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33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명단 밖의 나무숟가락

칠복의 숟가락은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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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복의 숟가락은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

손잡이 뒤에 뚫린 세모 구멍 다섯 개 때문이었다. 등잔불 아래 내려놓으면 박만수의 숟가락은 반듯이 누웠지만, 칠복의 것은 이름을 감추듯 옆으로 돌아갔다.

민연화는 숟가락 밑에 접은 종이를 괴었다.

“그냥 두시오.”

최막동이 말했다.

“광산에서도 늘 저렇게 누웠소. 칠복은 밥 먹을 때마다 이름을 위로 돌렸고.”

“구멍은 누가 뚫었습니까?”

“모르오. 배급 맡은 자들은 작업막마다 다른 자리에 세모 표를 냈소. 하지만 이 다섯 개를 한 숟가락에 누가 모아 뚫었는지는 못 봤어.”

“그럼 다섯 구멍은 칠복이 다섯 막에 있었다는 뜻입니까?”

“아니.”

막동은 숟가락을 집지 않고 손가락만 가까이 가져갔다.

“나는 칠복이 다섯 막의 빈 그릇을 세려고 표를 모았다고 여겼소.”

무너미주막 다락 아래서 술동이 마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월선이 손님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바람이 들창을 밀 때마다 등잔불이 한쪽으로 누웠고, 벽에 걸린 삿갓 그림자가 칼날처럼 길어졌다.

주범수는 다락 사다리 곁에 앉아 있었다. 누가 올라오는지 보려는 자리였지만, 막지는 않을 참이었다. 강복단은 문 가까이에 놓인 약봉지들을 날짜순으로 펴고 있었다. 막동이 은광에 들인 약 가운데 빈 봉지만 몰래 가져온 것들이었다.

한매화는 박만수의 숟가락부터 보았다.

“이 이름은 압니다. 출발 전날 우리 집에 와서 오라비와 술을 마셨어요. 자기 마누라한테는 길이 열흘이라 해 놓고 보름치를 얻어먹었다고 웃었지.”

웃었다는 말을 한 뒤 매화는 입을 다물었다. 그날의 웃음이 지금 누구 몫인지 정하지 못한 듯했다.

연화가 물었다.

“박만수 씨가 쓰러진 날을 다시 말해 주시겠습니까?”

막동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까 말했잖소. 돌에 깔렸다고.”

“아까는 마지막으로 본 모습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날짜를 맞추려는 겁니다.”

“사람 숨이 끊어진 날까지 장부 칸에 맞아야 하오?”

“그분 아내에게 ‘어느 날쯤’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적고요.”

막동은 불편한 듯 맨발을 오므렸다. 월선이 내어 준 마른 버선은 옆에 놓인 채였다.

“초사흘이었소. 아니, 안에서 초사흘이라 불렀던 날이지. 해를 제대로 못 보니 하루쯤 어긋날 수 있어.”

연화는 *막동이 센 초사흘, 바깥 날짜와 하루 안팎 차이 가능*이라고 적었다.

“어떻게 다쳤습니까?”

“갱목이 울었소. 만수가 먼저 소리를 듣고 옆 사람 둘을 밀쳤지. 그리고 천장이 조금 내렸어.”

“그 자리에서 숨이 멎었습니까?”

“내가 달려갔을 때는 숨을 못 찾았소. 가슴도 안 움직였고. 경비가 몸을 끌고 갔어.”

“묻힌 곳은 못 보셨고요.”

막동이 주먹을 쥐었다.

“사람 죽은 걸 몇 번 말하게 할 작정이오?”

주범수가 사다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연화가 먼저 붓을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막동은 예상하지 못한 듯 그녀를 보았다.

“같은 말을 되풀이시킨 건 제 잘못입니다. 지금 확인된 것은 당신이 숨을 찾지 못했다는 것과 몸을 경비가 옮겼다는 것까지로 적겠습니다.”

“그렇게 쓰면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말처럼 보이지 않소.”

“살았다고 쓰지 않습니다. 묻은 곳과 다른 목격자를 아직 못 찾았다고 쓰는 겁니다.”

매화가 박만수의 숟가락에서 손을 뗐다.

“그의 아내가 보면 어느 쪽이 더 잔인할까요. 죽었다고 못 박지 않는 것과, 나중에 다른 말이 나오는 것.”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희망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빈 문 앞에 붙들어 두기도 한다는 걸 이 방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복단이 약봉지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이 봉지에 검은 점 둘이 있소. 무슨 표시요?”

막동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대답했다.

“열병 환자가 둘이라는 뜻이오. 내가 글을 쓰면 경비가 찢어 보니까 숯점으로 수를 남겼소.”

“칠복도 그 둘 가운데 있었습니까?”

“그날은 셋이었어.”

막동이 복단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봉지들을 빠르게 훑더니 귀퉁이가 찢긴 것을 골랐다.

“이것. 점은 셋이었는데 모서리 하나가 떨어졌소.”

연화는 봉지를 등잔에 비췄다. 찢긴 가장자리 끝에 검은 숯가루가 반쪽만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세 사람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막동의 말이 아무 흔적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칠복은 언제 처음 봤습니까?”

