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아래 19번 벨트
파란 필름의 빈자리
출입증 발급실에는 서류보다 더 많은 색이 있었다. 입사자용 노랑, 외주작업자용 회색, 견학자용 흰색. 그 위에 임시카드의 파란 보호필름이 얇게 빛났다. 로사는 자기 카드 사진의 파란 모서리를 떠올리며 창문 밖에서 기다렸다. 발급실에는 본인이 부를 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출입증 발급실에는 서류보다 더 많은 색이 있었다. 입사자용 노랑, 외주작업자용 회색, 견학자용 흰색. 그 위에 임시카드의 파란 보호필름이 얇게 빛났다. 로사는 자기 카드 사진의 파란 모서리를 떠올리며 창문 밖에서 기다렸다. 발급실에는 본인이 부를 때만 들어갈 수 있었다.
문 안쪽에서 윤서진이 카드 묶음을 세고 있었다. 세 달 전 단체 재발급을 맡은 사람이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두 번째 묶음의 끝을 다시 만졌다.
“필름 두 장이 비어요.”
“카드 두 장입니까?” 하지후가 물었다.
“아니요. 먼저 필름이에요. 필름이 둘 비는 것과 카드가 둘 만들어졌다는 건 아직 달라요.”
태식이 나경을 보았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진 숫자를 곧바로 사라진 사람으로 바꾸지 않는 태도가, 이 방에서는 윤서진에게 있었다.
발급실은 평소보다 좁아 보였다. 작은 기계가 한 장씩 플라스틱을 뱉고, 식은 토너 냄새가 났다. 벽에는 ‘시험·오류 발급분 반드시 파기 확인’이라는 오래된 표어가 붙어 있었다. 서진은 그 문구를 하루에도 여러 번 읽었지만 그날은 처음 보는 것처럼 눈을 피했다.
“요청 부서별로 발급 묶음을 보존하고 있습니까?” 지후가 물었다.
“대장과 승인서, 오류카드 파기대장은 있습니다. 실물 오류카드는 파쇄함으로 갔고요. 정규 발급본은 각 부서가 인수했어요.”
“그럼 이 숫자를 오늘 여기서 설명할 수 있겠네요.”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요.”
서진은 단체 발급일을 달력에서 찾았다. 하루 동안 삼백 장 넘는 출입증을 갱신했다. 분실자를 위한 임시카드도 만들었고, 발급기 상태를 확인하는 시험카드도 뽑았다. 가장 바쁜 시간에는 물류임원실에서 직원 명단을 직접 들고 와 먼저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임원실이 요구했군요.” 태식이 말했다.
“그날 다들 요구했어요. 접수 순서를 바꿔 달라는 말로 사람을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서진이 건조하게 답했다.
태식은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앞선 화요일들에 장승원 이름을 몇 번이나 먼저 올리려 했는지 생각났다. 임원실 단말에서 허위 입고가 처리되고 승인코드가 발급된 사실은 중요했다. 그러나 그 사실과 파란 필름 두 장 사이에는 아직 사람이 지나간 길이 비어 있었다.
보안감사 담당자는 발급기의 당일 카운터를 가져왔다. 정상 발급 대장보다 시험 출력이 두 장 많았다. 서진은 곧장 ‘시험’이라는 말에 손을 뻗었다.
“종이가 걸려서 빈 카드만 두 번 지나갔을 겁니다.”
“그날 사고 기록이 있습니까?” 나경이 물었다.
서진은 정비일지를 펼쳤다. 걸림은 있었다. 하지만 오전 열 시, 빠진 두 장은 오후 두 시 이후의 카운터에 있었다. 같은 날의 고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맞출 수는 없었다.
“제가 기록을 빼먹었을 수도 있어요.”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 서진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빼먹었다고 하면 의심받고, 다 적었다고 하면 거짓말하는 거잖아요. 그날 점심도 못 먹고 일했어요. 다들 빨리 달라고 했으니까.”
지후는 조사 시간을 끊었다. 서진이 원하면 노조 참관인을 부르겠다고 했다. 서진은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로사는 문밖 벤치에서 그 광경을 보았다. 자신의 이름이 든 카드를 만든 사람에게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서진이 실수와 범죄 사이에 끼어 있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노조 참관인 조세영이 도착할 때까지 발급실 문은 닫혔다. 태식은 복도 자판기 앞에서 서진에게 줄 커피를 뽑으려다가 멈췄다. 경찰 조사를 받는 사람에게 호의를 건네면 그것마저 부담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것 하나만 뽑았다. 로사가 와서 종이컵을 내려다봤다.
“뜨거운 물만 마시면 더 빠를 텐데.”
“오늘은 뜨거운 물 맛을 모릅니다.”
“그래도 저 직원한테 화낼 생각은 하지 마요.”
“안 합니다.”
“아까 얼굴이 그랬어요.”
태식은 부인하려다 관뒀다. “내가 뭔가 해야 직성이 풀려서요.”
“그럼 내 카트 바퀴요. 감식 끝나면 진짜로 고쳐 줘요.”
둘은 비로소 짧게 웃었다. 발급실 안에서는 서진이 혼자 아니게 된 뒤 조사가 다시 시작됐다.
파기함은 투명한 플라스틱이었다. 안의 조각은 이미 뒤섞여 있었다. 지후는 함을 뒤집거나 조각을 꺼내지 않았다. 보안감사 담당자가 파기 기록의 일련번호와 실제 투입 확인표를 대조했다. 당일 폐기 대상은 모두 파기함으로 들어갔다. 필름 두 장과 발급기 통과 두 번은 여전히 설명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복제용 두 장이 사라졌다’고 지금 쓰면, 없어진 물건이 실제 카드인지도 확인하지 않은 결론이었다.
