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 하드SF 재난극 31화

라그랑주 5의 유언

봉인된 백팔십팔 석

도킹링의 창 너머로 대피선 좌석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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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킹링의 창 너머로 대피선 좌석들이 보였다.

네 줄, 일곱 줄, 다시 네 줄. 회전하는 거주지의 빛이 좁은 창을 지날 때마다 빈 등받이들이 차례로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사람 하나 없는 객실에서 어깨띠만 얌전히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좌석 번호 백팔십팔 개에는 붉은 띠가 하나씩 더 걸려 있었다. 띠 끝에 찍힌 것은 정비 봉인도, 운항 금지 표식도 아니었다.

담보 자산. 해제 권한 없음.

리오 박은 그 문구를 세 번째 읽고도 창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공기순환기가 일정한 박자로 웅웅 울었다. 한 번은 길고 한 번은 짧았다. 며칠 전 같았으면 배경음으로 흘렸을 소리였다. 이제 그는 일정하다는 말조차 믿기 전에 자신의 호흡부터 세었다.

“저 의자들이 고장 났습니까?”

도킹 관리자는 고개를 저었다. “정비 화면으로는 정상입니다.”

“추진제가 없습니까?”

“그 검사는 다음 순서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이 못 앉습니까?”

관리자의 눈이 창 아래 잠금함으로 떨어졌다. 손잡이 위에는 재단 금융부 인장이 박힌 얇은 봉인지가 붙어 있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닙니다.”

리오가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입 안에서 공기가 한 번 깨지는 소리였다.

“사람이 타는 의자에 돈이 앉아 있는데, 그게 당신 항목은 아니군요.”

그는 허리의 작업 공구를 풀었다. 짧은 수동 절단기의 턱이 펼쳐지며 철컥 소리를 냈다. 도킹링에 따라온 외벽 노동자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관리자는 뒤로 물러섰고, 창가 경계등이 노랗게 바뀌었다.

진아리가 리오의 손목을 잡았다.

감압 때 다친 오른쪽 귀 안에서 공기순환기 울림이 가늘게 갈라졌다. 그래도 절단기 턱이 향한 곳은 분명히 보였다. 봉인지가 아니라 잠금함 옆 비상 전원선이었다.

“그걸 자르면 좌석만 열리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뭘 더 잃습니까?”

“도킹 상태 확인선이 같이 끊겨요. 배가 붙어 있는데 떨어졌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반대로 떨어진 뒤에도 붙어 있다고 읽을 수도 있어요.”

“백팔십팔 명을 빈 복도에 세워 두는 것보다는 낫겠지.”

“떠나지도 못하는 배에 태우는 건 더 나빠요.”

아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리오의 손등 힘줄이 단단히 솟았다. 그가 조금만 비틀면 아직 회복 중인 아리의 손목은 쉽게 풀릴 터였다. 그러나 리오는 절단기를 닫았다. 대신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석 밑창이 철판에 붙으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다섯 분 드리겠습니다.”

“다섯 분으로 배를 검사할 수는 없어요.”

“그럼 다섯 분 안에,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확인할 수 있는지 말해요.”

권도한은 둘 사이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잠금함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휴대 단말을 내려놓고 화면을 주민 쪽으로 돌렸다. 전날 공개된 대피선 관리표가 떠 있었다.

전체 좌석 사백이십. 담보 봉인 백팔십팔. 배정 가능 이백삼십이.

“세 숫자를 섞지 않겠습니다.” 도한이 말했다. “사백이십은 설치된 좌석 수입니다. 백팔십팔은 금융 코드가 막은 수입니다. 이백삼십이는 지금 배정표에 넣을 수 있는 수입니다. 배 전체가 실제로 몇 명을 귀환시킬 수 있는지는 추진제와 공기, 물을 보기 전까지 빈칸입니다.”

누군가 뒤에서 물었다.

