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랑주 5의 유언
칠십이 킬로파스칼
진아리와 권도한이 72.4킬로파스칼 기록과 사라진 44초를 보존하며 공식 센서 판정의 공백을 추적한다.
사고 여섯 시간 뒤, 진아리는 자기 귀보다 계측기의 전자음을 먼저 들었다.
짧고 높은 소리가 의무실 격리침상 옆에서 세 번 울렸다. 청력검사기는 오른쪽 파형을 그리다 멈췄고, 투명 보관봉투 안의 휴대 압력계에는 여전히 72.4가 떠 있었다.
“방금 어느 쪽에서 났어요?” 의료진이 물었다.
아리는 천장을 보며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가 망설였다.
“가운데 같기도 해요.”
“모르면 모른다고 하셔도 됩니다.”
그 말이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늘 아침부터 아리 주변의 모든 사람은 모르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했고, 그래서 사고는 아직 이름조차 얻지 못했다. 의료진은 파형 옆에 ‘방향 구분 불확실’이라고 적었다. 틀렸다는 표시가 아니라 지금 들은 그대로 남기는 문장이었다.
침상 맞은편에는 권도한이 가져온 교정대가 놓여 있었다. 두꺼운 투명 덮개 안에 은색 포트와 기준기가 붙어 있었고, 가온의 상태등이 그 위에서 느리게 깜박였다. 아리의 계측기는 봉투째 옆에 놓였다. 사고 뒤 한 번도 덮개를 열지 않았고, 보존 잠금 표시도 그대로였다.
재단 안전담당 심재욱은 문가에서 팔짱을 꼈다.
“낙상 충격부터 봐야 합니다. 외장에 새 흠집이 있잖아요.”
아리는 침상 난간을 잡았다.
“넘어지기 전에 이미 떨어지고 있었어요.”
“진 기사 기억을 거짓이라고 한 게 아닙니다. 장비가 바닥에 부딪힌 뒤 최저값을 잘못 남겼을 가능성을 말하는 겁니다.”
“그 말이 지금은 뭐가 달라요?”
도한이 두 사람 사이에 서지 않고 교정대의 빈 연결구를 가리켰다.
“충격으로 값이 틀어졌다는 설명이 맞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맞으면 그것도 남고, 아니면 그 설명이 빠집니다.”
아리는 투명봉투의 봉인번호를 확인했다. 자신이 의무실에서 리오와 함께 읽었던 숫자와 같았다.
“장치를 열지 않는다고 했죠?”
“네. 외부 기준포트만 씁니다. 내부 메모리는 원본을 바꾸지 않는 방식으로 따로 읽을 겁니다.”
“따로 읽는다는 말을 믿으라고요?”
도한은 대답 대신 작업승인 화면을 그녀 쪽으로 돌렸다. 원본 장치 쓰기 금지, 덮개 미개봉, 결과 사본 분리. 하단에는 아리와 도한 외에 의무실 관찰자 한 명이 입회자로 표시돼 있었다.
“이 문장으로도 부족하면 시작하지 않겠습니다.”
아리는 리오를 찾았다. 그는 다른 부상자의 보호자와 통화하러 나간 상태였다. 자기 계측기를 자기 눈앞에서 시험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눈앞의 글자가 제대로 보이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그녀는 화면을 확대해 달라고 했다. 한 줄씩 다시 읽은 뒤에야 서명 칸에 손가락을 댔다.
“좋아요. 대신 저 숫자에 유리하게 맞추지는 마세요.”
재욱이 비웃듯 숨을 뱉었다.
“본인에게 유리한 숫자를 본인이 걱정합니까?”
“내 기계가 틀렸으면 그것도 알아야 다음에 사람을 안 죽이니까요.”
