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미식 로맨틱 코미디 35화

서리 지난 복숭아밭

십칠 분의 노동

류미정은 전날 보리의 어머니가 운반해 주방에 입고한 뒤 냉장 해동한 복숭아 한 상자를 윤보리 앞으로 밀었다. 봉인과 냉동기록은 확인했지만 지난해 손질 때 씨 둘레에 남겨 둔 과육이 유난히 많았다. 미정이 타이머를 눌렀다. “시작.”

글자 크기

류미정은 전날 보리의 어머니가 운반해 주방에 입고한 뒤 냉장 해동한 복숭아 한 상자를 윤보리 앞으로 밀었다. 봉인과 냉동기록은 확인했지만 지난해 손질 때 씨 둘레에 남겨 둔 과육이 유난히 많았다. 미정이 타이머를 눌렀다. “시작.”

보리는 해동한 조각의 색과 냄새를 다시 확인하고, 쓸 수 없는 부분과 남은 씨 둘레를 분리했다. 마지막 가용 과육을 식품용 통에 옮겼을 때 타이머에는 17분 12초가 떠 있었다. 손을 씻고 칼을 정리한 시간까지 넣자 20분을 넘었다.

“지난달 장부에는 이 시간이 0원입니다.” 미정이 말했다.

보리가 젖은 장갑을 벗었다. “제 것은 개발비에 들어간 줄 알았어요.”

“당신 것은 일부 들어갔죠. 어머니가 전날 밤 봉인된 냉동 상자의 입고번호를 대조하고 주방까지 운반한 시간은?”

보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가족 작업장의 낡은 오븐을 버릴지 정할 때 어머니의 의견은 물었지만, 어머니의 시간을 비용으로 적는 일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외부 냉동보관처에서 봉인 상자를 찾아 입고표와 번호를 맞추고 공동주방까지 운반하는 일을 도왔다. 집에서는 원물의 봉인을 풀거나 식품을 손질하지 않았다. 그래도 종종 ‘내가 한 건 일도 아니지’라고 말했다.

“그건 누구한테 확인하죠?” 보리가 물었다.

“직접 물어봐야죠. 본인한테.”

오전에 확인한 다른 농가의 지난해 냉동 저장과에도 포장마다 손질 정도가 달랐다. 쓸 수 있는 부분을 남기려면 손이 오래 갔다. 원물 구입단가만 보면 싸게 산 것 같았지만, 남은 씨 둘레를 도려내고 손상된 조각을 분류하다 보면 작업자는 제시간에 점심도 못 먹었다. 미정은 같은 무게의 비교적 손질이 끝난 과육도 확인해 보게 했다. 보리는 그것을 9분 조금 넘겨 끝냈다.

“흠이 많을수록 가공용이니까 더 싸게 사야 한다는 말은 절반만 맞네요.” 보리가 말했다.

“절반도 위험해요. 안전하지 않은 건 사지 말아야 하고, 안전하게 쓸 수 있는 건 손질시간까지 계산해야 하니까.”

최옥순은 시계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시간을 다 넣으면 병값이 너무 올라. 우리끼리 손질한 건 좀 빼고 계산하면 안 되겠니?”

“누구끼리요?” 미정이 물었다. “장터에서 판 병을 마을 손으로 만들었으니 공짜라는 말이면, 다음 달에 누가 또 이 자리에 서요?”

옥순이 말문이 막힌 사이 보리의 어머니가 문을 열었다. 그는 첫 상자와 입고번호가 다른 두 번째 봉인 냉동 상자와 운반표를 들고 있었다. 미정이 포장상태와 입고번호를 확인한 뒤에야 주방 입고대에 올렸다. “나 때문에 회의 길어지네.”

보리가 먼저 통을 받지 않았다. “엄마, 지난주에 이거 몇 시간 했어?”

“시계 안 봤다.”

“대략이라도.”

“저녁 설거지하고 두 시간쯤? 그걸 왜.”

“장부에 적으려고.”

어머니가 웃었다. “네 밥 먹일 때도 시급 썼냐?”

“그때는 내 밥이었고, 이건 손님한테 파는 병이잖아.”

어머니는 보리를 잠깐 바라봤다. “돈을 받겠다는 말은 아니야. 나도 이 일이 다시 굴러가면 좋아. 과육은 여기서만 열어 확인했어.”

