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2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마르지 않은 잇꽃물

새 매듭에서 번진 염료와 푸른 실을 살핀 민연화가 유족의 물건을 돌려주고 객주에 남은 가입쪽지로 눈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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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칠은 방에 들어오면서 신을 벗지 않았다.

문턱 안쪽에 짚신 끝이 닿자 허만복의 눈이 먼저 그리로 갔다. 민연화는 주인이 입을 열기 전에 종이 말리는 틀을 벽으로 옮겼다. 바닥에 자리가 생겼다.

“여기 놓으시면 됩니다.”

“무얼.”

“매듭입니다. 손에서 놓기 싫으시면 옆에 앉으셔도 되고요.”

연화가 내려놓은 것은 대나무 채반이었다. 계금이 든 궤짝도, 관아에서 쓰는 물건도 아니었다. 방칠은 그것이 오히려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는 뒤따라 들어온 두 사람과 나란히 벽에 붙었다.

앞서 쌀을 받은 아홉 사람이 먼저 매듭을 놓았다. 가족의 손을 떠난 붉은 실들이 하나씩 둥근 채반 위에 모였다. 연화는 각자가 놓는 자리에 작은 종잇조각을 두고 이름을 적었다. 이름 옆에는 누구의 물건인지도 물어 적었다.

대청에서 밥을 먹던 아이가 문지방까지 따라왔다. 어머니가 팔을 잡아 당겼지만 아이는 목을 빼고 채반을 보았다.

“저거 아버지 거야?”

여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연화는 여인의 매듭 곁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 자리를 더 벌렸다. 다른 물건에 가려지지 않게 하려는 뜻이었다.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방칠이 비웃듯 코로 숨을 내쉬었다.

“아이는 달래고 어른은 못 나가게 붙드는군.”

“나가셔도 됩니다.”

연화는 붓을 내려놓았다.

“다만 패를 맞추지 못했다는 것은 적어 두겠습니다. 다음에 계금을 말씀하시면 그때도 먼저 여쭙게 될 겁니다.”

방칠의 눈이 만복에게 갔다. 주인은 헛기침을 했다. 대청에 나눠 준 쌀 때문에 한 번 양보했고, 산원 때문에 다시 손님을 붙들어 놓았다는 소문까지 듣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오신 김에 보여 주시지요. 우리 산원이 원래 좀 꼼꼼합니다.”

꼼꼼하다는 말이 방 안에 떨어졌다. 연화는 그 말 뒤에 주인이 붙이지 않은 ‘융통성 없이’를 들었다.

방칠은 마침내 손을 뻗었다. 매듭을 내려놓는 대신 채반 위로 툭 떨어뜨렸다. 나무패가 대나무살을 치며 짧게 울렸다. 다른 두 사람도 뒤따랐다.

세 매듭은 아홉 개보다 붉었다.

연화는 색만 보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 새 옷을 입고 온 유족에게 왜 새 옷이냐고 물을 생각이 없듯, 붉은 실 하나를 보고 사람의 사연을 정할 수는 없었다. 대신 아까 손끝에 남은 얼룩을 물에 적신 종이 위에 다시 눌러 보았다.

자국은 엷어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이 매듭, 언제 받으셨습니까?”

방칠이 곧바로 대답했다.

“집사람이 길 떠나기 전에.”

“그때부터 이 실이 묶여 있었고요?”

“그렇소.”

“중간에 새로 묶거나 물을 들이신 적은 없습니까?”

방칠의 손이 채반 쪽으로 움직였다가 멈췄다.

“그걸 왜 묻소?”

연화는 빈 물그릇 두 개를 내려놓았다. 하나는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앞으로 밀었다. 다른 하나에는 깨끗한 물을 조금 따랐다.

“이 물건을 만든 날을 제가 압니다. 그날 여기서 실을 말렸습니다. 그래서 새로 묶은 건지 여쭙는 겁니다.”

“상복이 낡아야 슬픔도 참이란 말이오?”

방 안의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연화는 그 말이 자신을 향했지만, 자신에게만 들리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낡은 삼베 소매를 감추는 사람도 있었고 제대로 상복을 못 갖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방칠은 그들의 얼굴을 한번씩 보았다.

연화가 무슨 말을 해도 차가운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 자리를 그는 찾아냈다.

“상복은 묻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집에는 새 실도 없어야겠구먼.”

“새로 묶으셨다면 그 말을 하시면 됩니다.”

말이 빨라졌다. 연화는 자기 목소리가 높아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대청에서 아이의 밥그릇을 밀어 놓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좋은 뜻이라고 생각하며 내민 것이 상대에게는 모욕으로 닿는 순간.

복단이 물그릇을 들어 옆으로 옮겼다.

“서로 목청만 높이면 이 방 종이가 먼저 찢어지겠소.”

그녀는 연화가 아니라 방칠의 옆에 앉았다. 방칠이 몸을 조금 피하자 굳이 가까이 붙지 않았다.

“새로 물들인 게 죄는 아니지. 우리 보따리도 해지면 덧대고, 실 끊어지면 새로 감소. 이 아이가 그걸 모르면 내가 가르칠 거요.”

연화는 입을 다물었다.

복단이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정말 새로 감았다면 말하시오. 어느 댁 손이든 풀어 본 사람이 있을 것 아니오.”

방칠은 한동안 턱을 움직였다. 이를 악문 것인지 말을 고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대로 받은 물건이라니까.”

