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미식 로맨틱 코미디 36화

서리 지난 복숭아밭

병 마흔 개의 수율

세척기가 멈추는 동안 사람도 멈춘다는 사실은 전날 이미 알아냈다. 오늘 윤보리는 그 빈 시간을 없애 보려고 병을 먼저 늘어놓았다. 말린 병, 씻을 병, 작업이 끝난 병. 줄은 반듯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준비를 마쳤고, 최옥순은 그만큼 완제품도 늘 것이라고 말했다.

글자 크기

세척기가 멈추는 동안 사람도 멈춘다는 사실은 전날 이미 알아냈다. 오늘 윤보리는 그 빈 시간을 없애 보려고 병을 먼저 늘어놓았다. 말린 병, 씻을 병, 작업이 끝난 병. 줄은 반듯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준비를 마쳤고, 최옥순은 그만큼 완제품도 늘 것이라고 말했다.

“서른 킬로그램이면 마흔다섯 병은 나와야겠지?”

류미정이 뚜껑을 맞추며 대답했다. “나와야 한다고 쓰면 병이 저절로 늘진 않아요.”

보리는 원물 저울을 확인했다. 전날 외부 보관처에서 옮긴 봉인 상자와 오늘 아침 주방에서 해동·입고확인을 마친 지난해 냉동 가공원물, 투입 예정량은 모두 30킬로그램이었다. 지난번 소량 시험에서는 이 정도면 45병을 기대할 수 있었다. 지난 장터 예약 34병에 이후 받은 11병 주문을 더해 이번 배치 약속도 45병이었다. 다음 장터 생산 상한 60병 안이어서 옥순은 안심했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가족의 운반시간과 병 세척 대기도 병값에 들어가야 했다. 팔 병의 수보다 약속한 품질로 팔 수 있는 병의 수가 중요했다.

해진이 관측소 출근 전에 들러 사다리를 내려놓았다. “이건 어제 빌린 거요. 병 수를 세러 온 건 아닙니다.”

“왜 미리 선을 그어요?” 보리가 물었다.

“제 씨 제거 기록이 아직 벽에 붙어 있잖아요.”

미정이 웃으며 장부를 덮었다. “오늘은 손님입니다. 뜨거운 솥에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첫 손질이 끝나자 저울 눈금이 예상보다 많이 내려갔다. 겉은 식용 가능한 흠과였지만 씨 주변에 갈색 부분이 넓었다. 보리는 유용한 부분만 남기려 칼을 돌렸다. 버린 쪽도 다시 손질하면 살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미정이 정한 중단선에 걸렸다. 괜찮을 것 같은 기분으로 판매용 제품에 넣을 수는 없었다.

“어제 상자보다 손질손실이 큽니다.” 보리가 말했다.

“기록하고 계속하죠.” 미정이 폐기통에 뚜껑을 닫았다. “예상 수율을 지키려고 칼끝을 안쪽으로 밀면 우리 손도 다치고 맛도 나빠져요.”

작업대 한쪽에는 가용 과육, 다른 쪽에는 제거한 부분이 쌓였다. 보리는 중량을 적었다. 옥순은 숫자를 보고 점심 전부터 눈썹이 내려갔다. 미정은 솥의 수위에 작은 표시를 하고 가열시각을 적었다. 수분이 빠질수록 복숭아 향이 농축됐다. 손실이라는 말로 한 줄에 넣기에는 그 변화가 단순하지 않았다.

오후 첫 충전 때 병이 스무 개를 넘었다. 보리는 두 번째 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병을 채우는 손은 계획대로 움직였지만, 마지막 솥 바닥의 과육은 생각보다 얕았다. 미정이 주걱을 긁어 보더니 말했다. “지금 규격대로면 마흔 개.”

“마흔다섯 개라면서.” 옥순이 작업표를 들었다.

“계획이 그랬죠.”

“물 조금만 더 넣고 다섯 개를 채우면 안 돼? 예약자가 다섯인데.”

