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나루의 스물네 번째 표
뗏목 아래 매달린 나무표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흔들렸다.
뗏목 아래 매달린 나무표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흔들렸다.
아직 해가 산등성이를 넘기 전이었다. 무너미개울 위로 엷은 안개가 흘렀고, 물살이 뗏목 옆구리를 칠 때마다 젖은 표들이 서로 부딪쳐 달각거렸다. 민연화는 그 소리를 세다가 스물셋에서 멈췄다.
복단과 매화는 주막에 남았다. 사람이 몰리기 전에 나루표부터 확인하고, 날이 밝으면 약 보따리를 들고 하류 버드나무 길목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매화는 오라비 물건이 나오면 손대지 말고 자기를 먼저 부르라는 약조를 받아 냈다.
“하나가 물 밑에 붙었소.”
주범수가 장대로 뗏목 밑을 들어 올렸다. 검게 젖은 노끈 끝에서 작은 표 하나가 뒤집혔다. 다른 것은 모두 결이 곧은 소나무였는데 마지막 것만 무른 버드나무였다. 급히 깎은 듯 모서리도 반듯하지 않았다.
최막동이 무릎을 꿇었다.
“저거요. 스물네 번째.”
연화는 손을 뻗지 않았다.
“지난번에 봤다는 표가 맞습니까?”
“모양은 맞소. 나무까지 같은지는 물에서 꺼내 봐야 알겠지만.”
“꺼내지 마시오.”
목소리는 나루 움막에서 날아왔다.
뗏목사공 순갑이 삿갓을 눌러쓰며 걸어 나왔다. 한 손에는 노를, 다른 손에는 표를 묶는 삼실을 들고 있었다. 그는 연화 일행보다 먼저 막동을 알아보았다.
“네가 다시 오면 내 배부터 가라앉을 줄 알았다.”
“내가 아니라 당신 입이 무거워서 가라앉겠지.”
막동이 일어서자 범수가 둘 사이에 장대를 가로놓았다.
“해 뜨기 전부터 사람을 물에 넣을 셈이면 나는 빠지겠소.”
순갑은 범수의 낡은 역졸 허리끈을 보고 노 끝을 조금 내렸다.
“표를 훔치러 왔으면 관아 사람이든 옛 역졸이든 다 같소. 나루 삯을 셈할 때 필요한 물건이야.”
“훔치러 온 것 아닙니다.”
연화가 빈 두 손을 보였다.
“지난번 이 나루를 건넌 사람 수를 묻고, 표 한 장을 빌리고 싶습니다. 주인 수결과 돌려드릴 날을 적겠습니다.”
순갑이 웃었다.
“종이 한 장이면 빠진 삯이 다시 생기나?”
“무엇을 잃으셨습니까?”
“괜한 입씨름할 시간을 잃었지.”
그는 뗏목으로 내려와 노끈을 발뒤꿈치로 눌렀다. 스물네 번째 표가 다시 물 밑으로 잠겼다.
“오늘 물자를 건넬 거면 삯부터 내시오. 옛일 캐러 왔으면 다른 나루로 가고.”
막동이 한 걸음 나섰다.
“지난번에는 누가 삯을 냈소? 상인들이오, 칼 찬 여섯이오?”
“내가 일일이 손을 기억하나.”
“당신은 기억해. 마지막 여섯 표에 반달 먹을 찍어 주면서 두 몫을 받았으니까.”
순갑의 발뒤꿈치에 힘이 들어갔다. 노끈이 팽팽해졌다.
연화는 막동을 돌아보았다.
“두 몫을 받은 것은 직접 봤습니까?”
막동의 입이 다물렸다.
“저자가 술 취해 자랑하는 말을 들었소.”
“언제요?”
“그날 밤 주막에서.”
“누가 함께 들었습니까?”
“월선이도 방 안에 있었지만 들었는지는 모르오.”
순갑이 노를 세게 내려놓았다.
“봐라. 제 눈으로 본 것도 아니면서 내 삯을 훔친 돈처럼 말하잖나.”
막동의 턱이 굳었다. 연화는 그가 바로 맞받기 전에 종이를 폈다.
“막동 씨가 들은 말과 순갑 어른이 받은 삯은 따로 두겠습니다. 오늘은 사람 수와 표를 먼저 보지요.”
“또 장부 칸부터 긋는군.”
막동이 쏘아붙였다.
“당신이 늦게라도 말한 것을 남의 거짓과 함께 버리지 않으려는 겁니다.”
그 말에 막동이 시선을 피했다. 순갑도 발을 떼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노끈을 밟아 누르지 않았다.
범수는 품에서 짧은 새끼줄을 꺼냈다. 돌다리 삯패를 살필 때 홈 간격을 옮겨 매어 둔 것이었다. 굵은 매듭 열여덟 뒤에, 손가락 반 마디씩 좁은 매듭 여섯이 붙어 있었다.
“표를 가져가지 않겠소. 끈과 대 보기만 합시다.”
순갑은 새끼줄을 보더니 눈빛이 달라졌다.
