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완화의료 휴먼극 29화

열세 번째 야간 왕진

원본 서버의 바깥

품질관리 서버에 남은 요약과 원시 로그는 같은 여섯 분을 다르게 기록하고 있었다. 세현 일행은 어느 한쪽을 버리는 대신 경보 이벤트의 공백, 중앙 전달 실패, 인력 공백을 함께 보존하고 피해환자의 시간과 자신의 판단 지연을 같은 표 위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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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관리실 문이 열렸을 때 오세현은 먼저 냄새를 알아봤다. 오래 닫아 둔 방의 먼지 냄새 뒤에 병원 바닥을 닦는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몸이 기억하는 것과 기록이 말하는 것을 구분하겠다고 해 놓고도, 그는 잠깐 그 냄새만으로 과거로 돌아갔다.

고미라가 문턱에서 멈추게 했다. 장비와 보관 상태를 먼저 확인할 사람이 안으로 들어갔다. 세현은 뒤에 서서 빈 의자를 봤다. 저기에 앉아 파일을 열면 무엇이 나올지 기다리는 동안, 환자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었다. 사건의 중심이어야 할 사람이 늘 자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윤채영이 열람 범위를 다시 읽었다. 사고 날짜와 관련된 경보 요약, 인력 위험지표, 파일이 생성되고 보존된 경위였다. 다른 환자들의 자료까지 보는 자리는 아니었다. 세현은 필요한 부분만 가려진 목록을 받았다. 오래 일했던 병원이라고 지금 모든 화면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정오의 답변에서 별도 보관 위치를 확인한 뒤 마련된 입회였다. 어제까지 가능성이라고 들었던 서버가 방 안에 있었다. 있다고 해서 원하는 파일까지 온전하게 남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고미라는 장비를 다루는 사람에게 확인 순서를 짧게 말했다.

먼지가 묻은 외함에 빛이 비쳤다. 세현은 서버에 전원이 들어오는 것을 기적처럼 보고 싶었다. 화면이 켜지면 기억에서 잃어버린 소리까지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미라가 먼저 남긴 것은 기대가 아니라 상태였다. 보관 이력과 접근 범위가 확인되고 복제 절차가 이어졌다.

“여기서 새로 만든 파일은 아닙니다.”

그녀가 읽기 전용으로 펼친 목록을 가리켰다. 사고 날짜의 폴더 안에 경보 요약과 인력 위험지표가 있었다. 세현은 목록 맨 위를 읽다가 손을 뻗었다. 화면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을 뿐인데 스스로 놀라 손을 내렸다.

고미라는 의자를 옆으로 옮겨 주었다.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세현은 앉았다.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읽을 수 있었다. 채영은 그의 오른쪽에 섰다. 누가 대신 손을 잡거나 안심시키지 않았다. 지금은 세 사람 모두 화면을 보고 있었다.

사고 당시 마취기 원시 로그에서 두 시 십일 분부터 십칠 분까지 경보 이벤트 열은 비어 있었다. 활력값은 이어졌는데 경보 기록만 없던 여섯 분이었다. 세현이 오래 자신에게 물었던 시간이었다. 소리가 났는데 놓쳤는가. 자신이 껐는가. 질문마다 같은 자책이 답을 대신했다.

품질관리 서버의 요약에는 세 줄이 있었다.

한 줄, 다음 줄, 세 번째 줄.

세현은 숫자를 읽고도 바로 의미를 말하지 못했다. 같은 여섯 분 안에 세 차례 경보가 발생했다는 기록이었다. 고미라는 먼저 두 자료의 시간 기준을 확인했다. 같은 날짜라고 곧바로 한 축 위에 얹지 않았다. 기준이 맞은 뒤 세 줄은 원시 로그의 빈 구간 안에 남았다.

“그러면 원시 로그는 틀린 겁니까?”

