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범죄 케이퍼 36화

활주로 아래 19번 벨트

여덟 번째 문 앞에서

파리다는 로사가 건넨 세제병을 받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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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다는 로사가 건넨 세제병을 받아 들지 않았다.

“반장님 일 때문에 불려 온 거면 먼저 시간부터 적어요.”

로사는 준비실 벽의 근무판을 가리켰다. 회사가 승인한 조사협조 두 시간. 파리다 이름 옆에도, 로사 이름 옆에도 시작시각이 있었다. 전날 밤 인사팀에 내민 이의서가 오늘 처음 현장에서 쓸모를 냈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그만할 수 있어.” 로사가 말했다.

“그만두면 저 사람들은 우리가 한 일을 또 모른다고 쓰겠죠.”

파리다는 병을 들었다. 바닥을 닦던 때에는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증거가 된 뒤로는 손잡이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 병 하나가 여덟 자동문을 지나간 기록과 맞는지 확인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파리다가 궁금한 것은 더 단순했다. 그날 자기가 병을 로사에게 넘겼는지, 로사가 계속 들고 있었는지.

앞선 조사에서 나온 두 출입기록은 로사 이름을 일 분 남짓 사이에 두 곳에 놓았다. 별도로 확인한 카트 동선은 그녀의 구역을 따라 움직였다. 보안팀장 구민재는 카트를 중간에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로사가 적재대로 갔을 수 있다고 했다. 완전히 말이 안 되는 주장은 아니었다. 교대 중 카트를 서로 밀어 주는 일은 흔했다. 로사는 그날 자기 손이 어디에 있었는지 몸으로 기억한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민재가 원한 것은 기억과 떨어져 있는 자료였다.

“오늘은 카트를 밀지 않겠습니다.” 하지후가 말했다. “그날 이미 남은 기록부터 보고, 필요한 움직임만 확인합니다.”

로사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난번 시험에서 물통을 너무 채워 충격이 달라졌던 일이 있었다. 완벽한 재현이라는 말을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원본은 그날 한 번뿐이다. 오늘의 발걸음은 그것을 읽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었다.

문마다 로사가 보던 위치가 달랐다. 첫 문은 세제 불출대가 보이는 준비실 바로 앞, 둘째는 모퉁이를 돌아야 손잡이가 보였다. 넷째 문 앞에는 지금 배송 상자가 놓여 있었지만 그날은 비어 있었다. 파리다가 멈췄다.

“여기서 잠깐 줬어요.”

로사가 돌아봤다. “뭘?”

“병이요. 반장님 손목이 아파서 내가 받았어요.”

민재가 바로 노트에 표시했다. 파리다가 그 손을 봤다.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계속 들었다는 뜻 아니에요.”

“얼마나 잠깐인지가 필요하죠.”

“기억으로 초를 만들 수 없어요.”

로사는 파리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선 통화에서는 물통을 같이 들었다고 했지, 세제병을 넘겼다는 말은 없었다. 로사의 몸 기억에도 그 짧은 순간은 빠져 있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동선만 붙잡았다면 지금 당황했을 것이다. 실제로 당황했다. 그러나 그것을 숨기면 파리다의 말을 자기 변명으로 만드는 셈이었다.

“내가 받았겠지. 다시 어디서 가져왔어?”

“여섯 번째 문 앞에서요. 발밑에 포장끈이 있어서 손을 바꿔 들었어요.”

파리다는 그 말을 하고 긴 복도를 돌아봤다. 그날 포장끈은 허리 높이로 늘어져 있지 않았다. 누군가 바닥에 떨어뜨렸고, 끈 한쪽이 출입문 틈에 끼어 있었다. 넷째 문에서 두 사람은 갈라졌다. 로사는 카트가 다닐 수 있는 완만한 우회통로로 갔고, 파리다는 병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여섯째 문 앞에서 다시 만났을 때 파리다는 병 때문에 끈을 집을 수 없었다. 로사는 우회통로에서 밀고 온 카트를 세웠다. 병을 받아 든 사이 파리다가 끈을 치우고 장갑을 바꿔 꼈다. 몇 초였을 것이다. 지금 둘이 걷는 사이에도 배송 인력 셋이 같은 문을 지났다.

“왜 그 일을 교대일지에 안 썼을까?” 로사가 물었다.

“끈을 치우는 건 일이잖아요. 하도 많이 해서 매번 쓰면 일지가 끈 얘기만 돼요.”

로사는 대꾸하지 못했다. 자신도 어느 끈을 누가 주웠는지 묻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는 필요할 때만 그 일을 ‘기록되지 않은 시간’이라고 불렀다. 파리다가 오늘 그날의 사소한 손동작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억울했다.

태식은 바닥을 보고 끈이 끼기 쉬운 홈을 가리켰다. “여기도 고쳐야겠네요.”

“지금은 사진만요.” 로사가 말했다. “나중에 이 문턱을 고칠 사람이 그날의 병을 들었던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괜찮아요. 물건이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게 해 주면 돼요.”

태식은 수리할 항목을 별도로 적었다. 사건의 증거와 안전의 필요가 겹쳐도, 수리를 마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리해야 했다. 파리다는 그제야 세제병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태식은 문을 세었다. 넷째와 여섯째 사이에는 카트가 지나가지 못하는 좁은 계단이 있었다. 로사의 카트는 우회했고 병을 든 파리다만 계단으로 갔다. 그래서 카트 동선과 병의 길은 처음부터 같은 선이 아니었다. 둘이 갈라졌다가 다시 만난 두 길을 따로 그려야 했다.