“다리 밑 노칠을 만났군.”
“그 사람이 본 것과 당신이 본 것이 같은 행렬인지 확인하러 왔소.”
“같으면 어쩌고, 다르면 어쩔 거요?”
“같으면 다리 건널 때 붙은 여섯이 이 나루까지 함께 왔다는 뜻이고, 다르면 그 사이 사람이 바뀌었다는 뜻이지.”
범수는 장대를 거두었다. 선택은 순갑에게 남겼다.
안개 너머에서 닭 우는 소리가 났다. 물자길이 열릴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순갑은 산 쪽 오솔길을 한 번, 물살을 한 번 보더니 마침내 뗏목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표를 풀지는 마시오. 내가 넘길 테니 눈으로만 봐.”
그가 노끈을 당기자 젖은 나무표들이 차례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표마다 가장자리에 한두 개씩 칼홈이 있었다. 첫째와 둘째의 거리는 넓고, 셋째부터는 조금씩 붙었다. 범수는 새끼줄의 매듭과 하나씩 맞췄다.
열여덟 번째까지 간격이 맞았다.
열아홉 번째부터는 표의 폭이 손톱 하나만큼 넓어졌다. 그리고 여섯 장 모두 구멍 둘레에 검푸른 먹이 번져 있었다. 물에 오래 씻겼는데도 반달의 아래 선이 남아 있었다.
막동이 숨을 내쉬었다.
“심대업 수레에 찍힌 것과 같은 모양이오.”
“비슷한 모양입니다.”
연화가 바로잡았다.
“여기서는 표 여섯에 같은 반달 먹이 남았다는 데까지만.”
막동이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번에는 다투지 않았다.
스물네 번째 버드나무 표에도 반달 자국이 있었다. 다만 다른 다섯보다 먹이 진했고 칼홈은 비뚤었다.
“왜 이것만 나무가 다릅니까?”
순갑은 젖은 수염을 훑었다.
“표가 모자랐으니까.”
“평소에는 몇 장을 준비합니까?”
“스물두 장. 장날이면 서른. 그날은 장날이 아니었고, 처음 온 자들이 열여덟이라기에 넉 장이면 남을 줄 알았지.”
“그런데 여섯이 더 왔다.”
“다리 쪽에서 칼 찬 자들이 따라왔어. 넷은 남은 표를 받고, 둘은 새로 깎아야 했지. 버드나무는 움막 뒤에 널렸으니까.”
연화가 표를 다시 세었다.
“급히 깎은 것이 둘이어야 하는데 다른 하나는 어디 있습니까?”
순갑의 손이 멈췄다.
범수가 열아홉 번째부터 표를 되짚었다. 스물세 번째 표는 소나무였지만 한 면이 다른 것보다 희었다. 얇은 버드나무 조각을 소나무 표에 붙여 덧댄 것이었다.
“하나는 덧붙여 썼군.”
“버드나무가 물을 먹으면 쉽게 갈라져.”
순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니 헌 표 뒤에 붙였지. 마지막 것은 붙일 헌 표도 없어서 새로 깎았고.”
막동이 뗏목에 손을 짚었다.
“스물넷이 맞군.”
그의 목소리에는 기쁨도 안도도 없었다. 자기가 한 말이 맞았다는 작은 보상보다, 그 스물넷이 향한 곳을 이미 아는 사람의 무게가 컸다.
연화는 열여덟과 여섯을 따로 적었다. 순갑이 턱을 치켜들었다.
“내가 스물넷을 건넸다고 쓰면 끝이오. 그자들이 웃으며 탔다는 것도 적으시오. 묶인 자는 하나도 없었어.”
막동이 돌아섰다.
“뗏목 타기 전 셋이 돌아가겠다 했소.”
“나는 못 들었어.”
“물자 광주리 내리러 움막 뒤에 있었으니 못 들었겠지. 대신 그 뒤 소리는 들었잖아.”
순갑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소리.”
“장대가 사람 등을 치는 소리. 세 번, 두 번, 다시 한 번. 그 뒤 웃음이 멎었고.”
“네가 봤나?”
“나도 움막 뒤에 있었소. 보지는 못했어.”
두 사내의 말이 맞부딪혔다. 막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고 순갑은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둘 다 매질 장면은 보지 못했다.
연화는 빈 줄 둘을 만들었다.
“막동 씨가 들은 것을 먼저 말해 주세요. 누구 목소리였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막동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움막 뒤에서 소금 가마니를 내렸소. 덕수 목소리는 알아. ‘은을 보기도 전에 더 들어가진 않겠다’고 했어. 다른 두 사람도 돌아가자고 했고. 그다음 둔한 소리가 여섯 번 났소. 비명은 한 번. 나가 보려는데 길만수가 문을 막았어.”
“길만수 얼굴을 봤습니까?”
“그때는 이름을 몰랐지만 얼굴은 봤소. 길상이 나중에 형이라고 한 자요.”
연화는 길만수라는 이름 옆에 *막동이 동일 인물이라고 진술*이라 붙였다. 경비 우두머리나 폭행한 사람이라고 단정해 적지 않았다.
