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35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버드나무의 푸른 소매

매화는 오라비를 부르듯 나무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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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오라비를 부르듯 나무를 불렀다.

“거기, 잠깐만.”

바람에 들린 천 끝이 다시 가지 안쪽으로 감겼다. 말을 알아들은 듯 숨는 모양이었다. 한매화가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물가로 내려가려 하자 복단이 약 보따리를 그의 팔에 얹었다.

“이것 좀 받으세요.”

매화는 얼떨결에 받았다. 두 손이 막히자 발도 멎었다.

“내가 애입니까?”

“저도 약을 물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요.”

복단은 끝내 매화의 손목을 잡지 않았다. 민연화는 그 배려가 고마웠다. 누군가를 붙잡을 때마다 그 사람에게 또 기다리라고 말해야 하는 아침이었다.

하류 버드나무는 비탈 바깥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뿌리 아래의 흙이 큰물에 쓸려 속이 비었다. 최막동은 벌써 한 발을 디뎠다가 주범수의 부름에 돌아왔다.

“뿌리가 아니라 흙을 밟았소.”

범수가 장대로 가장자리를 눌렀다. 검은 흙 한 덩이가 물에 떨어졌다. 작게 튄 물이 막동의 발목을 적셨다.

막동은 욕을 삼키고 물러났다. 어젯밤에는 자기가 본 것을 말하느라 힘들었고, 오늘은 눈앞의 것을 당장 가져오지 않는 일이 힘들었다.

순갑이 나루 쪽에서 소리쳤다.

“가지 꺾지 마시오! 물 커지면 저게 떠내려오는 짐을 붙들어 주는 나무요.”

“사람 소매도 붙들어 줬으니 칭찬 좀 하시오!”

막동이 맞받자 순갑은 대꾸 대신 긴 장대를 들고 내려왔다. 끝에 무딘 갈고리가 달려 있었다. 남의 나루표를 빌리는 일에는 아침 내내 말을 해야 했는데, 떠내려온 것을 건지는 일에는 그도 자기 도구를 가져왔다.

범수와 순갑이 물살을 보며 자리를 골랐다. 막동은 낮은 가지를 붙들었다. 연화는 세 사람이 서는 곳에서 떨어져 매화의 시선을 살폈다. 매화는 천이 흔들릴 때마다 숨을 조금씩 나누어 쉬었다.

처음 장대가 닿았을 때 푸른 천은 풀리지 않았다. 갈고리를 더 당기면 찢어질 듯 팽팽해졌다.

“그만.”

매화가 말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멎었다.

“밖에서 당기면 안감이 찢어집니다. 저건 겉과 속을 같이 꿰맨 옷이 아니에요. 오라비가 팔 걷을 때 거슬린다고 내가 안쪽을 따로 댔어요.”

순갑이 매화를 돌아봤다. 이번에는 기다리라는 말 대신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매화는 보따리를 복단에게 돌려주었다. 비탈로 내려가지 않고, 땅이 단단한 곳에 서서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거기 접힌 곳을 받쳐 주세요. 푸른 쪽 말고 누런 안단을.”

갈고리가 자리를 바꿨다. 범수가 장대를 조금 들어 올리자 천이 가지 끝으로 밀렸다. 마지막에는 바람이 도왔다. 푸른 조각이 한 번 부풀더니 장대 위에 축 늘어졌다.

매화는 그것이 물 밖으로 나오는 내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연화가 마른 천을 펴자 순갑이 건진 조각을 올려놓았다. 물방울들이 천을 지나 흙에 작은 구멍을 냈다. 모두가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매화만 움직이지 못했다.

가장자리에 세 송이 꽃이 남아 있었다.

하나는 꽃잎이 둥글었고, 하나는 길쭉했으며, 마지막 것은 잎 하나가 모자랐다. 물과 햇볕에 실 색이 바랬지만 바늘이 지나간 모양은 남았다.

“왜 꽃잎이 하나 없습니까?”