원본 자료에는 넷째 문 이후 카트가 우회통로 쪽 문을 지난 시각과, 계단 쪽 여섯째 문이 열린 시각이 따로 남아 있었다. 자동문은 누가 무엇을 들었는지 재지 않았다. 카트의 바퀴 자국과 통과시각도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날의 교대 출입, 세제 불출 기록, 두 사람의 독립 진술을 나란히 놓아야 어느 손이 병을 들었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이건 중간 인계가 있었네요.” 지후가 말했다.

민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카트도 넘겼을 수 있죠.”

“그 주장을 보려면 카트의 경로와 사람이 헤어진 구간을 봐야죠. 병을 잠깐 건넨 사실로 카트 전체를 건넸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들은 일곱 번째 문 앞에서 멈췄다. 그날 문이 열렸다가 닫히고 다시 열린 짧은 간격이 남아 있었다. 누가 물러났는지 문은 말하지 않았다. 파리다는 그 이유를 곧바로 기억하지 못했다. 민재가 “누구를 피했습니까?”라고 묻자 파리다는 입술을 물었다. ‘누구’라는 말을 넣는 순간 아무 얼굴이나 떠오를 것 같았다.

“바닥에 세제가 조금 샜어요.” 파리다가 말했다. “제가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았나 봐요. 로사 반장님이 물러났고, 제가 닦았어요.”

“기록했습니까?” 민재가 물었다.

“닦았어요. 그 뒤에 보고했는지는… 아니요. 보고 안 했습니다.”

파리다는 부끄러워 보였다. 병을 흘린 사실이 드러나면 안전보고 누락으로 혼날 수 있었다. 로사는 자신이 반장인데도 그 일을 몰랐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파리다에게 지금 왜 숨겼느냐고 묻지 않았다. 가짜 출입 문제가 드러난 뒤 이전 조사로 미화반 전체가 불려 다녔다. 그때 작은 세제 자국 하나도 징계의 문장으로 보였을 것이다.

태식이 바닥의 홈을 살폈다. 지금은 깨끗했다. 문이 두 번 열린 간격만으로 그날 누가 물러났는지, 세제가 샜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진술을 시험할 시간의 폭만 조금 좁아졌다.

“그때 미끄러진 사람이 있습니까?” 지후가 물었다.

“없어요. 내가 바로 닦았어요.” 파리다가 말했다. “그 사실은 제 이름으로 적어 주세요. 익명으로 하면 누가 닦았는지도 없는 일이 됩니다.”

나경이 파리다를 봤다. 오늘 아침 그는 보호를 위해 동료 진술을 교대번호로만 공유하자고 했다. 파리다는 수사팀에는 실명으로 남기되 회사의 공개 자료에 필요 없는 개인 상황이 퍼지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 이름을 모두 지우는 것과 아무 데나 이름을 뿌리는 것 사이에서 그 자신이 경계를 골랐다.

여덟 번째 문까지 걸었을 때 로사는 숨이 조금 찼다. 세제병은 여섯째에서 다시 그녀 손으로 돌아왔고, 그 뒤 두 문 사이에 로사는 파리다와 함께 있었다. 적재대 가짜 출입기록이 찍힌 때는 바로 그 구간이었다. 거기서 화물 적재대까지 걸어가는 데만 여러 문과 계단이 필요했다. 두 사람 모두 그 시각을 기억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 통과시각과 서로 다른 우회길, 카트 동선을 대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후는 ‘절대 불가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확인한 길과 시간은 로사가 그때 적재대 문을 열었다는 주장과 맞지 않습니다. 다른 카드의 사용자가 누군지는 아직 질문입니다.”

로사는 그 문장을 그대로 듣고 싶었다. 자기를 지키는 결과가 범인을 선물처럼 가져오지 않아도 좋았다. 자기 이름이 잘못 붙은 문에서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오늘 일한 두 시간의 값은 있었다.

조사 끝에 파리다는 세제병을 보관함에 돌려놓으려 했다. 지후가 뚜껑 안쪽에 달라붙은 검은 섬유 한 올을 발견해 보전하자고 했다. 누군가 카트에 가짜 출입증을 넣으면서 남긴 것이라는 말이 곧 나올 것 같아 로사가 먼저 말했다.

“검은 섬유는 청소장갑에도, 직원 소매에도 있어요. 우리 둘도 오늘 병 만졌습니다.”

“맞습니다.” 지후가 답했다. “그래서 보전만 합니다. 어디서 왔는지, 언제 붙었는지는 지금 모릅니다.”

파리다는 뚜껑을 놓았다. 자신이 흘린 세제, 로사가 받은 병, 낯선 섬유까지 한 병에 얹혔다. 그중 어느 것도 혼자 사람 하나를 골라 주지 않았다. 지후는 오늘의 취급 흔적과 과거의 가능성을 섞지 않게 별도로 기록했다.

준비실을 나올 때 파리다가 말했다. “오늘 일당은 정말 찍히는 거죠?”

“찍혔어.” 로사가 근무판의 시간을 보여 줬다.

“그럼 저녁은 제가 살게요. 반장님이 자기 사건 때문에 사는 것처럼 보이긴 싫어요.”

“너도 같은 일을 했어. 반씩 내자.”

두 사람은 병을 놓은 뒤에도 손에 냄새가 남아 있는 듯 손가락을 비볐다. 로사는 그 냄새가 미화반의 일을 지우는 데 쓰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날의 여덟 문은 카트가 갔다는 선 하나보다 복잡했다. 복잡하다는 사실이 비로소 그녀 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