세현이 물었다. 고미라는 어느 한쪽을 버리겠다고 답하지 않았다. 생성 경로가 다른 기록을 맞춰 보는 중이라고 했다. 원시 로그의 빈칸이 모든 곳에서 경보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별도 요약이 있다고 현재 확보한 원시 파일 안의 공백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중앙 전달 실패 표시를 확대했다. 센서에서 발생한 경보가 중앙으로 이어지지 못한 흔적이었다. 세현은 그 글자를 보고 숨을 들이쉬었다. 자기 귀 안에서만 맴돌던 문제가 장비 사이의 경로로 움직였다.

채영이 물었다. “센서에서 발생한 것과 실제 누가 들었는지는 나눠야겠죠?”

“네. 지금 확인되는 경보 발생과 전달 실패를 먼저 적습니다.”

고미라는 세현을 돌아보았다. 이 줄이 그가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모든 상황을 대신 증명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단정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다른 확신 속으로 숨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은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제가 직접 들었어야 했던 것 아닙니까.”

말을 하고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었다. 채영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 그의 고통이 크다는 이유로 자료를 더는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전달이 실패했다는 건 그때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합니다. 선생님 판단이 늦어진 것은 별도로 남습니다.”

“그럼 똑같은 것 같아서요.”

“환자에게는 같지 않습니다.”

세현이 그녀를 봤다. 채영은 세 경보 시각을 가리켰다. 누가 잘못했는지 이름 하나를 고르기 위해 생긴 줄이 아니었다. 환자의 상태가 바뀌고 도움을 알리려는 장치가 움직였던 시간이었다. 어떤 정보가 어디까지 가고 어디서 멎었는지를 알아야 그 밤에 못 받은 도움을 설명할 수 있었다.

세현은 화면을 다시 봤다. 그는 세 줄을 본 첫 순간에도 자신의 죄가 줄어드는지 늘어나는지부터 셌다. 그 여섯 분을 겪은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자 안도하려던 마음과 더 벌받으려던 마음이 동시에 조용해졌다.

“시간을 처음부터 읽어 주시겠습니까?”

고미라가 첫 줄로 돌아갔다. 세현은 이번에는 중간에 자기를 넣지 않고 들었다. 경보 발생. 전달 실패. 이어진 활력값. 같은 구간에 비어 있던 인력. 그 뒤 자신의 판단과 행동. 끝까지 듣는 동안 손이 떨렸지만 종이를 놓지 않았다.

자료는 더 많이 나왔다고 모두 답이 되지는 않았다. 인력 위험지표에는 당시 필요한 인원과 실제 배치의 차이가 이어졌다. 네 사람이 필요했던 자리에 두 사람의 공백이 있었다. 누가 병가였고 누가 다른 병동 지원으로 빠졌는지는 배치표와 맞춰야 했다. 품질관리 요약 한 장이 근무자의 하루까지 전부 설명하지는 못했다.

채영은 빈 두 칸 옆에 확인할 자료를 적었다. 세현은 이미란이 두 수술방을 오갔다는 기록을 떠올렸다. 그녀가 더 빨리 왔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을 당시 가졌는지는 지금 새로 만들 수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어떤 지원을 요청했고 어느 시점까지 도착하지 않았는지였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행동 시각을 별도 종이에 썼다. 기억으로만 적는 것에는 그 표시를 붙였다. 확인된 기록과 겹친다고 기억의 나머지까지 사실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고미라는 그 종이를 원시 자료 위에 덮지 않고 곁에 놓았다.

잠깐 쉬는 동안 세현은 복도로 나왔다. 맞은편 문에서 누군가 조용히 나와 빈 컵을 모았다. 손잡이 없는 종이컵이 겹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은 여전히 오늘의 사람들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방 안에서 과거 여섯 분을 다시 열어도 바깥의 저녁이 멎지는 않았다.

세현은 휴대전화를 꺼내 하진에게 예정된 팀 연락에 늦지 않겠다고 짧게 남겼다. 기록을 더 찾았다는 설명은 붙이지 않았다. 그녀가 읽을 필요 없는 과거 환자 자료를 사진으로 보내지도 않았다. 가방 안의 방문 기록지가 구겨지지 않았는지만 확인했다.

