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죽은 자가 산 담배
담배전 앞을 지나던 강복단이 걸음을 멈췄다.
담배전 앞을 지나던 강복단이 걸음을 멈췄다.
마른 잎을 뒤집는 소리와 약엿 자르는 칼소리, 장꾼들이 외치는 값이 한데 엉킨 닷새장이었다. 그 틈에서 계피 냄새 한 줄기가 복단의 코를 잡아당겼다. 맵고 단 향이었다. 그녀는 두 걸음 물러나 천막 아래 매달린 담배 봉지를 올려다보았다.
“산원. 이리 와 보게.”
민연화는 뒤따르던 한매화의 팔을 먼저 붙들었다. 귀환길 돌다리 밑에서 한덕수의 쪽지를 주운 지 사흘이었다. *우리는 살아 있고 둘은 쓰러졌다.* 물에 불은 먹은 그 이상을 말해 주지 않았다. 누구 손으로, 언제 놓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왜요?”
매화가 물었다.
복단은 대답 대신 담배전 안으로 들어갔다. 좌판을 지키던 노파가 손바닥으로 잎 부스러기를 모으다 눈을 치켜떴다.
“맡기만 하고 갈 거면 길을 막지 마시오.”
“계피를 이만큼 섞는 집이 또 있소?”
“한양에 담배전이 몇인데 그걸 나한테 묻나. 그래도 내 것은 혀가 얼얼하지 않고 목 뒤가 달지.”
노파는 자랑하듯 종이 봉지 하나를 들어 보였다. 두 귀를 안으로 접고 아래 끝을 비스듬히 올린 모양이었다. 매화가 연화의 손을 뿌리쳤다.
“그거.”
목소리가 너무 커서 옆 좌판의 장꾼이 돌아보았다. 매화는 봉지를 빼앗듯 받아 뒤집었다. 비스듬히 접힌 끝을 손톱으로 문지르고, 입구를 열어 잎 사이에 든 잘게 부순 계피를 보았다.
“오라비가 이렇게 접었어요. 허리춤에 넣어도 잎이 안 샌다고. 계피도 꼭 세 꼬집을 넣고.”
노파가 봉지를 도로 낚아챘다.
“죽었다던 한덕수 말인가?”
매화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복단이 좌판 가장자리에 동전 하나를 놓았다.
“누가 죽었다 했소?”
“장이 그 소문으로 시끄러웠지. 의주 간 상단이 통째로 없어졌다면서. 그런데 죽은 사람이 보름 전에 담배 두 봉지를 샀으니 내가 놀랄 수밖에.”
“직접 왔습니까?”
연화가 물었다.
노파는 대답하지 않고 동전부터 쓸어 갔다. 그러고는 맞은편 포목전 쪽을 살폈다. 손님 둘이 값을 다투고 있었고, 엿장수 아이가 천막 사이를 뛰어다녔다.
“내가 그 얼굴을 모르겠나. 덕수가 해마다 겨울이면 여기서 외상을 달았는데.”
매화가 좌판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얼굴을 봤어요?”
“말을 끝까지 듣게. 얼굴은 못 봤어. 심부름꾼이 왔지. 한덕수가 늘 사던 대로 달라기에 그렇게 적어 둔 것이오.”
매화의 손이 봉지 위에서 굳었다. 살아 있다는 기쁨이 막 솟았다가, 남의 입을 거친 말 앞에서 갈 곳을 잃은 얼굴이었다.
연화가 물었다.
“심부름꾼은 자기 이름을 뭐라고 댔습니까?”
“오방이라고 했어.”
“한덕수라는 이름도 그 사람이 먼저 말했고요?”
“그렇지. 덕수가 늘 사던 물건을 대신 받으러 왔다고 했으니까.”
“생김새는요?”
“등짐에 가려 어깨는 모르겠고, 오른쪽 귀 끝이 조금 없었어. 짚신은 젖었는데 도포 아래는 말라 있었지. 개울을 건너고 수레를 얻어 탄 사람처럼.”
복단이 혀끝으로 앞니를 밀었다. 행상인을 기억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말씨는?”