“돈이 싫으면 안 받을 수도 있어. 그런데 비용이 없는 척해서 가격을 낮추면, 다른 집도 엄마처럼 해 달라고 할 거야. 그건 엄마가 정할 일이 아니잖아.”

미정은 말을 보태지 않았다. 어머니는 운반표를 내려놓고 손등에 붙은 작은 반창고를 만졌다. 상자번호가 적힌 종이 가장자리에 베인 자국이었다. “운반하고 표를 맞춘 날은 적어 줄게. 그다음은 다 같이 정해.”

보리는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출근도 퇴근도 없는 가족 일을 숫자로 쓰는 게 어색했다. 그렇지만 오늘 주방에 들어온 원물은 어머니의 운반과 입고번호 대조가 없었다면 이 시각에 도착하지 못했다. 식품에 손댄 사람은 아니어도 생산을 이어 준 사람이었다. 없는 숫자로 만드는 가격은 언젠가 누군가의 밤을 또 공짜로 요구할 것이다.

해진은 관측소 퇴근길에 사 온 밴드를 내밀며 “시험해 봐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미정이 씨 제거용 칼과 상자 하나를 내주었다. “장갑 끼고 천천히 하세요. 판매분에는 넣지 않을 겁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과육을 잘랐다. 씨를 피해 돌려 깎는 손놀림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타이머가 17분을 넘을 때에도 상자의 절반이 남아 있었다. 보리가 그의 통을 들여다봤다. 잘라 낸 씨에 살이 한 덩이씩 붙어 있었다.

“강 기사님, 과육수율이 재해 수준이에요.”

“씨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씨는 관측대상이 아니고 빼야 하는 거예요. 날씨를 맡아 주세요.”

해진은 붉어진 귀를 가리려고 위생모를 더 내려 썼다. 미정이 그의 작업시간을 표에 적었다. “처음이라 느린 건 실수로만 볼 수 없죠. 교육시간도 있어야 해요.” 옥순이 웃으며 “그 교육은 누가 내느냐”고 묻자 보리가 대답했다. “우리가 이분을 고용한다면 조합이요. 오늘은 본인이 배우겠다고 했으니 체험분은 제품에 넣지 않습니다.” 해진은 망친 복숭아를 보며 스스로 수업료를 낼 테니 맛있는 쪽은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미정은 안전 확인과 가열이 끝난 뒤에만 준다고 했다.

공정시계는 손질대에서 멈추지 않았다. 씻기, 씨 빼기, 가열, 병 세척, 충전, 라벨, 포장마다 시작과 끝을 찍었다. 같은 시간에 두 사람이 함께 일한 구간은 두 사람의 노동시간으로 적었다. 보리는 처음에 작업단위 하나에 40분이라고 썼다가 미정이 동그라미를 쳤다. “시간은 40분이어도 두 명이면 사람시간은 80분이에요.”

“도시 회사에서는 제 초과근무도 자주 그렇게 사라졌어요.”

“그럼 여기선 안 사라지게 쓰세요.”

점심 무렵 어머니가 다시 왔다. 그는 전날 상자를 운반하고 번호를 맞춘 날짜와 대략 시간을 적어 왔다. 보리는 ‘대략’이라는 말을 지우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시작과 끝을 적고, 이미 지난 일은 기억에 따른 추정이라고 표시했다. 옥순도 봉인 상자를 운반한 시간과 공동주방에서 실제 손질한 시간을 따로 적었다. 장씨는 처음에는 ‘내 손은 돈 안 받아도 된다’고 했지만, 다른 집 사람에게 같은 말을 시킬 수 있냐는 미정의 질문에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보리는 종이에 시급을 적었다. “같은 손질 일에는 조합원과 교대자 모두 같은 기본시급으로 지급하죠. 숙련자와 처음 하는 사람 차이는 교육으로 좁히고요. 시간만 무한정 쓰면 안 되니까 목표시간과 안전기준을 따로 둡니다.”

“느린 사람도 다 받으면?” 옥순이 물었다.