“순갑 어른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뗏목에서 삯을 셌소.”
“무엇을 보셨습니까?”
“스물넷이 걸어 내려오는 것을 봤지. 앞선 열여덟은 다리 건널 때까지 시끄럽더니 나루 비탈에서는 말이 없었어.”
“다친 사람은요?”
순갑은 대답하지 않았다.
막동이 비웃었다.
“또 못 봤다고 하겠지.”
“못 본 건 못 봤다 해야지, 네가 원하는 대로 멍을 만들까?”
순갑이 버럭 소리쳤다. 물새 두 마리가 갈대에서 날아올랐다.
그는 노를 움켜쥐었다가 천천히 놓았다.
“나는 멍을 못 봤소.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다만 웃음이 끊긴 것은 분명히 들었어. 비탈을 내려올 때 맨 뒤 셋이 앞사람 어깨를 짚고 있었고.”
“다리를 저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하나는 오른쪽 옆구리를 감쌌고, 둘은 고개를 못 들었어. 그게 맞아서인지 비탈이 가팔라서인지는 나도 몰라.”
연화는 말한 그대로 적었다.
순갑은 붓끝을 노려보다가 낮게 말했다.
“내가 나루를 막았으면 저자들이 돌아갔을 거라 생각하오?”
막동이 입을 열려 하자 범수가 먼저 물었다.
“막을 수 있었소?”
“칼 찬 여섯이 내 뗏목을 쓰겠다는데, 처자식 먹일 이 나루를 걸고?”
“그날 막지 못한 것과 오늘 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일이오.”
순갑이 범수를 노려보았다. 범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역참 문을 지킬 때 관아 표를 든 수레를 많이 통과시켰소. 나중에 잘못된 길인 걸 알아도 그날의 나를 없앨 수는 없더군. 대신 오늘 보는 것을 또 놓칠지는 고를 수 있었어.”
순갑의 손에서 젖은 삼실이 미끄러졌다.
연화는 종이를 순갑 쪽으로 돌렸다.
“나루를 잃지 않게 해 드린다는 약조는 못 합니다. 받은 삯이 옳았다고 대신 말해 드리지도 못하고요.”
“그럼 내가 왜 돕소?”
“스물넷이 여기서 건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게 됩니다. 당신이 본 데까지만 당신 이름으로 남고요.”
순갑은 한참 동안 표들을 바라봤다. 물살이 잦아들자 나무 부딪는 소리도 뜸해졌다.
“마지막 표 한 장만 빌리겠다는 게 맞소?”
“주인 수결을 받고, 나루를 비우기 전에 돌려드리겠습니다. 원하시면 범수 어른이 이 자리에 남아 나머지 표를 지키게 하겠습니다.”
범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갑은 버드나무 표의 매듭을 풀었다. 물에 불은 삼실이 잘 풀리지 않자 칼을 대려 했지만, 연화가 손을 들어 막았다.
“끊지 마세요. 묶인 모양도 함께 보겠습니다.”
세 사람은 젖은 매듭을 손톱으로 조금씩 밀었다. 마침내 표가 빠지자 반달 먹 아래 작은 세로 흠집이 나타났다. 다리 삯패에서 급히 깎은 마지막 여섯 장에 있던 흠집과 같은 위치였다.
연화는 종이에 표의 앞뒤를 그렸다. 순갑은 자기 이름 아래 손도장을 찍는 대신 노 손잡이에 새긴 물결 모양 수결을 베꼈다. 손도장은 이미 여러 번 남의 이름 아래 옮겨 찍힌 적이 있었다.
“다섯째 물자길이 열리기 전, 정오까지는 돌려주시오.”
“그 전에 끝내겠습니다.”
순갑이 빈 노끈을 다시 물에 담갔다. 그러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하류 쪽을 보았다.
“그날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었소.”
막동이 몸을 돌렸다.
“왜 이제 말하오?”
“이상한 줄 이제 알았으니까.”
순갑은 뗏목 끝으로 가 물길을 가리켰다.
“스물넷이 건널 때, 앞쪽 상인 하나가 소매를 뜯었어. 물에 손 씻는 줄 알았는데 푸른 천을 뭉쳐 던지더군. 경비가 뒤를 보고 있어 못 본 척했지.”
“어느 사람이었습니까?”
“얼굴은 못 봤소. 푸른 소매와 왼손만.”
연화와 범수가 동시에 막동을 보았다. 막동은 한덕수가 왼손으로 담배 봉지 모양을 그려 주던 모습을 기억하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천은 어디로 갔습니까?”
순갑이 하류 굽이를 짚었다.
“큰비 뒤에도 없어지지 않았어. 저 버드나무 높은 가지에 걸려 있소. 물이 오를 때마다 끝이 강물을 치지.”
안개가 갈라지며 하류 숲이 드러났다.
가장 높은 버드나무 가지에서 바랜 푸른 천 조각 하나가 펄럭였다.
연화는 빌린 스물네 번째 표를 감싸 쥐었다. 막동은 이미 물가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의 발을 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