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미식 로맨틱 코미디 37화

서리 지난 복숭아밭

알레르기보다 작은 글씨

다음 장터의 한정 시험판매용 예순 병이 포장대에 섰다. 콩포트 병에 우유가 들어간 크럼블 소포장을 한 묶음으로 붙이는 새 조합이었다. 지난 배치에서 기다리기로 한 세 사람에게는 기존 콩포트를 별도 배치에서 먼저 마련해 보냈고, 오늘 예순 묶음은 새 조합을 선택한 주문만 받았다. 윤보리는 지난번 마흔다섯 병을 약속했다가 마흔 병밖에 만들지 못한 날을 떠올리며 하나씩 소리 내 세었다.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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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터의 한정 시험판매용 예순 병이 포장대에 섰다. 콩포트 병에 우유가 들어간 크럼블 소포장을 한 묶음으로 붙이는 새 조합이었다. 지난 배치에서 기다리기로 한 세 사람에게는 기존 콩포트를 별도 배치에서 먼저 마련해 보냈고, 오늘 예순 묶음은 새 조합을 선택한 주문만 받았다. 윤보리는 지난번 마흔다섯 병을 약속했다가 마흔 병밖에 만들지 못한 날을 떠올리며 하나씩 소리 내 세었다. 이번에는 생산 전에 원물의 가용 무게부터 다시 쟀고, 냉장 해동한 지난해 과육만 그날 쓸 만큼 열었다. 병 세척도 농축이 시작되기 전에 돌렸다. 완제품 수는 계획과 맞았다.

류미정이 마지막 병을 들었다. “숫자는 예순. 이제 글씨를 봐요.”

보리는 라벨을 눈높이까지 올렸다. 생산 로트와 다섯 농가코드는 지난번 실수 덕에 바로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래쪽 ‘우유 함유’는 접힌 라벨 굴곡에 걸려 있었다. 젖은 손으로 돌려 보니 글자가 더 가늘어졌다.

“읽히긴 해요.” 보리가 말했다.

“당신 눈으로는.”

미정이 병을 옥순에게 건넸다. 옥순은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돋보기를 찾았다. “이건 보라고 쓴 게 아니라 면책용으로 숨긴 거 같네.”

보리는 답하지 못했다. 크럼블에 들어간 우유 성분은 원재료표에 있었지만 줄 끝에 밀렸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 상세페이지였다. 장터에서 병을 직접 본 손님은 라벨을 볼 수 있으나, 온라인 손님은 주문을 누르기 전 그 정보를 봐야 했다. 보리가 휴대전화로 페이지를 열자 우유 항목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누가 올린 글이야?” 옥순이 물었다.

“제가 초안 썼어요. 라벨 수정 전 사진으로.”

“그럼 사진만 바꾸면 되지.”

“이미 주문한 분들도 있어요.”

미정은 냉장고 쪽 문을 닫았다. “아직 출고 안 했죠? 오늘 출고는 멈춥니다.”

옥순이 예순 병을 돌아봤다. “라벨 위에 큰 스티커 붙이면 오후 차는 탈 수 있잖아. 인터넷 글도 지금 고치고.”

“병에서 읽히는 문제는 그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주문할 때 없던 정보를 뒤늦게 붙였다는 사실은 따로 알려야 해요.” 보리는 화면을 확대했다. “우유를 피해야 하는 사람이 이걸 보고 주문했다면, 상자를 받은 뒤 취소하라고 할 수는 없어요.”

옥순은 병을 내려놓았다. “또 늦어지는구나.”

“이번에는 늦추는 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

보리는 표시 시안을 다시 폈다. 다른 필수 문구를 작게 줄여 우유만 크게 만들면 또 다른 정보가 밀렸다. 미정은 병을 한 번 둘러 보더니 폭을 넓힌 평면 띠지로 바꾸자고 했다. 인쇄비가 들고 뜯어 낼 시간이 필요했다. 옥순은 계산기에 숫자를 넣었다. 지난번 라벨 두 코드를 바꿔 붙여 전량 재인쇄한 데 이어 또 비용이 생겼다.

“포장비를 병값에 더해야 하나?” 옥순이 물었다.

