 이름부터 묻지 마요.”

“네가 먼저 두칠이라 했잖냐.”

아이는 혀를 찼다. 이름을 숨기는 첫 방법부터 실패한 얼굴이었다. 막동이 마당으로 내려오자 두칠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오방 아저씨.”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다들 그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요?”

복단이 아이의 발을 보았다. 두칠은 붕대를 피하려고 발을 뒤로 뺐지만, 연화가 무릎을 꿇어 맞은편에 앉자 더 물러나지 않았다.

“네가 본 걸 말할 의무는 없어. 먼저 누가 쫓는지 알 수 있을까?”

“은을 훔쳤대요.”

“누가?”

“그걸 알려 달라고 나를 찾는 사람들이요.”

막동이 한숨을 쉬었다. 두칠은 다섯 물자길 사이를 뛰어다니며 장꾼들에게 품삯을 받았다. 물건은 무너미 쪽 나루를 지나 광산 둘레의 농가로 흩어졌고, 그 가운데 한 길만 은돌 자루를 되가져왔다. 아이는 깊은 갱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었다. 막동이 그 선을 먼저 확인했다.

“내가 본 건 경비가 자루를 맡기는 데까지예요. 안에서 얼마나 캤는지는 몰라요.”

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칠은 어른이 자기 말을 넓히지 않자 말이 조금 빨라졌다.

“어제 나루 아래에서 저보고 은 한 줌을 내놓으랬어요. 안 주면 도둑질했다고 관아에 넘긴다고.”

“누가 이름을 댔니?”

“장보.”

막동의 얼굴이 굳었다. 심대업의 회수책이었다. 장보는 빚문서가 모자라면 사람을 세워 대신 받아 오고, 사람까지 모자라면 죄목을 만들어 관아에 내밀었다. 막동은 그를 오래 알고도 그 습관을 말리지 못했다.

두칠이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종이는 바깥쪽이 기름에 젖어 있었다.

“이건 나한테 준 게 아니에요. 짐 끈 안쪽에 숨겨져 있던 걸 떼었어요.”

그는 연화가 받기 전에 손을 거뒀다.

“훔친 종이라고 또 잡아갈 거죠?”

“누구 짐에서 뗐는지 말하면 그대로 적을게. 종이가 네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그럼 내가 돌려줄 수 있어요?”

“누구에게 돌려줘야 하는지 확인한 다음에.”

두칠은 그제야 놓았다. 종이에는 사람 이름 열일곱 개가 적혀 있었다. 일부는 성이 빠졌고 둘은 같은 이름이었다. 맨 위에 반달 모양 먹점이 있었다. 연화는 객주 출발 명단과 바로 맞춰 보려다가 멈췄다. 이 명단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가 먼저였다.

“어제 받은 짐입니까?”

“지난 장날에요. 정확히는 장이 서기 전날 밤. 막동 아저씨가 다섯째 길은 막혔다고 해서 넷째 길로 갔어요.”

막동이 날짜를 세었다. 그때 자신은 무너미에 있었고 두칠을 보내지 않았다. 누군가 막동의 이름으로 길을 바꿨다.

“누가 내 말을 전했지?”

“경비 모자 쓴 사람. 귀가 반듯했어요. 아저씨는 끝이 없잖아요.”

막동이 귀 끝을 만졌다. 자기 상처가 처음으로 도움이 된 듯했다.

“사람을 보았습니까, 목소리만 들었습니까?”

연화가 물었다.

“등잔 있는 데서 봤어요. 그러나 모자를 벗은 얼굴은 몰라요.”

연화는 다른 종이에 날짜와 장소를 적었다. 열일곱 이름은 광산 안에서 막동이 직접 세었던 열일곱 생존자와 숫자가 같았다. 그 이유만으로 같은 사람이라고 써서는 안 됐다. 매화도 이번에는 먼저 묻지 않았다. 그는 맨 아래 이름 하나의 끝 획을 보고 숨을 삼켰다.

“한덕수.”

성까지 온전히 적힌 이름이었다. 옆에는 소매에서 본 것보다 길고 끝이 둘로 갈라진 수결이 있었다.

“오라비 글씨예요.”

“닮았습니다.”

연화의 말에 매화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손이 종이로 뻗지 않았다.

“밭 문서를 가져올게요. 닮았는지 보게.”

그가 방으로 뛰어가는 동안 두칠은 숟가락을 쥐었다. 복단이 발을 씻길 물을 가져왔다. 아이는 물그릇을 한참 쳐다보았다.

“장보가 여기 오면 나를 내줄 거예요?”

“안 내주겠다며 너를 가두지는 않겠다.”

범수가 말했다.

“네가 갈 곳을 정할 때까지 마당 문은 내가 볼 거다.”

두칠이 고개를 들었다. 어른들은 대개 숨기겠다거나 내놓겠다고 했다. 갈 곳을 아이가 정하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매화가 문서를 들고 돌아왔다. 오래된 수결은 한 번 위로 올랐고 새 종이의 것은 마지막이 갈라졌다. 막동의 기억과 맞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글씨의 모양만으로 작성자를 확정할 수는 없었다. 연화는 두칠에게 종이가 있던 짐의 생김새를 다시 물었다.

“푸른 실로 입구를 묶었어요. 마른 약재가 들어 있었고. 은자루는 아니었어요.”

복단이 물었다.

“약 냄새는?”

“쓴 풀하고 계피요. 계피는 조금만. 코를 박아야 나요.”

막동이 고개를 들었다. 덕수에게 들여간 약봉지에도 계피를 세 꼬집만 넣었다. 누구나 맡을 수 있는 냄새는 아니지만, 그가 만든 봉지의 유일한 표식도 아니었다. 복단은 약재와 끈의 묶임을 각각 적었다.