의무실이 조용해졌다. 도한은 승인 표시를 누르고 보안 담당자에게 봉투를 열게 했다. 계측기는 흰 흠집까지 사고 직후 사진과 대조한 뒤 교정대 안으로 들어갔다. 장치를 쥔 것은 도한이 아니라 고정 팔이었다. 아리는 그 점이 마음에 들면서도, 자기 공구를 남에게 맡긴 기분 때문에 손바닥이 저렸다.
첫 기준점이 들어가자 휴대계 화면의 숫자가 천천히 바뀌었다. 가온은 기준기와 휴대계의 차이를 읽었다. 차이는 계측기의 허용 오차 안에 있었다. 두 번째도 그랬고, 세 번째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재욱이 곧바로 말했다.
“지금 맞는다고 사고 때도 맞았다는 증명은 아닙니다.”
아리는 벌떡 일어나려다 귀 안의 가는 소리가 커져 다시 베개에 기대었다.
“반대로 지금 틀렸다고 나왔으면 사고 때도 틀렸다고 했겠죠.”
“그래서 한 번 더 봐야 합니다.” 도한이 말했다.
그는 사고 전에 남은 정기 교정 이력을 불러왔다. 휴대계는 나흘 전 점검에서도 기준기와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사고 뒤의 세 지점만 우연히 돌아온 것이라는 설명은 약해졌지만, 흠집이 언제 생겼는지까지 밝혀진 것은 아니었다.
“충격 표시는요?” 아리가 물었다.
“외장 센서는 낙상을 기록했습니다. 사고가 시작된 뒤 시각입니다.”
도한은 시간을 확대해 보여 줬다. 휴대계가 하강을 기록하기 시작한 뒤, 몇 초 지나 외장 충격표시가 찍혀 있었다. 숫자가 먼저 떨어졌고 기계는 나중에 바닥에 닿았다.
아리는 재욱을 봤다.
“이제 됐습니까?”
“휴대계가 저압을 기록했다는 건 인정합니다. 중앙 센서가 정상인 이유는 그대로입니다.”
도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장치 오차만으로 사십사 초를 설명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고 중앙 기록을 누가 조작했다고 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리는 이를 악물었다.
“또 뒤로 가네요.”
“아니요. 충격 오차라는 문 하나를 닫은 겁니다. 남은 문이 보기 싫다고 벽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나는 그 벽 아래서 피를 흘렸어요.”
“그래서 더 오래 버티는 기록이 필요합니다.”
도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리는 그가 자기보다 숫자를 더 믿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손은 중앙 패널 화면보다 계측기 봉인번호를 먼저 가리고 있었다. 재단 쪽에서 결과표를 가져가려 하자 아직 복제가 끝나지 않았다며 돌려세웠다.
가온이 내부 시계 비교 결과를 띄웠다. 휴대계 시각은 의무실 표준시와 조금 어긋나 있었지만, 아리가 처음 경보를 보낸 시점과 앞뒤 순서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었다. 화면에는 장치가 측정값을 남긴 간격도 함께 표시됐다.
“영점이초마다 찍은 거 맞죠?” 아리가 물었다.
〈해당 장치의 사고 구간 기록상 그렇습니다. 실제 구역 압력과의 일치 여부는 별도 판단입니다.〉
“너도 말이 길어졌네.”
〈질문 범위를 구분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처럼.” 재욱이 말했다.
도한이 그를 바라봤다.
“운영 AI의 문장 선택을 의심하신다면 그 기록도 요청하겠습니다. 지금은 계측기부터 끝냅시다.”
재욱은 입을 다물었다. 아리는 가온의 답이 야속하면서도 정확하다고 느꼈다. 실제 압력이 낮았다는 결론과 장치가 연속해 기록했다는 사실은 같은 문장이 아니었다.
읽기 전용 복제가 시작됐다. 진행 막대가 느리게 움직이는 동안 리오가 돌아왔다. 그는 침상 옆에 앉지 않고 먼저 아리에게 물었다.
“계속해도 돼?”
“거의 끝났어.”
“네 상태를 묻는 거야.”
