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지난 복숭아밭
스물일곱 병의 정산
윤보리는 빈 상자의 칸을 세다가 손가락을 다시 처음으로 돌렸다. 스물일곱 칸이었다. 한번 더 세어도 스물일곱이었다. 병이 빠진 자리는 종이 받침에 둥글게 남아 있었다. 비에 젖은 천막을 털고 돌아온 최옥순이 보리에게 분필을 내밀었다.
윤보리는 빈 상자의 칸을 세다가 손가락을 다시 처음으로 돌렸다. 스물일곱 칸이었다. 한번 더 세어도 스물일곱이었다. 병이 빠진 자리는 종이 받침에 둥글게 남아 있었다. 비에 젖은 천막을 털고 돌아온 최옥순이 보리에게 분필을 내밀었다.
“칸이 늘어나지는 않지?”
“제가 잘못 셌는지 봤어요.”
“잘못 세어서 서른 개면 좋겠는데.”
옥순은 현금과 카드, 예약금을 다른 색으로 칠판에 적었다. 보리는 옆에 유상 판매 스물일곱 병, 예약 서른네 병을 써 놓았다. 옥순이 합계 줄을 그으려 하자 그녀가 지우개를 밀었다. 예약된 병은 아직 만든 것도 내보낸 것도 아니었다. 옥순은 알겠다며 줄을 짧게 고쳤다. 실제 들어온 예약금도 어떤 주문의 돈인지 따로 남겼다.
류미정은 천막 뒤 냉장 장비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칠판 앞으로 왔다. 시식컵을 담던 통은 비어 있었다. 팔린 병의 수와 컵의 수는 다른 줄에 있었다. 장터 끝 무렵에는 누가 무료로 맛봤고 누가 돈을 내고 산 것인지 기억이 섞이기 쉬웠다. 보리는 영수증을 시간순으로 펼쳤다. 옥순이 현금을 다시 세는 동안 바람에 종이가 들려 미정이 깨끗한 빈 통으로 끝을 눌렀다.
장터 상인들이 정가로 사 간 병도 유상분에 있었다. 보리는 그것을 따로 더하지 않았다. 천막을 유지한 표결에서 찬성했던 사람들이 사 갔다고 모든 병을 연대의 숫자로 부를 수도 없었다. 그들은 값을 냈고 자기 몫을 가져갔다. 미정은 내일 그 병이 제대로 보관됐을지를 걱정하다가 표시를 읽고 가져갔다는 기록부터 확인했다.
한 조합원이 칠판 앞에 섰다. 그는 스물일곱이라는 숫자를 보더니 휴대전화의 옛 기사 제목을 꺼냈다. 보리는 그 제목을 이미 알고 있었다. 화면을 안 봐도 그 밑에 붙은 자기 이름이 떠올랐다.
“오늘은 팔렸으니 됐는데, 더 만들다 또 말 나오면 어떡해? 해명부터 끝내고 늘리자고.”
보리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그 사람은 맛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자기 원물이 들어간 병에 과거 논란이 따라오는 게 싫다는 말이었다. 보리는 그 심정을 듣고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장터에 나오는 대신 자기 회사 일부터 끝냈다면 이 사람들까지 그런 질문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멈추자는 건 예약도 못 받는다는 뜻인가요?” 미정이 물었다.
“일단 돈은 돌려주고.”
“만들기로 한 걸 먹고 싶어 한 사람들은 오늘 제품을 보고 예약했어요. 우리가 맛도 표시도 못 지킬 상황인지 먼저 봐야죠.”
보리는 미정이 자신을 편들어 주는 것 같아 오히려 움츠러들었다. 미정은 조합원이 든 휴대전화보다 냉장 기록을 봤다. 장터의 위생과 표시를 지키는 동안 판매를 유지하겠다는 결정이 있었다. 그 결정이 보리의 과거 주장을 모두 옳다고 판정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 만들어 건네야 하는 제품은 주방이 맡은 일이었다.
“보리 기록은 확인하고, 오늘 주문은 오늘 약속대로 만듭니다.” 미정이 말했다. “둘 중 하나를 멈출 이유는 없어요.”
“확인하다 보리가 떠나면?”
그 말에 보리는 여행가방을 다시 끌던 자신을 떠올렸다. 봄의 일요일 표를 그대로 두고 들어온 사람에게 한 철을 맡긴 것이었다. 여기 평생 있으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예약을 받아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주방 문을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꺼번에 크게 늘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확인할 작업번호도 있고요. 다음 장터를 맡기로 한 범위부터 적을게요.”