“이번 오류는 손님에게 돌리지 않아요.” 보리가 말했다. “우리가 낸 인쇄비로 처리합시다. 다음 배치 원가에는 제대로 만든 라벨 비용을 처음부터 넣고요.”

해진은 관측소 점심시간에 미정의 부탁으로 큰 글씨 시안을 보러 왔다. 그는 라벨을 보자마자 “제 시력검사입니까?”라고 했다. 미정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 좋은 사람도 실수할 수 있으니 더 나쁜 조건에서 볼 거예요.”

해진은 병을 차가운 냉장고에 넣었다 꺼냈다. 물기가 맺힌 뒤에도 읽히는지 보려는 것이었다. 보리는 그가 일을 하겠다는 뜻으로 오해할까 봐 먼저 말했다. “관측소 자료와 별개예요. 제 품질표시 검토에 도와주는 거고, 결정은 제가 합니다.”

“압니다.” 해진이 대답했다. “그리고 오늘은 시식권도 청구하지 않겠습니다.”

“무섭네요. 어디 아파요?”

“예순 병 앞에서 농담값도 비싸 보입니다.”

보리는 웃고 다시 화면을 봤다. 온라인 주문 중 아직 발송 전인 사람들에게 수정된 원재료와 우유 정보를 보내야 했다. 단순히 ‘표시를 보완했습니다’라고 쓰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 없다. 보리는 우유 항목이 빠졌던 사실, 병 라벨도 읽기 어렵게 인쇄된 사실, 새 표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적었다. 주문을 취소할 수 있는 시한을 하루 더 늘리고 비용 없이 환불받을 방법을 붙였다.

첫 답장은 바로 왔다. ‘아이가 우유를 못 먹습니다. 취소합니다.’ 보리는 손끝이 차가워졌다. 다행히 병은 아직 주방 안에 있었다. 그녀는 취소 주문에 번호를 붙이고 결제를 돌려줬다. 두 번째 취소는 선물받을 사람이 유제품을 피한다는 이유였다. 나머지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옥순이 두 건의 환불액을 보고 입술을 눌렀다. “오늘 아침에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네.”

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견한 사람이 보리 씨라서 다행인 것도요.”

“제가 빼먹은 사람이기도 해요.” 보리는 온라인 페이지의 이전 문구를 내부 기록으로 남겼다. 잘못된 글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지워 버리면 다음에 같은 일을 막기 어려웠다. 수정 시각과 확인자 이름도 적었다. 사용자에게는 현재 정확한 표시만 보여야 했다.

오후 인쇄소에서 띠지가 왔다. 보리는 필수표시를 병의 평평한 면으로 옮기고 실제 크기에서 읽었다. 미정이 한 번, 옥순이 한 번 더 확인했다. 하나는 글자만, 다른 하나는 원재료와 로트가 작업원장에 맞는지 보는 검수였다. 예순 병에서 오래된 라벨을 떼고 새 띠지를 붙였다. 떼어 낸 수와 새로 붙인 수가 같아질 때까지 박 여사와 이씨도 옆에서 병을 돌렸다. 농가코드 수정 때 자기 이름을 확인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손님이 읽을 수 있는 글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미정이 갑자기 한 병을 집었다. “이건 우유 표시가 있는데 크럼블이 빠졌다고 적혀 있어요.”

보리는 그 병의 생산 로트를 봤다. 크럼블을 붙이지 않고 콩포트 맛만 보는 시식병이었다. 실제 내용과 표시가 다른 병을 한정 판매분에 섞으면 안 됐다. 그는 병을 시식용 선반으로 옮기고 판매할 예순 묶음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계획 예순 개를 채우려던 손이 잠깐 멈췄다. 하지만 묶음 수를 다시 세니 원래 예순 병 외에 시식병 하나가 포장대에 올라왔던 것이었다.

“이런 순간이 싫어요.” 보리가 말했다. “맞은 숫자를 다시 의심하게 돼서.”

“맞은 숫자를 고칠 수 있게 되는 순간입니다.” 미정이 답했다.