“첫 교육에서 걸린 시간을 공개해 비난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 막혔는지 봐야죠. 일을 억지로 빨리 시키면 씨 조각이 들어가거나 손을 다칩니다.” 미정이 해진의 통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는 조용히 통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첫 원가표가 나오자 모두 침묵했다. 병당 노동비가 예상보다 컸다. 지금 가격대로 계속 팔면 새 설비를 고치기 전부터 사람에게 못 준 돈이 쌓일 판이었다. 보리는 장터 가격을 300원 올려야 한다고 썼다. “다음 생산부터 적용하고, 이미 예약받은 34병은 약속한 값으로 갑니다. 그 차액은 조합이 이번 시험비로 감수해요. 고객에게 뒤늦게 올렸다고 청구하지 않겠습니다.”

옥순은 어머니 쪽을 봤다. “그럼 이번부터 당신도 지급받아.”

어머니는 봉투를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내가 받으면 가족 작업장 빚 갚을 돈이 줄잖아.”

“받고 나서 집안 돈을 어디에 쓸지는 엄마가 정해.” 보리가 말했다. “조합이 엄마 시간을 훔쳐서 우리 빚을 대신 갚게 할 순 없어.”

그 말에 어머니의 표정이 천천히 풀렸다. “도시에서 배워 온 게 디저트만은 아니네.”

“디저트도 배웠어.”

“그럼 오늘 것은 좀 먹어 보자.”

보리는 어머니에게 완성된 작은 시식컵을 건넸다. 어머니는 해진이 손질한 체험분이냐고 물었다. 보리가 아니라고 하자 “그럼 안심하고 먹겠다”고 했고, 해진이 억울한 얼굴로 웃었다. 미정은 그 장면까지 공정표에 적겠다고 농담했다. ‘고객 신뢰 회복: 2분.’

오후 세척대 앞에서 보리가 타이머를 다시 눌렀다. 사람들은 씨 빼기가 제일 느릴 거라 짐작했다. 실제로는 다 쓴 병을 세척하고 다시 쓸 병을 기다리는 빈 시간이 더 길었다. 세척기가 다음 묶음을 받기까지 모두가 작업대를 닦으며 서 있었다. 보리는 시간표의 긴 공백을 가리켰다. “병값 300원을 올려도 여기서 사람시간을 그냥 태우면 또 모자라요.”

“세척기를 큰 걸로 사자는 말은 하지 마.” 옥순이 먼저 말했다.

“아직은요.” 보리가 웃었다. “먼저 작업순서를 바꿔 볼게요. 다음 배치에서 똑같이 재요.”

해진이 남은 체험 과육을 가리켰다. “이건 수업료 대신 제가 사겠습니다.”

“판매분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미정이 말했다. “가열한 뒤 저녁 새참으로 나눠요. 수업료는 설거지예요.”

보리는 그의 손에 새 장갑을 건넸다. “기상관측보다 어렵습니까?”

“관측값은 쳐다봐도 삐치지 않는데, 씨는 계속 도망갑니다.”

그가 병을 씻기 시작하자 보리는 시계를 켰다. 미정은 ‘표준시간’ 옆에 별표를 붙였다. 그것을 넘기면 자동으로 임금이 깎인다는 뜻으로 읽히지 않게 하려는 표시였다. 흠 많은 원물이 들어오거나 세척기가 막히면 사람의 손만 느린 게 아니었다. 보리는 씨 제거 17분을 오늘 상자의 관찰값으로 적고, 교육을 마친 작업자 셋이 다른 원물로도 재 본 뒤 계획시간을 정하자고 했다. 박 여사는 자기 집 식구를 데려오면 돈을 따로 받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판매용 일을 맡기면요.” 미정이 대답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임금과 안전교육을 생략하지는 맙시다.” 박 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머가 울리자 해진은 병을 거꾸로 세우고 자기 손목을 털었다. “오늘 제 성과는 씨보다 병 쪽이 낫겠죠?” 보리는 세척대의 기다림까지 적힌 표를 보여 줬다. “확인해 봐야죠. 관측기사님도 근거 없이 칭찬은 못 받습니다.” 둘은 웃었다. 보리는 그의 손이 뜨거운 물에 닿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나서 타이머를 껐다. 이번에는 놀리려고 잰 시간이 아니었다. 누군가 함께 쓰는 이 저녁의 값을 처음부터 정확히 적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