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야간 왕진
비 오는 첫 호출
첫 야간 왕진에 나선 오세현과 문하진이 노영숙의 산소튜브와 호흡 상태를 살피고 재연락 기준을 정한다.
빗물은 노영숙의 집 처마에서 굵은 줄로 떨어졌다. 문하진이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무언가 끄는 소리가 났다. 문이 손바닥 하나만큼 열리고 윤채영의 얼굴이 나타났다.
“빨리 좀 들어오세요. 엄마 숨이—”
채영은 하진의 팔을 잡아당기려다 뒤에 선 오세현을 보고 멈췄다. 세현의 오른손은 왕진가방 손잡이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분은 누구세요?”
“오늘 동행한 오세현 선생님입니다. 문진과 청진, 상태 확인을 함께 합니다. 침습적인 처치는 하지 않고 중요한 판단은 저와 다시 확인할 겁니다.”
하진은 빗소리에 묻히지 않게 천천히 말했다. 채영은 그 설명을 이해하기보다 시간이 아깝다는 표정이었다.
“뭐든 좋으니까 들어오세요.”
하진은 신발을 벗고도 현관턱을 넘지 않았다.
“어머님이 두 사람이 들어가도 된다고 하셨나요?”
“지금 그걸 물을 때예요?”
거실 안쪽에서 쉰 목소리가 들렸다.
“둘 다 오라 그래.”
세현은 그제야 신발 덮개를 신었다. 비닐이 젖은 양말 위에서 미끄러졌다. 낮은 현관턱 하나를 넘는 일이 수술실 자동문을 통과할 때보다 오래 걸렸다.
노영숙은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등에 베개를 두 개 받쳤고, 코에는 산소튜브가 걸려 있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얇은 어깨가 들렸다. 그녀는 세현보다 먼저 방 안을 살폈다. 탁자 위 약상자, 벽시계, 닫힌 방문, 딸의 젖은 소매. 집 안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눈이었다.
“노영숙 어르신, 저는 문하진입니다. 전화로 말씀드렸죠. 옆은 오세현 선생님이고요.”
“손 떠는 의사?”
세현의 목덜미가 굳었다. 채영이 어머니를 나무라려 했지만 하진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 떨림이 있어서 손이 안정돼야 하는 처치는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말씀 듣고 숨소리를 확인하는 역할입니다.”
영숙은 세현의 주머니를 보았다. 그가 손을 감춘 걸 알아챈 듯했다.
“귀도 떨어요?”
“아직은 아닙니다.” 세현이 말했다.
“그럼 들어 봐요.”
허락을 받은 뒤 세현은 가까이 갔다. 그는 질문부터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영숙의 짧은 호흡에 눈을 빼앗겼다. 수술실 경보음이 귀 안에서 한 번 울렸다. 수치를 불러야 한다. 산소를 올려야 한다. 기도를—
하진이 왕진가방을 바닥에 놓으며 말했다.
“오 선생님, 지금부터 보이는 걸 말해 주세요.”
세현은 숨을 삼켰다. 침착한 척 침묵하지 말라는 사무실의 약속이었다.
“환자분이 의식은 분명하고 질문에 맞게 답하십니다. 한 문장을 길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호흡이 빠릅니다.”
“얼마나 전부터 이랬는지 여쭤보세요.”
세현은 영숙을 봤다.
“숨이 더 차기 시작한 게 언제입니까?”
“아홉 시 조금 넘어서. 화장실 다녀오고.”
“가슴 통증이나 갑자기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은요?”
“아픈 건 없고, 숨이 짧아. 겁은 좀 나고.”
“평소보다 열이 나거나 기침이 달라졌습니까?”
“열은 모르겠고, 기침은 똑같아.”
채영이 끼어들었다.
“말을 믿으시면 안 돼요. 엄마는 아파도 맨날 괜찮다고 해요. 손도 얼음장이고 입술도 파래 보여요.”
하진은 채영의 말을 막지 않고 체온계를 꺼냈다. 세현은 영숙에게 손목을 잡아도 되는지 물었다. 맥박을 세는 동안 손끝이 떨렸지만, 손목 위에 얹는 힘은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숫자를 혼자 판단하지 않고 하진에게 들리게 말했다.
