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 미스터리 1화

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붉은 매듭을 든 열두 사람

열두 유가족의 붉은 매듭을 받은 민연화가 죽음과 약속이 얽힌 장부를 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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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람이 신을 벗었을 때, 민연화는 마루에 고인 물부터 보았다.

짚신 두 짝에서 흘렀다고 하기에는 많았다. 사내는 비가 그친 뒤에도 한참을 문밖에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젖은 발바닥을 어디에 놓을지 몰라 발가락을 오므리는 동안, 뒤따라온 여인이 그의 등을 밀었다.

“들어가요. 들어가서 받아야지.”

여인의 품에는 아이가 있었다. 잠든 줄 알았던 아이가 고개를 돌려 대청 안쪽을 보았다. 연화가 먹던 식은 조밥이 그쪽에 있었다.

연화는 밥그릇을 장부 뒤로 옮겼다가, 아이의 눈과 마주치고 도로 꺼냈다.

“여기 앉으세요.”

방석 하나를 내놓자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이 문턱을 넘었다. 마지막 사람이 들어왔을 때 대청에 서 있는 어른은 열둘이었다. 상복을 갖춰 입은 사람도 있었고, 평소 옷에 흰 천만 덧댄 사람도 있었다. 제각각인 차림과 달리, 손에 쥔 것은 같았다.

붉은 실을 세 번 접어 묶은 작은 매듭.

연화는 붓을 내려놓았다.

“상단에서 사람이 돌아왔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문밖에서 파루의 종소리가 길게 번졌다. 객주 안쪽에서는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쌀독 여는 소리가 났다. 연화의 앞에 선 젖은 사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돌아왔으면 우리가 이걸 들고 오겠소.”

그가 손을 펴자 매듭 아래 반쪽짜리 나무패가 보였다. 연화는 그 패를 알고 있었다. 봄에 계원들의 이름을 적고, 주인 보는 앞에서 하나씩 갈랐던 물건이었다. 한쪽은 길 떠나는 사람에게, 나머지 한쪽은 객주의 궤짝에 두었다.

“돌아올 날에서 사흘이 지났소. 다른 객주에도 소식이 없고. 우리더러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거요?”

아이를 안은 여인이 말을 받았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쌀이 떨어졌어요.”

그 말에 연화의 손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그녀는 해마다 같은 항목을 적었다. 낸 돈, 빌린 돈, 돌려준 돈. 길에서 죽은 계원의 집에 내어 준 돈도 적었다. 그때마다 이름 옆에 작은 점을 찍었는데, 지금 열두 사람이 그 점을 받으러 와 있었다.

아직 누구의 죽음도 확인하지 못한 아침이었다.

“연화야.”

허만복이 뒷문을 밀고 들어왔다. 허리띠를 다 매지 못한 채였다. 주인은 열두 사람을 보더니, 궤짝을 보았고, 다시 연화를 보았다.

“우선 내드려라.”

“무엇을요?”

“무엇은 무슨. 이분들이 받으러 오신 것을.”

연화는 대답 대신 궤짝 열쇠를 집어 장부 위에 놓았다. 만복이 다가오자 장부를 그쪽으로 돌렸다. 마지막 장 한가운데, 지난달의 붓자국보다 옅은 글씨로 잔액이 적혀 있었다.

“열두 몫을 모두 치르면 가을까지 남는 게 이것입니다.”

그녀는 다음 칸을 짚었다.

“장안에 남은 계원이 스물일곱입니다. 지난달 다친 김 생원 댁 약값도 아직 나가고 있고요.”

“그러면 굶겨 돌려보내자고?”

목소리는 문턱에서 났다.

강복단이 등에 멘 보따리를 내렸다. 어깨에 짐끈이 파고든 자국이 선명했다. 그녀는 길을 비키지 않는 사내 사이를 지나 아이 곁에 쪼그려 앉았다.

“아침 먹었니?”

아이는 어머니 얼굴을 보았다.

복단이 고개를 들었다.

“산원. 그 장부에는 빈 솥도 적나?”

연화는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복단과 이런 말을 주고받으면 언제나 자신이 따뜻한 방에서 남의 허기를 셈하는 사람이 되었다. 실제로 지금 그녀 앞에는 밥이 있었고 저 아이 앞에는 없었다.