복단이 연화를 보았다. 이번에는 돌아오는 시선이 아까보다 덜 차가웠다.

연화는 채반에 손대지 않고 손바닥을 폈다. 붉게 물든 검지 끝을 모두에게 보였다.

“아까 스쳤는데 이렇게 남았습니다. 다른 매듭들은 젖었어도 제 손에 같은 자국이 안 남았고요. 실 끝에 물을 조금 대 보고 싶습니다. 패와 매듭을 전부 적시지는 않겠습니다.”

“안 되오.”

“그럼 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그릇을 뒤로 뺐다. 방칠이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연화는 그 표정을 보고도 말을 더 얹지 않았다. 대신 첫 사내에게 자기 물건의 느슨한 끝을 보여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채반에서 패를 집어 실을 펴 보였다. 손가락에 먼지가 묻었다. 오래 매달려 있던 자리의 색이 다른 부분보다 짙었다. 연화는 봄에 마루에서 말렸던 매듭의 모양을 떠올렸다. 그녀가 서두르다가 몇 개의 끝을 너무 짧게 잘랐고, 계원 하나가 나중에 풀기 어렵다며 웃었던 것도 기억났다.

그때 웃은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내 것은 적셔 보시오.”

사내가 말했다.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대로도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방칠이 갑자기 일어섰다.

“다른 건 안 적시고 내 것만 망치겠다는 거잖소.”

그의 무릎이 채반 가장자리에 닿았다. 종잇조각 하나가 떠올랐다. 연화는 본능적으로 채반을 받치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방칠의 팔이 먼저 그 위를 가로질렀다.

“그만하시오!”

복단이 그의 팔뚝을 붙들었다. 채반은 엎어지지 않았지만 옆에 놓인 물그릇이 기울었다. 조금 흘러넘친 물이 방칠의 매듭 끝을 지나 연화가 깔아 놓은 종이에 번졌다.

붉은 선이 한 가닥 길어졌다.

방칠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이 어머니가 가장 먼저 자기 패를 집어 들었다. 그것을 보고 나머지 사람들도 일어났다. 한순간 방 안이 손과 팔로 가득 찼다. 누가 누구 물건을 가져가는지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제 것만 드세요. 옆 것은 그대로.”

연화가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름 쓴 종이와 같이요. 제가 잘못 돌려드리면 안 됩니다.”

그 말에 손이 조금씩 느려졌다. 사람들은 종이에 적힌 이름을 보고 물건을 들었다. 글씨를 읽지 못하는 사내에게는 복단이 읽어 주었다. 마지막에 남은 세 매듭은 물기 번진 종이 위에서 유난히 밝았다.

“보시오. 멀쩡한 걸 네가 적셨잖아.”

방칠이 복단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복단은 다시 잡지 않았다.

“내가 팔을 잡은 건 맞소. 채반이 엎어질까 봐 그랬고. 그건 내가 설명하리다.”

연화는 젖은 종이를 다른 종이 위에 옮겨 놓았다.

“이 자국만으로 언제 만들었는지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봄에 받은 그대로라고 하신 말씀은 더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관아에 넘기겠소?”

“아직은 묻고 있습니다.”

허만복이 길게 숨을 쉬었다. 그는 문밖을 살폈다. 벌써 객주 심부름꾼 둘이 복도 끝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인이 눈을 부라리자 둘은 종이 꾸러미를 드는 척하며 사라졌다.

“매듭은 다 돌려드려라. 맡기는 건 싫다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화는 뜻밖에도 바로 동의했다. 방칠의 얼굴에 잠깐 안도한 기색이 비쳤다.

그녀는 세 물건 옆에 번호를 적었다. 매듭을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느 물건을 보았는지 서로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방칠에게도 종이를 보여 주고, 맞은편 사람에게도 순서를 확인받았다.

두 번째 매듭을 돌려주다가 실 끝이 걸렸다.

대나무살의 갈라진 곳에 짧은 올 하나가 남아 있었다. 붉은 실인 줄 알았는데, 빛을 받자 푸른색이었다. 연화는 손톱으로 그것을 집어내지 않았다. 주인에게 먼저 가리켜 보였다.

“이 끝에 다른 실이 들어 있네요.”

사내가 매듭을 당기자 안쪽에서 같은 빛이 잠깐 드러났다. 연화는 방칠에게 돌려준 물건과 마지막 물건도 보았다. 꼬여 들어간 방향이 같았고, 가운데 끼어 있는 푸른 올도 보였다.

복단이 손을 내밀었다.

“만지자는 게 아니라, 돌려서 보여 주시오. 다들 보는 데서.”

방칠은 고개를 숙인 채 매듭을 돌렸다.

연화는 그 색을 객주의 붉은 실꾸러미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색도 아니었다. 달마다 들고 오는 관아의 문서 묶음에 비슷한 푸른 끈이 감겨 있었다.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물건이 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가입쪽지들이 든 서랍을 떠올렸다. 실을 묶는 손이 하나였다면, 이 사람들을 계원으로 적은 손은 누구였을까.

“나리, 계산방 열쇠를 주세요.”

만복은 못마땅한 얼굴로 허리춤을 뒤졌다.

복단이 따라 일어나며 낮게 물었다.

“이젠 종이를 보게?”

“예. 실은 돌아갔으니, 객주에 남은 것을 봐야겠습니다.”

연화는 젖은 종이를 말리는 틀에 얹었다. 붉은 물은 점점 넓어졌지만,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아직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