“서쪽 말도 북쪽 말도 아닌 것이, 장터마다 바꿔 붙인 말씨 같더군. 내 귀를 시험하지 마시오. 늙었다고 사람 목소리까지 잊은 줄 아나.”
“그럴 생각 없소.”
복단은 동전을 하나 더 놓았다. “다만 그자가 스스로 오방이라 했는지, 누가 그리 불렀는지가 중요해서.”
노파의 눈이 가늘어졌다.
“외상표에 이름을 쓰라니 잠깐 망설이다가 그렇게 불러 달랬어. 값은 외상이 아니었고.”
“그런데 외상표에는 왜 적었습니까?”
“동전이 아니었으니까.”
노파는 좌판 밑 궤짝을 열었다. 엽전 꾸러미, 잎을 자르는 작은 칼, 종이 뭉치가 차례로 나왔다. 맨 아래에서 손바닥만 한 장부를 꺼냈다. 날짜 옆에 사람 이름 대신 둥근 돌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돌 속에는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이걸 내고 갔소. 돌을 무슨 돈처럼 쓰려 하기에 술집에라도 팔 수 있나 싶어 모양부터 그려 둔 거야. 다음 장날에 동전으로 바꿔 오겠다고 했고.”
“돌은 어디 있습니까?”
“벌써 바꿨지.”
노파가 턱으로 맞은편을 가리켰다. 포목전 앞에 푸른 전대를 찬 사내가 서 있었다. 그가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사내는 몸을 돌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복단이 즉시 따라붙으려 하자 연화가 소매를 잡았다.
“아주머니.”
“놓아. 돌을 가진 자라잖아.”
“노파가 누구에게 넘겼는지부터 듣고요. 지금 저 사람을 쫓으면 이 장터에 오방을 찾는다는 말부터 돕니다.”
복단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사내의 푸른 전대가 잠깐 사람 머리 사이로 보였다가 사라졌다.
“발이 보일 때 밟아야지.”
“우리가 찾는 건 저 발 하나가 아닙니다.”
매화가 둘 사이로 들어왔다.
“나는 밟을래요.”
연화가 매화를 보았다. 사흘 동안 거의 자지 못한 눈이었다. 오라비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말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건, 빈 솥 앞의 식솔에게 장부부터 보자던 첫날과 다르지 않았다.
연화는 좌판 아래 장부를 봤다. 노파가 돈을 받은 뒤 다시 궤짝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매화는 연화 손을 보았다. 그 손이 붙잡은 것은 자기 팔이었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사람은 남이었다. 그녀는 팔을 빼려다가 연화의 손목을 세게 눌렀다. 연화가 아픈 듯 손가락을 접었다. 매화는 움찔했으나 사과부터 하지는 않았다.
“당신 손 아픈 건 알아요. 내 발이 멀쩡한 것도 보시오.”
연화는 손을 풀었다. 노파 앞으로 몸을 돌리는 동안 매화가 뒤에서 한 걸음을 나갔다. 복단이 그 길을 따라갈 채비를 했다.
“그 돌을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저 사내한테 준 게 아니야. 무너미주막에서 술을 대는 중개가 있어. 돌을 보더니 은기 섞인 잡석이라며 술값 반 냥을 쳐 줬지. 저자는 그 중개를 따라다니는 심부름꾼이고.”
복단이 소매를 거칠게 빼냈다.
“그러니 더 쫓아야지.”
“복단 아주머니는 가세요.”
연화의 말에 복단이 멈췄다.
“혼자, 멀찍이. 붙들지는 말고 어느 여막에 드는지만 보세요. 저는 여기 남아 장부와 봉지를 확인하겠습니다.”
“이제야 산가지가 발을 하나 얻었군.”
복단은 비웃듯 말했지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녀는 광주리를 메고 장꾼 무리에 섞였다. 몇 걸음 뒤에는 어느새 등을 굽힌 엿장수처럼 보였다.
매화도 따라가려 했다. 연화가 다시 팔을 잡자 이번에는 매화가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나더러 또 기다리라는 거요?”
“기다리되 손 놓고 있지는 말자는 겁니다.”
