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제 발로 든 덫
길상은 해가 뜨는데도 불을 피우지 못했다.
길상은 해가 뜨는데도 불을 피우지 못했다.
밤새 모아 놓은 잔가지가 그의 발옆에 있었다. 새벽 추위가 손가락 사이로 들어왔고, 민연화는 붓을 쥔 손을 소매 안에 넣었다. 강복단은 불을 놓으면 연기가 올라간다고 했다. 길상은 알겠다고 했지만 버릇처럼 가지 끝을 다시 맞췄다.
능선 아래에서 안개가 걷혔다. 먼저 울타리가 나왔고 다음에는 지붕이 보였다. 감시초소 한쪽에 사람이 서 있었다. 너무 멀어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밤에 그릇 소리를 들으며 세어 둔 종이가 연화 무릎 위에 있었다.
열여덟 번.
그녀는 숫자 아래 밤이라고 적었다. 아침의 지붕 수와 같은 줄에 놓으면 같은 것을 센 듯 보일 것이었다. 주범수는 능선 바깥으로 몸을 내밀지 않고 낮은 나무 사이에서 물길을 봤다. 울타리 쪽으로 들어가는 도랑과 아래로 나오는 가는 물이 구별됐다.
복단이 가마니를 폈다. 자기 보따리에서 남은 먹을 것을 꺼냈다. 길상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전날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먹었다. 석구가 자기를 찾으러 왔을 때부터, 누가 앞에서 씹고 있으면 자기가 먼저 굶어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오늘 길은 네가 가리켜야 하오.”
복단이 말했다.
“입에 넣어. 그 손으로 불 대신 길을 펴.”
길상은 음식을 받았다. 입 안에서 오래 씹다가 삼켰다. 연화는 자기 종이를 그에게 돌려 보였다. 한양의 출발장부, 다리의 삯패, 능선 아래 소리가 서로 다른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다리 뒤에서부터라고 했지요.”
그녀가 물었다.
길상은 종이의 다리를 가리켰다. 자신도 여러 번 건넌 다리였으나 손가락이 곧장 닿지 않았다. 작은 돌 하나를 놓아야 실제 다리처럼 보이는 듯했다.
“오기 전에는 은을 보러 간다고 했소. 상인들이 값이 맞지 않으면 돌아온다고 다퉜고, 덕수도 그 말을 썼지.”
연화는 젖은 쪽지의 사본을 옆에 놓았다. 은값이 아니면 돌아가겠다는 한덕수의 글이 있었다. 길상은 그 글을 입으로 읽지 않았다. 자기 옆을 지나간 사람이 적던 말이라는 것을 눈으로 다시 보는 얼굴이었다.
“그러면 여섯은 어디 있었습니까?”
길상은 다리 쪽으로 옮겨 둔 돌을 둘러싼 바닥을 가리켰다. 무기를 찬 자들이 앞뒤로 섰고 돌아가려는 사람에게 길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계속 가면 바로 은을 볼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웃던 상인들은 한동안 그 설명을 믿었고, 짐을 진 사람들은 그들 뒤를 따랐다.
“그때는 웃음이 남아 있었소. 하지만 다시 다리로 가려 하면 앞을 막았지.”
복단이 손에 든 먹을 것을 내려놓았다.
“너는 막는 걸 보고도 수레를 몰았구나.”
길상이 고개를 숙였다. 어젯밤 털어놓은 말이었다. 새벽의 밝은 빛에서 다시 들으니 다락방에 숨어 한 말보다 더 무거웠다.
“내가 앞을 알았으니까. 앞으로 가는 길은.”
“뒤로 가는 길도 알았겠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범수는 감시초소를 보다가 돌아왔다. 지금 능선에서 말다툼을 길게 하면 아래에서 들을 수는 없어도 움직임은 보일 터였다. 그는 일행을 나무 그늘 쪽으로 더 옮겼다.
연화가 자리를 옮기며 쪽지를 챙겼다. 길상이 먹던 음식이 가마니 끝에서 떨어졌다. 그는 급히 주워 흙을 털었다. 복단이 물을 조금 건네자 먼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에 묻은 흙부터 닦았다.
“종이에 그 말도 써요.”
그가 말했다.
“내가 길을 알고 몰았다는 말.”