보리는 남은 과육을 바라봤다. 물을 넣으면 눈앞의 병 수는 늘었다. 그러나 당도와 농축도가 바뀌고, 지난번 시험한 냉장보관 조건과도 달라진다. 같은 이름으로 이미 예약받은 병에 넣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미정도 한 손으로 솥 손잡이를 잡은 채 보리를 봤다. 결정은 개발자의 손에 넘어왔다.

“물은 안 넣겠습니다. 새 배합으로 만들고 싶으면 따로 시험하고 이름을 붙여야 해요. 지금은 부족한 다섯 분께 알려야 합니다.”

“손님이 화내면?” 옥순이 물었다.

“화낼 만해요.” 보리가 말했다. “45병 가능하다고 우리가 적었으니까.”

주방이 조용해졌다. 얼마 전 보리는 자기 작업을 가져갔다고 믿는 회사가 회의실에서 남의 작업번호까지 바꿨다며 화냈다. 이제 자신도 고객에게 ‘거의 같다’며 다른 병을 보내고 싶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녀는 주걱을 미정에게 돌려주고 예약순서표를 펼쳤다.

다섯 명은 원래 이번 배치에서 받기로 안내받은 손님이었다. 보리는 같은 문장을 복사해 일괄 발송하지 않았다. 먼저 전화를 받는 사람에게 실제 완제품이 40병이고, 그중 선예약 순서에 따라 자신의 분량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환불하거나 다음 생산 때 먼저 받되, 그때도 품질 확인 후 발송하겠다고 했다. 확정하지 않은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다.

첫 손님은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그럼 맛을 바꿔서라도 채우겠다는 건 아니죠?”

“그렇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좋아요. 그래도 기다릴 수는 없어요. 선물할 거였거든요.”

“바로 환불하겠습니다.”

보리는 전화를 끊고 미정에게 들은 그대로 전했다. 손님이 화를 내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물을 대신 찾게 된 것은 그 손님의 시간 손해였다. 두 번째 손님도 환불을 골랐다. 나머지 셋은 다음 생산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 사람은 기다리는 동안 품질이 달라지면 먼저 알려 달라고 했다. 보리는 그 조건을 예약표에 썼다.

옥순은 2건의 환불액을 보고 혀를 찼다. “부족한 다섯 병 값보다 신뢰값이 더 크구나.”

“그래서 지금 내는 거예요.” 보리가 대답했다.

미정은 충전을 끝낸 병을 세었다. 정확히 40개였다. 한 병을 더 억지로 긁어 채우면 중량도 과육 비율도 부족했다. 그는 빈 병 하나를 물기 없는 작업대에 거꾸로 세웠다. “이게 오늘 못 만든 병입니다. 안 보인다고 없는 일로 만들지 맙시다.”

해진이 저녁에 다시 들렀을 때 빈 병은 여전히 있었다. 그는 숫자를 본 뒤 “증발한 물도 손실입니까?”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보리는 피곤해서 웃음이 바로 나왔다. “구름으로 청구하세요. 접수처는 기상관측소.”

“제 직장이 그런 청구까지 받으면 저도 야근해야 합니다.”

“그럼 묻지 마요. 오늘은 물보다 다섯 손님이 더 무거워요.”

해진은 농담을 멈췄다. 전화 뒤에 적힌 손님별 선택을 보았다. 손을 뻗어 보리의 등을 두드리려다가 멈추고 물었다. “잠깐 밖에 걸을래요? 공기는 제가 계산 안 해도 되니까.” 보리는 미정에게 남은 마감 업무가 있는지 먼저 물었다. 미정은 냉장 확인만 하면 된다며 두 사람을 내보냈다.

밖에서는 밭의 꽃눈이 조금씩 열매 모양을 잡고 있었다. 아직 수확할 과실은 아니었다. 올해 보험조사도 끝나지 않았다. 보리는 그 사이 지난해 과육으로 만든 병을 파는 일을 했다. 일이 서로 다른 시간 위에 놓여 있다는 게 가끔은 어지러웠다.

“다섯 병을 못 냈는데, 우리가 더 정직해진 것 같아서 이상해요.”

“실제 값을 얻었잖아요.” 해진이 말했다. “마흔다섯이 아니라 마흔.”