그렇다고 살아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의 이름에 점을 찍을 수는 없었다.

연화는 밥그릇을 아이 앞으로 밀었다. 곧바로 여인이 그릇을 밀어 돌려놓았다.

“빌어먹으러 온 건 아닙니다.”

“압니다.”

그 말이 너무 빨리 나왔다. 연화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했다.

“아는 척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녀는 자기 수저를 거두고 부엌 쪽을 불렀다. 깨끗한 수저와 따뜻한 물을 부탁한 뒤, 그릇을 둘 사이에 놓았다. 여인은 한동안 그것을 보다가 아이를 마루에 내려앉혔다.

첫 숟갈이 아이의 입으로 들어갔을 때에야 연화는 장부의 새 장을 폈다.

“오늘 먹을 쌀과, 사람이 죽었을 때 받는 계금은 나누어 적겠습니다.”

만복의 눈썹이 움직였다.

“쌀은 오늘 하루 몫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패를 먼저 맞추고요. 계금은 사흘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동안 어디서 길이 막혔는지 사람을 보내 알아보겠습니다.”

“쌀을 빌려 먹고, 사흘 뒤에도 사람이 안 오면?”

젖은 사내가 물었다.

“그때 일을 오늘 죽었다고 써 놓지는 않겠습니다.”

“결국 네 장부만 깨끗하면 되는구나.”

복단의 말에 연화는 붓을 놓았다.

“장부를 깨끗하게 두려면 빌려 드리는 것도 안 된다고 했겠지요. 이 돈은 제 돈이 아니니까요.”

그녀는 복단을 똑바로 보았다.

“대신 사람을 찾는 데 들어갈 품삯은 제 몫에서 빼겠습니다. 길은 제가 잘 모르니, 어디로 보내야 할지 알려 주세요.”

복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연화가 먹지 못한 밥그릇을 한번 보고는 보따리를 발로 밀어 벽에 붙였다.

“사흘이다. 기일만 새로 적고 끝내지 마라.”

“예.”

허만복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이 먼저 내드리라고 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부엌으로 몸을 돌렸다.

“쌀 됫박 가져오너라. 내어 주는 건 내가 보마.”

연화는 궤짝을 열었다. 나무패들이 얇은 종이에 싸여 있었다. 계원의 이름과 사는 곳, 처음 돈을 낸 날을 하나씩 읽고, 찾아온 사람이 내민 반쪽과 갈라진 면을 맞췄다.

패는 닳는 법이 달랐다. 누군가의 것은 구멍 가장자리가 반들거렸고, 누군가의 것은 손때 때문에 글씨가 흐렸다. 첫 사내의 패에는 작은 이가 빠져 있었다. 궤짝 속 반쪽에 남은 돌기가 그 자리에 들어맞았다.

그제야 사내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이렇게 맞춰 보지도 않고 돈부터 줄 줄 알았소?”

그는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연화는 패를 돌려주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음 여인은 매듭을 풀지 못했다. 손가락이 부어 실 끝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연화가 손을 내밀자 여인은 움찔하며 패를 가슴에 붙였다.

“가져가지는 마세요. 남편이 내가 가지고 있으랬어요.”

“그럼 손 위에 놓아 주세요. 거기서 보겠습니다.”

연화는 궤짝에서 꺼낸 반쪽만 움직였다. 여인의 손바닥 위에서 두 조각이 붙었다. 여인은 고개를 숙여 그 모양을 보다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소리로 중얼거렸다.

“집에서는 그런 말도 안 하던 사람이.”

연화는 패가 맞는다는 표시를 했다. 죽었다는 점과는 멀리 떨어진 칸이었다.

아홉 번째 사람까지 확인했을 때, 마루에는 쌀을 담을 자루를 펴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는 소매 끝으로 눈을 닦았고 누군가는 오늘 몫이 정확히 얼마인지 다시 물었다. 허만복은 넘친 쌀을 손으로 훑어 됫박 안에 넣다가 복단에게 눈총을 받고, 결국 한 줌을 더 얹었다.

열 번째 사내는 그 광경을 보지 않았다.