연화는 노파에게 새 종이 한 장을 청했다. 그 위에 담배 봉지를 올려놓고 접힌 자리를 그렸다.
“덕수 씨가 쓰던 봉지와 같다고 했지요. 무엇이 같은지 하나씩 말해 주세요.”
매화는 입술을 달싹였다. *다 같아요*라고 말하려다가 멈춘 듯했다. 그녀는 봉지 아래 귀를 폈다.
“종이 오른쪽 귀를 먼저 접었어요. 오라비는 왼손잡이라 늘 반대가 됐거든요. 그런데 이건 노파가 접은 것 아닙니까?”
노파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 봉지는 내가 접지, 죽은 자가 접나.”
매화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연화가 봉지를 열었다.
“그러면 접는 법은 덕수 씨의 흔적이 아니라 이 담배전의 물건이라는 표시뿐이네요.”
“계피는 맞아요.”
“그것도 오방이 주문한 말이지, 오라비가 직접 세 꼬집 넣은 것은 아니고요.”
“당신은 왜 자꾸 살아 있다는 증거를 줄이는 거요?”
매화가 쏘아붙였다.
장터 소리가 한순간 멀어진 듯했다. 연화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쪽지의 *둘은 쓰러졌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살아 있는 사람을 찾는 일과 쓰러진 둘을 세는 일이 서로 반대편에 서면 안 됐다.
“줄이는 게 아닙니다.”
연화는 담배 잎 하나를 손바닥에 올렸다.
“오방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 세 꼬집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여기서 들을 수 있는 말은 다 들은 뒤에요.”
“그다음은 언제인데.”
“오늘 안에 무너미주막으로 갈 길을 잡겠습니다.”
매화의 눈이 붉어졌다.
“살아 있다는 냄새를 찾았는데 왜 먼저 죽은 사람부터 세려 하시오?”
연화는 손바닥의 잎을 봉지에 돌려놓았다.
“돌아올 이를 찾으려면 돌아오지 못한 이의 자리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둘 가운데 한 사람이 박만수인지, 다른 사람은 누군지. 덕수 씨가 그걸 알리려고 쪽지를 놓았다면 그 말까지 데려와야지요.”
매화가 고개를 돌렸다. 우는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했으나, 손은 더는 떨리지 않았다.
노파가 헛기침을 했다.
“죽었다 살았다, 남의 좌판에서 너무 크게 말하지들 마시오. 내 장사까지 끊겨.”
연화는 사과하고 장부의 돌 그림을 베껴도 되는지 물었다. 노파는 원본을 내줄 수 없다며 직접 종이를 붙들었다. 연화가 검은 점의 수와 테두리 갈라진 모양을 옮기는 동안 매화는 담배 두 봉지 값과 산 날을 다시 물었다.
“보름 전 초이튿날. 두 봉지 가운데 하나는 담배, 하나는 같은 향을 밴 약초를 담아 달랬어.”
“무슨 약초요?”
“기침에 쓰는 도라지와 말린 배. 광산 이야기는 안 했지만, 햇빛 못 본 사람이 기침한다는 말은 했지.”
연화의 붓이 멈췄다.
매화는 약초 이름을 듣자 숨을 크게 들이켰다. 연화는 그 소리에 붓을 내려놓지 못했다. 기침하는 사람의 약과 덕수가 좋아하던 향이 같은 손에 실렸다면, 그 손을 만나야 했다.
“오방이 물건을 무엇에 넣어 갔습니까?”
연화가 물었다.
“그날 오방에게 건넸다가 돌값을 따지는 동안 도로 받은 봉지도 남아 있습니까?”
노파는 좌판 밑에서 재사용할 봉지 묶음을 꺼냈다. 기름이 번졌거나 찢어진 것은 불쏘시개로 쓰고, 멀쩡한 것은 다시 잎을 담는다고 했다. 그녀는 계피 가루가 밴 봉지 둘을 골라 냄새를 맡았다. 그중 하나의 아래 귀에 장부의 돌 그림과 같은 검은 가루가 눌려 있었다.