연화가 물었다.

매화가 웃었다. 웃음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라비가 그만하라 해서요. 장가가는 옷도 아닌데 꽃밭을 만들 셈이냐고.”

그는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다가 멈춘 것은 증거가 손상될까 봐서만은 아니었다. 만졌는데 사람이 없으면, 그때부터는 정말 옷 조각일 것 같았다.

“내가 한 송이씩 다르게 놓았어요. 똑같이 놓으면 장터에서 산 수인 줄 알 거라고. 마지막은 저녁 짓다가 그만뒀고.”

복단이 매화 곁에 앉았다. 약 보따리는 무릎 뒤에 두었다. 누구도 지금 눈물을 참으라고 하지 않았다.

매화는 꽃잎 없는 꽃을 한 번 쓰다듬었다.

“이 사람, 옷도 안 버리고 꼭 기워 입었는데.”

그의 손끝이 찢긴 선으로 내려갔다. 바늘땀을 풀어 벗긴 가장자리와 달랐다. 올이 길게 끌려 나와 있었다. 하지만 연화는 힘주어 뜯긴 천의 모양만으로, 누가 언제 어떤 마음으로 뜯었는지 적지 않았다.

순갑이 자신이 본 장면을 다시 말했다. 나루를 건너던 행렬의 앞쪽, 푸른 소매, 천을 쥔 왼손. 얼굴은 보지 못했다고 이번에도 덧붙였다.

“저 사람이 맞아요.”

매화가 말했다.

“적어도 이 옷은 오라비 옷이에요.”

연화는 뒤의 말을 적었다. 앞의 말은 매화에게 남겨 두었다. 옷을 알아보는 일과 그날의 얼굴을 본 일은 다르지만, 매화가 자기 오라비를 부르는 것까지 붓으로 고칠 수는 없었다.

젖은 안단을 천천히 펴자 짧은 자국들이 나타났다. 천의 결을 거슬러 긁힌 줄이었다. 일부는 실이 일어나 있고 일부는 눌려 있었다.

막동이 세기 시작했다.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그 아래에 줄과 떨어진 작은 점 하나가 있었다.

“열일곱과 하나.”

막동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매화가 고개를 들었다. 연화는 두 사람의 눈이 같은 생각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보았다. 광산에서 살아 있었다는 열일곱. 돌아오지 못한 한 사람. 숫자가 같으면 사람의 마음은 그 사이를 너무 빨리 건넜다.

연화는 천을 덮지 않았다. 대신 순갑에게 물었다.

“이 소매를 던진 것은 광산으로 들어가기 전 나루를 건널 때가 맞습니까?”

순갑이 그렇다고 했다.

막동의 입이 멎었다.

“내가 사람 수를 센 것은 안에 들어간 뒤였소.”

그가 말했다.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선 천 조각이 뒤의 죽음까지 미리 말할 수는 없었다. 열일곱 줄과 한 점이 무엇을 셌는지, 지금은 모른다고 해야 했다.

매화가 연화를 노려보았다.

“찾는 것마다 아니라는 말부터 해야 합니까?”

“아니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뜻을 먼저 쓰면, 오라버니가 다른 뜻으로 남긴 말을 못 읽게 됩니다.”

매화는 천을 내려다봤다. 분노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손으로 자국을 문질러 없애지도 않았다.

범수가 쪼그려 앉았다.

“나는 글을 잘 모르는 역군이 제 몫을 표시하는 걸 봤소. 제 이름만 점으로 두는 사람도 있었고, 받은 삯을 줄로 긋는 사람도 있었지. 모른다고 남겨 두면 나중에 아는 사람이 볼 수 있어.”

막동은 처음부터 다시 자국을 세었다. 이번에는 죽은 사람 수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천에 있는 만큼만 세는 목소리였다.

매화는 불쑥 일어났다.

“나는 가겠습니다.”

“어디로요?”

“저 천이 온 데로요. 던질 힘이 남아 있었으면 내가 닿을 때까지 버틸 겁니다.”

