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아래 19번 벨트
접착면 아래 바코드
이중 태그 아래 미등록 바코드를 발견한 고태식 일행이 가방을 비개봉 검사하고 태그 생성 경로를 추적한다.
보안창고의 형광등은 가방을 지나치게 깨끗하게 비췄다. 분류장에서는 기름때와 소음에 묻혀 평범해 보이던 검은 가방이 흰 검사대 위에 놓이자, 누군가 일부러 골라 둔 물건처럼 도드라졌다.
고태식은 유리 너머로 손전등을 비춘 자세 그대로 팔을 내리지 못했다. 겉태그 아래 숨어 있던 검은 막대는 각도를 바꿀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붙였다 뗀 흔적입니까?” 하지후가 물었다.
“그건 떼어 봐야 알죠. 지금 보이는 건 종이가 두 겹이라는 것뿐입니다.”
“조금 전에는 태그가 두 장이라고 했잖아요.”
“흥분하면 기사도 명사를 앞질러 씁니다.”
유리문 바깥에 서 있던 로사가 코웃음을 쳤다.
“저 사람, 모른다는 말을 배운 지 세 시간 됐어요. 너무 빨리 시험하지 마요.”
지후는 웃지 않았지만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는 무전으로 폭발물안전팀의 비개봉 검사 결과를 재확인했다. 위험물 반응 없음. 외관상 누출 없음. 개봉은 별도 승인 전까지 금지. 짧은 문장들이 복창될 때마다 태식은 가방보다 시계를 보았다. 새벽 근무가 끝난 지 오래였고, 분류장은 이미 주간조가 넘겨받았을 시간이었다. 그래도 돌아갈 수 없었다. 자기 눈으로 발견한 두 번째 선이 사라질까 봐가 아니라, 누군가 첫 번째 설명을 너무 빨리 붙여 버릴까 봐였다.
문이 열리고 항공화물 손실 조사관 이나경이 들어왔다. 머리는 대충 묶여 있었고, 목에는 방문증이 뒤집힌 채 걸려 있었다. 그녀는 인사보다 먼저 투명봉투의 봉인번호를 읽었다.
“사진 원본은 어디 있죠?”
태식이 단말을 내밀자 나경은 받지 않았다.
“보여 주지만 마시고 이관 기록을 만드세요. 누가 언제 촬영했고, 원본이 어느 단말에 있는지.”
“아침부터 반갑다는 말은 안 합니까?”
“반가운 물건을 부른 게 아니잖아요.”
지후가 태식의 현장기록을 가리켰다. 나경은 서서 훑다가 ‘재투입 경로 미확인’이라는 문장에 손가락을 멈췄다.
“좋네요. 탑승하지 않은 가방이라고 쓰지 않았군요.”
“탑승기록이 비었다고 했습니다.”
“그 차이 때문에 왔어요.”
나경은 최근 석 달 동안 들어온 손실 접수 가운데, 항공편에는 실렸다고 처리됐으나 도착지에서 찾지 못한 화물 세 건을 설명했다. 모두 포장도, 발송 회사도 달랐다. 지금 가방과 연결됐다는 증거는 없었다. 다만 한 건의 신고 중량과 검은 가방 태그의 표시 중량이 같았다.
“그러니까 이 안에 그 물건이 있다는 겁니까?” 태식이 물었다.
“아니요. 그래서 외부 중량을 재고 싶다는 겁니다.”
나경은 검사대 옆 저울을 바라봤다. 지후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순서가 바뀝니다. 안전 확인이 끝났어도 가방은 아직 미확인 수하물입니다. 손실 조사 때문에 먼저 만질 수 없어요.”
“가방을 열자는 게 아닙니다. 운반함째 재고, 빈 운반함 무게를 빼면 됩니다.”
“그 과정도 승인받고 하죠. 안전팀이 이송한 상태를 손실팀이 임의로 바꿨다는 말이 나오면 숫자도 못 씁니다.”