그녀는 새 칠판 구석에 생산 상한을 썼다. 예순 병. 옥순은 예약 서른네 병을 그 옆에서 확인했다. 다 만들면 다 팔린다는 예측으로 더 큰 숫자를 쓰지는 않았다. 조합원은 그래도 회사에서 무슨 말을 할지 모르지 않느냐고 했다. 보리는 모른다고 답했다. 현재 판매글에서 분쟁 상태를 감추지 않고, 보존한 개인 작업번호로 원본 확인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작업번호 세 개면 이겼다는 건가?”
“아니요. 회사 원본을 요구할 것을 찾은 거예요. 그 장치에 완성 레시피가 남아 있던 것도 아니고요.”
말하고 나니 속이 다시 쓰렸다. 시제품 이름과 송장의 날짜가 자신을 곧장 데려다 줄 것 같았던 순간이 있었다. 논란 제품보다 열한 달 앞선 이름을 보았을 때는 큰 글씨로 공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름 하나가 누가 무엇을 만들었는지의 끝은 아니었다. 보리는 그 확인을 오늘 장터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바꿔 말하지 않았다.
옥순은 생산 상한을 보고 미정에게 새 재료와 병을 어느 날 확보할 수 있는지 물었다. 미정은 당장 두 배를 약속하지 않고 다음 작업 일정을 나눠 확인했다. 조합원은 예순 병을 넘기지 않는다는 말을 다시 듣고서야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보리를 믿는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오늘 예약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말자고 했다.
보리는 숨을 들이쉬고 정산표를 앞으로 당겼다. 원물대, 당일 노동비, 장터수수료, 세금충당, 재투자. 옥순이 각 칸을 읽었다. 현금통에 돈이 남아 보인다고 모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농가가 낸 재료와 오늘 여기 서서 일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이 먼저 있었다. 보리는 자기 당일 노동비 줄에서 손을 멈췄다.
“이건 제가 다음에 받아도.”
옥순이 펜을 가로로 놓았다. “그 말 하지 않기로 했지.”
“제가 일을 어렵게 만든 것 같아서요.”
“그런 걸 따지면 나는 보험금으로 오븐을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병까지 싸게 팔 뻔했고. 서로 값 빼다 끝나겠다.”
미정은 보리에게 영수증 묶음을 건넸다. 오늘 원물대를 받을 사람의 돈과 보리의 돈을 같이 정한 순서로 지급하라고 했다. 보리는 조합원들이 듣는 자리에서 자기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손이 주방에 있던 시간은 과거 회사의 기사 제목과 같은 줄에서 계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급 표시를 하나씩 남겼다.
누군가 냉해 보험 예비금도 보태면 다음 생산이 쉬워지겠다고 말했다. 옥순은 보험 쪽 장부를 오늘 정산판 위에 꺼내지 않았다. 그 돈으로 당장 빚을 얼마나 갚을 수 있을지 물었던 봄의 자신을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오늘 들어온 돈은 병을 만들어 팔아서 들어왔다. 각 농가의 냉해 조사와 기존 대출은 다른 종이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거 없이 예순 병을 할 수 있는지 봅시다.” 옥순이 말했다. “할 수 없는 돈까지 오늘 팔았다고 쓰지 말고.”
정산을 기다리던 사람은 자기 지급 내역을 받고 돌아갔다. 보리는 그가 원물값을 확인하는 것을 보았다. 당일 일한 사람도 시간을 확인하고 몫을 받았다. 모든 원물대와 당일 노동비가 빠져나가자 현금통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옥순이 손으로 들어 보더니 큰 숫자를 쓴 칠판을 다시 봤다.
“스물일곱 병이 이렇게 조용하네.”
미정이 접시를 포개며 말했다. “일한 사람들 손으로 갔으니까요.”
보리는 웃고 싶었지만 남은 금액이 생각보다 작아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자기 몫을 안 받았으면 더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받은 돈을 별도 주머니에 넣었다. 옥순도 가족 작업장의 빚 장부를 가져오지 않고 공동주방 수리통장에 넣을 작은 이익부터 확인했다.
강해진은 천막의 마지막 의자를 접고 들어왔다. 보리는 그가 정산이 끝난 뒤에 나타난 줄 알았다. 해진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칠판 옆에 놓았다.