“그럼 이백삼십이 명은 탈 수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오늘 탑승 훈련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출항 가능 인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졌다. 같은 숫자를 두고 또 조건을 붙인다는 욕설도 나왔다. 리오는 그 소리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돌아서서 주민들을 바라보았다. 붉은 띠가 걸린 의자들이 그의 등 뒤에 있었다.

“저도 지금 뜯고 싶습니다.”

외벽 작업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말했다. “조합장이 뜯으면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아니. 뜯으면 내가 책임진다고 말하려 했는데, 그것도 거짓말이군.” 리오는 바닥의 절단기를 발끝으로 밀어 아리 쪽에 보냈다. “배가 못 뜨면 당신들 목숨은 내가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고장인지 돈 때문인지부터 갈라 냅시다.”

아리는 잠금함 앞에 무릎을 꿇었다. 봉인지에는 손대지 않고 외부 진단 포트에 광탐침을 붙였다. 재단망으로 명령을 보내는 선은 물리적으로 뽑고, 좌석 장치가 되돌려 주는 전류만 읽도록 케이블을 바꿨다. 한주원이 옆에서 연결 순서를 복창했다. 붉은 모듈을 교체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몇몇 노동자의 얼굴이 굳었지만, 리오는 그를 쫓아내지 않았다.

“명령선 분리.” 한주원이 말했다.

“확인.”

“구동 금지. 응답 전류만 수집.”

“확인.”

아리가 시험 신호를 넣자 객실 천장에 작은 흰 점들이 줄을 지어 켜졌다. 잠긴 의자 아래의 상태등도 하나씩 답했다. 백팔십팔 개가 모두 같은 색은 아니었다. 그 봉인석 가운데 두 자리에서는 전류가 늦게 올라왔고, 한 자리에서는 어깨띠 센서가 승객이 없는 상태를 승객 있음으로 잘못 읽었다.

리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정상이라더니.”

“세 자리는 정비가 필요해요. 그렇다고 백팔십팔 자리가 전부 못 쓰는 것도 아닙니다.” 아리는 결함 번호를 따로 띄웠다. “금융봉인과 기계상태를 같은 색으로 칠해 놓으니 둘 다 못 보게 된 거예요.”

도한은 재단 법무 담당자에게 서명 원본을 요구했다. 담당자는 도킹링에 내려오지 않고 통신창으로만 모습을 비쳤다. 짙은 회색 옷깃 아래에서 목소리가 매끈하게 흘렀다.

“담보가 해제되면 대피선 운항보험도 효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무단 검사는 즉시 중단하십시오.”

“구동 명령 없이 상태값을 읽었습니다.” 도한이 답했다. “담보물 훼손은 없습니다.”

“검사 결과를 공개하면 자산가치가 변동합니다.”

리오가 통신창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이 앉으면 값이 떨어지는 의자입니까?”

“박 조합장님, 계약은 감정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 계약 어디에 훈련 금지가 있습니까?”

법무 담당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 동안 아리는 도킹 관리자의 화면을 보았다. 훈련 일정 열두 건이 취소되어 있었다. 취소 사유에는 모두 같은 문장이 찍혀 있었다. 준비금 등급 변동 우려. 사고번호가 생긴 날부터 한 건도 실행되지 않았다.

도한이 그 목록을 확대했다.

“봉인되지 않은 이백삼십이 석 훈련까지 막은 근거를 제출하십시오.”

“전체 운항보험의 연속성을 위한 예방 조치입니다.”

“보험자가 요구한 조치입니까, 재단이 스스로 붙인 조치입니까?”

통신창이 잠시 검게 흔들렸다. 법무 담당자가 자료를 찾는 척 시선을 내린 동안, 관리자가 아주 작게 말했다.

“보험자 공문은 없었습니다.”

리오는 그 말을 들었다. 그러나 담당자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바닥에서 절단기를 주워 접은 뒤 관리자의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 이백삼십이 석 훈련을 엽시다.”

“운항 승인 없이요?” 관리자가 물었다.

“출항이 아니라 탑승과 하차입니다. 사람이 문턱에서 몇 초를 쓰는지, 아이와 환자가 어느 띠에서 막히는지 보자는 겁니다.”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봉인 구역과 전원선을 분리한 채로 할 수 있어요. 비상 중단은 여기 수동 레버로 두고요.”