다음 날 오전까지 답이 없는 주문자는 발송하지 않고 한 번 더 연락했다. 취소한 두 건은 전액 환불됐고 나머지 쉰여덟 병은 수정된 상세페이지와 읽히는 라벨을 확인한 뒤 순서대로 나갔다. 출고를 하루 미룬 탓에 장터 상인의 판매대 한 칸은 비었다. 배정자는 작은 팻말을 세웠다. ‘표시 수정 뒤 입고.’ 보리는 그 빈칸이 창피했지만 팻말을 빼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저녁에 해진은 팻말 사진을 보고 물었다. “빈칸에 손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왜 비었냐고 묻더라고요. 우유 표시를 고치느라 그랬다고 했어요. 한 분은 자기도 병 글씨를 못 읽었는데 잘됐다고 했고요.”

“그 말을 들으니 좀 낫습니까?”

“조금요. 그런데 인쇄비는 그대로예요.”

해진은 자기 지갑에서 영수증 한 장을 꺼냈다. “정가로 한 병 사면 도움이 됩니까?”

“이미 쉰여덟 병 출고했는데.”

“다음 배치 예약이요. 원재료 먼저 읽고.”

보리가 그를 바라보자 미정이 뒤에서 소리쳤다. “두 분은 매번 장부로 고백하실 겁니까?” 보리는 아니라고 대답하려다, 오늘은 그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해진이 실제로 한 일은 빠진 표시를 함께 읽은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더 정확했다.

그녀는 포장대 끝에 검수표를 세웠다. 작성자 한 사람, 다른 시각에 최종 확인할 한 사람. 두 칸이 모두 채워지기 전에는 병이 출고선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했다.

그날 밤 첫 취소 고객에게 전화가 다시 왔다. 환불은 들어왔지만 선물할 대체품을 아직 못 골랐다고 했다. “제가 화낸 건 병에 우유가 든 것 때문이 아니라, 주문할 때 몰랐던 거예요.” 보리는 변명하지 않고 들었다. 고객은 알레르기 정보가 잘 보이는 다른 상품을 찾겠다고 했다. 보리는 자기 병 대신 다른 것을 권하지 않았다. “다음에 저희 상품이 필요할 때는 주문 전에 정확한 내용을 보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통화를 마친 뒤 보리는 온라인 페이지를 또 열어 봤다. 새 사진이 오래된 요약 문구보다 아래에 숨어 있지 않은지, 모바일 화면에서도 원재료 정보가 접힌 메뉴 밖에 보이는지 살폈다. 컴퓨터에서는 잘 보이던 우유 표시가 휴대전화에서는 ‘더 보기’를 눌러야 보였다. 보리는 요약 줄에도 성분을 올렸다. 미정에게 전화를 걸어 화면을 보내자, 미정은 출고는 이미 끝났지만 페이지 검수는 끝난 게 아니라고 했다. 두 사람은 내일 다른 크기의 화면에서도 같은 정보를 확인하기로 했다.

다음 아침 배정자는 빈 판매대 앞에서 손님 질문 세 가지를 적어 왔다. 왜 병이 늦었는지, 우유가 들어간 제품인지, 지금 표시된 냉장보관 조건이 이전과 같은지. 보리는 답을 짧게 적어 건넸다. 바뀐 건 표시의 정확성과 읽히는 크기였고, 제품을 다른 배합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다. 배정자는 팻말을 치우기 전에 손님이 질문할 때 보여 줄 종이를 한 장 더 인쇄했다. 보리는 정직한 설명이 판매보다 느리게 느껴져도, 그날은 설명을 끝까지 하게 두었다.

보리는 인쇄소 영수증을 원가표에 넣었다. 이번 잘못은 비용이 생겼다는 것까지 기록해야 다음 배치의 정상 라벨값과 섞이지 않았다. 옥순은 그 줄을 보며 혀를 찼지만 지우지는 않았다. “다음엔 이 돈 안 쓰자.” 보리가 대답했다. “다음엔 처음부터 읽히게 만들어요.”

검수표 가장 아래에는 오늘 환불 두 건을 잊지 않게 적었다. 덜 팔린 병 수가 아니라, 보내지 않아서 지킬 수 있었던 사람을 떠올리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