연화는 그의 말을 옮겼다. 돌아가는 길을 막은 여섯의 행동과 길상이 계속 몬 일을 같은 문장 안에 뭉쳐 놓지 않았다. 길상은 두 줄을 듣고 손가락으로 앞의 줄을 눌렀다. 자기가 책임질 줄이 어디인지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해가 울타리 위로 올라왔다. 아래에서 수레 하나가 움직였다. 범수는 바퀴를 셀 수 있는 자리에 잠깐 몸을 낮췄다. 복단도 보고 싶어 했지만 둘이 동시에 움직이면 눈에 띌 수 있어 기다렸다. 연화는 먼저 그린 지붕 위치 옆에 초소와 수레 길을 붙였다.
“보이는 수레만 쓰시오.”
범수가 낮게 말했다.
그녀는 새로 움직인 한 대를 표시했다. 앞서 산길에서 찾은 세 수레의 자국을 여기 있는 수레 숫자로 바꾸지 않았다. 그림 한쪽에는 깊은 출발과 얕은 귀환의 선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지금 보이는 길이 있었다.
복단은 그 그림을 보다가 길상에게 말했다.
“이렇게 적으면 객주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은 찾으러 제 발로 갔는데 왜 우리 쌀을 먹느냐고 하겠지.”
길상의 얼굴이 굳었다. 매화와 그 집 아이의 밥을 떠올린 듯했다. 아니면 자신이 유인한 상인들의 몫을 떠올렸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갔습니다.”
그가 말했다.
“큰 몫 준다니까. 앞에 있는 은이 자기 돈인 것처럼 값을 셌소.”
범수는 자기 젖은 신을 내려다봤다. 길을 속인 사람에게 화가 난 것은 자신도 같았다. 그러나 관아가 고친 기록을 들고 도성 밖으로 나설 때, 그가 생각한 것은 덫에 들어간 사람을 찾아 돌아오는 길이었다. 남들이 욕심을 냈다는 말을 들으면 자신도 발이 느려질까 봐 싫었다.
“누군가 돈을 갖고 싶어서 길을 바꾸면, 돌아오고 싶을 때에도 돌아올 수 있어야 하오.”
그가 말했다. 복단은 턱을 굳혔다.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오. 돌아간 뒤 누가 어떤 말을 할지 알아야 한다는 거지.”
연화는 붓을 놓았다. 한양에는 아홉 식솔이 곡식을 빌려 먹고 있었다. 그 중 누가 덕수의 앞면 글을 읽을 수 있는지, 누가 투자 이야기를 아는지 몰랐다. 한 줄을 좋게 고쳐 쓰면 그들은 나중에 더 거친 말로 같은 일을 듣게 될 수도 있었다.
“그들이 이문을 좇은 잘못은 적되, 그 잘못이 쇠사슬을 허락한 것은 아니라고 함께 적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복단은 그 문장을 읽어 달라고 했다. 연화는 종이에 쓴 말을 천천히 읽었다. 자발로 길을 바꾼 때와 다리 이후 무기를 든 여섯이 귀환을 막은 때가 따로 들렸다.
길상은 한동안 그림을 봤다.
“내 형이 들으면 나를 때릴 겁니다.”
그가 말했다. 이름 뒤의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복단은 형이 어디에 있느냐고 새로 캐묻지 않았다. 그의 식구들을 자기 행상망으로 옮긴 일을 떠올리며, 보낸 전갈이 어디쯤 닿았을지 손가락으로 길을 셌다.
연화는 출발장부에서 가져온 상인 열여덟과 짐꾼 열둘을 그림 아래 따로 적었다. 다리 삯패의 스물넷은 그 기록과 한 묶음으로 더하지 않았다. 그 삯표에 남은 상인 중심의 열여덟과 급히 만든 여섯의 자리가 있었다. 아직 모두의 이동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쇠그릇은 열여덟 소리가 났지요.”
복단이 말했다.
“그러면 아래서 밥 먹는 사람은 열여덟인가?”
“누가 하나를 두 번 놓았는지까지 들을 수는 없었소.”
범수가 답했다. 그는 밤의 소리 옆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연화는 그 아래 확인할 이름들을 비워 놓았다. 박만수든 한덕수든 그 소리 안에 있다고 먼저 쓰지 않았다. 이제 돌아가서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볼 힘이었다.