“상단이 오기 전부터 있었소. 몇 달인지는 몰라. 처음엔 북쪽 창고 짐꾼이었다더군. 품삯을 못 받아 다투다가 광산으로 보내졌다고 했어.”

“누가 보냈다고 했습니까?”

“그 말은 안 했소.”

“심대업 사람입니까?”

범수가 물었다.

“모르오. 경비 옷이 심대업 창고 것과 닮았지만 옷이 주인을 증명하진 않잖소.”

범수는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 막동이 연화의 말투를 빌린 것을 눈치챈 듯 입가가 잠깐 움직였다.

연화가 새 종이에 두 줄을 그었다. 위에는 *객주 부조계 열여덟*, 아래에는 *광산에서 따로 확인된 사람*이라 적었다. 박만수의 이름은 위쪽에서 찾아 표시하고, 칠복은 아래쪽 첫 칸에 썼다.

막동이 종이를 빤히 보았다.

“칸 하나 만드는 데 오래도 걸리는군.”

“이름을 잘못 올리면 다른 칠복을 찾게 될 수 있으니까요. 고향이나 식솔을 아십니까?”

“평양 쪽이라는 말만 들었소. 누이가 하나 있고, 짐 나르다 번 돈을 장날마다 보냈다 했어. 성은…….”

막동은 이마를 눌렀다.

“모르겠소. 다들 칠복이라 불렀어.”

복단이 말했다.

“행상망에 평양 출신 칠복, 북쪽 창고 짐꾼, 누이 하나로 묻겠소. 다만 죽었다는 말은 돌리지 않겠어. 찾는 사람이 움직이지 못할 수 있으니.”

“왜 죽었다는 말을 빼오?”

“같은 이름 가진 집이 상복부터 입을 수 있소.”

막동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짜 상복을 입고 객주에 들었던 방칠 일행의 일이 다시 다른 모양으로 반복될 수 있었다.

매화가 칠복의 숟가락을 살폈다.

“이 사람은 왜 다섯 막의 빈 그릇을 셌습니까?”

“배급이 자꾸 줄었으니까.”

막동은 다섯 구멍을 차례로 짚었다.

“첫 막은 은돌 깨는 자들, 둘째는 물 빼는 자들, 셋째는 갱목 나르는 자들, 넷째는 자루와 수레를 맡은 자들. 다섯째에는 다치거나 열 오른 사람을 몰아넣었소. 경비는 다섯째 몫을 가장 먼저 줄였지. 일 못 하는 입이라면서.”

“칠복 씨는 어느 막이었습니까?”

“셋째. 하지만 밤이면 다섯째로 갔소. 자기 밥을 반 남겨 병자에게 먹였어. 막마다 세모를 내는 자리가 달랐는데, 칠복 숟가락에는 다섯 자리 표가 모두 있소. 직접 옮겨 뚫는 건 못 봤지만, 나는 그걸로 누구 몫이 빠지는지 셌다고 여겼어.”

“그래서 손잡이에 다섯 개를 뚫었군요.”

“종이에 적으면 빼앗기니까.”

막동은 숟가락을 뒤집어 이름을 위로 향하게 했다.

“그자가 말했소. 이름은 빼앗겨도 빈 그릇 수는 남는다고.”

연화는 칠복 아래에 *셋째 작업막 소속이라는 막동 진술. 다섯째 병자막 배급을 돌봄*이라고 적었다. ‘광부’나 ‘죄인’이라고 쓰지 않았다. 그가 자기 발로 들어갔는지 끌려갔는지도 아직 몰랐다.

사다리 아래에서 발소리가 났다. 주범수가 몸을 돌렸고, 곧 월선이 얼굴을 내밀었다.

“한양에서 온 아이가 산원을 찾소.”

태복이 다락으로 올라왔다. 땀에 젖은 이마에 먼지가 붙어 있었다. 그는 허만복의 쪽지를 내밀고 물부터 한 모금 마셨다.

연화가 쪽지를 펼쳤다.

*부조계 밖 사람까지 객주 이름으로 곡식을 약조하지 마라. 궤 사정은 네가 안다. 돌아와 의논하자.*

말은 짧았으나 만복의 불안이 종이 가득 보였다. 남은 돈은 식솔 아홉의 사흘치 곡식과 답사 품삯으로 이미 줄어 있었다. 칠복의 식솔까지 찾으면 쌀을 내겠다는 기대가 생길 수 있었다.

복단이 쪽지를 읽고 코웃음을 쳤다.

“장부 밖이면 배고픔도 밖에 있답니까?”

“나리 말은 계궤에서 함부로 약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연화가 말했다.

“뜻을 곱게도 읽는군.”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칠복은 계에 안 들었으니 이름만 적고 끝내자?”

“계금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복단의 눈썹이 올라갔다. 매화가 두 사람 사이를 불안하게 보았다.

연화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이름까지 빼자는 게 아닙니다. 계금 지급 명단과 광산 피해 명단을 나누겠습니다.”

그녀는 방금 그은 두 줄을 복단에게 돌려 보였다.