“이게 그날 손에서 돌아온 거야. 값을 못 정했으니 물건도 다시 내놓으라 해서 받았지. 나중에 돌을 맡기고는 새 봉지에 담아 갔고.”
노파가 봉지 바닥을 펴다가 손을 멈췄다. 종이가 두 겹이었다. 그녀는 겹친 귀에 손톱을 넣었다.
“이상하네. 내가 이렇게 덧대지는 않는데.”
얇은 종잇조각이 안쪽에서 떨어졌다. 술 외상표의 반쪽이었다. 먹으로 쓴 날짜와 술 두 되라는 글자, 주막 이름의 끝 두 자만 남아 있었다.
매화가 숨을 삼켰다.
“오방이 넣은 겁니까?”
“몰라. 그날 봉지를 두고 값을 다투다가 내가 돌려받은 것일 수도 있지. 내 손에서 섞였을 수도 있고.”
연화는 봉지를 돌려받은 경위를 외상표 아래 적었다. 노파는 자기 장부를 너무 오래 펼쳐 둔다며 손님 쪽으로 몸을 돌렸다.
표를 빛에 비추자 찢긴 면에 긴 닥섬유 세 올이 튀어나와 있었다. 이름 끝에는 희미하게 ‘미’ 자의 첫 획이 남았다.
“무너미주막이오.”
노파가 말했다.
“그 중개가 돌을 바꾼 곳도 거기고.”
그때 복단이 장막 뒤에서 나타났다. 숨은 차지 않았지만 광주리 끈이 한쪽 어깨에서 풀려 있었다.
“푸른 전대는 잡상인 셋을 지나 서쪽 여막으로 들었소. 문을 지키는 자가 있어 가까이 붙지는 않았다.”
복단의 광주리 옆구리에는 담배전에서 나갈 때 없던 얼룩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가다 누군가 엿 위에 팔꿈치를 얹었다고 했다. 눌린 엿이 천에 들러붙어 둘로 갈라졌다. 노파가 혀를 차자 복단은 깨진 조각을 꺼내 매화에게 주었다.
“씹으면서 가시오. 숨만 삼키다 넘어지겠어.”
매화는 받지 않으려다가 조각을 잡았다. 손가락이 끈적해졌다. 복단은 엿값을 세지 않고 광주리 끈을 다시 묶었다. 그 자리에 남아 줄 사람이 있어야 누군가 발로 나갈 수 있었다.
“얼굴을 봤습니까?”
“못 봤어. 대신 신발을 봤지. 붉은 흙이 아니라 회백색 가루가 뒤축에 박혀 있더군. 우리가 은광 능선에서 본 것과 닮았어. 닮았을 뿐이라고 네 장부에 써라.”
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단은 찢긴 표를 보더니 바로 뜻을 알아차렸다.
“무너미주막이면 오늘 떠나야겠군.”
매화가 먼저 일어섰다.
“나도 갑니다.”
연화는 이번에는 붙들지 않았다. 대신 담배 봉지 하나를 사 매화에게 건넸다.
“이건 가져가세요. 오방을 만나면 계피 세 꼬집을 누가 말했는지 직접 물으셔야 합니다.”
매화는 봉지를 가슴에 넣다가 멈췄다.
“아니. 당신이 가지고 가요.”
“왜요?”
“나는 냄새만 맡아도 살아 있다고 믿어 버릴 테니까.”
그녀는 찢긴 외상표를 가리켰다.
“대신 저 반쪽은 내가 기억하겠소. 나머지 반을 찾으면, 그때는 오라비가 보낸 길인지 남이 만든 길인지 같이 묻읍시다.”
세 사람은 해가 기울기 전에 장터를 나섰다. 등 뒤에서 노파가 좌판을 걷으며 담배 잎을 털었다. 계피 향은 사람들 옷자락 사이로 오래 따라왔다.
연화는 봉지와 찢긴 표를 각각 싸서 품에 넣었다. 매화는 엿이 묻은 손가락을 닦으며 외상표의 찢긴 귀를 눈에 익혔다. 무너미주막에서 나머지 반을 찾으면 먼저 묻겠다는 말이 그녀의 발을 장터 바깥으로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