태식은 둘의 시선 사이에서 저울을 봤다. 숫자 하나면 이야기가 빨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새벽에 자기가 가방을 바로 벨트에 얹지 않은 이유도 빨리 보내는 것보다 흔적을 남기는 일이 중요해서였다.
“저울은 도망 안 갑니다.” 그가 말했다. “가방도 지금은 못 도망가고.”
“사람은 도망가죠.” 나경이 대꾸했다.
“그러니까 태그부터 보죠. 사람 이름 말고 종이 이름.”
지후가 보안 담당자 둘을 불렀다. 세 사람은 검사대 주변을 비우고, 태그가 붙은 손잡이 부분만 투명 보호판 아래로 옮겼다. 접착면을 젖히는 사람, 촬영하는 사람, 봉인번호를 읽는 사람이 따로 섰다. 태식은 선 밖에서 손전등 각도만 설명했다.
핀셋이 겉태그 모서리를 밀어 올렸다. 끈적한 접착제가 길게 늘어나며 아래 종이가 드러났다. 숨겨진 태그는 온전하지 않았다. 목적지 칸은 잘려 나갔고 바코드와 일련번호 일부만 남아 있었다. 겉태그와 같은 항공편 형식을 썼지만 끝 두 자리가 달랐다.
“둘 다 진짜일 수도 있습니까?” 로사가 물었다.
나경이 확대 화면을 당겼다.
“형식이 맞는 것과 실제 발행된 건 다른 문제예요.”
그녀는 발권시스템 조회를 요청했다. 아래 태그의 번호는 전날 취소된 예약에 배정됐던 것이었다. 승객이 발권 전 취소해 출력 기록은 없어야 했다. 겉태그 번호는 더 이상했다. 형식은 맞는데 어느 발권기에도 인쇄 이력이 없었다.
“유령표네.” 태식이 중얼거렸다.
“없는 사람을 자꾸 만들지 마세요.” 나경이 말했다. “취소 번호를 아는 사람과, 같은 형식으로 새 번호를 만든 사람이 같다는 보장도 없어요.”
“말버릇입니다.”
“조사관은 남의 말버릇으로 야근합니다.”
지후가 두 태그를 서로 다른 증거봉투에 넣게 했다. 접착층에서 떨어진 작은 섬유도 별도 용기에 담겼다. 태식은 그제야 어깨가 뻐근한 것을 느꼈다. 로사는 밤새 서 있던 미화원들을 먼저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 사람들 진술은 다 했어요. 가방에서 먼지 나오면 청소반부터 다시 부르겠죠?”
“필요하면 부르겠습니다.” 지후가 말했다.
“필요하다는 말이 가까이 있었다는 뜻이면 안 됩니다.”
태식은 로사 쪽을 보았다. 새벽에 자신이 기록 첫 줄을 고친 것으로 끝난 일이 아니었다. 로사는 매 순간 같은 선을 다시 그어야 했다.
“교대조 전원 대기 해제부터 기록해 주세요.” 태식이 지후에게 말했다.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근거와 같이 다시 부르고.”
“고 기사님도 포함입니다.”
“나도 집에 좀 보내 주면 고맙죠.”
그러나 나경은 태식이 돌아서기 전에 정비 기록을 물었다.
“이 형식의 태그 용지를 수하물 설비 쪽에서도 씁니까?”
“프린터 시험할 때 씁니다. 출력 위치 맞추고 판독기 반응 보는 용도죠.”
“승객 번호도 찍혀요?”
“시험 문자열만 찍어야 합니다. 실제 형식은 발권 쪽에서 내려온 샘플을 쓰기도 하고.”
나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용지는 어디서 나옵니까?”
태식은 대답하기 전에 기억을 더듬었다. 정비창고 셋째 칸. 한 묶음에 이백 장. 불출대장에 서명하고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야간에는 창고 담당자를 깨우기 싫어 다음 날 적는 일도 있었다.