“칠복 씨 식솔을 찾으면 부조계 돈이라고 속여 내주지 않겠습니다. 객주 밖에서 빌릴 곡식, 행상끼리 모을 됫박, 나중에 책임 있는 자에게 돌려받을 몫을 따로 적겠습니다. 지금 약조할 수 있는 것은 식솔을 찾고 당장 굶지 않게 연결하겠다는 데까지입니다.”

복단은 종이를 읽지 않고 연화의 얼굴을 보았다.

“자네는 늘 선부터 긋는군.”

“선이 없으면 힘센 사람이 계궤를 먼저 가져갑니다.”

“선 밖 사람은?”

“그래서 새 종이를 만드는 겁니다.”

연화는 목소리를 낮췄다.

“계금의 몫과 진실의 몫은 다릅니다. 돈을 못 낸다 해도 이름은 함께 데려갑시다.”

복단의 입술이 조금 풀렸다.

“좋아. 대신 한양 돌아가면 이 종이를 대청 한가운데 펴게. 계원들 몰래 행상 곡식만 걷게 하진 않겠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복이 두 줄을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박만수 댁에는 뭐라고 전합니까?”

연화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망 계금을 준비하라고는 아직 말하지 마세요. 숟가락과 막동 씨의 목격이 나왔고,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러 간다고 전해 주세요. 숨기지는 말되 결론부터 보내지 마세요.”

“화를 내실 텐데요.”

“그 화는 제가 받겠습니다.”

태복이 쪽지를 품에 넣었다. 돌아서기 전, 박만수의 숟가락에 두 손을 모아 짧게 절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막동이 그 모습을 오래 보았다.

“칠복에게도 그렇게 해 줄 사람이 있겠소?”

“누이를 찾으면요.”

복단이 대답했다.

“못 찾으면 우리가 이름부터 들고 돌아가고.”

다락 아래 마지막 손님이 나갔다. 월선이 대문 빗장을 거는 소리가 울렸다. 이제 방 안에는 바람과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남았다.

연화는 약봉지 날짜를 숟가락 두 개의 행 아래 옮겼다. 박만수가 다친 것으로 보이는 날에는 검은 점 하나가 갑자기 줄었고, 칠복이 쓰러졌다는 날에는 셋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었다. 다음 봉지에는 다시 두 점뿐이었다.

“줄어든 한 점이 칠복이라는 뜻입니까?”

그녀가 물었다.

막동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그날 다섯째 막에 없었다는 것만 알아. 경비가 새벽에 빈 멍석 하나를 치웠고.”

“몸을 보지는 못했고요.”

“못 봤소.”

연화는 칠복 이름 옆에 *열병 뒤 살아났다는 말을 들음. 이후 작업막 부재와 빈 멍석을 막동이 봄. 생사 전언이 이어지지 않아 추가 확인 필요*라고 적었다.

막동이 씁쓸하게 말했다.

“죽은 사람도 당신 종이에서는 쉽게 못 죽는군.”

“살아 있는 사람도 쉽게 죽었다 적혔으니까요.”

매화가 오라비 이름을 쓴 첫 장을 떠올린 듯 눈을 감았다.

범수는 숟가락의 구멍을 새끼줄에 옮겨 매듭 다섯 개를 만들었다. 각 간격이 조금씩 달랐다. 막동이 그것을 보고 숟가락을 들어 등잔 가까이 댔다.

“잠깐.”

구멍은 같은 줄에 있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는 손잡이 왼쪽, 셋째는 가운데, 넷째와 다섯째는 오른쪽으로 휘었다.

“내가 작업막 표로만 본 게 틀렸을 수 있소.”

막동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복단이 물었다.

“또 무엇인데?”

“다섯 작업막은 물건을 받는 길도 하나씩 달랐소. 첫째 막에는 소금길, 둘째에는 약초길, 셋째에는 쇠붙이길을 대는 식으로. 이 구멍 자리도 그 길을 여는 차례와 맞아.”

“그러면 빈 그릇이 아니라 길을 센 겁니까?”

“둘 다일 수 있소. 칠복이 뜻을 겹쳐 남겼는지, 내가 이제 와 그렇게 읽는지는 확인해야 하오.”

연화는 다섯 구멍 아래 빈칸을 만들었다.

“다음에 열리는 길은 어느 쪽입니까?”

막동은 다섯째 구멍을 가리켰다. 끝이 다른 것보다 거칠었지만 그것만으로 언제 뚫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물건을 넣은 날은 넷째 길 차례였소.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면 다음은 다섯째요.”

“뗏목나루.”

범수가 새끼줄의 다섯째 매듭을 쥐었다.

“언제?”

“내일 해가 가운데 오기 전.”

막동이 칠복의 숟가락을 종이 위에 똑바로 놓았다.

이번에는 이름이 위를 향했다.

“지난번 경비가 나루꾼에게 스물넷 몫 표를 만들라 했소. 이번에도 같은 묶음을 쓰는지, 스물네 번째 표를 찾으시오. 광산으로 들어간 사람 수가 당신들 장부보다 여섯 많은 까닭도 함께 나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