그는 문 가까이에 선 두 사람과 눈을 맞췄다. 셋 가운데 키가 가장 작았고, 비가 왔는데도 도포 아래쪽에는 흙이 거의 없었다. 그것만으로 이상할 것은 없었다. 가마를 탔을 수도, 골목 안에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품에 넣는 손의 속도가 눈에 걸렸다.

“나는 됐소.”

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패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쌀 한 됫박 꾸러 여기까지 온 줄 아시오? 정식으로 내줄 때 다시 오겠소.”

“성함만 말씀해 주세요. 오신 것을 적어 두겠습니다.”

“방칠이오.”

그는 대답하고 돌아섰다. 문가에 있던 두 사람도 움직였다.

복단이 보따리 끈을 고쳐 잡으며 일어났다. 길을 막지는 않았다. 마루 끝으로 한 걸음 옮겨, 내려가는 사람들의 발을 보고 있었다.

연화는 방칠을 불렀다.

“패를 빼앗으려는 게 아닙니다.”

그가 돌아보았다.

“맞는지만 보겠습니다. 다음에 오셨을 때 또 기다리지 않으시게요.”

뒤에 선 사내가 짧게 혀를 찼다. 방칠은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품에서 손을 꺼냈다. 벌어진 손가락 사이에 반쪽 패가 잠깐 보였다.

연화가 자기 손을 받쳐 대자 그는 다시 움켜쥐었다.

“집사람 유품이오. 함부로 만지지 마시오.”

그의 손에 달린 붉은 매듭이 연화의 검지 끝을 스쳤다.

말을 더 붙일 틈도 없이 방칠이 마당으로 내려갔다. 두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복단이 대문 옆에 서서 그들을 불렀다.

“사흘 뒤 또 와서 같은 말을 들을 셈이오? 지금 같이 펴 보이고 가면 그 수고는 덜 텐데.”

“문 닫을까요?”

문지기가 물었다.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복단도 문간에서 비켜섰다.

쌀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붙들 수는 없었다. 패를 보여 주기 싫어하는 사정도 있을 수 있었다. 방금 자신의 손 안에서 패를 놓지 못하던 여인을 그녀는 잊지 않았다. 방칠은 열린 문을 보다가 뒤따르던 둘에게 무어라 낮게 말했다. 셋은 잠시 더 실랑이를 하고서 대청 끝으로 돌아왔다.

“방칠이라고 했지.”

복단이 연화 곁으로 왔다.

“예.”

“이름을 적어. 다른 둘의 생김새는 내가 기억하마.”

연화는 붓을 잡으려다가 멈췄다.

검지 끝이 붉었다. 피가 난 줄 알고 엄지로 문질렀는데, 색이 옆 손가락으로 옮겨 갔다. 실에서 배어 나온 물이었다.

연화는 손가락을 코 가까이 가져갔다. 젖은 실 냄새 사이에 익숙한 염색 냄새가 남아 있었다. 지난봄 객주 뒤뜰에서 매듭 꾸러미를 말릴 때 맡았던 냄새였다.

그날 그녀는 바람에 떨어진 실을 다시 널면서 손톱 밑까지 붉게 물들었었다. 계원들이 떠날 때는 모두 말라 있었다.

“왜?”

복단이 물었다.

“새로 물을 들였나 봅니다.”

“상중에도 실은 염색하지. 해졌을 수도 있고.”

“예. 그럴 수 있지요.”

연화는 앞서 패를 맞춘 아홉 사람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손에 매달린 붉은 실도 비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쌀자루를 묶는 손가락에는 붉은 얼룩이 없었다.

그녀는 종잇조각을 꺼내 손끝을 눌렀다. 희미한 자국 하나가 찍혔다.

장부의 방칠이라는 이름 옆에는 아직 아무 점도 찍지 않았다.

“복단 어른. 매듭을 다 같이 놓고 볼 자리가 필요합니다.”

복단은 대청 끝의 세 사람을 보았다.

“뒤에 종이 말리는 방이 비었어. 채반도 가져오마.”

아이가 빈 밥그릇을 내려놓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로 작게 울렸다. 연화는 종잇조각을 반으로 접었다.

오늘 따져야 할 것은, 누가 죽었느냐는 질문만이 아니었다.

그 죽음을 받으러 온 사람이 누구인가도 물어야 했다.