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오방이라는 이름
무너미주막 뒤 장작더미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무너미주막 뒤 장작더미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주범수는 연화 일행보다 반나절 먼저 주막에 와 있었다. 북쪽 갈림길의 수레 자국을 더 보던 그에게 복단이 장꾼을 시켜 `무너미주막, 오방` 두 마디를 보냈고, 그는 가까운 길을 탔다. 한 식경 전에는 뒤뜰에서 떠나는 장작수레도 보았다. 수레 옆 흙에는 장작더미까지 이어진 젖은 맨발 자국이 찍혀 있었다.
비는 조금 전 그쳤다. 처마 밑 흙은 벌써 단단해졌는데, 장작 사이에 내놓은 짚신 한 켤레에서는 아직 물이 줄줄 흘렀다. 앞코보다 뒤축이 더 젖어 있었다. 범수는 짚신 주인이 물가를 지난 뒤 수레를 얻어 탔을 가능성을 떠올렸으나, 그것만으로 어느 길에서 왔다고 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장작더미 건너편에 물 한 사발을 놓았다.
“오방.”
대답은 없었다.
“목마르지 않으면 손이라도 씻으시오. 돌가루가 손금에 박혀 있더군.”
장작 틈에서 작은 돌이 튀어나왔다. 검은 알갱이가 든 회백색 광석이 공중에서 한 번 돌고 범수 발치에 떨어졌다.
“내 이름을 어디서 들었소?”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쪽 귀 끝이 조금 잘려 있었고, 젖은 짚신을 벗은 맨발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한 손에는 짧은 장작을 쥐고 있었다. 칼보다는 덜 위험하고, 맞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아픈 물건이었다.
범수는 길을 막지 않았다. 주막 담과 장작더미 사이에는 사람 하나가 빠져나갈 틈이 있었다.
“담배전 노파가 들었소.”
“그 노파 입은 외상표보다 길군.”
“외상표 반쪽도 길더이다.”
범수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지는 않았다. 사내의 눈이 잠깐 그의 소매로 내려갔다가 돌아왔다.
“나머지 반쪽을 찾으러 왔으면 주모에게 물으시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건 이름이오.”
“오방이라 하지 않았소.”
“그건 불리고 싶은 이름이고.”
사내가 장작을 고쳐 쥐었다. 그때 주막 뒷문이 열렸다. 강복단이 빈 술동이를 굴려 내오고, 민연화가 뒤따랐다. 한매화는 보이지 않았다. 연화가 주모 월선에게 부탁해 앞방에 머물게 했다. 오라비를 안다고 한 사람을 보자마자 이름부터 다 쏟아 낼까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매화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게 될까 봐, 먼저 물을 순서를 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복단은 술동이를 장작더미 옆에 세웠다.
“길은 열어 두었소. 나가고 싶으면 나가시오.”
사내가 틈을 보았다.
“대신 나가면 담배 두 봉지와 약초가 누구에게 갔는지는 다른 입을 찾아 물을 거요. 그러다 당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 붙을 수 있어.”
“남의 일 걱정해 주는 행상은 처음 보오.”
“남의 일이 내 길을 막으면 내 일이 되지.”
복단은 술동이에 걸터앉았다. 연화는 외상표 반쪽을 꺼내 흰 종이 위에 올렸다.
“월선 아주머니가 가진 반쪽과 맞춰 보겠습니다. 당신이 보는 데서요.”
뒷문 안쪽에서 월선이 나왔다. 그녀는 연화에게 종이를 주지 않고 자기 손으로 두 조각을 붙였다. 찢긴 닥섬유 세 올이 서로 엉기고, 흐려졌던 ‘무너미’ 세 글자가 이어졌다. 술 두 되 아래에는 소금 한 말과 마른 약초가 적혀 있었다.
월선이 말했다.
“이 표를 담배 봉지에 넣은 건 나요. 오방이 외상 갚을 돌을 두고 가면서, 다음 물건 받을 때 이 반을 내보이라 했어.”
연화가 노파의 진술 아래 새 줄을 더했다.
“그럼 담배전 노파가 넣은 건 아니군요.”
“그 양반은 봉지 밑에 종이 하나 더 든 줄도 몰랐겠지.”
사내가 낮게 욕을 삼켰다.
“월선이, 입 다물기로 했잖아.”
“네가 어젯밤 돌아오지 않았으면 다물었을 거다.”
월선은 사내의 젖은 발을 내려다보았다.
“사람 살리러 다닌다면서 네 발부터 물에 불려 죽일 셈이냐.”
사내의 손에서 장작이 조금 내려갔다.
연화는 외상표를 접지 않았다.
“한덕수 씨가 계피 담배와 약을 부탁했습니까?”
“그 이름을 내가 말했다고 누가 그럽디까.”
“노파는 당신이 말했다고 했습니다.”
“늙은 귀가 잘못 들었겠지.”
연화가 담배 봉지를 꺼냈다. 계피 향이 젖은 장작 냄새 사이로 번졌다. 사내의 시선이 봉지에 박혔다. 입은 다물었지만 오른손 엄지가 무심코 검지 마디를 두 번 눌렀다.