산소포화도계를 끼우자 화면에 낮은 수치가 떴다. 채영이 보자마자 휴대전화를 집었다.
“보세요. 이러니까 구급차 불러야 된다니까.”
세현의 속에서도 같은 말이 솟았다. 병원으로 보내면 된다. 더 많은 장비와 사람이 있는 곳으로. 그 선택은 틀릴 가능성을 줄이고, 적어도 이 좁은 거실에서 자신이 결정하지 않아도 되게 했다.
하지만 하진은 포화도계를 빼고 영숙의 손을 수건으로 감쌌다.
“손이 차면 첫 측정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손을 덥힌 뒤 다른 손가락에서 다시 보겠습니다. 그동안 호흡과 의식 상태를 계속 확인할게요.”
“낮게 나왔는데 왜 기다려요?” 채영이 따졌다.
“그 숫자를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측정이 맞는지 확인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위험 신호가 있는지도 함께 보는 겁니다.”
세현은 영숙의 산소튜브를 눈으로 따라갔다. 농축기에서 시작한 투명관이 소파 뒤를 지나 현관 쪽으로 휘어 있었다. 중간 한 곳이 탁자 다리에 눌려 납작해졌고, 영숙이 발을 움직일 때마다 더 접혔다.
“튜브를 확인해도 될까요?”
영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현은 손으로 바로 펴지 않고 하진에게 눌린 지점을 가리켰다. 하진이 농축기 설정과 연결 상태를 먼저 확인한 뒤 튜브를 탁자 다리에서 빼냈다. 접힌 부분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예비 튜브가 있습니까?” 하진이 물었다.
채영은 냉장고 옆 서랍을 열려 했다. 영숙이 손을 들었다.
“아래 말고 위.”
“엄마, 숨도 못 쉬면서 그런 걸 왜—”
“내 집이니까.”
채영의 손이 멈췄다. 위 서랍에서 포장된 튜브가 나왔다. 하진은 교체 이유를 설명하고 영숙의 동의를 다시 받은 뒤 연결했다. 세현은 그동안 호흡수를 세고, 영숙에게 한 번에 말할 수 있는 문장 길이를 확인했다.
“병원은 안 가.” 영숙이 숨 사이로 말했다.
채영이 휴대전화를 탁자에 세게 내려놓았다.
“또 그 얘기야? 지난번에도 집에서 버티다가 새벽에 실려 갔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먼저 불렀잖니.”
“먼저 불러서 집에서 죽겠다는 거야?”
빗소리가 더 커졌다. 세현은 보호자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설득해야 한다고 배웠다. 위험을 강조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책임을 분명히 남기는 방식. 그러나 영숙은 침대 위 이름표가 아니라 자기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영숙 어르신.” 세현이 말했다. “병원에 가기 싫은 가장 큰 이유를 물어도 됩니까?”
“들어가면 못 나올까 봐.”
“치료가 싫으신 겁니까?”
“숨 편하게 해 주는 건 좋지. 정신 흐려지는 건 싫고. 검사하러 이 방 저 방 끌려다니는 것도 이제 지겨워.”
채영이 얼굴을 돌렸다. 세현은 영숙의 대답이 이송 거부 한 줄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병원이 싫다는 말 속에는 편해지고 싶은 마음과 의식을 놓치기 싫은 마음이 함께 있었다.
하진이 따뜻해진 다른 손가락에 포화도계를 다시 끼웠다. 반복값은 첫 수치보다 높았고 화면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튜브를 바꾼 뒤 영숙의 문장 길이도 조금 늘어났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진은 바로 그 말을 가족에게 설명했다.
“지금 반복 측정과 반응을 보면 당장 이송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단정할 상황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태가 다시 나빠지거나 의식이 흐려지고, 새 통증이 생기거나 말씀을 잇기 더 어려워지면 바로 응급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저희가 여기 있는 동안에도 악화되면 연결하겠습니다.”
“그럼 지금은 뭘 할 수 있는데요?” 채영이 물었다.