막동의 얼굴이 굳었다. 범수는 매화의 팔을 잡지 않고 길 위에 섰다.

“길은 압니까?”

“알면 데려다주실 겁니까?”

“길을 알아도 혼자 보낼 수는 없소.”

“늘 못 한다고만 하네요. 내 오라비인데.”

범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매화가 옆으로 지나가려 하자 이번에는 복단이 물었다.

“돌아오면 어디에서 주무시게 할 겁니까?”

매화의 발이 멎었다.

“뭐라고요?”

“한 사람만 오는 게 아니잖아요. 약은 누가 달이고, 씻을 물은 누가 데우고요. 객주 빈방은 몇 칸인지 아세요?”

“그건 나중에 하면 되죠.”

“나중에 다친 사람을 안고 방부터 구하실 겁니까?”

복단은 약 보따리를 풀었다. 지금 가져온 것으로는 여럿이 돌아왔을 때 필요한 것을 다 감당할 수 없었다. 약 이름을 늘어놓지 않고 남은 꾸러미 수를 보였다. 빈 곳이 많은 보따리였다.

매화는 그것을 보다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바느질한 손이었다. 장부를 빠르게 읽지도 못했고 칼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을 씻기고 찢긴 옷을 기우는 일은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곧장 기뻐지지는 않았다.

“내가 돌아가면 여기서 오라비를 놓치지 않을 거라고 약조할 수 있어요?”

연화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 약조는 못 합니다. 대신 여기서 새로 확인한 일은 인편이 닿는 대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매화 씨가 정한 귀환 준비를 남의 곁일처럼 다루지 않겠습니다.”

매화가 오래 서 있었다. 버드나무 가지는 천이 없어져 전보다 가볍게 흔들렸다. 그만큼 마음까지 가벼워진 사람은 없었다.

“방부터 구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한양으로 돌아가 식솔들하고요. 올 사람 수를 확정했다고 말하지는 않을게요. 그래도 자리는 만들 겁니다.”

복단이 빈 보따리를 접었다. 매화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아침에는 물가로 달려가지 못하게 막던 짐이었는데, 이제는 들고 갈 일을 담을 그릇이 됐다.

연화는 순갑에게 빌린 표를 돌려줄 시각을 확인했다. 아직 정오 전이었다. 천을 살피는 사이 나루 물자길을 막아 두어서는 안 됐다. 범수가 표와 반환 약조를 가지고 먼저 나루로 올라갔다. 처음 맡은 일을 끝내러 가는 그의 뒷모습을 순갑이 따라갔다.

그들이 표를 다시 묶는 동안, 매화는 소매 안단이 접힌 모양을 봤다.

“여기 한 번 더 젖혀 주세요.”

연화가 마른 천을 받쳐 천천히 넘겼다. 겉에서는 줄만 보였는데, 접힌 안쪽에는 먹의 짧은 꺾임이 남아 있었다. 한 글자처럼 시작하다 옆으로 눕고, 마지막 획이 다시 위를 향했다.

매화가 숨을 들이켰다.

“오라비가 자기 이름 대신 쓰던 표시예요. 마지막을 저렇게 올리면 남이 거꾸로 봐도 자기 것이라고.”

연화는 전에 모아 둔 외상표의 부본을 꺼냈다. 오방이라는 가명 곁의 표식과는 모양이 달랐다. 매화가 기억하는 한덕수의 수결과 견주려면 집에 남은 문서가 필요했다.

매화가 먼저 말했다.

“장롱 아래 매매쪽지가 있어요. 돌아가면 가져오겠습니다. 모양이 같은지 그때 보세요.”

그는 이제 소매를 자기 품에 넣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내놓는 얼굴도 아니었다. 연화가 천을 마른 받침에 펴서 보관하자 매화는 세 송이 꽃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저 꽃잎은 내가 마저 놓을 겁니다.”

누구도 언제냐고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