뭔가를 셀 때 쓰는 버릇처럼 보였다.
“계피는 세 꼬집.”
연화가 말했다.
엄지가 멈췄다.
“약 봉지에도 같은 향을 배게 해 달라고 했고요. 햇빛 못 본 사람이 기침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덕수 씨를 만난 적 없는 사람이 단골 담배전 노파와 매화 씨가 함께 확인한 세 꼬집 양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누구에게 전해 들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사내가 웃었다. 웃음은 짧고 메말랐다.
“관아 아전보다 더 답답한 분이군. 살았다고 해도 의심하고 죽었다 해도 의심할 테니.”
“살았다는 말을 믿고 싶어서 묻는 겁니다.”
연화의 대답에 사내의 웃음이 꺼졌다.
범수가 물 사발을 한 뼘 앞으로 밀었다.
“말하기 싫으면 물만 마시고 가시오. 다만 다음에 만날 때는 오늘보다 많은 사람이 당신 이름을 알게 될 거요.”
사내는 장작을 내려놓았다. 물을 단숨에 들이켠 뒤 사발을 엎어 바닥에 놓았다.
“최막동.”
“본명입니까?”
“어머니가 부르던 이름이니 그것까지 거짓이면 나도 모르오.”
“오방은요?”
“다섯 길을 오간다고 광산 놈들이 붙인 이름이오. 소금길, 약초길, 술길, 쇠붙이길, 곡식길. 어느 길에서 잡혀도 나머지 넷은 모른다고 하려고.”
복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다 말해 주는군.”
“길 이름만 말했지 사람은 안 댔소.”
막동은 젖은 짚신을 집어 장작 위에 뒤집었다. 신 바닥에서 회백색 흙과 검은 알갱이 몇 개가 떨어졌다. 연화가 어제 담배전 장부에서 베낀 광석 그림을 펼쳤다. 윤곽이 같았지만 그림은 그림일 뿐이었다.
범수가 광석 조각을 주워 수레바퀴에서 떠 둔 가루 봉지 옆에 놓았다.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자 두 곳의 검은 알갱이가 같은 속도로 가라앉았다.
“같은 산에서 나온 것 같기는 하오.”
그는 단정을 피했다. “같은 돌인지는 돌을 아는 자에게 물어야 하고.”
막동이 코웃음을 쳤다.
“그 산의 돌이 맞소. 내가 거기서 주워 왔으니까.”
연화는 붓을 들었다.
“무엇을 가지고 들어가고, 무엇을 가지고 나옵니까?”
“소금과 약, 가끔 술. 나올 때는 은 부스러기를 받소.”
“누구에게서?”
“경비가 광부 몫이라고 던져 줘. 나는 그걸 장터에서 바꾸고.”
범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심대업에게도 물건을 팝니까?”
막동은 대답 대신 짚신 끈을 당겼다. 젖은 짚이 끊어졌다.
복단이 말했다.
“당신이 약을 들인 것으로 살아난 사람이 있을 수 있소. 은을 빼내 팔아 그 구멍을 지켜 준 것도 사실일 수 있고. 둘 다 한 사람 손에서 했다고 한쪽이 없어지지는 않아.”
“심대업 사람한테도 은을 넘겼소.”
막동이 마침내 말했다.
“그자들이 사지 않으면 다른 장꾼이 내가 다니는 길을 캤을 거요. 열 덩이를 받으면 셋을 경비에게 돌리고, 둘은 심대업 창고 중개에게 팔고, 남은 것으로 소금과 약을 샀소.”
“당신 몫은?”
범수가 물었다.
“한 덩이.”
“왜 필요했습니까?”
“사람이 밥을 먹으니까.”
막동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거칠어졌다.
“내 누이와 조카가 안에 있소. 내가 의인인 줄 알고 왔다면 헛걸음했어. 살리려고 약을 넣었지만 그 약값으로 은을 받아 나온 것도 사실이오. 더 비싸게 팔 수 있으면 그렇게 했고, 술을 덜 사고 내 신을 산 날도 있었소.”
연화는 그 말을 줄이지 않고 적었다. *약과 소금을 들임. 은을 받아 경비와 중개에게 일부를 돌리고 일부는 물자 및 본인 생계에 씀. 양은 본인 진술이며 확인되지 않음.*
막동이 종이를 보며 물었다.
“도둑이라고 안 쓰오?”
“그 말을 정할 자리가 아닙니다.”
“그럼 은인?”
“그것도 아닙니다.”
연화는 붓을 내려놓았다.
“선한 이름 하나로 덮지 않겠습니다. 한 일마다 따로 값을 묻고 도움도 따로 받겠습니다.”
막동은 한동안 연화를 바라보았다. 도망갈 틈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장작더미 앞으로 나와 주막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무엇을 알고 싶소?”
앞방 문살 너머에서 미세한 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매화가 듣고 있었다. 연화는 그 사실을 막동에게 숨기지 않았다.
“덕수 씨 누이가 저 안에 있습니다. 당신 말을 듣습니다.”
막동의 얼굴이 굳었다.