채영은 복도 창문 옆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세현은 먼 자리에 서 있었다. 통화가 끝난 뒤 그녀가 웃으며 손바닥을 봤다. 아까 문을 잡다가 묻은 먼지가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밥 먹었느냐고 물었는데 아직이라고 답했다는 말만 했다.

“오늘도 어머니가 먼저 챙기셨군요.”

“그러면서 자기는 알아서 드셨대요. 뭘 드셨는지는 제가 다시 묻고 싶었는데, 돌아가서 볼래요.”

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의 일상은 의료진이 끊임없이 확인하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영숙은 전화가 끝나도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하고 컵을 옮길 사람이었다. 세현은 그 모습을 기록의 빈칸을 채우듯 상상하지 않았다. 다음에 만나면 직접 들으면 됐다.

감정실로 돌아오니 고미라가 분 단위 표를 펴 놓았다. 센서 경보, 중앙 전달 실패, 인력 결원, 세현의 판단 지연. 네 갈래가 같은 시각 아래 이어졌다. 한 칸을 채우면 다른 칸이 지워지는 방식이 아니었다.

세현은 자기 이름의 줄을 읽었다. 붉은 표시가 여전히 길었다. 그는 짧게 고쳐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 위의 전달 실패도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는 각주 안으로 숨기지 않았다. 환자에게 닿지 못한 도움의 경로가 각각 보여야 했다.

“제가 이 표를 가족에게 바로 보여 드려도 됩니까?”

채영이 고개를 저었다. 자료의 감정과 조정 절차를 거쳐야 했고 가족이 다시 참여하기를 원하는지도 먼저 물어야 했다. 세현은 알겠다고 답했다. 새 사실이 생길 때마다 즉시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표에 달린 질문을 다시 읽었다. 어떤 문장은 이미 답할 수 있었고, 어떤 문장은 다음 자료가 필요했다. 무엇이 확인되지 않았는지 읽히도록 남기는 일도 가족에게 돌려줄 설명의 일부였다.

고미라는 마지막 항목에서 손을 멈췄다. 중앙 전달 실패 보고를 받은 뒤 품질관리 책임자가 무엇을 했는지 보여 줄 결재가 비어 있었다. 표가 끝났다고 사건이 끝나는 모양은 아니었다. 장치에서 경보가 나온 뒤 그것을 알게 된 사람이 어디로 보냈는지 질문이 남았다.

“결재가 없으니 안 읽었다는 뜻입니까?” 세현이 물었다.

“그렇게는 못 말합니다.”

“읽었는데 숨겼다는 뜻도 아니겠군요.”

고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아 있는 자료에서 후속 조치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현은 그 문장을 메모했다. 원장의 의도를 채워 넣고 싶지도 않았고 품질관리 담당자 한 사람을 새 범인처럼 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다음 질문의 주소가 생겼을 뿐이었다.

복제 자료와 열람 결과가 정리됐다. 원본 서버 안의 공백을 새 파일로 덮어쓰지 않았다. 고미라는 각각의 기록이 어디서 왔는지 그대로 남겼다. 세현은 두 자료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까지 함께 설명해야 함을 알았다. 한 장만 골라 보여 주면 또 한 번 편한 문장이 만들어질 터였다.

그는 문을 나서기 전에 화면의 세 줄을 마지막으로 봤다. 경보가 돌아왔다고 그 밤의 환자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환자가 겪은 시간을 이제 자신의 자책 한 문장 아래 가둘 수는 없었다.

밖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세현은 다음 예비심사 일정을 확인하고 가방을 들었다. 하진에게 가는 길에 따뜻한 것을 먹으라는 짧은 답이 와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꼈다. 밥을 먹는다고 과거를 덜 무겁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 현재의 환자에게 가려면 오늘의 몸도 돌봐야 했다.

그는 가방 안쪽에 과거 사고 자료를 넣고, 앞칸에는 영숙에게 읽힐 큰 글씨 종이를 남겼다. 같은 손으로 들었지만 서로 다른 사람의 시간이었다. 다음 심사에서 그는 경보 세 줄부터 환자가 겪은 순서대로 읽을 생각이었다. 마지막 빈 결재칸도 건너뛰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