도한은 중재기관으로 보낼 긴급 질의서에 세 줄을 추가했다. 봉인 좌석의 비접촉 상태검사가 담보 훼손인지. 비재난기 탑승 훈련 제한이 계약에 있는지. 사고지수 변동이 있을 때 담보 효력이 어떻게 되는지. 전송 버튼을 누른 뒤, 그는 자동 접수증만 공개판에 붙였다.

“답은 아직 아닙니다. 접수만 됐습니다.”

맨 앞의 노동자가 접수증을 읽으려고 다가왔다. 그는 리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절단기를 보고 손을 내렸다.

“우리가 뜯겠다는 말을 기다리신 줄 알았습니다.”

리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정말 기다렸을지 몰랐다. 열쇠를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동안 자기 동료들은 줄 뒤에서 늙고 다쳤다. 그는 절단기를 작업대 안쪽으로 밀어 놓았다. 남에게 건네기 쉬운 물건이 되지 않게 했다.

첫 탑승 훈련은 서른두 명으로 시작했다. 아이를 안은 보호자가 좁은 회전문에서 몸을 틀었고, 무릎 보조기를 찬 노인은 좌석 띠를 한 번에 당기지 못했다. 외벽 작업자들은 평소 화물처럼 사람을 재촉하려다가 리오의 눈길을 받고 손을 내렸다. 아리는 통과 시간을 재면서도 숫자 옆에 막힌 이유를 적었다. 문턱, 띠 길이, 보호자 동반, 어지럼.

마지막 사람이 다시 도킹링으로 나오자 관리자가 훈련 시간을 읽었다.

“칠 분 사십일 초. 계획보다 일 분 십구 초 늦습니다.”

“다음에는 줄일 수 있습니까?” 리오가 물었다.

“좌석 배치를 바꾸면요. 문 가까운 곳을 걸음 빠른 사람에게 줬습니다. 반대로 해야 합니다.”

리오는 창 너머의 빈 의자를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번호 대신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공개판의 ‘배정 가능 232’ 아래에 직접 한 줄을 썼다.

기계 좌석 420 — 생명유지·추진제 검증 전, 출항 인원 아님.

그리고 그 밑에 더 작은 글씨로 적었다.

봉인 188 — 해제 요구 중. 파손하지 않음.

리오는 공개판에서 분필가루를 털었다. 탑승 훈련을 하느라 오늘 자기 교대의 작업 시간을 놓쳤다. 한 노동자가 대신 확인한 외벽 작업표를 가져왔지만, 그는 그 표보다 아이를 안고 문턱을 넘던 보호자를 다시 보았다.

“다음 훈련에도 오십시오. 저도 오겠습니다.”

보호자가 다음에는 문 가까운 자리를 달라고 했다. 리오는 잠긴 백팔십팔 자리에서 시선을 떼어 관리자의 배치표를 당겼다. 뜯고 싶은 마음은 남았지만 오늘 고칠 수 있는 자리는 다른 곳에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계약 원본의 거주지 보관 사본을 도한이 열었다. 본문에는 재단이 내세운 담보 유지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부속 조건표 한쪽에 작은 별표가 붙어 있었다. 재난지수가 ‘정상 범위’일 때에 한해 좌석 담보가 유지된다는 문장이었다.

아리는 그 문장을 소리 내 두 번 읽었다.

“사고가 없다고 했을 때만 의자를 묶어 둘 수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읽힐 여지는 있습니다.” 도한이 말했다. “최종 효력은 중재 답변을 받아야 합니다.”

리오는 창에 손바닥을 댔다. 맞은편 객실의 붉은 띠들이 거주지의 회전에 따라 한 줄씩 빛났다.

“그럼 저 의자를 지키려고 사고를 지웠는데.”

그의 손 아래에서 공기순환기가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울었다.

“사고가 드러난 순간부터, 묶어 둘 조건도 사라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