“그럼 더 말 못 하오.”
문이 열렸다. 매화가 나왔지만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문턱 안쪽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가 묻지 않겠소.”
그녀가 말했다.
“내 오라비가 살았다고 먼저 말하면 그것만 들을 테고, 죽었다 하면 당신 멱살부터 잡을 것 같소. 산원이 물으시오. 나는 들을 테니.”
연화는 매화와 막동을 번갈아 보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직접 본 날, 살아 있던 상단 사람은 몇이었습니까?”
“열일곱.”
매화의 숨이 흔들렸다.
“열여덟 가운데 열일곱입니까?”
“그렇소.”
“나머지 한 분은?”
막동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박만수. 갱 입구에서 돌에 깔렸소. 내가 본 것은 숨이 멎은 뒤였고, 묻는 것까지는 못 봤소. 경비 둘이 몸을 옮겼어.”
연화는 *사망 확정*이라고 쓰지 않았다. *막동이 숨이 없다고 판단한 박만수를 목격. 이후 장소 미확인.*이라 적었다.
“돌다리 쪽지에는 둘이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칠복이오. 열이 올라 쓰러졌지만 그 뒤 살아났다는 말도 들었소. 내가 다시 들어갔을 때에는 작업막에 없었고.”
“칠복이라는 이름은 상단 명단에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들 장부로는 못 찾지.”
막동의 말끝에 가시가 돋았다. “광산에는 상단 사람만 있는 게 아니오.”
매화가 물었다.
“덕수는요?”
연화는 막지 않았다. 매화가 한 번은 자기 입으로 물어야 했다.
막동은 담배 봉지를 바라봤다.
“그 사람이 세 꼬집이라 했소. 약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누이가 자기가 보낸 줄 알 거라고.”
매화가 입을 틀어막았다. 울음소리는 나지 않았다.
“언제 봤습니까?”
연화가 물었다.
“담배와 약 주문을 받아 장으로 나오기 전날 밤. 오늘로 보름 남짓 됐소.”
“지금도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막동은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못 하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살아 있었다고만 하겠소.”
매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을 빼앗긴 표정이 아니었다. 희망에 날짜 하나가 붙은 얼굴이었다.
범수가 물었다.
“광산 안 인원과 경비 교대는?”
“살아 있는 상단 열일곱. 먼저 있던 일꾼은 셀 수 없소. 막마다 갈라 두었으니까. 경비는 닷새마다 바뀌는데 다음 교대는 나흘 뒤요.”
복단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들어갈 길을 그려 주시오.”
막동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길을 그리면 종이가 잡히는 순간 안의 목이 달아나오. 내가 다시 들어가 신호를—”
“안 됩니다.”
연화가 잘랐다.
“오늘 말한 것만으로도 당신은 위험합니다. 다시 들어가라는 요구는 하지 않겠습니다. 경비가 바뀌는 시각과 살아 있는 수만 적겠습니다.”
“그걸로 사람을 꺼낼 수 있소?”
“당장 꺼낸다고 약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관아가 농장 창고라며 외면하지 못하게 할 근거는 됩니다.”
막동은 못마땅한 얼굴로 침묵했다. 영웅이 될 기회까지 빼앗긴 사람처럼도, 다시 지옥에 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도 보였다.
연화는 밀수한 은의 양과 처분처를 별도 종이에 적었다. 그 종이는 접어 월선과 복단이 함께 수결하게 했다.
“숨기지는 않되, 지금 장터에 퍼뜨리지도 않겠습니다. 구조할 길이 닫힐 수 있으니까요.”
“나중에 나를 관아에 넘기겠다는 거군.”
“나중에 당신이 한 일을 당신이 보는 앞에서 펼치겠다는 뜻입니다.”
막동이 마른 웃음을 흘렸다.
“무섭게 공평하시오.”
“공평한지는 그때 다른 사람들이 정할 겁니다.”
그는 허리춤의 작은 주머니를 풀었다. 은 조각이 나올 줄 알고 모두의 눈이 그 손에 모였다. 그러나 막동이 꺼낸 것은 나무숟가락 두 개였다. 오래 씻겨 나뭇결이 일어났고, 손잡이에는 칼끝으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하나는 박만수.
다른 하나는 칠복.
매화가 두 번째 숟가락을 집으려다 손을 멈췄다.
“칠복이 누구요?”
“상단보다 먼저 광산에 있던 짐꾼.”
막동은 숟가락 두 개를 흰 종이 위에 나란히 놓았다.
“박만수 것은 그날 내가 주웠소. 칠복 것은 사흘 뒤 빈 작업막에서 찾았고.”
연화가 등잔을 가까이 옮겼다. 박만수의 이름은 객주 장부의 것과 같았다. 칠복이라는 이름은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열여덟 명 가운데 없었다.
막동이 칠복의 숟가락을 뒤집었다.
손잡이 뒤에 세모 모양 구멍 다섯 개가 뚫려 있었다.
“이름 없는 사람까지 적을 장부가 있소?”
그가 물었다.
연화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가져온 장부에는 아직, 칠복을 적을 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