그때 만복이 뒤문 빗장을 걸었다. 담장 밖으로 그림자 하나가 지나갔다. 범수는 문을 열지 않은 채 발소리를 들었다. 발은 멀어졌지만 바로 골목 끝에서 멎었다.

“지금 관아로 가서 먼저 말하죠.”

두칠이 제안했다.

“장보보다 먼저 가면 되잖아요.”

“네가 종이를 가져온 일까지 그대로 말해야 한다.”

연화가 말했다.

“괜찮겠니?”

두칠은 입술을 깨물었다. 누가 길을 바꿨는지, 누가 은을 맡겼는지, 종이 속 이름들이 살아 있는지 다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 발과 자기 손이 한 일을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종이 떼 온 건 말할게요. 은 훔쳤다는 말엔 내가 안 했다고 할래요.”

“그렇게 하자.”

그러나 만복은 관아가 문을 닫은 시각이라며 등잔을 들었다. 장보가 밤새 먼저 고변을 넣으면 아침에 두칠이 찾아갈 문턱이 달라질 수 있었다. 범수는 객주 앞에 나가다 돌아왔다.

“두칠, 그자가 네 품을 뒤졌느냐?”

“옷은 뒤졌어요. 신발도 벗으라 해서 벗었고요.”

“종이는 어디 있었지?”

“짐 끈에서 뗀 뒤에 국수집 처마 밑에 끼워 뒀어요. 조금 전 돌아가 가져왔어요.”

복단이 눈을 치켜떴다.

“그걸 지금 말하니? 그럼 누구나 가져갈 수 있었잖아.”

두칠은 국그릇을 내려다봤다. 들키면 혼날 줄 알았다.

“국수집 할머니가 처마를 보고 있었어요. 내가 찾으러 간다고 말해 뒀고.”

범수와 연화는 서로를 보았다. 종이가 밤새 거기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얼마 동안 두칠 손을 떠났고, 할머니가 실제로 무엇을 보았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복단이 두칠의 발에 약을 바르는 동안 연화가 만복에게 국수집 위치를 물었다.

만복은 멀지 않다며 직접 다녀왔다. 돌아온 손에는 할머니가 빌려준 그릇 덮개가 들려 있었다. 두칠이 종이를 끼웠다는 자리의 흔들리는 기왓장을 눌러 두었던 물건이었다. 할머니는 아이가 처마 아래로 종이를 끼우는 것은 봤으나 그 뒤 장사를 하느라 계속 바라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대신 장보를 닮은 긴 옷의 사내가 처마 앞에 서자 그를 쫓아냈다고 했다. 얼굴과 이름은 모른다고도 했다.

“그럼 종이가 바뀌었을 수도 있잖아요.”

매화가 말했다.

두칠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연화가 종이 모서리의 기름 자국을 보여 주었다. 두칠은 약짐에서 옮겨 붙었다고 말했고 할머니의 덮개에도 같은 자리에 기름이 배어 있었다. 두 흔적이 종이의 모든 내용을 보증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적어도 아이가 아무것도 없는 처마에서 갑자기 이름을 만들어 온 것은 아니라는 독립 확인이 생겼다.

“할머니께 내일 다시 물을게요.”

두칠이 말했다.

“저 때문에 그분이 귀찮아지는 건 싫어요. 장보가 가면 제가 먼저 알려 드릴래요.”

“혼자 가지는 마라.”

범수가 말하자 아이가 인상을 썼다. 범수는 덧붙였다.

“네가 앞장서고 나는 국수값을 낼 테니.”

두칠은 그 조건이라면 좋다며 금세 웃었다. 국수집 할머니에게 갚을 그릇 하나가 사람들을 다음 날의 같은 길에 묶어 주었다.

범수가 먼저 문밖을 살폈다. 연화는 종이를 품에 넣지 않고 매화와 두칠 앞에서 한 번 접어 봉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받았는지 겉면에 적었다. 두칠이 틀린 시각을 지적하자 바로 고쳤다. 저녁 종소리는 그가 국그릇을 들기 전이었다.

매화는 열일곱 이름 가운데 아직 읽지 못한 둘을 짚었다. 사람이 사라졌다는 뜻인지, 이름이 빠졌다는 뜻인지 모를 빈자리였다.

“둘은 왜 없죠?”

“종이가 원래 그만큼이었어요.”

두칠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맨 아래는 접혀 있었어요. 덕수라는 이름이 안 보이게. 내가 펴기 전까지는요.”

그가 종이의 접힌 자리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누가 한덕수의 이름을 숨기고 약짐을 밖으로 보냈다. 그것이 살리기 위한 행동인지, 추적하게 만들려는 미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연화는 만복에게 다음 날 아침 두칠이 걸어온 길의 주막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아이의 진술을 믿기 위해서도, 아이가 다시 쫓길 길을 끊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두칠은 내일 직접 길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날 밤 매화는 오래된 매매쪽지를 펼쳐 두칠의 새 종이 옆에 놓았다. 두 수결 사이에는 작고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매화는 그 차이를 지우지 않았다. 오라비가 살아서 손을 바꿔 쓴 것이라면 물을 수 있을 테고, 다른 사람이 흉내 낸 것이라면 그 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바깥 담장 너머에서 다시 휘파람이 났다. 다섯 갈래 중 하나를 알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막동은 잠결에 몸을 일으켰다. 두칠이 등잔을 끄고 말했다.

“저건 길 신호를 거꾸로 부는 소리예요. 우리를 나와 보라고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