복단이 능선 아래로 몸을 돌렸다. 울타리와 도랑 사이에 좁은 길이 보였다. 지금 따라 내려가면 숨을 곳은 있을지 몰랐다. 문을 열고 사람을 데리고 나올 손은 넷뿐이었다. 짐꾼을 돌려세워 수레를 밀 힘도, 다친 몸을 받을 자리도 없었다.
“약상자 하나만 더 가져왔어도.”
그녀가 말했다. 말끝이 잘리지 않고 오래 남았다. 연화는 그 말 아래 약과 받을 사람을 적었다. 범수는 길을 막는 초소와 돌아나올 수레 길을 가리켰다. 필요한 사람 수는 울타리 높이와 문 수를 보고 정할 일이었다. 네 사람이 지금 할 수 있는 정찰의 끝이 드러났다.
길상이 일어섰다.
“내가 길을 틀었소. 돌아가는 길도 내가 가리키겠소.”
복단은 그를 따라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남은 음식과 잔가지를 먼저 모았다. 불을 피우지 못한 자리에는 둥근 재도 없었다. 그녀는 가마니를 접다가 능선 아래를 마지막으로 봤다. 아무도 그녀에게 빨리 가라고 하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미끄러웠다. 밤이슬이 자갈 아래 모여 있었다. 길상은 자기 발이 갈 수 있는 곳보다 뒤의 세 사람이 넘어지지 않을 곳을 골랐다. 범수는 갈림길마다 나무 모양을 종이에 남기고, 연화는 받은 방향을 어제 그린 길과 맞췄다.
한양에 가져갈 종이를 묶기 전에 연화는 네 사람 앞에서 내용을 읽었다. 소피와 기름으로 만든 습격 흔적, 빈 수레와 반달 홈, 편자 못, 스물넷 삯패, 은값을 보고 돌아오려 했던 덕수의 글, 다리 뒤부터 막힌 길. 누가 보았고 누가 말한 부분인지도 들려줬다.
석구의 이름이 나오는 대목에서 길상이 잠깐 눈을 감았다. 자신을 찾으러 온 동료가 무엇을 보고 어떤 말을 삼켰는지 처음으로 남의 기록에서 들었다. 그는 길 안내를 더 맡겨 달라고 말하려다가, 먼저 자기 발앞의 돌을 치웠다.
귀환길의 돌다리에 닿을 무렵 바람이 따뜻해졌다. 복단은 갈대밭을 내려다봤다. 젖은 반쪽 글을 주웠던 자리는 물에 잠겼다가 다시 드러나 있었다. 새 물건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지나치려던 때, 길상이 다리 아래의 돌을 가리켰다.
“저건 못 봤습니다.”
작은 쪽지였다. 오래 물에 떠 있던 것처럼 풀어지지 않았고, 접힌 귀를 돌 아래 눌러 두었다. 연화는 위쪽 길을 먼저 봤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두고 간 지 얼마 됐는지는 돌의 젖은 면만으로 알 수 없었다.
복단이 아래로 내려갔다. 범수가 다리 위에서 물 흐르는 쪽을 봤고, 길상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복단은 돌을 들어 종이를 받쳤다. 돌아오면서 미끄러질 뻔했으나 길상이 팔을 받아 줬다. 그녀는 쪽지를 연화에게 바로 건네지 않고 손바닥 위에서 펼쳤다.
한덕수의 글씨였다.
연화가 낮게 읽었다.
“우리는 살아 있고 둘은 쓰러졌다.”
복단의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 누구 둘인지, 쓰러졌다는 말이 어디까지인지 종이는 말하지 않았다. 길상은 글을 손가락으로 짚으려다가 도로 거뒀다. 자기 손의 물이 종이에 떨어질까 봐서였다.
범수가 다리 양쪽을 다시 살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글만 돌아왔다. 그가 낮게 말했다.
“두고 간 발은 이미 지나갔군.”
연화는 쪽지를 품에 넣기 전에 따로 종이에 받쳤다. 앞서 가져온 은값의 반쪽 글과 섞이지 않게 묶었다. 복단은 이제 가자고 했다. 한양의 식솔들에게 살아 있다는 말만 먼저 전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기다리는 사람이 둘의 빈자리를 듣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네 사람은 다리를 다시 건넜다. 연화의 품에는 북쪽에서 본 지붕과 돌아온 글이 있었다. 그 사이에 아직 사람의 얼굴이 비어 있었다. 길상은 갈림길에서 뒤를 돌아 연화가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이번에는 큰 이문이 앞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