“시식 네 컵은 정식 매입으로 처리해 주세요. 편향을 줄이느라 비용이 좀 들었습니다.”
옥순이 보리에게 저 사람은 연구비를 받는 편이 아니냐고 물었다. 보리는 컵값을 받아 별도 기록에 놓았다. 스물일곱 병 줄을 서른한 병으로 고치지 않았다. 네 컵은 네 컵이었다. 해진은 굳이 무료 시식으로 남겨도 되는 걸 왜 돈을 내느냐는 질문에 세 번째부터 조사비가 아니라 간식비라던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럼 이자도 있어요.” 보리가 말했다.
“여기서 돈 빌린 적은 없는데.”
“정산 늦게 하셨잖아요.”
미정이 씻을 컵을 들고 둘을 보았다. 해진은 못 이기겠다는 얼굴로 영수증을 기다렸다. 보리는 받은 금액을 먼저 쓰고 뒷면에 웃는 복숭아를 그렸다. 원래는 아주 작은 입꼬리만 그리려 했는데 해진이 들여다보느라 가까이 오자 얼굴을 더 크게 그렸다. 자기 얼굴을 볼까 봐 종이를 들여다보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자가 현금이 아니네.”
“환금 불가예요.”
그는 영수증을 접어 주머니 안쪽으로 넣었다. 컵값을 낸 기록이자 그림 한 장이었다. 보리는 그걸 나중에 꺼내 볼지 묻고 싶었지만 미정이 비어 있는 손에는 행주를 주었다. 둘은 말끝을 접고 천막의 탁자를 닦았다. 해진은 보리의 일을 모두 대신하지 않고 자기 쪽 끝을 닦았다. 닿을 듯 말 듯한 손보다 아직 남은 얼룩이 먼저였다.
수리통장에 첫 금액을 넣는 것을 옥순과 보리가 확인했다. 크지 않았다. 주방을 새것으로 만들 수 있는 돈도 아니었다. 그래도 다음에 고장 나면 누구 개인의 주머니부터 뒤지는 대신 볼 통장이 생겼다. 옥순은 입금 화면을 닫은 뒤 남은 예약표를 별도 철에 넣었다. 스물일곱 병은 이미 나간 것이고 서른네 병은 앞으로 건네야 할 것이었다.
주방으로 돌아오니 농가 사람들이 가져온 종이가 벽 옆에 쌓여 있었다. 각자 하던 숙성 방법과 희망 원물가격이었다. 옥순은 오래 끓여야 실패할 일이 없다는 자기 문장을 맨 위에 붙이려 했다. 다른 사람은 향이 사라지기 전에 내려야 한다고 옆에 적었다. 보리는 한 장을 대표로 고르지 않고 다섯 집 종이가 같이 보일 자리를 만들었다.
“지금 원물값 다 줬는데 또 가격 얘기야?” 옥순이 물었다.
“오늘 쓴 분량은 줬죠. 다음에 어떤 걸 어떻게 쓸지는 아직 다르잖아요.”
미정은 다섯 종이 앞에 빈 작업표를 놓았다. 농가마다 자기 방식대로 하면 나오는 양과 걸리는 시간이 달라질 터였다. 보리는 내일 무엇부터 비교할지 생각하며 냄비 자리를 봤다. 오늘 장부로 지급한 노동과 그전 원물을 손질한 시간이 모두 같은 칸에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음 시험에 그 손도 따라올 것 같았다.
해진이 돌아가려 문을 열었다. 보리는 벽의 종이를 맞추던 손을 내리고 그에게 영수증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다. 그는 이자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다. 보리는 네 컵을 다음에 또 공짜라고 우기지 말라고 답했다. 해진은 웃고 나갔다. 문이 닫힌 뒤 보리는 다시 다섯 희망가격을 보았다. 같은 주방에서 같은 상품을 만들 사람들의 숫자가 서로 달랐다.
옥순은 그 가운데 자기 종이의 기울기를 고쳤다. 미정은 다섯 냄비를 놓을 자리를 비웠다. 보리는 오늘 정산표를 접어 서랍에 넣고 내일 시험표를 폈다. 예순 병이라는 상한은 남아 있었고, 예약표도 옆에 있었다. 그녀의 작업번호 세 개도 가방 안에 있었다. 하나를 확인하느라 다른 약속이 사라지게 하지 않으려면 내일은 다섯 냄비 앞에서 다시 손을 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