아리는 잠시 생각했다. 귀의 가는 소리는 여전했고, 교정대 숫자를 오래 보느라 속이 울렁거렸다.
“십 분 쉬고 싶어.”
리오는 즉시 도한에게 손바닥을 보였다. 복제는 장치가 진행하더라도 설명과 질문은 멈췄다. 재욱이 일정이 밀린다고 말했지만, 리오는 의무실 안에서 환자의 휴식보다 감사 일정이 앞설 수 없다고 잘랐다.
불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리는 눈을 감고 옆 침상의 숨소리를 들었다. 사고 구역에서 함께 쓰러진 작업자였다. 그에게도 아직 정식 사고번호가 없었다. 숫자가 인정되면 치료비가 해결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72.4가 모든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는 것은 이제 알았다.
십 분 뒤, 도한은 복제 결과를 원본 화면과 나란히 띄웠다. 최저값은 같았고, 하강이 시작된 시점부터 회복까지의 기록도 이어졌다. 해시값과 보관번호라는 말이 화면 아래 지나갔지만 아리는 그보다 패킷 순서를 봤다.
“중간 번호가 안 비었네요.”
도한이 확대했다. 사십사 초 구간 동안 패킷 번호는 하나씩 이어졌다. 기계가 한 번 잘못된 값을 멈춰 세워 둔 것이 아니라, 짧은 간격으로 계속 다른 값을 측정한 흔적이었다.
“고장 난 화면이 같은 숫자를 붙잡고 있었다는 설명도 약해졌습니다.” 도한이 말했다.
“그럼 중앙 센서는요?” 리오가 물었다.
“아직 원자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본 평평한 선이 센서가 직접 보낸 값인지, 표시 화면에서 가공된 값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재욱이 말했다.
“중앙이 틀렸다고 전제하지 마십시오.”
“휴대계가 틀렸다고 전제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도한이 대답했다. “둘 다 공격해 보고 남는 설명을 찾겠습니다.”
아리는 그 말을 들으며 보관봉투에 다시 들어가는 계측기를 봤다. 처음에는 검증이 자기 말을 믿지 않는 절차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누가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불러도 숫자가 혼자 남아 대답하게 만드는 일처럼 보였다.
“사고번호는 언제 생깁니까?”
도한의 표정이 굳었다.
“자동 판정은 아직 적격 사건이 없다고 합니다.”
리오가 고개를 들었다.
“세 명이 같은 구역에서 다쳤는데요.”
“내일 보상창구에서 판정식과 원자료를 같이 보겠습니다. 치료는 계속되고 있지만 비용 연결은 임시 상태입니다.”
리오는 웃지 않았다.
“치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생계가 먼저 끊깁니다.”
그는 옆 침상의 작업자가 며칠이나 일을 쉬어야 하는지, 가족에게 어떤 안내가 갔는지 확인하러 나갔다. 아리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도한에게 말했다.
“내 숫자가 맞아도 사고는 없을 수 있네요.”
“자동 화면 안에서는요.”
“그 화면은 뭘 보고 그렇게 말합니까?”
도한은 가온에게 판정에 사용된 압력값의 시간 단위를 물었다. 답을 불러오는 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마침내 벽 단말에 짧은 문장이 떴다.
〈중앙 압력 5분 이동평균을 사용합니다.〉
아리는 자기 계측기의 사십사 초를 떠올렸다. 오 분짜리 창 안에서는 사람이 쓰러진 시간이 얼마나 얇아지는지 계산하고 싶지 않았다.
도한은 화면을 복제 결과와 나란히 놓았다.
“내일은 숫자가 맞느냐만 묻지 않겠습니다.”
“그럼요?”
“어디서 사십사 초가 사라졌는지 보죠. 센서 원자료에서 빠졌는지, 판정식에서 지워졌는지부터.”
아리는 보관봉투의 봉인번호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72.4는 더 이상 혼자 떠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숫자가 지나갈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