“정비창고에 있습니다.”
“누가 열 수 있죠?” 지후가 물었다.
태식은 입을 다물었다. 반장과 당직 기사들. 그리고 자신의 출입증도 그 문을 열 수 있었다.
“나도요.”
로사가 그를 가만히 봤다. 태식은 변명 대신 말을 이었다.
“오늘은 안 갔습니다. 아니, 갔다고 기억하지 않습니다. 로그로 확인하죠.”
지후는 그 표현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태식은 기분이 상했지만 고쳐 달라고 하지 않았다.
운반함을 저울로 옮겨도 된다는 승인이 뒤늦게 왔다. 보안 담당자가 바퀴 잠금을 풀고, 네 사람이 각자 자기 손이 닿는 위치를 확인했다. 운반함을 올리자 숫자가 흔들리다 멈췄다. 빈 함의 무게를 빼고 계산한 가방은 태그 표시보다 4.2킬로그램 무거웠다.
나경은 결과를 보고도 기뻐하지 않았다. 표시 중량과 실제 중량, 측정 장비 번호, 봉인 상태를 차례로 적었다.
“손실 화물 건과 같습니까?” 태식이 물었다.
“신고서 숫자와는 맞아요. 하지만 포장을 열어 내용물이 확인되기 전까지 같은 물건이라고 못 합니다. 그리고 같더라도 누가 넣었는지는 별개고요.”
“조사관님하고 말하면 결론이 한 걸음씩 뒤로 가는 기분입니다.”
“결론이 도망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빨리 달리는 거예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후의 단말이 울렸다. 정비창고 출입기록이 도착했다. 새벽 한 시 십이 분, 태식의 카드가 문을 열었다. 검은 가방이 19번 벨트에 두 번째로 찍히기 불과 몇 분 전이었다.
태식은 화면을 두 번 읽었다. 번호도 이름도 자기 것이었다.
“나는 그 시간에 7번 모터 앞에 있었습니다.”
“작업표는 그렇게 돼 있네요.” 지후가 말했다.
“작업표가 아니라 내가 거기 있었다고요.”
말이 커지자 로사가 한 걸음 다가왔다. 새벽에 운영실장이 자기 팀을 지목했을 때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방어할 준비를 하면서도, 남의 방어를 대신해 주지는 않는 얼굴.
“기억과 기록은 다른 거라면서요.” 로사가 말했다.
태식은 턱에 힘을 줬다. 지후가 출입기록을 확대했다. 카드 번호 아래에는 문이 열린 시간이 일 초 단위로 박혀 있었다.
“고 기사님, 협조자이면서 조사대상입니다. 두 지위를 분리하겠습니다.”
태식은 검사대 아래 놓인 자기 공구함을 내려다봤다. 당장 뚜껑을 열고 안에 태그 용지가 없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손이 잠금쇠로 가려는 순간 나경이 막아섰다.
“지금 열면 누가, 언제, 어떤 상태를 봤는지 또 다툽니다.”
“내 물건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먼저 열면 안 돼요.”
태식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계를 믿는다고 큰소리쳤지만 자기 이름이 로그에 뜨자 기록보다 자기 기억을 먼저 믿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공구함에서 손을 뗐다.
“봉인하세요. 정비창고도, 이것도. 같은 사람들 입회 아래 열어 봅시다.”
지후가 봉인띠를 꺼냈다. 태식은 숫자를 직접 읽지 않았다. 로사에게 읽어 달라고 했다.
“왜 나한테요?”
“아까 당신 기록을 내가 붙였으니까. 이번엔 내 걸 봐 줘요.”
로사는 천천히 봉인번호를 읽었다. 투명한 띠가 공구함 뚜껑을 가로질렀다. 태식의 이름이 적힌 출입기록과 미등록 태그가 나란히 증거판에 걸렸다.
보안창고 문이 닫히자 그는 자신이 정비해 온 공항에서 처음으로 출입증이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