“자세를 조금 더 편하게 조정하고, 처방받은 범위에서 산소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보겠습니다. 열과 호흡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요. 집에 머무는 선택은 아무것도 안 하는 선택이 아닙니다.”
세현은 영숙의 허락을 받고 등 뒤 베개 하나를 세웠다. 오른손으로 목 뒤를 받치는 대신 양손과 팔을 함께 썼다. 손끝이 흔들려도 몸을 놓치지 않는 동작이었다. 영숙은 자세를 바꾼 뒤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수술하는 손은 아니라더니 베개는 잘 받치네.”
“오늘 맡은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의사가 말귀도 알아듣고. 비 오는 날 별일이야.”
채영이 울다 웃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긴장이 조금 느슨해졌지만 하진은 가방을 닫지 않았다. 일정 시간 동안 상태 변화를 보고, 영숙이 어떤 상황에서 마음을 바꿀지 물었다. 영숙은 의식을 잃거나 딸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 자기 뜻을 다시 확인할 수 없으니 바로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했다. 숨이 지금보다 훨씬 가빠져 한두 단어도 잇기 어렵다면 그때도 연결하라고 말했다.
“엄마, 그걸 왜 이제 말해.” 채영이 손등으로 눈을 닦았다.
“너는 물을 때마다 화부터 냈잖아.”
“무서우니까 그렇지.”
“나도 무섭다.”
영숙이 그렇게 말하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세현은 환자와 가족 중 누구의 두려움을 없애 줄 수 없었다. 대신 서로 다른 공포가 같은 ‘안전’이라는 말 뒤에 숨어 싸우지 않도록 꺼내 놓을 수는 있었다.
하진은 냉장고에 붙일 종이를 꺼냈다. 연락할 상황과 순서, 현재 사용 중인 처방, 오늘 확인한 튜브 문제를 적었다. 채영에게 읽어 보게 하고 영숙에게 빠진 내용이 없는지 물었다. 세현은 ‘병원 거부’라고 쓰려다가 지웠다. ‘현재 집에서 관찰 선택, 악화 기준 충족 시 응급 연계에 동의’라고 고쳤다.
“글씨가 기네요.” 영숙이 말했다.
“짧게 쓰면 어르신이 왜 선택했는지가 빠집니다.”
“내가 숨은 짧아도 말은 길게 하는 사람이야.”
떠날 시간이 됐을 때 빗줄기는 조금 가늘어져 있었다. 채영은 현관까지 따라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밤 정말 집에 있어도 되는 거죠?”
세현은 ‘됩니다’라는 말을 삼켰다.
“지금 확인한 상태에서는 어머님 선택대로 지켜볼 수 있습니다. 다만 종이에 적은 변화가 생기면 기다리지 마세요. 확신이 없을 때도 전화하셔도 됩니다.”
“선생님이 받으세요?”
세현은 대답하기 전에 하진을 봤다. 당직과 연락 책임을 모른 채 좋은 사람처럼 약속할 수는 없었다.
“야간팀 번호로 연락하시면 당직자가 받습니다. 오늘 방문 내용은 인계하겠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자 세현은 처마 아래에서 한동안 우산을 펴지 않았다. 하진이 물었다.
“왜 그래요?”
“처음 숫자를 봤을 때 바로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 판단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에요. 왜 보내고 싶은지를 구분해야죠.”
“환자 위험 때문인지, 내가 무서워서인지.”
“둘 다일 수도 있고요.”
세현은 젖은 현관턱을 돌아봤다. 문틈으로 산소튜브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튜브는 거실에서 현관 쪽으로 휘었다가 보이지 않는 복도 안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히기 직전 영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선생.”
세현이 다시 몸을 돌렸다.
“내일 집에서 지낼 수 있는 조건을 한 장에 적어 와요. 병원 말고 이 집 기준으로.”
“내일도 저를 보시겠습니까?”
“한 번 더 보고 정하지.”
문이 닫혔다. 세현은 빗속에서 웃었다. 환자의 재방문 허락은 대학병원 임용장보다 작았고, 이상하게 더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