나경이 접수철의 맨 끝을 열었다. 부서별 수령서가 붙어 있었다. 물류임원실 묶음에는 당일 접수자 서명과 수량이 맞았지만, 별도 시험 요청서 한 장이 접수철 아래로 밀려 들어가 있었다. 요청 부서는 야간물류 임원실. 시험 사유에는 ‘출입문 교체 전 호환 확인’이라고 적혔다.
“이 문은 그날 교체되지 않았어요.” 태식이 말했다.
“그건 시설팀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지후가 답했다.
서진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눌렀다.
“저 요청서는 왜 대장에 없죠?”
“기억나십니까?”
“급하게 누가 가져왔어요. 그때 저는 다른 카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얼굴은 기억 안 납니다. 명함만 봤는데, 그것도 누구 것이었는지 자신 없어요.”
“확실한 것만요.”
“이 종이는 내가 받았습니다. 이 접힌 모서리, 제가 집게로 눌러 놨던 자국이에요. 그런데 카드가 나갔는지는 모르겠어요.”
지후는 바로 그 두 문장을 적었다. 태식은 서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부실한 답 같지만, 빈칸을 채우기 위해 로사 이름을 쓰는 것보다 정확했다.
조세영은 참관인으로서 두 가지를 요구했다. 서진이 참고인이라는 지위를 분명히 하고, 직원 전체 발급자료가 아니라 그날 두 장의 오류·시험 출력에 한해 확인할 것. 지후는 둘 다 받아들였다. 발급실 직원들의 사진과 주소가 한꺼번에 수사기록으로 옮겨가는 일은 막혔다.
보안감사 담당자가 시험 요청서의 원본을 찾으려 서고 문을 열었다. 명단 철은 부서 이름순으로 꽂혀 있었고, 야간물류 철 하나만 색이 바랬다. 담당자는 그 철을 꺼내 책상에 놓았다. 서진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려다 멈췄다.
“저건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맨 뒤에는 전 직원 사진 촬영 동의서들이 끼워져 있었다. 사건과 무관한 얼굴과 주민정보가 줄줄이 보였다. 지후가 철을 덮게 하고, 필요한 요청서 한 장만 분리해 입회 촬영하도록 했다. 태식은 못마땅했다. 다른 장에도 실마리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로사 번호를 찾겠다고 수백 명의 얼굴을 뒤지는 것은, 앞서 미화반 전원의 소지품을 보자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요청서는 아래 모서리가 작게 찢겨 있었다. 서진은 오래전 집게를 뺄 때 종이가 함께 뜯긴 것 같다고 했다. 조세영은 그 기억을 사실로 적지 말고 진술로만 남기자고 했다. 서진은 잠깐 얼굴을 붉혔지만 이내 자신이 먼저 원했던 구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안담당이 접수번호를 조회하자 같은 번호로 출력된 송부표가 한 장 더 나왔다. 그날 서진은 발급실에서 사본을 보관했고, 임원실은 요청 원본을 돌려받았다는 표시였다. 서류가 두 갈래로 움직였다는 것만 확인됐다. 원본을 받은 사람이 시험카드를 가져갔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서진 씨는 어느 순간부터 발급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까?” 나경이 물었다.
“수령표에 숫자가 맞을 때요.”
“그 숫자에는 시험 출력이 포함돼 있었나요?”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회사가 원하는 정규 발급분은 맞았지만 시험 출력 두 번은 별도였다. 숫자를 세는 규칙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그녀는 마침내 그날 자신이 확인한 범위와 확인하지 못한 범위를 말할 수 있었다. 눈에 띄는 실수 하나를 인정한 뒤의 얼굴은 오히려 조금 편안해 보였다.
그 사이 로사는 재발급 명단 사본을 보았다. 미화반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시험 요청서에 붙은 ‘검증 대상 번호’ 칸에는 자신의 구형 카드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종이를 내려놓지 않고 말했다.
“이건 내가 신청한 게 아닙니다.”
“그 사실은 확인했습니다.” 지후가 말했다.
“그럼 누가 신청했는지 꼭 찾으세요. 나는 새 카드를 못 받았는데 누군가는 내 번호를 새 카드에 시험했잖아요.”
서진은 로사를 보지 못했다. 로사도 서진을 바라보지 않았다. 같은 방에서 두 사람의 불안은 서로 다른 곳을 향했다. 하나는 누가 자기 이름을 가져갔는지, 다른 하나는 자기 손을 거쳐 무엇이 나갔는지 알고 싶었다.
시설팀의 답은 저녁에 도착했다. 해당 출입문 교체 계획은 없었다. 호환 시험을 요청할 정당한 작업지시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요청서의 서명은 아직 원본 감식 전이었다. 지후는 명단과 시험서, 발급기 카운터를 보전하면서 승인 경로를 확인하기로 했다.
퇴근을 앞둔 서진이 파란 필름 묶음을 다시 세었다. 이번에는 숫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끝에 두 장이 비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묶음을 서랍에 넣자 로사의 임시 출입증에서 새 필름 한 귀퉁이가 들떴다. 로사는 무심코 그것을 누르려다 멈췄다.
새 카드의 흠집은 지금 만들어진다. 누군가 세 달 전에 만든 카드는 이미 세 달치 시간을 갖고 있었다. 로사는 그 시간을 되짚는 사람이 서진 하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