“고객한테는 정직한 값도 배달이 안 되죠.”

“그래서 두 분은 돈을 돌려받았고 셋은 고를 수 있었겠죠. 당신이 대신 고르지 않았으니까.”

보리는 그를 봤다. 위로가 길지 않아 좋았다. 동시에 그가 언제부터 이런 말을 자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관측소에서 배운 겁니까?”

“정류장에서 가방 바퀴와 싸우던 사람한테 배웠습니다.”

보리가 웃었다. “그 사람은 오늘 자기 표에도 속았어요.”

“다시 재면 되죠. 다음에는 같이 보겠습니다.”

작업장으로 돌아오자 미정이 세척대 옆에서 손을 흔들었다. “연애 대화 끝났으면 이거 보세요.”

“연애 아닙니다.” 보리와 해진이 동시에 말했다. 예전보다 대답이 늦었다.

미정은 공정시계의 한 줄을 가리켰다. 과육 손질과 농축 중에 병 세척 묶음을 미리 돌렸다면, 오늘의 대기시간 일부를 줄일 수 있었다. 같은 교대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병이 최대 다섯 개 늘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과육 수율이 마흔 병뿐인 오늘 그 다섯 자리는 공병으로 남았을 것이다. 두 문제는 다른 칸에 적어야 했다.

“다음 배치는 원물 상태를 먼저 보고 실제 예상 수율을 쓰겠습니다.” 보리가 말했다. “세척 순서도 바꾸되, 물을 부어 병 수만 맞춘 성적표는 만들지 않을게요.”

그때 옥순이 예약표를 다시 들여다봤다. 지난 장터의 서른네 명에게는 예전 가격이 적용되고, 뒤에 들어온 열한 주문에는 노동비를 반영해 삼백 원 올린 가격이 적용돼 있었다. 부족한 다섯 주문은 뒤쪽 열한 건이었다. “돈을 더 낸 사람이 못 받는다고 하면 억울하지 않을까?” 옥순이 물었다. 보리도 그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가격이 달라진 것은 받는 순서가 아니라 생산비 때문이었다. 먼저 약속받은 사람의 병을 뒤로 밀어 비싼 주문에 보내면, 다음번에는 높은 값을 낸 사람이 언제든 앞설 수 있었다.

보리는 취소한 두 사람의 결제금액을 다시 확인했다. 올린 가격으로 결제한 사람에게는 그 전액을 돌려줬다. 기다리기로 한 셋에게는 다음 생산 때 가격이 또 바뀌어도 추가금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적었다. 일정을 무리하게 약속하지 않는 대신, 기존 계약의 가격은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한 손님은 “제가 먼저 냈는데 왜 마지막이냐”고 물었다. 보리는 접수순서를 설명하고 자기 주문이 몇 번째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통화가 끝날 때 손님은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다음 생산이 늦으면 환불로 바꿀 수 있냐고 물었다. 보리는 가능하다고 답하고 그 말도 기록했다.

옥순은 작업대 앞의 빈 병을 보다가 장터 상인 번호를 눌렀다. “내가 물 부어 채우자고 한 건 내 체면 때문이었어. 오늘 마흔 병만 나간다고 내가 직접 말할게.” 상인은 이미 한 칸을 비워 두었다며 내일 그 자리에 무얼 적겠느냐고 물었다. 옥순은 보리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다음 생산분 예약은 현장에서 받지 말아 주세요. 기다리는 세 분께 먼저 확인받고, 새 주문은 원물 상태를 보고 열겠습니다.” 보리가 말했다. 상인은 그 말대로 빈칸에 ‘추가 예약 보류’라고 적겠다고 했다. 매대를 가득 채우고 싶어 하던 옥순이 먼저 부탁한 일이었다.

미정은 미충전 표찰을 병에 묶고 다음 교대의 작업표에 손질수율과 세척 대기시간을 각각 쓰게 했다. 보리는 다섯 손님의 선택이 든 봉투를 출고표에 붙였다. 옥순은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사람들한테 다시 설명할 땐 내가 옆에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